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루엣

굉장히 힘들긴 해도 보람이 크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보람인지는 설명하기가 힘들다고. 새로 부모가 된 많은 사람들이저지르는 큰 실수 중 하나는 지나친 기대라고 그들은 말했다. 린지는 그들 부부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지금은 기대를 낮추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고는 개릿을 돌아보며그의 손을 꽉 쥐었다.
"부모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 어쩐다 다들 얘기하잖아요."
린지가 말했다. "뭐,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변화와는 다를 뿐이죠. 뻥 뚫린 마음이 채워진다거나 하진 않아요.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않죠. 그저 달라질 뿐이랄까요?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
린지가 개릿을 돌아보며 그가 읽었다는 행복과 육아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 논문 얘기를 해보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개릿은, 전문적인 내용까지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맞는다, 대학원생과 교수로 이루어진 연구팀이 행복과 육아의 관계에 대해 꽤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실제로 부모가 된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은 부모가 되면, 적어도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더 불행해진다는 상당히 강력한 증거도 있다, 라고 말했다. - P181

포솔레

언젠가부터 나는 주문을 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바텐더들은 나를 알았고 내가 왜 거기에 있는지도 알았다. 그들은내가 바 끄트머리에 나타나면 빙긋 웃고 고개를 끄덕인 뒤주문을 넣었다. 몇 분 뒤에는 막 끓인 포솔레 그릇이 내 앞에놓였다.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사십오 분 동안 수프를 먹고 신문을 읽고 가끔은 와인을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식당은 어둡지만 편안했고, 배경음악은 주로 경쾌한 어쿠스틱 멕시코 음악으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나온 오래된 곡들이었다. 손님들도 대체로 나이가 많거나 그렇게 보이는들, 모르긴 해도 이십년, 삼십년 동안 이곳에 드나들었을사람들이었다. - P232

히메나

그해 봄에는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은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히메나와 함께 있으면 늘 다시 보이는 존재가 된느낌이었는데, 아마 그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히메나는 젊었고, 어쨌든 나보다는 젊었고, 나를 바라봐주었다. 아마도 그 눈길에 연애 감정은 없었겠지만ㅡ나 역시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진 않았다―같은 인간으로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후회에 휩싸인 채 인생을 망치지 않으려 애쓰며 이 땅위를 걷는 사람으로서 나를 바라보았다.
비록 나는 정말로 인생을 망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혼자 궁리하며 내 인생을 수습하거나, 적어도 영화 작업이나 다른 프로젝트에 매진해야 할 시간에 히메나와 마냥 노닥거리면서 인생을 망치고 있었다. - P267

사라진 것들

내가 어쩌다 한 번씩 함께 뭔가 하자고-저녁을 먹거나 술을마시러 나가자고 제안했을 때도 타냐는 당장은 사람 많은 곳에 갈 만한 마음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도 더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저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정신적 외상을 일으키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나는 성격상 그것에 대해 - P304

말하고 마음을 털어놓는 편이었지만 타냐는 훨씬 더 내향적이고 안으로 숨어드는 사람이었다. 타냐의 성정은 주위에 벽을 쌓고 담요를 누에고치처럼 둘둘 감은 채 소파 위에 누워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니얼의 실종 이전에도 우리 사이는 이미 벌어지고 있었기에 나는 문제가 더 악화될까봐 걱정스러웠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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