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군 - 최초로 공개된 지리산 빨치산 수기, 개정판
이태 지음 / 두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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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서모임 텍스트인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서.. 내친 김에 이태의 <남부군>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소장하고 있는 <남부군> 역시 2권이다.. 오른쪽은 재편집증보개정판 3쇄(2106년), 그리고 왼쪽의 낡은 책은 1988년 7월 20일 2판.. 어린 시절 광주 시내(충장로)의 한 극장에서, 단지 최진실 주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보고.. 뭔가 허전해서 당시만 해도 광주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던 삼복서점에 가서 구입한 책(그러고보니 예전에는 책을 사면 이렇게 포장을 해주곤 했었는데)..1988년 7월 11일에 초판 발행인데, 9일만에 2판이 발행되었다. 지금의 출판시장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속도다.. 어떤 독특한 시대적 상황, 금기에 대한 갈증이 만들어낸 회오리였을 것이다.. 

물론 어린 마음에 그래도 책을 사긴 했는데.. 이후 <하권>을 사지 않은 걸 보면, 읽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최진실이 나오지 않으니까.. 그래도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가족여행으로 갔던 지리산 자락이.. 그리고 구례 출신인 옆집 친구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정말 옛날옛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한국전쟁의 기원 2>에서 48년 4월의 제주, 그리고 같은 해 10월의 여순봉기의 사건사적 의미를 정리하면서 커밍스는 <남한 좌익의 묘비명>이라는 의미심장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당대의 한국에서 그 사건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이미 수많은 봉기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정비해나간 남한의 폭력적 국가기구, 그리고 압도적인 물량 지원으로 이들을 후원하는 미군에 의해 철저히 진압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49년의 <유격대 투쟁>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적 기반은 있었지만, 지도력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3년에 걸친 좌익활동은 실패했다.. 


여순반란은 1주 남짓 지속된 격렬한 폭풍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 규모와 중요성에서 여순반란은 1946년 가을 봉기와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일으킨 즉흥적이고 대단히 멍정한 반란으로, 전라남도의 강력한 좌익 기반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했을 뿐이다. 실제로 투옥된 한 남로당원은 그 반란은 "성급했다"고 당국에 말했다. 이 말은 당이 대비하지 못했고 따라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남로당 활동가들은 반란에 가담했다. 그것은 그 봉기가 "인민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고 인민은 "혁명을 일으킬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당은 다음 기회에는 인민을 지도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는 진실이 담겨 있으며 증거와 합치한다. 이것은 남한 좌익의 묘비명이었다. 대중적 기반은 있었지만 지도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활동가들은 반란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것을 혁명이라 불렀다. 여수의 역사적 중요성은 3년에 걸친 좌익 활동이 실패의 막을 내렸다는 그 반란적 특징에 있다. 


냉철하면서도 따스한 커밍스의 분석의 정확성을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역사가가 아닌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그래서 책의 여백에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썼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이미 사건이 끝나버린 이후의 시점일 수밖에 없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보기엔 엉뚱한, 그리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봉기에 참여했던 당대 인민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 봉기가 성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봉기에 가담했던 당대 활동가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커밍스 역시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물론 커밍스에게 이 이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학살과 시체들로 뒤덮인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제일 테니까.."


물론 여백에 쓴 이 문장은 그 과제를 스스로 떠맡지 않는 한 하나의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나는 빠져나간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느꼈던 어떤 묵직한 울림은, 수십년에 걸쳐 그 험난한 길을 다른 방식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작가의 태도에 대한 공감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루쉰이라면 "쩡짜"라고 했을 그 단호함.. 


하지만 내친 김에 읽고자 시도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은 역시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비하면 조금 버겁다.. 부모님의 빨치산 시절의 삶에 대한 소설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픽션의 언어로 그려진 이들의 모습은 실제 현실의 땅바닥에서 조금 떠 있는 듯이 느껴진다.. 그 괴리는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작가의 필력의 한계일 수도 있고.. 아니, 문학적 상상력이 빈약한 나의 탓으로 온전히 돌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직 역사적으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시대를 픽션의 언어로 쓰는 것의 <곤란함>의 한 반영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남부군>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대장 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주세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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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폐허 우리시대 질문총서 15
리사 요네야마 지음, 김려실 옮김 /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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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소리소문 없이, 그리고 뒤늦게 번역 출간된 것이 아닐까.. 10여년 전 유행했던 포스트전후의 기억정치, 태평양횡단적 문화비평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 텍스트. 물론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소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감사의 글>도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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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2-2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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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해방의 날..

정전협정 70주년에 읽기 시작한 커밍스의 2부작을, 8월 15일에 완독.. 뭐 그동안 이 책에만 매달렸다는 건 아니고(중간중간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았지만..) 어제부터 2-2권을 읽기 시작.. 오늘 오전 3부를 마치다. 우연히 날짜가 맞아떨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러고보니 난 53년(정전협정)에서 45년(해방)으로, <해방 8년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책을 읽고 있었구나.. 이런 의미부여라도 하지 않으면 한여름에 1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그것도 내 직접적인 전문분야도 아닌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독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징후인가..  


결국 이 책의 3부 1950년 6월의 서곡의 기나긴 이야기들은.. 한국전쟁 발발의 '직접적' 기원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약 1년의 기간의 이 <적절한 간격(decent interval)>은 1950년 6월 전쟁을 일으키는데 서로 작용한 사람과 사건과 세력들, 즉 전쟁 직전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 워싱턴의 정치가들과 일본의 미군정, 그리고 타이완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연쇄를 두텁게 기술(thick description)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담아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16장 타이완의 암시에 이르러서는 좀 지치기도 했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18장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 세 개의 모자이크에서 선명하게 제시된다.. 

물론 이렇게 정리해버리기에는, 1950년 1월 12일 프레스클럽의 애치슨 연설의 의미를 분석한 13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연구이다.. 그러고보니 내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예전 창비에 일부 번역소개되었던 원고도 이 13장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의 방위선에서 남한을 제외한 애치슨의 연설이 무력 남침을 꿈꾸던 북한을 도발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줄기차게 들었던 이야기인데(이거 중고딩 교과서에도 나온 이야기 아님? 기억이 가물가물), 그 원류가 매카시즘의 그 매카시로부터 나왔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 아마 당시 미국의 국무부를 장악하고 있던 자유주의자들(애치슨)이 북한의 무력도발, 즉 남침을 쉽게 허용한 것에 대한 미국 보수우파(반공주의자들)의 정치적 비판이었을텐데, 한국의 보수우익 역시 북한의 무력 도발, 즉 '남침'을 강조하는데 좋은 소재로 써먹었다.. 그러고보면 매카시즘의 유령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하지만 애치슨의 연설을 그대로 믿었다면 정말 북한은 정치적으로 하수, 즉 <바보>라는 말인데, 북한=바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도 좋은 걸까.. 그렇게 정리해버리는 사람이 <바보>가 아닐까.. 저자는 이러한 식의 만연한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면서, 애치슨의 논리는 2권의 초반에 자세히 논의한 1940년대 후반 미국의 세계전략, 즉 <봉쇄-반격>의 논리 그 자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버젓이 통용된다.. 오늘 아침에 인터넷 포탈 게시판에 뜬 신동아에 실린 현 정권의 보훈부 장관의 발언을 잠시 인용해보면(왠지 신동아를 굉장히 즐겨 읽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결코 아니고.. 어쩌다보니.. "문재인, 6.25 북 책임 희석하려 국제전 언급"이라는 제목에 낚임..)


"유엔이 참전했는데 국제적 성격이 왜 없겠어요? 더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 거죠. 전쟁은 남북 사이의 도발과 냉전 구조에서 발발한 것이지, 한쪽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게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꺼낸 핵심 논리입니다.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6·25가 김일성이 요청하고 스탈린이 승인해 이뤄진 남침이라는 팩트를 더는 부인할 수 없게 됐어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그 부분은 의도적으로 말을 안 하고 국제전이라고 물타기하는 것 같아요."

  

요새 우파들도 브루스 커밍스를 인용하는게 좀 신박하긴 했는데.. 요새는 그래도 좀 공부를 하나?.. 하지만 당연히 책을 제대로 읽지는 않았을테고..(아마 바쁘신 분이라 그들 방식대로 정리한 논의를 '듣고' 하는 이야기겠지만..) 그래서 뭔가 좀 아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핵심은 텅 빈 이런 이야기가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것이다.. 소위 '입진보'들에게 내가 한수 가르쳐주마.. 이런 식의 새로운 형태의 반지성주의.. 하지만 커밍스가 이 분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정말 많이 섭섭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나쁜, 적절하지 않은 인용은 오히려 저자를 욕보이는 짓이므로.. (커밍스 아저씨가 최근 많이 '변했다(흑화?)'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음.. 자신이 평생을 바친 필드인 한국사회의 변화에의 기대가 계속 좌절된 결과일까? 아.. 이건 거의 '억측'이지만..) 

 

앞서 언급한 세 개의 모자이크로 다시 돌아가보면, (1)소련과 북한이 극악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침공을 은밀히 준비했다는 미국과 남한의 '공식적인' 주장, (2)남한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가설, (3)남한이 38도선 전역에 걸쳐 정당한 이유 없이 기습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 이 세 모자이크 중에서 저자가 많은 문헌들을 검토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두 번째 모자이크이다.. (그러고보니 김동춘의 책 <전쟁과 사회>(돌베개, 2000) 역시 연구사의 계보로 본다면 이 두 번째 모자이크의 연장선상에 있었구나..)  그리고 커밍스가 검토하지 못한 소련 측 사료가 1990년대 이후(즉 이 책이 출간된 이후) 공개되면서 <남침>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커밍스의 해석이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다.. 커밍스 역시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주도적 선제공격을 부인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북한이 6월 15일에서 25일 사이의 어떤 시점을 그 순간으로부터 선택했으며, 그것은 그들이 선호한 시점이 아니었지만 6월 마지막 주에 중첩해 발생한 여러 사건 때문에 그 시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49년 여름 옹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1년여에 이르는 기간 동안 38선 부근에서 일어난 계속적인 총격/분쟁을 염두에 둔다면, 50년 6월에 발발한 이 전쟁의 내전적 성격, 즉 그 구조적 기원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 커밍스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전쟁의 책임 운운하며, 마치 자신들만이 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인 것처럼 색깔론으로 몰고가는, 그리고 여전히 <이념적 폭탄>이 정치적으로 유효하다고 믿고 마구 던져대는 이 한국 사회에 커밍스는 1990년에 이미 '따끔한' 일침을 날리고 있다.. 


어떤 "호랑이"가 행동을 시작했든, 한국의 역사적이고 기묘한 치매 증세는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때 결과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외국인을, 필요한 경우 전 세계를 끌어들였다. 1950년에 조선의 사신들은 히데요시의 의도를 알기 위해 그의 눈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결국 침략당했고, 일진회는 일본을 도와 식민지화를 초래했으며, 김일성은 소련이나 중국을, 이승만이나 김석원 또는 이범석은 미국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이것이 하나의 유형이다. 그런 현상은 일종의 내부 파열이자 그 진공을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 "블랙홀"이었다. 아무튼 이것이 6월 25일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 이것은 제기할 수 없는 질문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이런 질문을 멈춰야 한다. 그 대신 니체가 독일인에게 요구한 것처럼 세속적 태도를 배양하고 편협한 "국수주의"를 혐오해야 한다. -"북방에 있는 남방을 사랑하고 남방에 있는 북방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미국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생색내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은 엄격한 방법을 거쳐 이 교훈을 배웠다. 한국인은 아직도 그것을 배우지 못했다. 


"한국의 역사적이고 기묘한 치매 증세? 앗. 이거 혐한론 아니야?"라고 매도하기 전에, 커밍스가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모국인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 그리고 무지를 철저하게 비판해왔는지를 떠올려주기를.. 커밍스의 의도는 이 전쟁이 국제적 냉전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그 냉전 구조 하에서도 남북한의 정치행위자들이 그 범위(boundary) 안에서 나름의 자율성을 갖고, 순전히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민족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에 대해, 그리고 그 비합리성과 광기에 전사회가 휩쓸려버렸다는 사실에 대해, 현시점에서 이 사회가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역사적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남한에서는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 알고 싶어하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지만, 이는 구세대에게 도덕적 분노를 느낀 젊은 세대의 정치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조짐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조짐을 바탕으로 후세대는 그 질문을 자신의 마음에서 배제하고 니체가 말한 "역사"에 구속된 상태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화해를 위해 자유롭게 행동할 것이다


책이 출간된 지 30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과연 얼마나 나아진 걸까.. 우익의 논리(?)야 원래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소위 '진보'라 자칭하는 인간들, 과거 "구세대에 도덕적 분노를 느낀 젊은 세대들"이지만 지금은 50대가 훌쩍 넘어버린 그들도 과연 그런 "역사에 구속된 상태"에서 벗어났을까.. <백년전쟁> 운운하는 프레임을 보면 그쪽도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과거 이 땅에 찾아왔던 한 이방인(etranger)의 애정어린 충고(짐멜이 말했던 그 이방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서로 증오의 주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8월 15일 해방의 날.. 

하지만 이 해방이 전쟁, 그리고 분단의 새로운 기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좋은 날,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그저 착잡한 심정으로 <한국전쟁의 기원 2-2>를 읽는다.. 


cf. 그러고보니 바로 얼마 전 와다 하루키 선생의 <한국전쟁전사>가 번역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예전에, 전작인 <한국전쟁>(창비, 1999)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논문집이 아닌 통사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가까스로 봉우리에 올라서니, 다시 새로운 봉우리가 보이네..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우리는 적절한 세 가지 모자이크를 볼 수 있었을 뿐이며, 그 가운데 둘은 복잡하고 상충되는 증거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증명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초조한 독자들은 저자가 명확히 말하지 않고 특정 해석을 지지하지 않으려는(그래서 전문 분야의 특정 학파에게 공격받지 않으려는) 태도에 당혹스러웠을 테고, 그가 잘못된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연구를 처음 계획했을 때부터 이념적 폭탄을 품은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질문에 답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전에 대한 질문이 아니며, 동족간의 갈등으로 직접 고난을 겪은 세대는 아직도 관심을 둘 것이다.

북한의 침공이, 다시 말해 어떻게 시작됐든, 조용한 일요일 아침의 평화를 부순 전격전이 지닌 마지막 의미는 무엇인가? "만일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외교기관은 없다고 애치슨은 말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외교기관이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미래에 자신을 맡기는 젊은이만 가질 수 있는 대담한 만용과 차가운 계산이 뒤섞인 한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예상된 결과에 대한 무관심 안에는 유아론과 열광적 애국심이 존재했는데, 이런 사실은 그 결정을 내린 주체가 한국이고 그 실패는 엉망이 된 파우스트의 도박처럼 비극적이지도 고귀하지도 않았음을 알려준다. 거기에는 조급하고, 한발 앞서가려는, 벼락부자가 되기를 고집하는,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적"인 어떤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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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시간표 전쟁 -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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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첫 번째 주말..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볕에 바깥으로 나갈 의지를 이미 상실한 채..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서가에서 고른 책 한 권..

하루만에 끝까지 읽었으면 싶었고(300페이지 미만이어야 한다).. 

제목도 흥미로웠고(이미, 슐리펜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쓸 거라는 암시를 팍팍 주고 있지만).. 

또 무엇보다도 전쟁사가로는 워낙 유명한 저자의 책인지라, 주저하지 않고 꺼내서 읽기 시작.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이라고 쓰려고 하다, 확인해보니 22년 6월 30일.. 같은 여름이긴 하지만, 그래도..)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이 생각나기도 했고.. 

당시 여름을 맞아 괜히 1차세계대전사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었는데.. 돌이켜보니 그 계기가 됐던 책이 마침 그 해 번역되었던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봄의 제전>이었다.. 1차세계대전 전야의 유럽의 문화사(모더니즘)에 대한 나름 흥미로운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내친 김에 한동안 서가에 방치해두던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을 오랜만에 꺼내 들어 먼지를 털고 꽤 열심히 읽었고(정리를 잘 해두지 않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20세기 초 발칸의 지형학, 특히 당대 유럽의 트릭스터였던 세르비아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인상적인 책이었는데_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 역시 아마 <몽유병자들>의 레퍼런스에서 발견한 책이었던 것 같다.. 

cf. 당시는 절판 상태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난 후 출판사에 이런 책 절판 상태로 방치해둘 거냐고 댓글을 남겼었는데.. 소리소문 없이 가격을 조금 올려서 같은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과연 개정판일까.. 미리 보기가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이런 책은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시대 진행형이던 우크라이나 사태(지금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를 보면서.. 세계대전이라는 것 역시 이런 우연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뒤엉키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고보니 근 1년 만에 다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 한 권을 꺼내서 읽고 있는 셈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1차세계대전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그 기원(origin)을 규명하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는 듯 한데(그런 점에서 과거 한국전쟁 연구와도 비슷하다).. 어쩌면 유럽인들에게 그러한 관심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으면서 세계의 부를 독점한, 그리고 유럽의 헤게모니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 되리라는 장밋빛 미래에 도취되어 있던 구대륙 유럽인들에게 있어, 제1차세계대전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그리고 왜 이런 파국적인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자신들을 파멸의 늪으로 빠트린 사건이었을테니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인 역사가 테일러의 입장은 꽤 냉정하다..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면 그런 사건에는 엄청난 원인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찾아내려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한 전쟁은 어쩌면 엄청난 원인이 없을지 모른다. 이전의 30년 동안 국가 간의 외교, 세력균형, 동맹체제, 군사력 증강이 평화를 낳았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오랜 기간 평화를 가져온 바로 그 요인들이 이제 대규모 전쟁을 가져왔다. 매우 비슷한 사고방식인데, 30년 동안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안전운전을 해온 운전자가 한 번 실수해서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1914년 7월, 일이 잘못되어버렸다. 역사에서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말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학자인 저자가 그 기원을 규명하는 작업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 책은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리기 전에 이미 독일, 그리고 다른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군사 동원을 위한 시간표(그것은 다름 아닌 20세기 근대의 상징이자 합리성, 효율성, 정확성의 상징이기도 한 철도 시간표)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점,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암살된 이후에도,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러시아, 그리고 영국(프랑스에 대한 분석이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인데)의 정치가들이 <동원>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리고 오해들 속에서 자신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점을 간결하면서도 나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친절하게 요점만 간추려 이야기해주듯. 


1914년에 전쟁이 발발한 유일한 원인은 속도와 공세에 대한 믿음의 산물인 슐리펜 계획이었다. 독일이 프랑스와 러시아에 동원하지 말라고 요구할 때까지의 외교가 작동했다. 당시 상황에서 어떤 나라도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에게 유럽의 자유를 무너뜨리려는 계획된 의도는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계획된 의도를 품을 시간 혹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모두가 군사적 준비를 위한 기막히게 정교한 틀에 갇혀 버렸다. 특히 독일인들이 그랬다. 모든 나라 국민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러 나간다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옳았다. 모든 나라의 일반참모부가 공격이 유일한 방어책이라 믿었으므로 모든 방어작전은 다른 누군가에 대한 공격으로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관해서 더 이상 밝혀져야 할 것은 없다. 억지책으로도 억지에 실패한 것이다. 언젠가는 그럴 것이라 생각했어야 했다. 억지책은 아흔아홉 번 성공하더라도 한 번 실패할 있다. 그 한 번의 실패로 대참사가 빚어진다. 억지책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제 1차세계대전이 남긴 교훈이다. 


좀.. 맥이 빠지는 결론이긴 한데.. 그러니까 억지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이야기가 중심인 것은 아니고.. 다만, 왜 그렇게 뛰어난 능력과 교양을 갖춘 정치 엘리트들이 다른 가능성들을 하나둘 씩 던져버린 채 불 속으로 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는가.. 그 오류의 역사를 다시금 상기함에 있어 <슐리펜 계획>과 같은 근대적 시간표가 만들어낸 <필승의 전략>에 대한 그릇된 믿음들을 다시금 재검토해보자는 메시지는 꽤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아마 오늘날 전세계적인 전쟁 게임을 주도하고 있는 전략가들 중에서도 그런 믿음들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꽤 많이 있을테니까..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감시(watch)할 것인가 일텐데.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면 그런 사건에는 엄청난 원인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찾아내려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한 전쟁은 어쩌면 엄청난 원인이 없을지 모른다. 이전의 30년 동안 국가 간의 외교, 세력균형, 동맹체제, 군사력 증강이 평화를 낳았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오랜 기간 평화를 가져온 바로 그 요인들이 이제 대규모 전쟁을 가져왔다. 매우 비슷한 사고방식인데, 30년 동안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안전운전을 해온 운전자가 한 번 실수해서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1914년 7월, 일이 잘못되어버렸다. 역사에서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말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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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2-1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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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한국전쟁의 기원 Vol.2 폭풍의 굉음> 등정을 시작한다. 

번역본 2-1이 다루는 시간은 해방 3년사의 중간에 해당하는 1947년이다.. 그리고 대상은 이 시기 냉전 체제를 새로이 구축했던 미국, 그리고 한국의 정치..


장문에, 문학적 비유가 많아 번역이 어려웠다는 예전의 소문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번역자인 김범 선생의 역자 후기가 증명하듯, 2권은 서문(1장 책을 시작하며: 미국 외교정책의 방법과 이론에 대한 회고)의 첫 문장부터 문학적 수사로 시작한다.. 눈의 결정이 가진 신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로부터, 해방 3년이라는 이 미묘한 시간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그 연구 방법에 대해 다루는 서문은, 사르트르의 변증법 논의와 역사유물론자들의 영원한 고전인 K. 맑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교묘하게 뒤섞인 매혹적인 글이었다..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과학의 비밀 가운데 하나는 눈의 결정이 수없이 다양하게 보이면서 숨막힐 정도로 대칭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땅에 떨어질 때 눈은 임의성과 결정론이 뒤섞인 미지의 명령을 따른다.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모두 조화로운 구조를 갖고 있다. 하나 위에 다른 하나가 쌓이면서 독특한 구성 요소는 전체를 부드러운 아름다움으로 변모시켜 지상을 균일한 광명으로 덮는다. 눈이 내린 것이다. 


하지만 눈 결정은 그 비밀을 아무리 파헤치기 어렵더라도 물리적 법칙을 따르는, 즉 보편 법칙의 한계 안에서 반응하는 반면, 인간은 인간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정치에는 늘 비밀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 현미경 유리 아래 고정시켜 검사할 수 있는 개별적 정치 사건은 존재하지 않기에, 현미경과 이론이라는 유리를 이용해 들여다보려는 인간의 열정과 관심이 수반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 즉 정치를 분석하는 사람은 모두 참가자이자 관찰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사적 유물론의 기본적 입장을 잘 표현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커밍스가 1장의 제사에 사르트르의 문장을 쓸까, 맑스의 문장을 쓸까.. 망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제사를 선택하는 커밍스의 탁월한 감식안에 대해 이미 한 표를 던지긴 했지만..). 하지만 커밍스 역시 감히 맑스의 문장을 제사로 쓰는 데는 다소의 주저가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형성해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 스스로 선택한 환경 아래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 지어지고 넘겨받은 환경 아래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2권의 1부는 냉전의 심화과정에 따라, 루스벨트의 <국제협력주의>에서 <봉쇄>로, 그리고 <반격>으로 전환하는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한 글이다.. 냉전체제를 만들어간 가장 중요한 행위자들이 미국의 정치가들이라는 점에서, 세계주의와 고립주의라는 미국의 오래 된 두 가지 정치적 전통이라는 큰 틀 속에서, 트루먼과 맥아더, 딘 애치슨, 조지 케넌 등의 국무부, 군부(육군성), 그리고 한국의 이승만 주변의 미국인 실력자들-굿펠로, 로버트 올리버, 미국의 냉전체제를 구축했던 주요 행위자들 사이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추적해나가는 커밍스의 시도는 나름 흥미로웠다.. 

이러한 글쓰기는 예전에 미국의 그 유명한 '똑똑이들'이 왜 베트남전쟁이라는 수렁에 스스로 빠지고 말았는가라는 D. 핼버스탬의 거작(벽돌책)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을 떠올리게 했는데.. 핼버스탬의 마지막 유작이 한국전쟁을 다룬 <더 콜디스트 윈터>라고 하니 함께 읽어봐도 좋을 듯 싶다.. 아무래도 국제정치, 외교사에 해당하는 이 영역은 내게 낯선 분야니만큼.. 일단은 커밍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2권의 후반부를 아직 안 읽은 상태에서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커밍스가 북침을 주장했다는 식의 '설'은 왠지 커밍스가 1949-50년 초 미국의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지적하는 <개입> 이론을 혼동한 결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진짜 그럴 것 같아서 정말 걱정되긴 하지만..), 이 역시 후반부까지 읽어봐야 할 듯.. 


어쨌거나 상당히 난해한 미로와 같은 여러 길들을 거쳐 만들어진 이론으로서의 <개입주의>에 대해, 커밍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론가였던(나는 이 방면에 무지함), 제임스 버넘의 이론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이 책 1부의 핵심을 관통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임스 버넘은 배외주의적 반격과 냉전 시대의 봉쇄 사이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타협을 이룬 총명한 설계자로 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그 혼합물을 개입주의라고 부르겠다. ... 그것은 봉쇄와 반격의 혼합으로 미국의 절대적 지배권에 내재한 현실을 전제로 했다. 미국은 세계정부나 민족주의의 후퇴와 자기만족이 아니라 '세계 제국'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2부 한국은 1947년 당시 남한과 북한을 다룬다. 이 장들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시기인만큼, 46년 가을 봉기, 그리고 이어지는 봉기들을 거치면서 남한의 풀뿌리 인민위원회들이 몰락하고, 반면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해가면서 우익 국가기구들이 성장해가는 이 시기를 읽는 것은 여전히 괴롭고 쓰라린 독서이다.. 이범석의 족청이나 서북청년회와 같은 우익 청년단체들의 폭력, 그리고 무엇보다 평가가 분분한 이승만의 '가공할' 정치력으로 이루어진 폭력적 지배기구로서 <남한 체제>가 점차 정치적 헤게모니를 구축해가는 상황.. 그리고 이러한 <남한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남로당의 주도권 장악, 그리고 향촌/촌락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봉기들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피비린내나는 학살의 기록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이지러지게 한다.. 


1947년 여름에 작성된 경찰과 정보기관의 보고서는 향촌으 혼란 상태를 기록한 끝없는 일지 같다. 향촌에서는 작은 투쟁이 수없이 일어났고 그것은 그 시기 한국을 찢어 놓은 분열의 축도였다. 


당대 중국과 같은 광활한 대륙이라면 이러한 향촌 봉기가 어떤 유의미한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저자가 1권에서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 동아시아 2위의 교통망(철도), 그리고 훈련받은 관료가 근무하는 근대적 기구를 군 단위 이하까지 밀어붙인 일제 식민지 체제의 유산은 향촌의 이러한 봉기를 진압하는 극도의 효율성을 보여주었다는 것. 그리고 맑스의 <감자 푸대>라는 유명한 메타포가 상기시키듯, 고립된 향촌에서는 정치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이해관계를 공유한 공동체가 생겨날 수 없었다는 것이 1947년의 수많은 봉기들을 무력화시킨 요인이었다는 커밍스의 분석은 타당하다..

그러한 점에서, 48년 4월의 제주, 그리고 같은 해 10월의 여순 봉기는 예외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수많은 봉기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정비해나간 남한의 폭력적 국가기구, 그리고 압도적인 물량 지원으로 이들을 후원하는 미군 앞에서, 두 사건은 철저히 진압되었다. 이는 이어지는 49년의 <유격대 투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이미 사건이 끝나버린 이후의 시점일 수밖에 없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보기엔 엉뚱한, 그리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봉기에 참여했던 당대 인민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 봉기가 성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봉기에 가담했던 당대 활동가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커밍스 역시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물론 커밍스에게 이 이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학살과 시체들로 뒤덮인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제일 테니까..


여순반란은 1주 남짓 지속된 격렬한 폭풍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 규모와 중요성에서 여순반란은 1946년 가을 봉기와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일으킨 즉흥적이고 대단히 멍정한 반란으로, 전라남도의 강력한 좌익 기반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했을 뿐이다. 실제로 투옥된 한 남로당원은 그 반란은 "성급했다"고 당국에 말했다. 이 말은 당이 대비하지 못했고 따라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남로당 활동가들은 반란에 가담했다. 그것은 그 봉기가 "인민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고 인민은 "혁명을 일으킬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당은 다음 기회에는 인민을 지도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는 진실이 담겨 있으며 증거와 합치한다. 이것은 남한 좌익의 묘비명이었다. 대중적 기반은 있었지만 지도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활동가들은 반란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것을 혁명이라 불렀다. 여수의 역사적 중요성은 3년에 걸친 좌익 활동이 실패의 막을 내렸다는 그 반란적 특징에 있다. 


2-2권은 8월 14일 이후에나 읽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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