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서
전시 환경파괴는 전쟁범죄이다
1943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어느 생물학 실험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아서 갤스턴은 ‘2, 3,5-트라이아이오도벤조산‘이라고 불리는 화학물질이 식물의 생장을 무분별하게 촉진시켜서 오히려 말라죽게 한다는논문을 발표하였다. 불행하게도 이 연구결과는 갤스턴이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적극 활용되었다. 1950년대 영국과 미국 국방부 소속 과학자들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식물을 말려서 죽이는 제초제, 즉 고엽제를 만들어냈다.
우리에게 고엽제는 미군이 1961년부터 1971년까지 10년 동안 베트남전에서 약 8,000만L를 살포했던 ‘에이전트오렌지‘라는 이름으로 잘알려져 있다. 영국 공군도 1950년대에 일명 ‘말라야 비상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말레이시아 반도에 고엽제를 살포하였다. 에이전트오렌지를 비롯한 제초제의 파괴력은 잔혹했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이었다. 오늘날 에이전트오렌지로 인해 파괴되었던 인도차이나반도의 숲은 외관상으로는 옛 모습을 되찾은 듯하다. 하지만 화학염으로피해를 입은 베트남 주민들은 최소 400만 명에 이르며,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과 한국 군인들도 고엽제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오염물질이 빗물에 씻겨서 지하수로 흘러들어간 뒤 인간의 건강뿐만 아니라 동식물에도 소리 없는 피해를 계속 입히고 있다. - P109

백무산
현실은 이제 인간에 대한 문제에 다른 관점을 요구한다. 인간문제를넘어서 인류의 문제로, 문명의 역사를 넘어 인류사 전반의 문제로 인식의 확장을 요구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사회를 기준으로 나머지 다른 영역을 해석하는 오만하고 잘못된 전통 그대로 문명사회를 기준으로 과거 인류의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간을 제대로이해하기 위해서 ‘머나먼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P121

도시문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문자였다. 도시는 이질적인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교환을 위한 사업적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문자가 이질적인 것을 연결하고 권력에 의한 통제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문자는 단순히 말을 받아 적은 기호가 아니었다. 문자는 우리의 생활세계에 생성하고 소멸하는 구술적 상호작용 대신에 정신을 사물화하고 불변하는 허구적 세계를 구성하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스스로를 지상에서 더없이 우월한 존재로 만들었다. - P123

자본주의 노동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변형하고 왜곡시킨다. 자본주의 노동습관은 자연에 대해 무관심과 적대와 공격적인충동을 유발한다. 노동의 윤리는 그 시대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태도를결정한다. 노동 자체에 대한 성찰은 근대성에 대한 성찰이며 자연과의왜곡된 관계에 대한 성찰이다. 기계노동은 신성하지도 인간적이지도않다. 그 누구도 인간성의 요구대로 노동자가 된 사람은 없다. 채찍과감옥이 있었고 감시와 처벌로 훈육되고 개조되었다. 이러한 성격을 인간성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윤리성을 인간의 고유성으로 둔갑시켰다. - P125

숲속을 거닐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기보다 무엇으로부터 자신이 발견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시선에서 발견되는 나는 내가 생각해온 내가 아니다. 그 시선은 나의 내면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을 깬다. 나는 보는 자이기도 하지만 보이는 자이기도 하다. 보여지는 것도 나의인식의 일부다. 나의 내면은 내 안에만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 P127

강수돌
저는 언론과 대중문화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개개인이 분리배출 잘하고 전기차를 타면 기후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녹색과 성장이 양립할수 있는 개념인 것처럼 이야기해서 정치의 책임으로부터 눈을 돌리게합니다. 그렇지만 수치로 따져도 세계 최상위 부자 10%가 대기 중 온실가스의 약 45%의 책임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 사람들의 생활이 평균으로만 내려와도 온실가스가 3분의 1 줄어든다고 합니다. - P146

선생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생활정치라고 할까요, ‘나부터 혁명‘이라는저서도 여러 권 내셨지만 사고장애, 경쟁, 동일시, 중독 등의 개념을 가지고 우리 보통사람들의 왜곡된 욕망을 분석하고, 노동(자본)의 족쇄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때 맛볼 수 있는 보람과 즐거움, 그리고 가능성을 몸소 실천적으로 주창해오셨지요. 저희 편집실은 깊은 무기력증과 빈곤한 상상력의 수렁에 갇혀 있는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은 정밀한 진단과 함께 대안적 삶의 모습 그 자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을 청해 듣고 싶었습니다. - P147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력’으로서의 삶을 무시할 순 없지만, 노동력 차원이 10~20% 정도라면 ‘인격체‘로서의 삶이 80~90%가 돼야 온전히 삶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어요. - P148

강 대다수 사람들이 ‘강자동일시‘를 하면서 그들을 선망하고 모방하려 하는 것은 결국 ‘거품을 향한 질주‘죠. 물론 자본주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로 묘사할 순 없어요. 오히려 크게 두 가지 측면-신분의 자유화, 소비의 민주화라는 역사적 성취를 이뤘어요. 그러나 이 성취들이갈수록 족쇄로 기능하죠. 신분 자유화로 노동력을 자유로이 거래하는대신 잉여가치 생산시스템에 종속되었고, 소비 민주화는 결국 자원낭비, 자연오염, 생태위기를 초래했어요. ‘이카루스 역설‘처럼 성공의 요인이 패망의 요인으로 작동한 역설이죠. 비근한 예로, 성공 신화로 회자되는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떴잖아요. 그가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성공은 할 만큼 했지만 놓친 게 있다. 바로 내 삶을 놓쳤다. 내 삶의 시간과 내용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결코 살 수 없다." 가치관 내지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과 이런 메시지를 공유하고 토론을 해야 한다고 봐요. - P151

그러니까 내가 잡초를 ‘이겨야지‘, 이런 마음으로 달려들면 안돼요. 요즘 저는 잡초한테 배워야지, 잡초처럼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우리도 그런식으로 활동하고 운동해야죠. 칡넝쿨처럼 우리가 가는 모든 지점에 뿌리를 내리고 씨앗을 뿌리는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야 해요. 그게 얼마나 성공할 것인가 물어보는 이들이 있는데, 결과와는 관계없이 ‘옳은 일‘이면 해야죠. - P155

복지국가란 원래 자본주의를 존속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 결코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변화시키는 건 아니죠. 이 부분에 저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요. - P162

강 굉장히 중요한 점인데, 아픔이나 고통 같은 어두운 면이나 기쁘고 행복하고 밝은 면 모두, 큰 차원에서는 삶의 흐름 안에서 부단히 교 - P168

차하고 공존하는 거예요. 그런데 도시민들은 대개 좋은 것만 취하려 하고 나쁜 것은 남에게 전가하거나 안 보이는 데로 돌려버리려는 회피성향이 커요. 어두운 면(더러움, 촌스러움, 귀찮음, 아픔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둠을 직시하지 못하죠. 그리고 바로 그 과정에 자본이 개입해요. 기술이나 약품, 오락의 형태로! 그렇게 해서 중독의 늪에 빠져드는거예요. 자신의 인간적 필요, 고통 같은 것들을 책임감 있게 직접 대면하면서, 때로는 좀 아픔도 겪으면서 긴 터널을 통과하듯 빠져나가야 비로소 어둠과 함께 하나의 큰 세상을 구성하는 빛도 맛볼 수 있어요. 두렵다고 자꾸 우회로를 만들고 달콤한 대체물에 의존하게 되면 중독의수렁에서 헤매게 되죠. 그렇게 ‘악의 일상성‘이 구현되는 거죠.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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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구매 첫 책은 여성주의책 같이읽기 책 <파묻힌 여성> 415페이지인데 주석이 100페이지가 넘는다. 100페이지 날로 먹는 느낌 ㅋ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와 <제법 엄숙한 얼굴>은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 책이다. 근대 여성 작가의 단편소설들과 이에 대한 현대 여성 작가의 단편소설과 에세이 매칭이라는 흥미로운 기획, ‘소설, 잇다’ 시리즈이다. 잘 몰랐던 근대 여성 작가 작품을 보는 재미가 기대된다.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10월말에 구입한 책이다. 남편의 요청과 첫째의 학교 숙제용으로 구매 대행. <경제학이..>는 읽어보겠지만 자본론과 함께 자본주의 양대 산맥이라는 막스 베버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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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1-01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0페이지라니!! 주석이 엄청 자세한 가 보군요? 자세한 주석은 중간중간 있어야 보기 편한데….

햇살과함께 2023-11-03 18:58   좋아요 0 | URL
주석이 많으면 각주에 있어도 미주에 있어도 보기 불편하더라고요.
중간 중간 있으면 읽기에 맥이 끊기기도...

다락방 2023-11-02 0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석이 백페이지라고요? 하하하흐

햇살과함께 2023-11-03 18:58   좋아요 0 | URL
ㅎㅎㅎ 100페이지 거저 먹는 느낌

독서괭 2023-11-02 07: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 할 기한이 있는 책은 페이지수부터 확인하는데, 주석 분량이 많으면 다행스럽기도 하더라고요 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11-03 18:59   좋아요 0 | URL
괭님도 그렇군요. 저도 일단 몇 페이지인지 가늠 ㅎㅎ

단발머리 2023-11-02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교 숙제용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눈길이 갑니다. 주석이 100페이지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11-03 19:01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 너무 하신 거 아니신지.. 고등학생에게 막스 베버라니... ㅎㅎㅎ 덕분에 소장용 책 하나 더 생겼고요.
책은 아무도 펼쳐보지 않았다! ㅎㅎㅎ
 

안담, 작가-친구-연습
어딘글방에서 우리는 작가 되기뿐만 아니라 작가의 친구 되기도 훈련했다. 인용하는 연습뿐만 아니라 인용당하는 연습도 했다. 기꺼이 서로의 글감이 되어 줄 수있는가? 글방에서 우정은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어떤 경험과 말에 ‘내 것‘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치사하고 쩨쩨한 처사였다. 누가 나를 글에 써서 분하다면 나도 그를 글에 쓰면 된다. 공동으로 겪은 하루를한 사람은 글로 써 오고 한 사람은 만화로 그려 오는 풍요가 글방에는 있었다. 아직 쓰이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내 이야기였어야 할 이야기‘라거나 ‘내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라는 표현은 틀렸다. 그가 썼다면 그의 이야기인 것이다. - P22

언제부턴가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의 뛰어난 문장과 생각을 모셔와내 글의 부족함을 만회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그 대가로 나도 내 말을 그들에게 헤프게 준다. 이제는 친구들이 나를 어디서 어떻게 인용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나는‘이라고 너무 많이 쓰다가 그렇게되었다. 원없이 ‘나‘라고 써놓고보니 그 많은 나가 다나일 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엇이라고 쓰는 순간 나는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진다. 나는 무엇도아니다. 그러므로 내말은 너의 말도, 그의 말도 될 수있다. - P29

이연숙, 비우정의 우정
그러나 분명 우호적인 관계를 못 맺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 역시도 우정이라는 개념을 경유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상적이라 말해지는 사회 규범에 도무지 적응할수 없는 괴짜들(queer)이 속할 수 있는 가장 미약한 공동체를 상상하기 위한 용어로 ‘비(非)우정의 우정‘을 제안한다. 비우정의 우정이란 너와 나의 ‘같음‘이라는 유사성과 동일성에 기반을 둔 우정이 아니다. 오히려 너와 나의 ‘다름‘이라는 불화와 불일치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너와 나의 ‘특별함‘ 또는 ‘유일무이함‘이라는환상이 들어설 자리를 너와 나라는 ‘아무나‘의 우연한마주침으로 채운다. 너와 내가 결코 같지 않고 앞으로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너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혹은너를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처럼 영원히 반복될 너라는 대상을 향한 나의 오해와 오독에는 일종의 충실성이 있다. - P39

김영민이 『동무론』에서 제시한 비우정의 우정은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사에서 유구하게 반복되어 말해진 주제다. 다시말해 우리가 우정이라 부르는 관계는 ‘나는 그를 안다‘는 긍정이 아니라 ‘나는 그를 모른다’는 부정에서, 혹은 그런 긍정과 부정의 사이 또는 겹침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주제에서 가장 유명한 경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고전해지는 "친구여, 친구가 없구나(O friend, there is nofriend)‘일 것이다. ‘친구‘를 돈호하는 동시에 ‘친구‘의부재를 확인하는 이 수수께끼 같은 경구는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에 의해, 그리고 『우정의 정치학에서 데리다에 의해 전유된다. 하지만 조르조 아 - P45

감벤에 따르면 그들은 전략적으로 그리스어 원전을 오독했다고 한다. 원전의 의미는 ‘친구가 많은 자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 P45

흥미롭게도 푸코의 우정론의 토대가 되는 ‘비인격적 친밀감‘은 로넬의‘커피나 한 잔‘에 대한 혐오, 김영민의 ‘서늘한 관계‘에대한 옹호, 아감벤의 ‘함께-나님‘과 공명한다. 이처럼친구의 정체성도, 과거도, 얼굴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비우정의 우정이 제기하는 문제는, 내가 너를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P51

김정은, 자기 언어를 찾는 방법
1984년 결성된 ‘또 하나의 문화‘는 조형, 조한혜정, 조옥라, 장필화 등이 남녀평등 문제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대안 문화를 모색하고자 한 동인 모임이다. [1] 줄여서 ‘또문‘이라 불린 이들은 계급 담론과 노동자 정체성이 특권화된 1980년대 대항 공론장에서 노 - P57

동 현장이 아닌 가정과 학교 등을 새로운 현장으로 부각했다. 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 등에 소속된 동인들은 서울 신촌 지역에 사무실을 차리고, 이를 근거지로삼아 여러 모임을 주관했으며 모임의 결과물을 정리하고 다듬어 무크지 <또 하나의 문화》(1985~2003년)를펴냈다. 활자 매체를 통한 운동으로 20여 년 동안 한국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제를 발굴했다. - P58

현재 출판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길보라, 이슬아, 하미나 등 1990년대생 여성 필자들은 모두 같은 글방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자기 언어를 찾았다. 어딘글방을 운영한 김현아는 또문이 인큐베이팅한 대안학교하자센터의 교사였으며, 글방은 또문의 사무실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집단에서 서로의 언어를 찾아가는 우정이라는 방법은 단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도 자기 언어를 갱신하는 구체적 훈련 방식으로 활용된다. - P59

[10] 김혜순은 2002년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출간을 기념한 한인터뷰에서 ‘문화권력모임‘과 관련한 질문에 특히 바리데기와 관련해 "김성례 교수에게서 많이 배웠다."라고 말했다. "당시 미셸 푸코가 유행하면서 여기저기 ‘권력‘이란 말이 붙어다녔다. 토론 결과를 책도 내지 말고 세상에 알리지도 말자는 모임이었다. 서강대 종교학과 김성례 교수에게서 많이 배웠다. 바리데기는 기본 뼈대만 같은 이본(異本)이 수십 종이고, 그것들은 각각 연희 때마다 살아 있는 텍스트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리데기를 글로 읽지 않고 파동으로 받아들이면서 흡수하게 된 것이다." "강요된 주부엄마의 정체성 벗고 싶었다"」, 《조선일보》, 2002년 1월 3일. - P65

김예나, 털 고르기를 하는 시간
동성애의 생물학적 기원을 설명하는 연구 자료는매우 많고, 실제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서 동성 간 섹스는 많이 관찰된다. 하지만 동성 간 섹스를 하는 동물에게 찾아가 방금 섹스를 한 당신의 파트너가 연인인지그저 친구일 뿐인지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사랑과우정의 명확한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답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사랑과 우정은 사람이 만들어 낸 단어에 불과하다. 시공간에 따라 유동적인 개념이며 문화나 개인에 따라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 P82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타인과의 연대를 추구하고 그러한 연대를 통해 신체적, 심리적 안정을 얻으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리 지어 사는 모든 동물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 P82

김지은, 비둘기와 귀얽히는 영역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체로 욕실을 나온 후, 자신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의 시선에 돌연 부끄러움을 느낀다. 언제나 발가벗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늘 발가벗고 있지 않은 암컷 고양이 앞에 인간 남성이 전라의상태로 서서 고양이의 눈길을 온몸에 받는 상황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거북함을 자아낸다. 데리다는이 곤란한 만남을 동물적 만남이라고 명명하고, 그 만남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도출한다. - P92

비슷한 맥락에서 호주 페미니스트 생태철학자 발플럼우드가 들려주는 먹이 이야기는 ‘풍요롭고 호의적인 자연‘이라는 안일한 환영이 어쩌면 도시인이 덧씌운 ‘낭만화된 자연‘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녀는 1985년 2월 호주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홀로 카약을 타던 중 바다악어에게 허벅지를 물린채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죽음의 소용돌이‘를 세 번이나 겪는다. 악어의 공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생존한플럼우드는 만물의 주인으로 군림해 온 인간이 먹이로 전락한 사건 속에서 일종의 환영을 발견한다. - P101

김경채, 일본인이 되는 문제
식민지라는 극단의 시공간은 마음을 증명하고 판단하는 일이 권력 및 권리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한국과 일본을 지우고 질문을 이렇게 - P123

바꿔 보자.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대한 판단을 멈출수 있을까?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의심과 불안을 견디고 타자와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이것은결코 아름다운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생명에의 위협을 감수하고도 언젠가 나에게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는 타자의 존재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급진적인 물음이다. 나는 이런 물음들과 마주하는 것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가 혹은 민족의 구심력에 대항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 P124

김민하, 정치에서 우정 찾기
모두가 자기는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면서 남의 말에는 책임을 지우는 게 오늘날의 온라인 화법인 셈인데, 바로 이 점이 온라인상의 정치적 분쟁을 격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이게 대의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정치를 인식하는 일반적 방식과 결합하면 부정적 효과는 배가된다. - P159

장현정, 바닷가 동네의 친구들
우정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의 도움 그 자체보다는 우리 친구들이 틀림없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그 확신이우리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인간은 불안과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의 믿음 체계를 구성해 왔다. 먼 옛날에는 종교가, 이후로 국가나 민족이, 요즘에는 돈이라는물신(物神)이 사람들을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믿음 체계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종교나 민족이나 돈처럼 거대하거나 창백한 가치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대상을 믿는다. 사람 말이다. - P178

추주희, ‘호구’가 되는 우정
이후 나는 도시의 공동 주거 경험과 또래 관계에서 새로운 친밀성과돌봄의 지형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팸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팸은 가출이 장기화되거나 가족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탈가정 청소년들이 주거와 생활비를 해결하기위해 또래들과 함께 사는 방식이다. 가출한 후에 생계와 안전 그리고 정서적 유대를 도모하는 유일한 자구책인 셈이다. 그만큼 쉽게 해체되기도 한다. - P188

때때로 어떤 팸은 조건 만남이나 마약성 물품 판매 등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 유지된다. 그러한 불법적인 일로 현재의 삶을 돌보는 관계를 유지한다. 삶의 불법성과 돌봄의 필요성이 교차하는 관계에서 분명한 것은 서로를 돌보는 과정이 의미 있는 삶의 순간으로 경험된다는 점이다. 진짜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관계, 어쩌면 폭력성이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관계에서돌봄과 친밀성이 구성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영지와 그 팸 구성원은 서로 마땅히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팸에서 돌보는 자, 그러니까 호구를 일방적으로 - P198

착취당하는 피해자로만 보면 돌봄과 친밀성의 관계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돌봄과 폭력은 의존관계에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물론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폭력 속에서도, 폭력을 뚫어 내고서 팸 생활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이유를 돌이켜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들은 원가족을 벗어나서 새로운 가족 실천을 통해 자신이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매번 몸소 부딪혀서 배우고 결정해 간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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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빠서 <페이드 포>에 대해 더 쓰지 못했지만. 이것만은 남겨놓으려고 짧게 쓴다.
이 책 초반부에 나온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용어. 성매매와 라이프 스타일이라니!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어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모랜의 말이 얼마나 적확한지 알게 되었다.
성매매 만큼 한 개인의 인생에 지배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어디 있겠는가.


성매매와 관련해서는 ‘직업‘이라는 말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주로 특정한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칵테일, 커피, 크루아상 혹은 요트와 항만 같은 부자들의 여유롭고 흥미로운 휴가 말이다. 어쩌면 육아와 대출금, 일상의 출퇴근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상기시키고자 하는 이미지들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다.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할 때, 사람들의 대부분은, 심지어 성매매 당사자들조차도, 호텔이나 뒷골목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여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모습과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방식‘을 뜻하고, 성매매는 간단히 집 문밖에 두고 들어올 수 없는 것이기에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다른 업계의 노동자는 집에 와서 직업적 역할을 벗어버릴 수 있지만, 성매매 당사자는 복잡하게 얽힌 여러 요인들로 인해 그럴 수가 없다.
첫째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기 때문에 비밀에 매여 ‘평범한‘ 사회 구성원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매우 구별된다. 하루가 어땠는지, 다음 주의 계획이나 전날 있었던 끔찍한 경험 등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 한 일행은 다른 성매매 당사자들뿐이다. 성매매에 유입되었다는 이유로 조롱하지 않을 유일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왜 그곳에 남아 있는지, 왜 떠날 수 없는지 전적으로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행이다.
한 부류의 사람들과 일행이 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과는 어울릴 수 없게 된다.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3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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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0-31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일회성으로 딱 들어가서 돈 벌고 휙 나오고 원하는대로 고르고.. 이런 게 불가능한 ‘라이프스타일‘! 그 용어 사용이 신선하더라고요. 읽을수록 딱 맞고요^^

햇살과함께 2023-10-31 18:44   좋아요 2 | URL
그죠 그죠 모랜 넘 똑똑!
이 책 장마다 나온 인용구도 좋아서 그 책들도 찾아봐야지하곤.. 생각만 했네요
수하님을 소환해야 하나 ㅋ

독서괭 2023-10-31 19:25   좋아요 1 | URL
목록수하 소환 ㅋㅋㅋ

다락방 2023-10-31 21:00   좋아요 1 | URL
목록수하 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11-01 18:58   좋아요 0 | URL
수하님 어디 가셨지???

건수하 2023-11-02 08:24   좋아요 0 | URL
어디서 보고 지나갔었는데 여기 있었군요. 전 인용된 책 중 딱히 궁금했던 책은 없었는데…. 게다가 단발님은 벌써 한 권 읽으셨다니;

다락방 2023-10-31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타락의 상호작용이 정말 인상깊었는데 햇살과함께 님은 라이프 스타일 이었군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사간을 언제나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햇살과함께 2023-11-01 18:58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부분도 좋았지만, 라이프 스타일은 정말 초반에 나와서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 계속 글을 써주면 좋겠어요!
 
지금은 대만을 읽을 시간
서울중국어교사회 지음 / 민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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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크기의 1/3 밖에 안되는 대만에 무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이 260여 개나 있다니! 트래킹 가고 싶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굴곡진 역사의 대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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