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포성
바바라 터크먼 지음, 이원근 옮김 / 평민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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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을 통해 알게 된 책..

어제 저녁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하루 만에 완독하다..

전문적인 역사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독자들을 빠져들게 하는 문체의 흡입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놀라운 책.. 틈틈이 읽긴 했지만 <몽유병자>를 마치는데 2주일 가까운 시간이 걸렸음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추천사에도 나오듯, "1910년 5월 아침, 영국왕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에 참석한 아홉 명의 국왕들로 구성된 가마 행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엄숙하게 기다리고 있던 군중들은 너무나도 화려한 이 광경에 놀라 탄성을 억제할 수 없었다."라는 인상적인 장례식 풍경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개전 초 1개월 간의 충격적인 패퇴로부터 반격의 불씨를 되살리는 프-영 연합군의 1914년 9월 6일 마른 전투의 개시로 끝난다..

개전 첫 달의 실패로 인해 굳어진 교착상태가 전쟁의 향후 진로와 결과적으로 강화조약의 조건, 양 대전 사이의 사회상, 그리고 제 2차대전의 조건들을 결정짓는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1914년 8월의 사건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게 비록 '좋은 시절'의 몰락을 애탄조로 바라보는, 그리고 결과적으로 몰락한 유럽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는 대서양 너머 미국 출신 저자의 시선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어쩌면 장기 19세기를 이끌었던 유럽의 몰락이, 당시 억눌려 있던 아시아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주었다는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시아의 독자들에게도.. 


하지만.. 멋진 문장이다.. 600여페이지의 결론을 이런 문장으로 끝맺을 수 있다니..


마른 전투는 역사를 결정지은 전투 중 하나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을 계기로 독일이 결국 패하게 되었다든지 혹은 연합국이 궁극적으로 전쟁에 승리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전쟁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저녁 죠프르는 병사들에게 뒤돌아볼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되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교전국들은 처음 30일동안 전세를 결정짓는데 실패한 전투로부터 만들어진 덫, 그때도 또 그이후로도 출구가 없는 그러한 덫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런 책을 계속 절판 상태로 놔둬도 되는 것일까.. 



  

1910년 5월 아침, 영국왕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에 참석한 아홉 명의 국왕들로 구성된 가마 행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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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의 설계자들 -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WEA 총서 8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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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이 책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유학을 떠난 뒤 미국에서 영주권을 획득하고 평생 교편을 잡은 역사학자라는 포지션에 대한 고려가 중요_ 포지션의 중요성은 저자 스스로 몇 번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긴 미국 청중에게 이야기할 것인가, 일본 청중에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을 듯.. 번역된 이 책은 영어판을 상당히 개정증보한 일본판이라는 점도 염두. 


2,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종결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양자관계를 넘어 <소련의 역할>에 주목한 점은 분명 새로운 시도.. 특히 1945년 5월의 단계에서 일본의 전쟁 지도부가 소련의 참전을 막는데 힘을 기울였고, 6월 이후부터 계속해서 소련의 알선을 통해 종전을 도모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왜 일본의 전쟁 지도부는 소련의 알선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일까.. 정말 일소중립조약을 그대로 믿었던 걸까.. 아니면 연합군 내 미영과 소련 사이의 틈새를 파고들고 싶었던 걸까(일본 외교가 그 정도의 능력이 있었을지는 미지수지만). 아니면 어차피 만주나 사할린 정도는 원래 자기 땅도 아니니, 이런 걸로 협상하면서 본토를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3. 원폭 투하, 소련참전부터 포츠담 선언의 수락에 이르는 10여일 동안 일본 정부 내부의 극심한 대립, 즉 화평파와 계전파의 대립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정책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이 '국체'(고쿠타이)를 둘러싼 정의에 있었다는 점을 당대 일본 정치구도 속에서 잘 입증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장점.. 


4.1945년 8월 8일 소련의 참전과 만주, 그리고 특히 종전 이후 20일 이후인 9월 5일까지 전개된 쿠릴 열도의 전투를 상세히 기술하고 그 전쟁의 의미를 규정-이데올로기적인 해방전쟁이라는 소련의 프로파간다와는 거리가 먼, 철저히 지정학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전쟁-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신선한 점. 사실 이러한 소련의 움직임이야말로, 지금 일본의 북방문제의 기원이자, 전후 일본의 피해자의식 민족주의를 만들어낸 중요한 이유인 것은 분명(야스쿠니신사의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한다> 등등).. 다만, 이 지역을 접수해야 한다는 스탈린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에는 친숙하지 않은/40년간의 조선 신탁통치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오히려 굉장히 부정적인 인상이 강한..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대국,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버둥을 치는 영국 사이의 전후 땅따먹기 게임(또 하나의 그레이트 게임)의 서막인 <얄타회담>의 전모를 이해할 필요성.. 이에 대해서는 마이클 돕스의 <1945>가 도움이 될 듯.. 그런데 분명 그 책에서도 폴란드 문제는 다뤘던 것 같은데, 쿠릴 열도 문제는 어떻게 다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그리고 몇 년 전에 번역된 <8월의 폭풍> 역시 1945년 8월 소련군의 참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5. 미국의 원폭 투하가 정당했는가.. 뭐, 이 문제는 정의로운 전쟁 vs. 전쟁 수행상의 정의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이나 일본사회에서는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겠지만) 그건 별도로 하고.. 다만,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것이 아니라,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도록 압박/강요했다는 해석(소련 측 싸인이 빠진 채)은 한 번 생각해볼 지점.. 왜 원폭을 투하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미국 사회 내부의 문제에서부터 당시 태평양전쟁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이 부분은 꼼꼼히 따져봐야 함.. 


6. 원폭 투하는 전쟁 종결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전쟁지도부에서 보더라도 종전을 결의하게 된 계기는 원폭보다는 소련의 참전이었다는 주장은.. 당대의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저자인 하세가와의 사료 독해 및 해석이 타당한지 이성적으로 따질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8월의 급박한 상황에서 전쟁지도부의 발언들(그것도 일기나 회고록 등)을 어떻게 교차검증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책이 그걸 잘 수행하고 있는지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 이 부분은 물음표로.. 뭐 둘 다 중요했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우선 순위를 따지는 문제는 분명 정치적으로 중요하니까..


7. <패전>인가 아니면 <종전>인가.. 이 문제 역시 전후 일본사회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고.. 그래서 포츠담 선언 수락이 조건부 항복인지, 아니면 무조건 항복인지를 둘러싸고도 일본 사회 내부에서 일찍부터 논쟁이 치열했는데.. 이 책은 포츠담 선언과 그 후 8월 11일에 일본 정부에 보내진, 다소 수정된 <번스 회신>, 그리고 이를 수락한 8월 14일 종전조서 반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면서.. 자신들의 조건부 항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황실의 안태>를 어느 정도 허용한 듯한(국체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은 있지만) 번스 회신을 수락하며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내용상 조건부라고 해석될 수 있지만, 어쨌건 형식적으로는 무조건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황의 성단이 강조되고.. 8월 15일의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들이 입증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다룰 필요는 없을 듯..   


8. 꼬박 사흘에 걸쳐 읽다.. 뭐 두꺼운 책이니까.. 그래도.. 책읽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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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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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상 6월은 사람의 신체를 몽유병자로 만드는 시즌인데..
몽유병자의 신체로 2주간에 걸쳐 틈틈이 <몽유병자들>을 읽다. 
20세기 초 발칸의 지형학을 설명하는 다소 느린 전개의 1부와 복잡하게 뒤얽힌 당대 유럽의 정치질서를 분석하는 2부, 그리고 사라예보 사건 이후 1차세계대전 발발에 이르는 1개월여의 기간 동안 급박하게 돌아가는 유럽 정계를 박진감있게 기술하는 3부에 이르기까지 8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기나긴 서술을 마친 후, "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라는 결론의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저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그리고 전쟁발발의 책임은 독일과 그 동맹에 있다는 이른바 '피셔 테제'의 전통적인 주장에 맞서, 저자가 그린 1914년은 서로를 불신하면서 한정된 정보만으로 상대를 오판하면서 급기야 치명적인 비극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비극의 서막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알바니아 영토국가의 갑작스러운 등장, 흑해에서 오스만과 러시아가 벌인 해군 군비 경쟁, 소피아에서 베오그라드로 방향을 돌린 러시아의 정책 등, 당시 국제체제의 급속한 변화는 1914년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면서 정치적 행위자들의 시야를 가렸고,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본다면, 1914년 1차세계대전 발발을 바라보는 저자의 신중한 관점이 1914년의 전쟁은 혁명과 자본, 그리고 제국의 시대라는 장기 19세기를 거쳐 부풀어오를대로 부풀어오른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모순이 한 폭발이라는 맑스주의자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 책의 장점은 그러한 결과론을 뒷받침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파국으로 치닫는 기나긴 과정의 섬세한 재구성에 있겠지만.. 

거듭되는 위기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전면적인 파국의 가능성을 자신들의 특정한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버리는 몽유병자들의 위험한 도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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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1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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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협정, 사과 없는 화해, 용서만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 작가는 아드리아의 처절한 ‘고백‘이자 ‘유언‘으로 하나의 응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응답의 토대는 너무도 미약하다.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확실성의 섬이 되어야 할 ‘약속‘은 배신당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 깃든 악들..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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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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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돋보이지만, 한국 사회의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을 다룬 4장 때문에, 단순한 ‘386개새끼론‘을 넘어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탁월함은 인정. 다만, 극복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비판의 칼끝은 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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