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세계 - 뇌과학자가 전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의 경이로움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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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둘째가 읽을 과학 책 찾다 과학 분야 근처 스포츠 분야에서 발견한 책이다. ‘걷기’ 관련 책을 좋아해서(많이 읽진 않았지만) 덥석 집어왔다(옆에 있던 <요가의 언어>라는 책도 같이 집어왔는데 이 책은 읽지 않고 그냥 반납했다. 대충 넘겨본 책에서 보이는 동작들이 너무 고난이도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3기니>를 읽다가 도통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 가볍게 읽으려고 펼쳤으나, 뇌과학자가 쓴 책이었다.


뇌과학자가 쓴 걷기 관련 책이라, 책이 아주 재미있지는 않지만(역시 과학 싫어하는 나…), 아주 난해한 수준은 아니고 역시 다양한 뇌 관련 실험이 나온다. 걷기를 좋아하는 저자가 뇌과학적 관점에서의 걷기의 필요성,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수긍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걷기는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하고, 내면을 자신과 차단시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역시 운전을 하고, 항상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그러나 걷기는 나에게 매우 특별한 이동수단이다. 걷기로 많은 것을 해소할 수 있다. 걷기는 정신을 맑게 해 꼼꼼히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몸과 뇌의 경험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다른 종류의 움직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자전거, 기차, 버스와 같은 이동 수단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주변 환경과 단절시킨다. 기계적으로 전진하고, 때로는 유리 가림막 뒤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며, 충돌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 잡히고 새로운 노래를 찾아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거기엔 매우 특이한 수동성이 있다. 바로 앉아 있는데도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걷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걷기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발이 다른 발보다 앞서 나가고 자신의 동력을 사용해야 한다. 스스로 움직이고 우리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P19~20


걷기를 좋아한다. 헤비 워커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꾸준하게 하고 있는 운동이 걷기다(지금은 필라테스도 꾸준히 하고 있다. 3개월 완료하고, 4개월째 접어들었다~. 그러나 필라테스는 걷기와는 달리 언젠가 끝이 있을 운동이다). 지하철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지하철을 싫어하는 이유로 - 지하철은 환승 포함 많이 걸어야 한다는 그 이유 - 버스보다 지하철을 선호한다. 지하철은 매일 일정 수준의 걷기를 강제할 수 있는 멋진 교통수단이다(물론 지하철을 좋아하는 첫번째 이유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머니 속 개인 연구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한가? 스마트폰 워킹앱은 걷기를 실천에 옮기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만보계는 나의 죄책감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나는 하루에 최소 9,500보를 걸으려고 노력하고 가능한 매일 12천 보 이상 걷기를 바라며, 1 4천보 이상 달성한다면 아주 만족한다. 현재 나는 9,500 보라는 일일 목표는 거의 매일 달성하고 있고 한 달 기준 18일 정도는 1 2천 보를, 10 정도는 14,500보를 달성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만보기 기능이 없다면 매일 몇 보를 걷는지, 정확하게 오랫동안 기억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앱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기록한다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이러한 지루한 작업은 주머니 속 작은 로봇에 맡기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 P36~37


저자처럼 나도 스마트폰 워킹앱으로 매일 걸음수를 기록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도 만보계를 허리에 차고(삐삐처럼 생긴너무 옛날사람 인증^^;;) 매일 걸음수에 신경 썼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부터 아이폰의 건강 앱으로 매일의 걸음수를 관리한다. 항상 만보를 마음속 목표로 삼았고, 첫해엔 연평균 7,425보를 달성했고, 이후 계속 꾸준히 올라가서, 2019년에는 연평균 9,967보로 거의 만보에 도달했고,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로 걸음수가 조금 줄었으나, 9,000보 이상은 되었다. 오늘 기준 2022년 평균 걸음수는? 9,514~! 12월에 날씨가 추워서 평균보다 많이 걷지 못할테니 조금 낮아질 것 같다.


걷는 목표를 가지고, 계속 꾸준히 관리하면 자꾸 결과를 갱신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더 열심히 걷게 된다. 알라딘도 독보적 활동이 생기면서 열심히 하게 되었다. 독서와 걷기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2가지를 결합한 최상의 활동이다.



규칙적으로 걷기운동을 하는 이들은 단 며칠이라도 걷지 못하면 몸이 무거워지고 피곤함을 느끼고때로는 기분도 우울해지는데이에 대한 자가 처방은 밖에 나가 걷는 것이다놀랍게도 이 입증되지 않은 감정에 대한 과학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걷기특히 자연환경에서 규칙적으로 하는 걷기 활동이 실제로 기분을 더 좋게 한다고 밝혀졌다이렇듯 좋은 산책은 기분을 북돋아주고그 외에도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 P167

우리는 야외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적게 시간을 보낸다미국에서 실시한 어느 대규모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사무실가게와 기타 건물 안 같은 인공적인 환경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체 시간의 87퍼센트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심지어 어느 연구에서는 "앉아 있는 것은 오늘날의 흡연과 같다"고 표현했다이 주장의 배경은 단순하다신체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움직임이 없는 삶은 근본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근육량근력의 감소로 이어진다더 나아가 장기간의 무활동 상태는 뇌에도 유사한 변화를 일으킨다. - P168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씀처럼,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기분이 좋지 않다(코로나 격리기간에도 독보적 채우려고 방부터 방까지 수시로 걸어다녔다…). 오래 앉아 있는 사무직 노동자로, 수시로 일어나서 몸을 움직여주어야 하지만 막상 일할 때는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 거의 움직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최소한 출퇴근 시에는 가급적 차를 타지 않고, 외부회의 시에도 택시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하고, 점심시간에도 밥을 먹고 잠시라도 걸으려고 한다.


나는 다양한 이유로 걷기를 좋아한다. 그중 내가 최우선으로 꼽는 걷기의 매력은 머릿속의 소란함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걷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나 자신과 조용한 대화를 하며 천천히 심사숙고할 자유를 준다. 오래전부터 걷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왔다.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 철학자들은 이동을 하며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학파의 어원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걷는다‘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걸으며 생각한 것만이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 P191

역설적으로 걷기는 일종의 활동적인 나태함이고, 의식과 연결된 몽상에 빠지게 만든다. 걷기는 목적을 가진 행동이며 집중을 요하지만 딴생각을 쉽게 할 수 있게 하며, 이때 그날 하루, 지나간 하루, 앞으로의 1, 지난 10, 얻었거나 잃은 기회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율리시스》에서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이것을 잘 표현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걸어서 통과한다. 강도를 만나고 유령들을 만나고 거인도 만나고, 늙은이도 만나고 젊은이도 만나고, 아내와 사랑하는 형제들도 만나고, 이렇게 누군가를 만나면서 결국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걷는 동안 자신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다른 이들과 소리 내어 대화를 할 수 있고, 또 음악, 오디오북, 팟캐스트 등을 들을 수도 있다. 다른 이들과 함께 걷는 장점은 정보의 교환을 돕고 이 정보를 자신의 기억과 생각, 감정과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196~197


나에게 걷기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혼자 걷기도 좋고, 같이 걷기도 좋고, 도심 골목길 걷기도 좋고, 공원이나 시골길 걷는 것도 좋고, 여행 가서 걷는 것도 좋다. 혼자 걷을 때 팟캐스트를 듣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있지만, 그냥 아무것도 듣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익숙한 길을 걸을 땐 몸은 그냥 알아서 목적지를 가고, 머리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대해, 회사일과 집안일과 책에 대해, 가족과 친구/동료와 나에 대해, 또는 엉뚱한 상상으로 마구 오가며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걸을 때 몸과 머리가 분리되는 듯한 유체이탈의 느낌이 좋다. 걷다 보면 고민하던 문제와 걱정들의 무게가 다소 가벼워지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이 든다. 몸이 묵직해지는 만큼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이 책을 읽은 후, 이 가르침을 더 오래 기억하게 할 수는 없을까? 한가지 방법은 워킹 앱Walking App을 사용하는 것이다. 알림 수신 설정을 하라. 오늘 몇 보를 걸었는가? 자신의 걸음수를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들, 동일 연령대, 나라 평균도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걷기를 조금 더 늘리기 위해 자동차를 목적지에서 조금 더 멀리 주차하고, 버스에서 한 정류장 더 일찍 내리고 가게와 학교로 걸어가는 것 같은 간단한 실천을 해볼 수도 있다. - P240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걷기는 우리의 사회적·심리적 그리고 신경 기능의 모든 면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또한 삶의 질을 개선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처방으로, 적든 많든 정기적으로 실행하고 적당한 속도로 매일매일 자연 속에서도 도심 속에서도 수행해야 한다. 걷기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당장 나가서 걸어라.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오후의 햇살과 밤의 가로등 불빛이 눈동자에 비춰 춤을 추고,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발 밑의 땅을 느껴라. 주변의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걷기의 리듬에 맞춰 여유를 찾고, 마음과 정신이 떠돌고 고심하고 사색하고 과거로 여행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탐색하게 하라. 혹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걷기는 우리의 깊은 진화론적 과거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듯이 걷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도움을 줄 때문이다. - P241


저자의 결론처럼, 뇌과학은 잘 모르겠고, 그냥 걷자. 목표가 3천보든, 5천보든, 만보이든 각자의 사정에 맞게, 꾸준히 기록하며, 걷자. 그냥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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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1-28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저는 매일 만보 이상을 걸으려고 하는데 출퇴근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제가 걷고 있는게 잘하는 거라고 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네요. 후훗.

햇살과함께 2022-11-28 19:3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못하는게 없으신 분!
저도 차 가급적 안 타고 튼튼한 두 발로 계속 열심히 걸으려고요~!
오늘도 11000보!!

서니데이 2022-12-0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햇살과함께 2022-12-08 19:5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저 이거 처음 인데요~!
이런 것도 되네요 기분 좋네요^^
 

9장 비밀스러운 마음의 상처
<교수>의 학생

역시 읽은지 얼마되지 않아 기억이 생생하니 몰입도 잘 되고 이해도 좀 잘 되는 듯? 그런데, 샬럿 브론테의 다른 소설보다 화자와 작가가 신중하게 구분되었나?


9장 앞에 나오는 실비아 플라스의 무화과 나무에 관한 글을 읽다가 어제 읽은 무화과 요리에 관한 글이 생각남. ㅎㅎ 우리가 먹는 무화과가 과일이 아니라 사실 꽃이라니!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많은 꽃을 피우고 있어요. 열매처럼 생긴 껍질이 꽃받침이며, 그 속에 융털처럼 보이는 빨간 부분 하나하나가 모두 꽃이랍니다. 바로 우리가 과일이라 생각하고 먹는 부분이지요. 무화과 특유의 작은 알갱이가 씹히는 식감은 무수한 꽃들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라고 할 수 있어요. 엄밀히 따지면 무화과는 과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무화과 꽃을 먹고 있는 거지요.

- 김수향의 제철 담은 병절임, 개똥이네 집, 202호(2022년 9월)



나는 눈앞에서 나의 인생이 이야기 속 초록빛 무화과나무처럼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가지 끝에서, 통통한 자줏빛 무화과처럼, 찬란한 미래가 손짓하며 윙크했다. 어떤 무화과는 남편이고 행복한 가정과 아이들이었다.
어떤 무화과는 유명한 시인이었고, 다른 무화과는 뛰어난 교수였으며, 어떤 무화과는 에제, 그 대단한 편집자였다. […]
어떤 무화과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나는 나 자신이 무화과 나무 등치에 앉아서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 그리고 내가 결정하지 못하고 거기 그대로 앉아 있자 무화과들은 쭈그러들더니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땅으로, 내 발치에 툭 하고 떨어졌다.
- 실비아 플라스 - P557

브론테의 어휘와 상상력 대부분은 그녀가 몰두했던 19세기 초의 작가들(워즈워스, 콜리지, 스콧, 바이런)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그녀가 무아지경이 될정도로 빠져서 썼던 반복적인 주제와 은유는 우선 자신의 젠더에 의해, 즉 험난한 자신의 성적 운명에대한 의식과 세계 속에 처한 이상한 ‘고아 같은‘ 위치에 대한 불안에 의해 결정된 것 같으니 말이다. - P559

이런 점에서 브론테의 작업은 19세기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집과 ‘여성의‘ 역할에 갇힌 채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리고 그런 집과 역할에서 도망치고 싶은 자신들의 열렬한 욕망에 대해 강박적으로 글을 썼던 방식, 대개 (은유적으로) ‘무아지경‘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글 쓰는 방식의 모범을 제공한다. - P561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샬럿은 천국과 지옥, 천사와 괴물이라는 이분법에 대해 에밀리보다 훨씬 더 모순되는 모습을 보인다. - P561

표면적으로 보면 샬럿 브론테는 ‘바이런을 덮고, 괴테를 펼치라‘는 칼라일의 충고를 따라 자신의 수정 충동을 철저하게 수정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샬럿의 소설 네 권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자신의 괴테와 자신의 바이런을 어느 정도 동시에 읽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P562

우리가 살펴보았듯 남성이 지배하는 문학적 전통에서 글을 쓰는 많은 여자들은 처음에는 남성을 모방할 뿐 아니라 은유적 남성으로 분장함으로써 자신들의 모호한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 P565

여자가 남성 사회에서 상속권이 없는 고아 신세이듯, 크림즈워스도 ‘상업의 바닷가에서 난파당해 좌초된‘ [4장] 여자처럼 무력하다. 이런 무력감은 샬럿 브론테 자신이 일찍이 경제적인 독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을때 느낀 심정과 같다. - P570

‘기숙학교! 그 단어는 나를 뒤숭숭하리만치 흥분시켰다. 그것은 억압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7장] 그 단어는 확실히 크림즈워스 자신보다 크림즈워스의 창조자에게 훨씬 더 큰 억압을 의미했을 것이다. 사실상 크림즈워스의 브뤼셀 시절 직업에 초점을 맞춘 『교수』의 중요한 중반부에서 브론테는 2년 동안 굉장히 고통스럽게 갇혀 지냈던 기숙사의 좁은 여자의 세계를 점검하기 위해 그를 일종의 렌즈로 사용한다. - P572

여자란 무엇인가? 브론테가 의식적으로 이 문제에 천착하고 있지는 않긴 해도, 크림즈워스라는 도구를 통해 그녀는 여자란자주성이 없고 ‘정신적으로 타락한‘ 피조물로, 천사이기보다 노예이고 꽃보다 동물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크림즈워스/브론테는 암시하지 않을지라도)이 작품이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여자가 그렇게 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런 존재가 되는것이 그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하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때 정중하게 말하기‘, 소문 퍼뜨리기, 뒤에서 험담하기, 새롱거리기, 추파 던지기. 이 모든 것은 결국 노예의 특성, 즉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복종하지 않는 방식, 남자의 권력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또한 도덕적으로 ‘괴물적인‘ 특성이며, 따라서 다시 한번 천사 같은 여자의 외관 뒤에 괴물-여자가 나타난다. 브론테가 『제인 에어』에서 검토한 천사와 괴물의 연관성에 비추어보면, 『교수』에서 여성 괴물/노예의 특징에 지나치게 공포심을 품고 반응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 P575

그뿐만 아니라 조라이드가 겸손하다고 가정되지 않는 모든 것에 반감을 갖는다는 것은 젊은 스위스계 영국인 레이스 수선가 프랜시스 앙리를 사악한 계모처럼 대하는 데서 강하게 표현된다. 이 소설에서 프랜시스의 진정한 본성만이 여성성에 대한 남성의 이상화를 모순적이거나 거슬리는 방식으로 깨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 P578

『교수』는 크림즈워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프랜시스 앙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이 이 두 인물의 생애는 마치 각각이 서로를 반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병치되어 있다. 윌리엄처럼 프랜시스도 가난한 고아에 가톨릭 국가의 프로테스탄트이며, 물질주의 사회에서 이상주의자로 살아가며, 자수성가한 인물로 남자 교수와 동등한 지위라 할 수 있는 전문가인 ‘여자 교장‘이다. 한편 이 둘의 인격 차이는 유사성만큼 중요하다. - P578

이 비우호적인 우정은 무엇 때문인가? 왜 브론테는 『교수』의 시작과 결말에서 그들의 우정을 극화시키는가? 헌스든의 빈정거림과 (처음에 나타나는) 크림즈워스의 빈정거림 사이, 헌스든의 반항성과 (나중에 나타나는) 프랜시스나 빅터의 반항성 사이에 점점 뚜렷한 유사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해답에 가까운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헌스든은 『교수』에서 불만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헌스든은 (찰스 웰즐리, 자모르나, 또는 노생거랜드의 공작처럼) 샬럿 브론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의 무의식적인 이미지다. 그의 이름 헌스든 요크 헌스든은 기존의 제도를 전복하려는 야만적 의지뿐만 아니라 프랜시스 앙리와 크림즈워스가 되돌아가고자 열망하는 ‘어머니의 나라‘ 영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한다. 헌스든은 분노로 가득한 ‘터의 기운‘이기도 하면서 어딘가 양성적인 인물이다. - P591

어떤 의미에서 헌스든은 반항의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플롯의 조종자이자 위장한 화자이고, 줄거리를 나가야 할 방향으로 진행시키며 일어나는 사건을 논평하는 자다. - P592

그 사건은 이야기를 진전시키기보다는 브론테의 상징성을 명료하게 밝히는 역할을 한다. 크림즈워스는 개를 죽이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개가 나타내는 것을 죽이고 싶어한다. 이제 완전한 가부장이자 교수가 된 그는 요크 헌스든과 개 요크를 그의 삶에 있어서 병들고 광적인 요소로 보는 것이다. - P594

이 작품은 샬럿 브론테의 작가 전체 이력에 걸쳐 점점 중요해질 주제를 처음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은유적으로 눈을 감은 채 글을 쓴 브론테는 여기에서 자신의 소명과 상처를 탐색했고, 완전성을 향한 다른 길을 발견하려고 마치 꿈속에서처럼 더듬거리며 노력했다. - P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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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 보리 어린이 고전 13
서정오 지음, 이수진 그림 / 보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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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어린이 고전 시리즈 13권 운영전. 서정오 선생님의 우리 고전 다시 쓰기를 통해 쉬운 입말로 살려낸 책이다.


사극에서 항상 궁중암투의 조력자, 감초 역할로 나오는 궁녀. 궁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는데, 운영이라는 궁녀와 가난한 선비 김 진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궁녀임에도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운영의 대담함과 이러한 운영을 위하여 김 진사와의 만남을 도와주는 궁녀들의 연대와 우정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지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니 결국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천상에서 재회하게 된다.


액자 구조의 형식(전설의 고향에서 처녀귀신이 나와서 억울한 사연을 얘기하는 구조와 비슷)과 이야기 속의 많은 시(운영을 포함한 10명의 궁녀들은 시를 잘 지어 안평대군에게 발탁된 궁녀들이다, 이들이 안평대군 앞에서 읊는 시들, 운영과 김 진사가 주고 받는 시들)를 음미하는 재미도 있다.


안평대군에게 속마음 들킨 위기 상황...


대군은 우리가 쓴 시를 하나하나 읽어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더군요.
"부용이 쓴 시는 임금님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 있어 훌륭하고, 비취가 쓴 시는 은근한 멋이 있어 좋고, 소옥이 쓴 시는 술술 읽히다가 끝에 가서 묘한 맛을 내고, 자란이 쓴 시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고 나서 덧붙였습니다.
"나머지 시도 다 잘되었는데, 운영이 쓴 시만은 뭔가 쓸쓸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들어 있구나.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어 벌을 주어야 하겠지만, 글재주를 보아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다."
저는 얼른 엎드려 울면서 아뢰었습니다. - P30


"시를 쓰다 보니 어쩌다 그런 말이 나온 것이지, 결코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대군마마 의심을 받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대군이 저더러 일어나 앉으라 하고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글이란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어서, 억지로 숨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 일에 대해 다시 말하지 마라."
그러고는 우리에게 상으로 비단 한 필씩을 내려 주었습니다. - P31



요 시리즈 옹고집전만 읽었는데, 나머지 시리즈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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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은 우리가 쓴 시를 하나하나 읽어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더군요.
"부용이 쓴 시는 임금님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 있어 훌륭하고, 비취가 쓴 시는 은근한 멋이 있어 좋고, 소옥이 쓴 시는 술술 읽히다가 끝에 가서 묘한 맛을 내고, 자란이 쓴 시에는 깊은 뜻이들어 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고 나서 덧붙였습니다.
"나머지 시도 다 잘되었는데, 운영이 쓴 시만은 뭔가 쓸쓸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들어 있구나.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어 벌을 주어야 하겠지만, 글재주를 보아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다."
저는 얼른 엎드려 울면서 아뢰었습니다. - P30

"시를 쓰다 보니 어쩌다 그런 말이 나온 것이지, 결코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대군마마 의심을 받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대군이 저더러 일어나 앉으라 하고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글이란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어서, 억지로 숨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 일에 대해 다시 말하지 마라."
그러고는 우리에게 상으로 비단 한 필씩을 내려 주었습니다. - P31

그날 밤, 평소 저와 가깝게 지내던 자란이 가만히 제게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어. 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정말로 있는지 모르지만, 네 낯빛이 날로 야위고 핼쑥해져 가니 걱정되어 묻는 거야. 나한테숨기지 말고 말해 줄래?"
저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습니다.
"궁 안에 사람이 많아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말을 못 했지만, 네가 진심으로 묻는데 어떻게 더 숨기겠니? 다 말해 줄게."
그날 밤, 자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지요. - P34

제 편지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덜어 주기는커녕 점점 더 짙어지게 했으니, 제가 진사님께 죄를 지은 셈입니다. 아무튼 진사님은그날 밤 안에 답장을 써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비단조각에 고이싸서 품에 간직하였다지요. 하지만 또한 전해 줄 기회를 얻지 못하여 애만 태울 뿐이었답니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마음속에 사무치면 병이 되나 봅니다. 진사님도 저도 똑같은 병에 걸린 것입니다. 잠도 못자고 음식도 못 먹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며 속만 태우는 병이요. 그러다 보니 몸은 날로 야위어 가고 얼굴은 핏기 없이해쓱해졌지요. 우리 둘 다 그랬답니다.
어떻습니까, 진사님? 그때 일이 생각나나요? - P47

꿈결처럼 한 번 눈길을 주고받은 뒤로, 마음은 들뜨고 넋은 떠나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날마다 궁궐을 바라보며 수없이 애를 태웠습니다. 어느날 뜻밖에도 벽 틈사이로 전해 준 옥같이 고운 글을 받아 보고는, 잊지 못할 그 목소리 귓가에 맴돌아 펴 보기도전에 먼저 목이 메었습니다. 가슴이 아려 와 절반도 채 못읽고눈물이 글자를 다 적셨습니다.
누워도 잠을 못 이루고 먹어도 음식이 넘어가지 않으니, 뼛속마다 병이 맺혀 백 가지 약도 듣지를 않습니다. 죽어서나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하루빨리 저세상에 가기가 소원입니다. 만약에 하느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신령님이 도우셔서 살아생 - P51

전 한번 만나 맺힌 원을 풀 수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몸을 가루로만들고 뼈를 갈아서라도 천지신명께 바치겠습니다.
붓을 들고 종이에 글자를 써 내려가는 이 순간에도 자꾸만 목이 메니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예를 갖추지 못하고 서둘러 적습니다. - P52

여태 가만히 있던 보련도 나섰습니다.
"누구든지 말은 함부로 하지 말고 삼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하는 말을 들어 보니 그게 아닌 것같네. 자란의 말은 속뜻을 숨기고다 드러내지 않은 것 같고, 소옥의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 같지않고, 부용의 말은 애써 갖다붙인 것 같아서 모두 참되게 들리지 않아. 나는 이번 일에서 빠질 테야." - P62

"오늘 일은 그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비경이 저렇게 우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괴롭구나."
하자, 비경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지낼 때 나는 운영과 단짝이 되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맹세했어. 이제 남궁 서궁으로 서로 떨어져 살게 됐지만, 그렇다고 옛 맹세를 저버릴 수 있겠니? 이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다 말할게. 전에 운영이 나날이 야위고 핼쑥해질 때만 해도 영문을 몰랐는데, 이제 보니 그게 다 그리움 때문인 것 같아. 이대로 두면 운영은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얘들아, 내가간곡히 빌 테니 우리가 운영을 도와주자. 자란이 이번에 소격서로 가자고 한 뜻을 나는 이미 짐작했단다. 자란이야말로 운영의 진정한 벗이라는 것도알았지. 우리가 다투다가 끝내 궁을못 나가면 운영이 어떻게 되겠니? 운영이 병들어 죽기라도 한다면 모든 원망은 남궁에 있는 우리에게 돌아올 텐데, 그래도 괜찮겠니? 이제 모두 고집을 거두고, 우리가 힘을 모아 줄을 목숨 하나 살려 보자꾸나." - P64

하지만 여자로 태어나 궁녀가 되었으니 그 재주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제가 만약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가진 재주를 마음껏 펼쳐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나라를 위해서도 큰일을 할 수 있었을것입니다. 그런데 기껏 궁녀가 되어 감옥같은 궁궐 안에서 죄인처럼 갇혀 지내다가, 끝내 여기서 말라죽을 운명이니 어찌 슬프지않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한이 맺히고 원망이 머리끝에 차오릅니다.
그래서 방에 앉아 수를 놓다가도 수들을 던져 버리고, 등불 아래 비단을 짜다가도 천을 찢어 버리고, 거울 보며 머리를 매만지다가도 옥비녀를 빼내어 꺾어 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어쩌다 술한잔 마시고 뜰을 거닐다가도 돌 틈에 핀 꽃을 뜯어 버리고, 길섶에 난 풀을 뽑아 버리곤 했지요. 마치 미친 사람처럼요. 제 마음속에 깊이 맺힌 한을 억누르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 P72

그 말을 들은 소옥과 비경이 눈물을 흘리며,
"한 사람 마음이 곧 열 사람 마음이고, 운영 마음이 곧 우리 마음이야.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로 도우며 살자."
하고는 남궁으로 돌아갔습니다. - P77

그 말을 들은 김 진사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를 해.
"우리 두 사람은 죽은 뒤 저승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저승 시왕*께서 저희 둘 다 죄 없이 일찍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다시 인간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사양했습니다. 또다시 그 한 많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세상은 아직도 사람을 차별하고 억누르며, 죄 아닌것을 죄로 만듭니다. 또 일삼아 남을 해코지하고 자기 욕심만채우는 나쁜 사람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오늘 밤 여기 와서 슬픔에 잠긴 것은, 그때 겪은 서러운 일이 다시 생각나서일 뿐입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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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반대로 보기
에밀리 브론테 지옥의 바이블 <폭풍의 언덕>
앞부분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 유사점 설명
설명은 어렵고, 인물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서로를 향한 강렬하고 지독한 연결성은 기억난다.

이렇듯 다른 점도 있지만, 『프랑켄슈타인』과 『폭풍의 언덕』은 많은 중요한 점에서 유사하다. 한 가지는 둘 다 수수께끼 같고 당혹스러우며, 어떤 의미에서 총체적으로 문제적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각각의 경우, 소설의 미스터리는 (많은 비평적 논란의 중심이 된) 형이상학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하나는 스릴러이고 또 하나는 로맨스인) 두 ‘대중‘소설은 많은독자들에게 소설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면적 이야기가 복잡한 존재론적인 심오함, 정교한 비유의 구조, 모호하지만 강렬한 도덕적 야망을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숨기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점은 두 작품이 공유하는 좀 더 단순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두 작품 다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증거적 서사 기법‘이라고 불렀던 것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법은 낭만주의적 이야기 구사 방법으로, 똑같은 사건을 보는 서로다른 관점의 아이러니한 괴리뿐만 아니라, 표면적인 드라마와 작가가 감추어놓은 의도 사이에 내재하는 아이러니한 긴장을 강조한다. 사실 이런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폭풍의 언덕』은 『프랑켄슈타인을 의도적으로 모사했다고 볼 수 있다. - P459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은 증거, 특히 문자화된 증거에 공통으로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대부분의 소설보다 훨씬 더 의식적인 문학성을 보여주며, 상징적이면서도 극적인 플롯 조성) 활동으로서 책과 독서에 가끔은 거의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 P460

메리 셸리를 연구할 때도 똑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울스턴크래프트-고드윈-셸리 집안처럼, 책을 매개로 현실에 접근하는 것, 친족의 책을 읽고 자신의 독서와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품는 것이 브론테 집안의 습관이었다. 따라서 외롭지만 야심에 찬 요크셔의 가정교사 세 명을 커러, 엘리스, 액턴이라는 엄연하게 양성적인 3인조로 변모시킨 것은 공동의 행동이자 가족정체성의 주장이었다. - P461

우리는 브론테 자매들에게 문학 활동과 문학적 증표 둘 다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통해 그들이 메리 셸리와 공유했던 또다른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불안한 창조자처럼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와일드펠 홀의 거주자』를 쓴 저자들도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다. 셸리처럼 에밀리와 앤 브론테도 너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나 문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머니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고아와 무일푼 상태를 강조하는 『프랑켄슈타인이 어머니가 없는 책인 것과 마찬가지로, 에밀리 브론테의 모든 소설도 어머니의 부재, 고아 신세, 결핍에 대한 강렬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폭풍의 언덕』에서도 문학적 고아라는 문제는 작가로 하여금 증거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기원의 문제에도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따라서 가부장적 문화에서 은유적으로 고아라고 할 수 있는모든 여성 작가들이 ‘우리는 어떻게 추락했는가? 잘못된 법칙에 의해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문학적인 해답을 찾고 있다면,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 같은 어머니 없는 고아들은 그질문에 대한 사실적인 답변을 대체로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소설들은 여성 특유의 문학적 강박관념을 강렬하게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 P462

『폭풍의 언덕』은 사실상 (『프랑켄슈타인이 형이상학적 스릴러인 것처럼) 형이상학적 로맨스이기에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힘이나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 P463

위니프리드 제린에 따르면 밀턴은 패트릭 브론테가 즐겨 읽던 작가 중 하나였다. 따라서 셸리가 밀턴을 비판한 사람의 딸이었다면, 브론테는 밀턴을 찬양하는 이의 딸이었다. 그러니헤겔의 정/반의 법칙에 비추어보았을 때 셸리가 밀턴의 성 혐오적 이야기를 반복하고 재진술하는 길을 선택한 반면, 브론테는 그런 이야기를 수정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어울린다. 사실상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이 공유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낙원』의 문제이고,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밀턴의 신화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다. 셸리가 밀턴의 충실한 딸로서 그의 이야기를 명료하게 다시 말했다면, 브론테는 반항적인딸로서 밀턴의 신화적인 서사를 과격하게 수정(심지어 번복)한다. - P464

그것은 마치 에밀리가 샬럿에게 ‘너는 낭만적 사랑에서 남자가 지배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 지배적인 것은 여자임을 보여주겠어‘ 하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샬럿 자신은 에밀리의 수정적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래치퍼드보다 100년도 더 앞서, 『셜리』의 여자 주인공 (‘에밀리가 더행복하게 살았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이상적인 인물)은 밀턴에 대해 영국 소설에서 최초의 의도적인 페미니즘 비평이라 할 수있는 말을 한다. - P470

샬럿은 『폭풍의 언덕』 저자가 (브론테의 찬미자인 에밀리 디킨슨을 인용해 말한다면) ‘천국의 왕국을 찾아서 / 반대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470

이 문단은 심리극 같은 ‘연극‘이란 삶에 필요한 것임과 동시에 집안일처럼 일상적인 활동임을 제시한다. 다리미질과 대안적 삶의 탐험이란 똑같은 종류의 ‘업무‘다. 그것은 아마 앤 브래드스트리트와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환상을 쫓는 그 밖의 다른 주부들이 인정했을 법한 독특한 여성적 사고다. - P473

전체성, 존재의 충만함, 양성성 같은 말이 불가피하게 떠오른다.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이 셋은 다 캐서린에게, 더 정확하게는 캐서린-히스클리프에게 적용된다. - P484

그럼에도 캐서린의 개인적인 천국은 밀턴의 에덴처럼 캐서린이 규정한 ‘지옥‘의 위협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를 들면 캐서린이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천국의 수평선에 떠 있던 유일한 구름인 어두운 가부장제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늙은 언쇼의 죽음과 함께 에덴처럼 ‘다소 야만적이고 무모하고 자유로웠던‘ 캐서린의 소녀 시절도 끝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한때 양성적이었던 아이가 처음으로 ‘홀로 놓이게될’ 분열된 세계를 열어놓는다. 하지만 장자 상속이라는 가부장적인 법에 의해 아버지의 죽음은 진정한 상속인인 힌들리의 권력을 증대시켰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새로운 아버지는 소설 속에서 캐서린의(그리고 히스클리프의) 타락과 그로 인한 몰락을 불러온다. - P487

사춘기에 이른 아이들은 왜 부모를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처럼 보기 시작하는가? 사춘기의 위기를 다루는 동화에 양부모가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런 현상이 뿌리 깊게 널리 퍼져 있음을 시사한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성적인 존재로 의식할 만큼 성장하면 부모는 실제로 ‘본래‘ 부모 자신들보다 더 사납고 (힌들리와 프랜시스의 경우처럼) 좀 더 어려 보이기조차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캐서린 언쇼의 경험을 뒷받침해준다. 이제 진정으로 이해할수 있게 된 부모의 섹슈얼리티가 아이를 괴롭히는 만큼 아이 자신의 성적인 자각이 부모를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에 부모는 확실히 점점 더 위협적으로 (말하자면 더 ‘짜증내고‘ ‘폭군처럼‘) 되어간다. - P491

이 단순하지만 폭력적인 에피소드의 이미지들은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 캐서린이 성숙한 여자의 섹슈얼리티로 내던져짐과 동시에 거세되었음을 암시한다.
어떻게 소녀가 ‘여성이 됨과 동시에 거세될 수(다시 말해서 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위의 이미지들이 의미하는 바가 상당히 프로이트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바보 같은 질문이리라. 엘리자베스 제인웨이와 줄리엣 미첼이 말했듯, 프로이트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적 의미에서도 (음경 선망을 암시하는) 여성성이 거세를 의미한다는 주장은 매우 적절해보이기 때문이다. 제인웨이는 프로이트의 중요한 논문인 「여성의 섹슈얼리티」(1931)를 논평하면서, ‘어떤 여성도 음경을 빼앗기지 않았다. 여성은 처음부터 그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 P496

캐서린이 나중에 넬리에게 말하듯,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는 ‘나 자신보다 더 나같은‘ 사람이다. 히스클리프의 실질적인 굶주림은 더 위험한, 그래서 더 무서운 캐서린의 정신적인 굶주림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서 캐서린이 당한 부상은 히스클리프의 건강과 힘에 가해진 치명상을 의미한다. 한때는 양성적이었던 히스클리프-캐서린은 이제 서로 격리된 채 가부장제가 합의한 힘, 즉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린턴 집안과 그들의 밀사인 하이츠의 힌들리와 프랜시스가 합의한 힘에 의해 정복당하기 때문이다. - P501

남성적 교양소설의 최종적인 목표가 성공적인 자아 발견이듯이, 여성 교육의 최종 산물은 불안한 자기 부정임을 브론테는 암시하고 있다. 캐서린, 혹은 모든 소녀들은 자기 이름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될 운명인지알 수 없다는 것만을 배운다. - P502

도덕성이란 유효한 선택의 기회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캐서린에게 유의미한 선택의 기회란 없다. 캐서린은 오빠의 결혼 때문에 워더링 하이츠에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쫓겨난다. 캐서린은 그곳에서 이성과 교육, 예의범절의 아가리에 갇힌 채, 선택의 여지 없이 에드거와 결혼해야했다. 에드거 외에 결혼 상대는 없으며, 숙녀는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캐서린이 에드거에 대한 사랑을 정당화시키는 장면은 ‘나는 그의 발아래 있는 대지를,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공기를,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을,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사랑한다‘[9장]) 우아하고 낭만적인 고백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 P503

이런 풍자는 캐서린이 받은 교육이 젊은 숙녀에게 적절한 문학적낭만주의를 주입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에너지를 아버지/연인/남편의 카리스마와 동일시하는연약한 ‘여성성’이 문학적 낭만주의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자신이 ‘격하될 것이라는 캐서린의 변명도 캐서린이 받은 교육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캐서린이 숙녀로 추락하는 동안 히스클리프 역시 여성의 무력함에 해당하는 위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여자 되기가 타락이라면 여자처럼 되기는 더 심한타락임을 정확하게 배운 것이다. 따라서 밀턴의 이브가 이미 타락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 있는 선택도 할 수 없었던 것같이 (물론 밀턴은 이브의 선택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캐서린에게도 진정한 선택이란 없다. 문화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라면 여성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그들은 타락할 운명이기 때문에 이미 타락한 것이다. - P504

앞으로 나오겠지만 히스클리프가 ‘천국 같은‘ 응접실 안으로 들여오는 사탄적인 반항은 가부장제에 해롭고 가부장제가 불편해하는 무시무시한 병원균을 가지고 있다. 그 병원균은 캐서린과 이저벨라 같은 여자들이 도주와 굶주림, 끝내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자신들의 역할과 집 안에 감금된 상황에서 도망치게 하는 원인이다. - P509

『폭풍의 언덕』곳곳에 편재한 굶주림의 모티프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이미지가 담고 있는 의미에 주목한다면, 에드거와 히스클리프의 핵심적인 대결이 부엌을 배경으로 벌어진다는설정은 우연 이상의 의미를 띤다. 어떻든 이 에피소드 바로 다음에 C. P. 생어가 캐서린의 ‘단식 투쟁‘이라고 부른 장면과 캐서린의 유명한 광기 장면이 나온다. 플라스의 또 다른 시행은자아 축소의 느낌을 묘사하는데, 이런 느낌은 자신이 하나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일종의 걸어 다니는 복장으로 축소되어버렸다는 캐서린의 깨달음과 일치한다. ‘나는 얼굴도 없다. 나는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광기의 장면에서 캐서린이 거울에비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세상과 캐서린을 연결해주던 끈이 헐거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서린은 넬리에게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며 만일 자신이 미쳤다면 ‘나는 네가 정말로 시들어버린 노파고, 나는 페니스톤 절벽 아래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지금은 밤이고, 탁자 위에 있는 촛 - P512

불 두 자루가 까만 찬장을 흑석처럼 빛나게 한다는 걸 알고 있어‘라고 말한다. 그런 뒤 ‘이상해. 저기에 얼굴이 보여‘ [12장] 하고 덧붙인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에는 ‘까만 찬장‘이 없고 거울만 있을 뿐, 캐서린은 거울에 나타난 자신의 이미지를부인하는 것이다. 이제 캐서린의 분열은 히스클리프와 떨어져있을 때 겪었던 심리적 분열을 훨씬 넘어서 몸과 이미지(또는 몸과 영혼)가 분리되는 지경에 이른다. - P513

[1장] 가장 교양 있는 여자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에 여자들은 록우드는 히스클리프든 똑같이 남자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 P523

건강하게 양육하는 넬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상적인 여자, (에밀리 브론테의 시각이 아니라 말하자면 밀턴의 시각에서) ‘일반적인 어머니‘로 보인다. 샬럿 브론테의 『셜리』에서 셜리/에밀리가 밀턴을 비판한 핵심 구절을 다시 살펴본다면, 우리는 틀림없는 넬리 딘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밀턴은 최초의 여자를 보려고 했다‘고 셜리는 말한다. ‘그러나 캐리, 그는 그녀를 본 것이 아니었어. […] 그가 보았던 것은 그의요리사일 뿐이야. […] ‘최상의 진미를 위하여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로 골치 아팠을 요리사일 뿐이야. - P527

히스클리프가 ‘여성적‘이라는 주장은 처음에는 미친 소리처럼, 또는 터무니없게 들릴 것이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듯, 히스클리프의 외형적인 남성성은 운동선수 같은 체격과 군인 같은 자세뿐만 아니라 숙녀다운 이저벨라에게 어필한 바이런적인성적 카리스마로도 확실하게 논증된다. 우리가 알고 있듯 에드거는 분명히 연약함에도 사실은 가부장적이지만, 히스클리프가차남의 남성성이나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이단아와 같은 대안적인 남성성에 해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에드거가 기존의 천사의 방식으로 남성적이듯, 히스클리프도 분명 사탄적인 추방자의 방식으로 남성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좀 더 뿌리 깊은 연상의 측면에서 (차남, 서자, 악마 들이 여성들과 연합하여 천상의 폭정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고아는 여성이고 상속자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육체는 여성이고 정신은 남성이며 대지는 여성이고 하늘은 남성이며 괴물은 여성이고 천사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히스클리프는 ‘여성적‘이다. - P531

사르트르적인 의미에서 여자의 남자와 자율적인 여성은 하나의 완전한 여자가 된다. - P533

소설의 후반부에서 히스클리프의 개략적인 목표는 합법성을 전복시킴으로써 문화에 자연의복수를 가하는 것이다. - P535

‘메리 셸리는 브론테가 전복시키려고 애썼던 밀턴의 여성 혐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녀 또한 추방당한 사람의 의지가 내포하는 위험한 잠재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메리 셸리의 잃어버린 이브는 괴물이 되었고, ‘그’ 또한 사회 구조에 파괴적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다른 여성 작가들도 밀턴의 악령과 싸우면서, 이브의 억누를 수 없는 의지를 말살하겠다고 위협했던 가부장제와 그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수단이었던 마녀 같은 분노를 검토했다. 예를 들면 조지 엘리엇은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에서치명적인 양성성을 그리는데, 이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성취한, 죽음을 통한 사랑을 기이하게 패러디하는 것 같다. ‘죽음 - P552

을 통해’ 매기와 톰 털리버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들이 달성한 결합은 엘리엇이 그들을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결합이다. 왜냐하면 삶에서 매기는 단념의 천사가 되었고, 톰은 근면의 단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문화의 풍경 절반을 휩쓸어버리는 홍수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여성적인 자연은 저항하고 있으며 계속 저할 것이다. - P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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