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지음 / 재원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나혜석 훑어보기

나혜석 얘기하다 나혜석 궁금해져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급하게 찾아보고 산 책. 나혜석은 요즘 시대 대한민국에 태어났어도 대단한 이슈를 몰고다닐, 사상적으로 너무나 시대를 앞서간, 그 당시로는 정말 파격적일 수 밖에 없는 멋진 인물이다. 나혜석이 쓴 글도 읽어보고싶다. 나혜석의 일생 요약에 덤으로 프라다 칼로와 까미유 끌로델의 일생까지 다시 보기. 디에고 나쁜 시키! 로댕 더 나쁜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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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03 2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디에고 로댕. 이노무 시키들 ㅎㅎ 빵 터졌어요 경희 읽고 독후감 숙제 썼던 기억도 나네요 ~ 이 분 참 아까운 분 ㅠㅠ 프랑스에 그냥 계셨음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ㅠㅠ

햇살과함께 2022-02-03 23:07   좋아요 3 | URL
황정은 작가 따라하기 ㅎㅎ 그 당시 나혜석 소설로 독후감도 쓰셨다니! 전 존재도 몰랐는데..맞아요 한국이 품긴 너무 큰 인물입니다:;;

프레이야 2022-02-07 18: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혜석 평전 권해 드려요. 좋아하는 화가들 프리다까지요^^

햇살과함께 2022-02-07 21:51   좋아요 0 | URL
평전 추천해 주세요~ 어떤 책이 좋은지 몰라서,, 오프라인 서점에서 좀 찾아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22-02-07 22:09   좋아요 1 | URL
제가 읽었던 건 한길사 발행 “인간으로 살고 싶다”입니다. 오래된 도서라 있을지 모르겠어요. 더 나은 게 나왔을 수도요. 나혜석의 자화상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어요. 프리다 칼로 영화 “프리다”도 추천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02-07 23:17   좋아요 1 | URL
이 책은 품절이네요… 최근 나온 책들 좀더 찾아볼게요 ㅎㅎ 저 프리다 영화는 재밌게 봤어요~! 셀마 해이엑이 생각보다도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던 기억이. 디에고도 똑같고요 ㅎㅎ
 

하지만 까미유의 젊은 어머니는 첫 출산으로 얻은 아들을 잃고 그 애통함과 고통에서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어머니의 이런 정신적 고통은 까미유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 P142

부친은 늘 까미유를 이해해 주며 아껴 주었으나 부친과 달리 까미유의 어머니는 유난히 막내 루이즈만을 편애하며 사랑을 주었고 까미유를 싫어하고 미워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어머니와의 생활은 까미유 일생 동안 그녀를 괴롭히게 되며 끝내는 정말 피를 나눈 모녀간일까 싶을 정도로 악연을 계속하며 평생 그녀를 고통 속에서 살게 한다. 까미유는 불행하게도 자신을 이 세상에 나오게 해준 어머니로 인해, 훗날 한 많은 생애의 후반부를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것이다. - P143

부셰는 까미유의 이런 작품들을 주시하며 그녀의 천재성을 읽어냈다. 부셰는 조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음영 대조나 생명력이 까미유의 작품속에 깃들어 있음을 간파한 것이었다. 부셰는 그녀를 미술학교 교장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교장 폴 뒤부아는 까미유의 작품 속에서 저 유명한 로댕의 작품과 유사함을 느끼게 되며, 로댕에게 사사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당시 어린 까미유는 로댕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 P146

로댕은 한편으로 그녀에 대해 무관심한 듯, 때로는 거의 적대적인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집요하게 그녀의 견해나 충고를 열심히도 물어 보곤 했다. 그것은 사랑의 열병이었다. - P150

까미유가 1893년 이전까지 제작한 작품들에서는 로댕의 영향을 받았음이 감지된다. 긴장된 동적인 포즈나, 견고한 형태 속에 숨쉬는 생동감 넘치는기운, 육감적인 인체 처리 등등이 로댕에게서 받은 영감이 들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반면 그녀 역시 로댕에게 관능미를 불어 넣어 준 장본인이었다. 그녀를 알기 전 로댕의 작품은 인체의 준엄함과 박진감 있는 걸음걸이 등 넘치는 힘을 주로 보여주었지만 까미유와 함께 한 후로는 유연한 팔, 다리와 함께 섬세하고, 예민한 육감성이 나타나게 된다. - P175

까미유가 연인에게 배신당한 사람을 주제로 한 청동작품 [중년]을 제작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로댕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주물로 완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로댕은 까미유의 작업에 방해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까미유 일에 계속 관여하면서 그녀가 작품 주문은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로댕의 까미유에 대한 이중적인 행동들이었다. - P176

나는 당신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으로부터 자유가 필요하답니다. … 당신의 충실한 시중꾼 로댕

로댕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편지.. 로댕, 나쁜 시키! - P177

망가져가고 있는 그녀의 영혼은 이제 되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 P193

강박증세 외 별다른 정신병력을 보이지 않는 까미유는 30여년 동안 내내 감옥같은 정신병원에서 세상으로 나가게 해 달라고 간절한 요청을 했지만끝내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파리에 가까이 위치한 다른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애원마저도 묵살되어 버렸고 마지막으로 요청한 가족의 방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무서운 형벌을 받았다. 어머니나 여동생은 아예 까미유를 찾아오지 않았다. 반면 남동생 폴만이 간혹 그녀를 방문했다. 그러나그는 많은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야 했기에 자주 올 수 없었다. - P194

까미유의 인생을 그렇게 만든 어머니의 잔인한 처사에 대한 의혹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물론 딸을 물질적으로 돌보긴 했으나 그녀는 면회는 고사하고 딸이 편지조차도 쓰거나 받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자신과 폴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 P194

훗날 프리다가 말하기를 ‘일생 동안 나는 두 가지 커다란 사고를 당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린 시절 당한 전차 사고이고, 또 하나는 디에고와의 만남이다‘ 라고 술회했다. - P28

그녀는 슬픈 현실을 잊기라도 하듯 더욱 더 작품에 매달렸다. 기법에서도보다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을 분출하는 영감을 일치시켜 능숙하게 표현했다. 프리다의 작품들은 그녀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직관과 세밀한 통찰력으로 더욱 세련된 기교를 표출하고 있다. - P40

그녀의 침대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고통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피난처였고, 모든 고통을 감내한 인고의 장소였으며, 이에 따라 신성한 장소이기도했다. 그녀의 육체에 생긴 영원한 상처에서 예술의 승화로 이어지게 했던 곳도 바로 이곳 푸른 집이었다. 그곳엔 그녀가 좋아하고 영광으로 생각했던 영웅들의 사진들과 종교적인 인물들이 함께 하고 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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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송이 : 우리는 조선학교 학생입니다 재일조선학교 학생 작품 선집 1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 지음,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엮음 / (주)시대너머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재일조선학교 일명 ‘우리학교’에 다니는 초중고 아이들의 글과 그림 모음집. 일본에서 유일하게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배제되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받지만 꿋꿋하게 조선인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님과 조선인학교 학생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항상 긴장 속에 생활하는 아이들, 너무 대견하고도 안타깝고 고맙고 미안하다. 남한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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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03 1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 다큐봤던 기억이 나요. 차별이 참 심하더라고요. 그 와중에 순수하고 자긍심 가지던 아이들이 생각나요. ㅠ

햇살과함께 2022-02-03 21:53   좋아요 1 | URL
저는 예전에 시사인이나 한겨레 기사만 봤는데, 일본에서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걸, 남한이 아니라 북한의 지원으로 학교가 유지되었다는 걸 알고 놀라고 부끄러웠네요.
 

2022년 1월 마지막 구매, 순천 책방 심다

30일 일요일 여수에서는 벌교에서 이동 중 점심을 대충 빵으로 떼우고(하지만 벌교 모리씨빵가게 빵 너무 맛있었다) 도착하여 저녁 먹으러 가느라 책방을 못갔다. 31일 월요일부터 설연휴이기도 하고 보통 독립서점은 월화 휴무가 많아서(작년 4월에 갔던 순천 책방 서성이다도 월화 휴무)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책방 심다에 전화했는데 책방 열었다고 해서 시간 쪼개서 잠시(정말 15분만에) 들렀다가 익산으로 출발~!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아담한 책방이다. 순천이나 전라도 관련 독립출판물이나 기념품도 많다. 시간에 쫓겨 여유롭게 둘러보지 못해 아쉽다.

(필사사진은 태백산맥 문화거리의 벌교금융조합에 있는 태백산맥 필사 원고지. 한 문장 쓰기도 힘들다. 태백산맥 문학관에 가면 조정래 작가의 아들 며느리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태백산맥 필사한 노트들 전시가 있는데 정말 대단하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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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02 17: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방심다는 가본곳인데 반갑네요 ^^ 벌교는 꼬막 아닌가요? ㅋ 햇살님의 글씨는 멋지네요~!!

햇살과함께 2022-02-02 18:05   좋아요 3 | URL
저 완전 악필! 앞에 쓴 저희 남편 더 악필이라 제 글씨가 좀 단정해보이는 착시효과 ㅋㅋ 아침에 일찍 도착해서 아쉽게도 꼬막정식 못먹고 순대국밥만 ㅎㅎ 새파랑님도 가보셨군요~

청아 2022-02-02 17: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원고지에 글 쓰는것 은근 인내심이 필요하죠!ㅎㅎ중학교때 해보고 혀를 찼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 느낌있네요^^*

햇살과함께 2022-02-02 18:07   좋아요 3 | URL
맞아요 고등학교 이후 원고지 처음 써보는 듯요. 원고지를 앞에 두니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 ㅎㅎ

mini74 2022-02-02 17: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원고지 ㅠㅠ 왠지 누군가 빨간펜으로 막 고칠 거 같아요 ㅎㅎ 경주 가면 잊지 말아야겠어요. 모리씨빵가게랑 심다!

햇살과함께 2022-02-02 18:09   좋아요 3 | URL
ㅋㅋㅋ 미니님 경주 아니고 전라도입니다^^

mini74 2022-02-02 18:16   좋아요 3 | URL
ㅎㅎ 태백산맥보면서 오 벌교 그러면서 손은 경주 ㅠㅠ 큰일입니다 ㅎㅎ

햇살과함께 2022-02-02 18:2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허벌나게 공감합니다

scott 2022-02-03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교꼬막 보다

그리고 빵!

빵맛이 궁금한 🖐
햇사림 독립 서점 탐방 기행
차곡 차곡 따라가는 재미가 ^ㅅ^

햇살과함께 2022-02-04 07:43   좋아요 1 | URL
아주 조그만 빵집인데 순식간에 팔려서 빵이 몇 종류 안남았다는~ 벌교가면 꼭 가보세요~
 

희망조차 스쳐지나간다
백이 스쳐지나
이백이 스쳐지나
삼백이 스쳐지난 그때
《무슨 서명입니까?》
나의 웨침은
그 사람을 스치지 않았다!
우리가 옳다고, 잘하라고
감격해하는 일본인녀성의 그 말에서 빛을 보았다.
내가 하는 투쟁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그렇다.
일본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것은
우리가 잘못하였기때문이 아니다
일본당국이 조선사람을 《부(否)의 존재 》로
대해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가 단념하고 스쳐지나가면
영원히 못 얻을 권리인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어찌 스쳐지나갈수 있는가 - P161

더 알아보기
고교무상화 운동?

일본은 2010년부터 고교무상화 정책을 시작하였어. 문제는 일본에 있는 모든 외국인학교에 대해서는 고교무상화를 일본학교와 똑같이 지원하였는데 유일하게 조선학교만을 고교무상화제외(수업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조치,연간 약 12만엔,한국돈 120만원에 해당)하는 차별을 지금까지 하고 있어.
이에 대해 재일동포들은 물론 남북의 동포들도 일본 정부의 부당한 차별에 대해 항의하고 있고, 양심적인 일본인들도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유엔의 아동인권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일본정부에 조선학교 차별을 시정하라고 거듭 권고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차별이 계속되고 있어. - P162

나는 이날 집으로 돌아갈 전차칸에서 수요일행동에 참가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느꼈다. 투쟁에 참가하면서 나는 무엇이라도 겉면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본질을 보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알게 되였으며 이렇게 느낄수 있었던것은 《조고축전》준비과정에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아는것이 불어났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는것이 있어야 보이게 되는것이 있다는것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게 되였으며 이것은 선대들이 새겨주신 력사의 발자취를 우리가 계속 이어나가는데서 꼭 필요한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몇달이 지난 오늘도 나는 시간이 있으면 수요일행동에 참가하고있으며 그 마당에서 호소도 하고있다. - P178

더 알아보기
조선학교 학생들의 ‘조국’?

재일본조선인들이 모든 힘을 모아 국어강습소에서 시작하여 초중고급학교까지 조선학교를 만들어 가는데 북녘동포들의 지지와 후원이 있었어.
1957년 4월, 한국전쟁 이후 북녘동포들이 나라 복구로 어려운 시기에 1억 2천만엔(일본돈)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었어.
지금까지 해마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고 있어.
조선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민족교육을 할 수 있도록 큰 힘을 보태준 북녘을 ‘조국‘으로 생각하게 된것이지.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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