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각본집 구매!

남편이 2번째 보고 와서 각본집을 당장 내놓으라고 하더니 그런 사람 많았나 보네. 벌써 각본집 예약판매! 당장 구매했다. 구매평들이 아주 다들 신났다 ㅋㅋㅋ

각본집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지난주에 마르틴 베크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오라고 하고, 어제는 말러 5번을 구매하라고 하고. 영화에 나온 건 정명훈 버전인데 김혜리의 필름클럽에서 추천한 성시연 버전으로 구매.

초반 흥행 별로더니 입소문 타고 N차 관람하는 사람 많아 손익분기 넘고 꾸준하다. 나는 첫번째 볼 때 계속 서래를, 해준을, 사랑을 의심하느라 잘 몰입하지 못했는데(제가 사랑에 의심이 좀 많습니다요 ㅋㅋ) 이동진, 김혜리 평론가 설명도 듣고 기사도 보고 공부 좀 하고 두번째 보니 더 빠져들어 보았다.

남편은 3차, 나는 2차 관람했는데 남편은 이번 주말에 한번 더 보겠단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7-18 2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저도 다시 보고싶어요. 남편도 그렇더라구요.
다만 영화관 말고 나중에 어딘가 뜨면 집에서 한밤에 조용히 보려구요.
전체적으로 흥행은 저조한데 한번 본 사람들이 재관람하는 비율이 많이 높으가봐요. ^^

햇살과함께 2022-07-19 12:16   좋아요 0 | URL
N차 관람하는 사람 비율이 다른 영화에 비해 높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볼 때 놓친 대사나 장면 다시 보면서 발견하는 깨알 재미가 있어요~
꼭 다시 보세요~

얄라알라 2022-07-18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심야 상영관에서 봐서 그랬는지 소리가 울려서 대사 놓친 부분이 초반, 중반에 있었어요.
다른 영화라면 대사 몇 마디 쯤이야 싶은데, [헤어질 결심]은 대사 하나하나 놓치면 안 되기에
각본집 소식 아주 반갑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07-19 12:18   좋아요 1 | URL
맞아요^^ 대사 하나 하나가 다 의미가 있고 2부에서 연결되기 때문에 다시 보면서 그렇게 연결되는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장면이 있어요.

얄라알라 2022-07-18 2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햇살과함께님은 2번이나 보시고, 유명 평론가분들 분석도 꿰뚫어 공부하셨으니 이해하시는 정도가 다르실 것 같아요.

저는 반만 이해한 거 같기도. 그렇다고 극장에서 보려니 슬슬 내려가는 분위기네요

햇살과함께 2022-07-19 12:21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김혜리의 필름클럽 들어보세요.
저는 평소 영화 보며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남편이 2차 보기 전에 꼭 들어보라고 해서 들었는데, 듣고 가길 잘했어요~

다락방 2022-07-19 0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각본집 안 사는 사람인데 ㅋㅋㅋ 이건 살까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07-19 12:2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도 각본집 처음 사봅니다
 
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띵 시리즈 7
호원숙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 박완서 작가의 음식 뿐만 아니라, 음식에 엄격하셨던 할머니, 엄격하진 않았지만 음식에 정성을 들인 외할머니의 음식과 호원숙 작가가 만드는 음식 이야기호원숙 작가의 어릴 적 음식에 대한 기억이 박완서 작가의 소설이나 에세이에 나온 글과 엮이면서 생생한 추억으로 살아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엄마보다는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우리 엄마는 요리를 못해서, 아니 안해서(?) - 가게와 집안 살림과 자식 넷 때문에 요리할 시간도 정신도 없었겠지요... 엄마가 생각나는 음식 추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엄마가 해준 음식으로 기억나는 건 김치로 만든 음식 밖에. 김치찌개와 두부김치볶음, 김치볶음밥을 엄청 자주 먹었다다행히 그것들을 그때도 좋아하는 편이었고(물론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볶음과 멸치볶음 너무 자주 해줘서 짜증 낸 적도 많지만^^), 지금도 좋아한다.


외갓집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가기 전에는 방학마다 며칠 씩 지내다 왔는데, 외할머니 음식이 정말 정말 맛있었다. 내가 싫어해서 엄마가 해주면 거의 먹지 않던 된장찌개도 외할머니는 어찌나 맛있게 끓이시는지. 밑반찬들도 어찌나 정갈하고 맛있는지. 편식 심해서 집에서 투덜거리며 먹지 않던 야채 반찬도 다 맛있고. 나물무침 왜 이렇게 맛있어? 왜 엄마는 외할머니의 음식 솜씨를 닮지 않은 것인가 하는 원망과 함께(엄마 뿐만 아니라 큰 이모, 작은 이모 모두 그 솜씨를 물려받지 못한 듯). 그 시골 동네는 구멍가게도 없어서 외할아버지가 하루에 한두 번 벽장에서 꺼내주시는 땅콩카라멜 말고는 군것질거리가 없어서 더 밥이 맛있었나?


외할머니 쪽진 머리도 생각난다. 친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뽀글이파마를 하셨는데, 외할머니는 뽀글이파마를 본 기억이 없다. 아침마다 경대를 보며 참빗으로 머리를 정갈하게 빗고 기름을 바르고 비녀를 꽂으시는 걸 항상 신기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내가 쳐다보는 걸 인자하고 지긋한 웃음으로 바라보셨지.


엄마의 음식은 나에게는 한끼 한끼 살기 위한 생존의 기억이라면, 외할머니 음식이 나에게는 손자 손녀에 대한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낱말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일은 우리의 느낌을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는 데 길잡이가 된다. ‘맞다‘는 말을 ‘합당하다’, ‘정당하다’로 바꾸어 쓰거나 ‘틀리다’는 말을 ‘오류다’, ‘착오다’로 바꾸는 것은 그 말의 쓰임이 우리 느낌에 닿지 않아서 겉돌게 하는 일이다. 내가 마구잡이로 밖에서 들여온 이른바 ‘학문용어’를 밑씻개로 씻어 낼 수도 없는 ‘똥구멍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데에는 그것이 우리 삶에 잇대어 있지도, 맞닿지도 않기 때문이다. - P97

‘이’는 한자어로 ‘현재‘를 나타낸다. ‘이’제, ‘이’곳, ‘이’ 사람처럼. ‘어‘는 한자어로 ‘과거‘(지난 적)를 가리킨다. ‘어제’처럼. 제주도 말에는 있다를 ‘이시다’로, 없다를 ‘어시다‘로 쓴 흔적이 있다. ‘이시다’는‘이▲다’, ‘어시다’는 ‘어▲다’로 말 줄임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말이 바뀌어 ‘잇다‘(있다), ‘엇다‘(없다)로 되었을 수 있다. - P98

‘안’과 ‘밖’이라는 말도 더 깊이 파헤치면 이렇다. ‘임’(있음)이 밖(박, 빛)에 드러난(들어 나온) 것이라면 ‘안임‘(아님)은 속에 감추어진 것, 숨은 것, 숨으로 있는 것을 가리킨다. ‘임’이 빛이라면 ‘안임’은 그늘이다. 그것은 늘 있으나 안에, 속에 있다. (속은 〈단군신화〉에서 ‘쑥’으로 나타난다). 어제(과거)는 이제(현재)의 안으로, 속으로 들어가 이제가 아니면서 이제의 속살을 이룬다. 얼과 넋이 된다. 기억으로 바뀐다. 경상도 말에 ‘아니다‘라는 말뜻을 지닌 ‘언제예’, ‘어데예’라는 말 쓰임이 있다. ‘어데예‘는 지나간 자리, ‘언제예‘는 지나간 때를 말한다. 어제는 이제에 내침을 받으면서, 부정되면서 안으로 숨어든다. 우리가 ‘아니다‘(안이다, 이미 사라져 숨어 있고 감추어져 있다, ‘안’에 들어 있다)라고 할 때 그 말은 단순 부정이나 아예 없앰이 아니다. 그것은 ‘뜻 밖‘이되 뜻이 안에서 생기는 ‘얼럭‘(얼과 넋)이라면 ‘밖‘에서 생기는 것이다. ‘안임‘은 안에 숨은 ‘임‘이다. - P99

아이들이 보고 듣는 것마다 ‘왜’냐고 묻는 것은 나에게 ‘오는 것‘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 걸림돌이 될지 알고자 하는 뜻에서다. ‘아‘는 ‘이제‘, ‘이곳‘, ‘이것‘ 밖에서 나에게 올 것인데,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귓결에, 코앞에, 눈앞에 오고 혀끝과 살갗에 닿을 때까지 알 수 없다. 겪어 보지 않은 세상은 모름의 틈새를 가득 채우는데, 그것을 우리는 머리 굴려서 알려고 든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우주의 역사이고, 생명의 진화이고, 인류 역사로 알려진 부스러기 지식들이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뭘 모른다는 것은 안다‘(뭘 모르는지 안다)는 말을 내뱉었다는데, 이것은 입 밖에 내뱉을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참말이라고 볼 수 있다. - P1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구병 선생님, 저도 선생님 책 보면서 ‘이게 뭔 소리여’ 하고 일아듣는 대목보다 못 알아듣겠는 곳이 더 많습니다…

속이 들었다. 속이 비었다. 속이 상한다. 속이 있다. 속이 없다. 속속들이 까발린다. 속이 뒤집힌다. 속앓이한다. 속알머리 (소갈머리) 없다. 속이 찼다. 속 보인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 겉 낳았지 속 낳았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속에 든 게 없다.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속 뒤집어진다. 속셈………. - P67

시(?) 비슷한 글을 끄적이며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아름답다는 것

있을 것이 있을 데에 있을 때 있고
없을 것이 없을 데에 없을 때 없는 것.
있을 것은 빠진 것이고, 없는 것이고
채워져야 할 그 무엇,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것.
없을 것은 군더더기고 있는 것이고
없애야 할 것, 드러나 있되 거슬리는 것.
내가 감싸는 산티가 나를 빚어낸 산티가
그리움으로, 아쉬움으로, 아직은 없는 것으로
찾아 헤매는 것, 있는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
내가 그것에 걸려 넘어지고, 짓눌리고, 그 때문에
않고, 휘둘리고, 갇히고, 슬프고 화나는 것.
군더더기로 있지만 치우고, 부시고, 흩어 버려야 할 것.
내 안에 스민 산티가, 손발 묶인 산티가
사슬을 끊고, 꺾임과 찢김 속에서 벗어던지고자 하는 것. - P75

아직도 나는 책으로 묶인 박홍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즐겁다. 알아듣는 대목보다 못 알아듣겠는 곳이 더 많다. 아직 멀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게 뭔 소리여‘ 할 대목이 더 많이 남아 있겠지. 내 나이 그 선생님 돌아가실 때 나이에 머지않았는데도 그렇다. - P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즘’ 읽을 때도 ‘복잡한 것투성이’라는 문장 있어서 띄어쓰기 잘못된 거 아닌가 했는데, 이 책에도 ‘모르는 것투성이’가 나와서 찾아 봄.

-투성이는 ‘그것이 너무 많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물,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서 앞말에 붙여서야 한다고. 실수투성이, 흙투성이 등등은 자연스러운데 것투성이는 영 낯설게 보이네. 띄어쓰기 어려워.

나는 이날 이때껏 철들어 보지 못한 아이 같다. 내 둘레에는 온통 모를 것, 모르는 것투성이여서 어디에나 코를 디밀고 아무나 붙들고 ‘왜‘냐고 묻는다. 요즈음에는 사람 붙들고 물으면 짜증스러워할까 봐 흐르는 물에게 스쳐 가는 바람에게 떨어지는 나뭇잎에게까만 하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는 꿈만 먹고 사는 게으르디게으른 늙은이, 잠이 많아 꿈도 많은, 한 발을 저승에 내딛고 있는 ‘형이상학자‘(?)일지도 모르겠다. - P4

돈 되는 기술, 능력, 학위만 좇도록 만드는 교육은 생각 없이 살도록, 생각할 시간조차 꿈꾸지 못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꿈꿀 수 없으면 한 사람의 삶도 세상도 제자리를 맴돌기 십상이다. 철학은 올바른 가치관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길을 비추는 등대 같은 것이다. 물질 만능 시대에 휘둘려 갈피를 못 잡는 이들에게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형이상학은 그 철학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주춧돌이자 뼈대이다. - P7

진리는 강요할 수 있거나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 특히 형이상학은 ‘검증‘과 ‘반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있을 때에 있을 데에 있을 것만 있고, 없을 때에 없을 데에 없을 것이 없는 ‘이론’. 그 안에 사랑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가득 담은 가장 바탕이 되는 몇 마디 말이 ‘오선지‘ 노릇을 해야 하고, 그 위에 가락이 흘러야 한다. 우리는 그 가락이 흐르는 크고 작은 결에 몸을 실을 수 있어여 한다. - P7

‘틀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오차 범위‘라고 얼버무린다. 누리의움직임에는 오차라는 게 없다. 틀림이 없다. 오차는 사람 머릿속에서만 생겨난다. - P37

산톨에 끝이 있다는 것, 겉과 갓이 있다는 것, 그것들 사이에 틈이 있다는 것, 그 틈 사이에서 힘이 늘고 줄어들어 목숨이 길어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모든 톨에는 끝이 있다는 것, 저마다 어느 땐가는 새로 움트는 삶톨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것. 마치 물결이 높낮이를 이루고, 바람결이 셈과 여림을 가누고, 햇살이 톨과 결로 번갈아 바뀌어 퍼지고, 온통 톨로만 이루어진 듯한 땅별 안에도 깊숙이에서는 무르녹아 뜨거운 힘으로 바뀌는 흐름이있어 서로 이어져 있듯이, 끊어짐이나 갈라섬은 어쩌다 있는 짬, 틈, 새(사이), 참에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 P39

‘삶이 힘이다. 이 힘이 함과 됨으로 나뉘고, 함이 있음의 힘이고, 됨이 없음의 힘이 되더라도 이 둘을 아우르는 힘은 삶에서 나온다.‘ 이 생각은 점점 더 굳어진다.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나는 빛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로고스)에는 깊은 뜻이 있다. ‘나는 어둠이요, 죽음이다‘라고 바꾸어도 그 뜻은 바뀌지 않는다. 죽음도 삶의 한 모습이고 삶의 그림자이니까.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