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 전에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내 약혼녀가 되어줄래?"
"물론이지! 어머, 버키, 나 정말 행복해!"
"나도 마찬가지야." 그가 말했다. "무지무지 행복해." 잠시, 이런 행복감 때문에, 그는 자신이 놀이터 아이들을 배신한 것을 거의 잊을 수 있었다. 위퀘이크의 무고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괴롭힌 것 때문에 하느님에게 분노한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는마샤와 약혼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있는 곳을 외면하고 정상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정상적인 삶의 안전과 예측 가능성과 만족을 끌어안으러 달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자 그의 이상들이 그와 맞서고 있었다ㅡ할아버지가 그에게 길러준 정직함과힘이라는 이상, 그가 제이크 그리고 데이브와 공유했던 용기와희생이라는 이상, 어린 시절 그 스스로 길렀던 사기꾼 아버지의기만적 성향을 넘어선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즉시 다시방향을 틀어 여름 동안 그가 하겠다고 계약했던 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는 사나이의 이상.
어떻게 방금과 같은 짓을 할 수 있었을까? - P138

그느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것이 너무 많았다. - P157

그러나 그에게는 싸워야 할 전쟁, 놀이터라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주어졌고, 그는 그 전쟁에서 부대를 버리고 마샤에게로, 인디언 힐의 안전으로 탈영했다. 유럽이나 태평양에서 싸우지 못한다 해도 뉴어크에 남아 위험에 처한 아이들과 더불어그들의 폴리오 공포와 싸울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위험이없는 이 피난처에 와 있었다. 뉴어크를 떠나 좁은 비포장도로의머나먼 끝에 있어 세상으로부터 감춰져 있고, 숲으로 위장되어공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외딴 산꼭대기의 여름 캠프로 왔다ㅡ그래서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아이들과 논다. 그것도 행복하게! 하지만 행복을 느낄수록 수치심도 강해졌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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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캔터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여러분 모두 진정하고 자제력을 잃지 말고 공황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공황을 퍼뜨리지 않는 겁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 생활의 모든 걸 가능한한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여러분 모두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 P42

합리적이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 P43

그애들은 우리 아이들하고 아무런 접촉이 없었어요. 이탈리아 아이들 때문이 아닙니다. 보세요, 걱정에 사로잡혀서도 안 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도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두려움이라는 병원균을 감염시키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는이걸 극복할 겁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우리 모두 자기 할 일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있는 모든 일을 하면, 함께 이걸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말했다. "아, 고마워요, 젊은이, 아주 훌륭한 젊은이야." "가볼데가 있어서요. 실례해야겠습니다." 그는 그들 모두를 향해 말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그들의 불안한 눈, 그가 스물세 살의 놀이터 감독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강한 어떤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그에게 애원하고 있는 눈들을 들여다보았다. - P43

할아버지가 옆에 있어 이야기를 좀나눌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지. 그는 코퍼먼 부인이 히스테리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슬픔에 압도되어 그에게 미친듯이 욕을 퍼붓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가 옆에서 그는 그 여자가 말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다독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가 야비한 비난이나 절제되지 않은 증 - P86

오와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놀이터에서 위협적인 이탈리아 아이들 열 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기운빠지는 일이었다. - P87

그는 파이프 설대로 의미심장하게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수 있다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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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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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었다. 정말 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다니!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아는 사람이 내딛는 한걸음. 그의 발걸음에 진정한 신의 가호가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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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 P22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은 매달 첫째 금요일에 아동수당을 받으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우체국에서줄을 섰다. 시골로 가면 젖을 짜달라고 우는 젖소들이 있었다. 젖소를 돌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배를 타고 영국으로 떠나버린 탓이었다. 한번은 세인트멀린스에사는 남자가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요금을 내러 왔는데,
그 사람 말이 지프를 팔아야 했다고, 빚을 생각하면, 은행에서 압류가 들어올 걸 생각하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 이른 아침 펄롱은 사제관 뒤쪽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걸 봤다. - P23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 P29

곧 펄롱은 정신을 다잡고는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고. 게다가 여기에서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비록 기분이심란해지기는 해도 다행이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과를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실제로 닥칠지 아닐지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느니보다는. - P36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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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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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이 사라진 것들을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는, 마지막 표제작에서 방점을 찍는, 일관된 주제를 관통하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단편집이다. 이토록 다정하고 섬세하고 자상하고 배려심 넘치는 40대 중년 남성을 만난 적이 있던가(책에서라도...) 그의 50대, 60대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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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2-06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공감입니다. 이토록 다정한 40대 남성! 알라딘에서는 좀 보입니다만 ㅎ

햇살과함께 2024-02-07 00:45   좋아요 1 | URL
현실에서는 찾기힘든 ㅋㅋ 책과 온라인에만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