미셸 푸코는 죽이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주권자의 생사여탈권에 기초한 전통적 권력이 생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권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양적인 증감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출생률, 이병률, 수명, 생식력, 건강 상태와 같은 고유한 변수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기 시작한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의 출현에 주목한 바 있다. - P171
총독부 관리들이나 일본인 학자들은 조선인 절대 다수가 계몽되지 못해 미신과 관습에 사로잡힌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미 성숙한 근대인인 일본인과는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아시스난디는 피식민지인을 아동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이러한 인식이 근대 식민지 체제들 안에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성숙과 성장을 해야 하는 ‘아동’의 존재와 이들을 돕는 책임을 가진 주체로서의 ‘성인‘으로 상징되는 성장과 발전의 테마는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에 손쉽게 유비되었다. 식민지인의 차이는 야만의 상징인 동시에 아동의 미성숙함에 대한 대응물로 간주되곤 했다. - P182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모종의 인식론적 전환, 즉 성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접근에서 의학적·생리적 접근으로의 전환과 같은 이분법을 통해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도 여전히 비의료인 지식인들은 ‘성교육‘에 대해 발언권을 가졌으며,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의학적 전거를 동원했다. ‘불순혈설‘을 둘러싼 논쟁은 지식인 그룹 내부에서의 담론의 혼재를 잘 보여준다. ‘불순혈설‘은 여성이 한 명 이상의 남성과 성관계를 하면 혈액 중에 이미 성관계를 한 남성의 혈액이 남아 ‘순혈한 혈통‘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이론으로 1920년대 조선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 P185
여성성과 남성성은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신체적으로 양성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새로운 사유의 발전에 있어 1920~30년대 내분비학의 발전은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인간이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과학자들은 이것을 모든 여성들이 남성의 요소를 가지며 모든 남성들이 여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성전환수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양성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내분비학 학자 오이겐 슈타이나흐를 비롯해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성전환 실험/수술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이러한 작업을 ‘창조‘라고 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수술은 호르몬을 사용해 지배적인 성별의 신체적 특징과 성행동을 억제하고 잠재된 반대 성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 있는 존재이며, 호르몬을 통해 신체를 한 방향이나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성별이란 내분비물의 추가나 감량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양적인 차이로 이해되었다. - P214
식민지 당국은 조선인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특유의 제국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본국‘ 일본에 비해 더욱 가부장적으로 조선인의 성을 통제했다. 이것은 공공의 의제로서 성담론이 논의되는 지형을 매우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성은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는 상업화와 의료화를 매개로 사적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 주제가 되었다. 성이 개인화되고 내밀화되는 경향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자발적으로 관리하는 ‘자기관리‘의 주체이자, 끊임없이 자신의 성생활과 남성/여성 정체성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잠재적 환자로서 이러한 담론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 P218
20세기 초는 세계 각지에서 근대적 여성 고등교육기관과 기숙학교가 등장한 시기로, 동시대적으로 많은 국가들에서 매우 유사한 형태의 로맨틱한 관계들이 출현했다. 선배와 후배 여학생들 사이에서 혹은 여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었던 이 로맨틱한 열정은 미국에서는 스매싱smashing 혹은 크러쉬crash(현대의 ‘걸크러쉬‘의 어원)로, 영국에서는 레이브raves로, 남아프리카 레소토에서는 마미 momm와 베이비baby로, 그리고 일본과 조선에서는 ‘S‘로 불렸다. "여류명사의 동성연애기"는 기사기획에 맞추어 일관되게 ‘동성연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당시의 여학생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명칭은 ‘S’(S언니/S동생)였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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