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전쟁 -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 걸작 논픽션 28
벤저민 R. 타이텔바움 지음, 김정은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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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한 책이다. 극우파 인사들을 대상으로 인류학적인 연구방법론을 적절히 활용하여 심층 인터뷰를 수행한 저자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전통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극우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연구들이 필요하다. 비난하고 매도하는 것만으로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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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과 신자유주의 -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Philos 시리즈 28
게리 거스틀 지음, 홍기빈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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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질서에서 신자유주의질서로의 전환, 그 절정까지의 과정에 대한 서술은 훌륭하다. 특히 클린턴-오바바 정부와 신자유주의의 동거에 대한 서술은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분석을 위해서도 일독의 가치가 있다. 다만 해체기와 이후의 서술은 다소 산만.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는 관점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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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군 - 최초로 공개된 지리산 빨치산 수기, 개정판
이태 지음 / 두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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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서모임 텍스트인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나서.. 내친 김에 이태의 <남부군>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소장하고 있는 <남부군> 역시 2권이다.. 오른쪽은 재편집증보개정판 3쇄(2106년), 그리고 왼쪽의 낡은 책은 1988년 7월 20일 2판.. 어린 시절 광주 시내(충장로)의 한 극장에서, 단지 최진실 주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보고.. 뭔가 허전해서 당시만 해도 광주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던 삼복서점에 가서 구입한 책(그러고보니 예전에는 책을 사면 이렇게 포장을 해주곤 했었는데)..1988년 7월 11일에 초판 발행인데, 9일만에 2판이 발행되었다. 지금의 출판시장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속도다.. 어떤 독특한 시대적 상황, 금기에 대한 갈증이 만들어낸 회오리였을 것이다.. 

물론 어린 마음에 그래도 책을 사긴 했는데.. 이후 <하권>을 사지 않은 걸 보면, 읽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최진실이 나오지 않으니까.. 그래도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가족여행으로 갔던 지리산 자락이.. 그리고 구례 출신인 옆집 친구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정말 옛날옛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한국전쟁의 기원 2>에서 48년 4월의 제주, 그리고 같은 해 10월의 여순봉기의 사건사적 의미를 정리하면서 커밍스는 <남한 좌익의 묘비명>이라는 의미심장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당대의 한국에서 그 사건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이미 수많은 봉기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정비해나간 남한의 폭력적 국가기구, 그리고 압도적인 물량 지원으로 이들을 후원하는 미군에 의해 철저히 진압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49년의 <유격대 투쟁>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적 기반은 있었지만, 지도력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3년에 걸친 좌익활동은 실패했다.. 


여순반란은 1주 남짓 지속된 격렬한 폭풍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 규모와 중요성에서 여순반란은 1946년 가을 봉기와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일으킨 즉흥적이고 대단히 멍정한 반란으로, 전라남도의 강력한 좌익 기반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했을 뿐이다. 실제로 투옥된 한 남로당원은 그 반란은 "성급했다"고 당국에 말했다. 이 말은 당이 대비하지 못했고 따라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남로당 활동가들은 반란에 가담했다. 그것은 그 봉기가 "인민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고 인민은 "혁명을 일으킬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당은 다음 기회에는 인민을 지도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는 진실이 담겨 있으며 증거와 합치한다. 이것은 남한 좌익의 묘비명이었다. 대중적 기반은 있었지만 지도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활동가들은 반란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것을 혁명이라 불렀다. 여수의 역사적 중요성은 3년에 걸친 좌익 활동이 실패의 막을 내렸다는 그 반란적 특징에 있다. 


냉철하면서도 따스한 커밍스의 분석의 정확성을 부인할 수 없으면서도, 역사가가 아닌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그래서 책의 여백에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썼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이미 사건이 끝나버린 이후의 시점일 수밖에 없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보기엔 엉뚱한, 그리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봉기에 참여했던 당대 인민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 봉기가 성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봉기에 가담했던 당대 활동가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커밍스 역시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물론 커밍스에게 이 이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학살과 시체들로 뒤덮인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제일 테니까.."


물론 여백에 쓴 이 문장은 그 과제를 스스로 떠맡지 않는 한 하나의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나는 빠져나간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느꼈던 어떤 묵직한 울림은, 수십년에 걸쳐 그 험난한 길을 다른 방식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작가의 태도에 대한 공감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루쉰이라면 "쩡짜"라고 했을 그 단호함.. 


하지만 내친 김에 읽고자 시도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은 역시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비하면 조금 버겁다.. 부모님의 빨치산 시절의 삶에 대한 소설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픽션의 언어로 그려진 이들의 모습은 실제 현실의 땅바닥에서 조금 떠 있는 듯이 느껴진다.. 그 괴리는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작가의 필력의 한계일 수도 있고.. 아니, 문학적 상상력이 빈약한 나의 탓으로 온전히 돌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직 역사적으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시대를 픽션의 언어로 쓰는 것의 <곤란함>의 한 반영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남부군>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대장 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주세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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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폐허 우리시대 질문총서 15
리사 요네야마 지음, 김려실 옮김 /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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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소리소문 없이, 그리고 뒤늦게 번역 출간된 것이 아닐까.. 10여년 전 유행했던 포스트전후의 기억정치, 태평양횡단적 문화비평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 텍스트. 물론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소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감사의 글>도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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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2-2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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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해방의 날..

정전협정 70주년에 읽기 시작한 커밍스의 2부작을, 8월 15일에 완독.. 뭐 그동안 이 책에만 매달렸다는 건 아니고(중간중간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았지만..) 어제부터 2-2권을 읽기 시작.. 오늘 오전 3부를 마치다. 우연히 날짜가 맞아떨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러고보니 난 53년(정전협정)에서 45년(해방)으로, <해방 8년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책을 읽고 있었구나.. 이런 의미부여라도 하지 않으면 한여름에 1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그것도 내 직접적인 전문분야도 아닌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독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징후인가..  


결국 이 책의 3부 1950년 6월의 서곡의 기나긴 이야기들은.. 한국전쟁 발발의 '직접적' 기원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약 1년의 기간의 이 <적절한 간격(decent interval)>은 1950년 6월 전쟁을 일으키는데 서로 작용한 사람과 사건과 세력들, 즉 전쟁 직전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 워싱턴의 정치가들과 일본의 미군정, 그리고 타이완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연쇄를 두텁게 기술(thick description)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담아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16장 타이완의 암시에 이르러서는 좀 지치기도 했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18장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 세 개의 모자이크에서 선명하게 제시된다.. 

물론 이렇게 정리해버리기에는, 1950년 1월 12일 프레스클럽의 애치슨 연설의 의미를 분석한 13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연구이다.. 그러고보니 내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예전 창비에 일부 번역소개되었던 원고도 이 13장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의 방위선에서 남한을 제외한 애치슨의 연설이 무력 남침을 꿈꾸던 북한을 도발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줄기차게 들었던 이야기인데(이거 중고딩 교과서에도 나온 이야기 아님? 기억이 가물가물), 그 원류가 매카시즘의 그 매카시로부터 나왔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 아마 당시 미국의 국무부를 장악하고 있던 자유주의자들(애치슨)이 북한의 무력도발, 즉 남침을 쉽게 허용한 것에 대한 미국 보수우파(반공주의자들)의 정치적 비판이었을텐데, 한국의 보수우익 역시 북한의 무력 도발, 즉 '남침'을 강조하는데 좋은 소재로 써먹었다.. 그러고보면 매카시즘의 유령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하지만 애치슨의 연설을 그대로 믿었다면 정말 북한은 정치적으로 하수, 즉 <바보>라는 말인데, 북한=바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도 좋은 걸까.. 그렇게 정리해버리는 사람이 <바보>가 아닐까.. 저자는 이러한 식의 만연한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면서, 애치슨의 논리는 2권의 초반에 자세히 논의한 1940년대 후반 미국의 세계전략, 즉 <봉쇄-반격>의 논리 그 자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버젓이 통용된다.. 오늘 아침에 인터넷 포탈 게시판에 뜬 신동아에 실린 현 정권의 보훈부 장관의 발언을 잠시 인용해보면(왠지 신동아를 굉장히 즐겨 읽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결코 아니고.. 어쩌다보니.. "문재인, 6.25 북 책임 희석하려 국제전 언급"이라는 제목에 낚임..)


"유엔이 참전했는데 국제적 성격이 왜 없겠어요? 더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 거죠. 전쟁은 남북 사이의 도발과 냉전 구조에서 발발한 것이지, 한쪽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게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꺼낸 핵심 논리입니다.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6·25가 김일성이 요청하고 스탈린이 승인해 이뤄진 남침이라는 팩트를 더는 부인할 수 없게 됐어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그 부분은 의도적으로 말을 안 하고 국제전이라고 물타기하는 것 같아요."

  

요새 우파들도 브루스 커밍스를 인용하는게 좀 신박하긴 했는데.. 요새는 그래도 좀 공부를 하나?.. 하지만 당연히 책을 제대로 읽지는 않았을테고..(아마 바쁘신 분이라 그들 방식대로 정리한 논의를 '듣고' 하는 이야기겠지만..) 그래서 뭔가 좀 아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핵심은 텅 빈 이런 이야기가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것이다.. 소위 '입진보'들에게 내가 한수 가르쳐주마.. 이런 식의 새로운 형태의 반지성주의.. 하지만 커밍스가 이 분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정말 많이 섭섭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나쁜, 적절하지 않은 인용은 오히려 저자를 욕보이는 짓이므로.. (커밍스 아저씨가 최근 많이 '변했다(흑화?)'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음.. 자신이 평생을 바친 필드인 한국사회의 변화에의 기대가 계속 좌절된 결과일까? 아.. 이건 거의 '억측'이지만..) 

 

앞서 언급한 세 개의 모자이크로 다시 돌아가보면, (1)소련과 북한이 극악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침공을 은밀히 준비했다는 미국과 남한의 '공식적인' 주장, (2)남한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가설, (3)남한이 38도선 전역에 걸쳐 정당한 이유 없이 기습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 이 세 모자이크 중에서 저자가 많은 문헌들을 검토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두 번째 모자이크이다.. (그러고보니 김동춘의 책 <전쟁과 사회>(돌베개, 2000) 역시 연구사의 계보로 본다면 이 두 번째 모자이크의 연장선상에 있었구나..)  그리고 커밍스가 검토하지 못한 소련 측 사료가 1990년대 이후(즉 이 책이 출간된 이후) 공개되면서 <남침>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커밍스의 해석이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다.. 커밍스 역시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주도적 선제공격을 부인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북한이 6월 15일에서 25일 사이의 어떤 시점을 그 순간으로부터 선택했으며, 그것은 그들이 선호한 시점이 아니었지만 6월 마지막 주에 중첩해 발생한 여러 사건 때문에 그 시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49년 여름 옹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1년여에 이르는 기간 동안 38선 부근에서 일어난 계속적인 총격/분쟁을 염두에 둔다면, 50년 6월에 발발한 이 전쟁의 내전적 성격, 즉 그 구조적 기원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 커밍스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전쟁의 책임 운운하며, 마치 자신들만이 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인 것처럼 색깔론으로 몰고가는, 그리고 여전히 <이념적 폭탄>이 정치적으로 유효하다고 믿고 마구 던져대는 이 한국 사회에 커밍스는 1990년에 이미 '따끔한' 일침을 날리고 있다.. 


어떤 "호랑이"가 행동을 시작했든, 한국의 역사적이고 기묘한 치매 증세는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때 결과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외국인을, 필요한 경우 전 세계를 끌어들였다. 1950년에 조선의 사신들은 히데요시의 의도를 알기 위해 그의 눈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결국 침략당했고, 일진회는 일본을 도와 식민지화를 초래했으며, 김일성은 소련이나 중국을, 이승만이나 김석원 또는 이범석은 미국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이것이 하나의 유형이다. 그런 현상은 일종의 내부 파열이자 그 진공을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 "블랙홀"이었다. 아무튼 이것이 6월 25일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 이것은 제기할 수 없는 질문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이런 질문을 멈춰야 한다. 그 대신 니체가 독일인에게 요구한 것처럼 세속적 태도를 배양하고 편협한 "국수주의"를 혐오해야 한다. -"북방에 있는 남방을 사랑하고 남방에 있는 북방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미국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생색내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은 엄격한 방법을 거쳐 이 교훈을 배웠다. 한국인은 아직도 그것을 배우지 못했다. 


"한국의 역사적이고 기묘한 치매 증세? 앗. 이거 혐한론 아니야?"라고 매도하기 전에, 커밍스가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모국인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 그리고 무지를 철저하게 비판해왔는지를 떠올려주기를.. 커밍스의 의도는 이 전쟁이 국제적 냉전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그 냉전 구조 하에서도 남북한의 정치행위자들이 그 범위(boundary) 안에서 나름의 자율성을 갖고, 순전히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민족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에 대해, 그리고 그 비합리성과 광기에 전사회가 휩쓸려버렸다는 사실에 대해, 현시점에서 이 사회가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역사적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남한에서는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 알고 싶어하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지만, 이는 구세대에게 도덕적 분노를 느낀 젊은 세대의 정치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조짐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조짐을 바탕으로 후세대는 그 질문을 자신의 마음에서 배제하고 니체가 말한 "역사"에 구속된 상태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화해를 위해 자유롭게 행동할 것이다


책이 출간된 지 30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과연 얼마나 나아진 걸까.. 우익의 논리(?)야 원래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소위 '진보'라 자칭하는 인간들, 과거 "구세대에 도덕적 분노를 느낀 젊은 세대들"이지만 지금은 50대가 훌쩍 넘어버린 그들도 과연 그런 "역사에 구속된 상태"에서 벗어났을까.. <백년전쟁> 운운하는 프레임을 보면 그쪽도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과거 이 땅에 찾아왔던 한 이방인(etranger)의 애정어린 충고(짐멜이 말했던 그 이방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서로 증오의 주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8월 15일 해방의 날.. 

하지만 이 해방이 전쟁, 그리고 분단의 새로운 기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좋은 날,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그저 착잡한 심정으로 <한국전쟁의 기원 2-2>를 읽는다.. 


cf. 그러고보니 바로 얼마 전 와다 하루키 선생의 <한국전쟁전사>가 번역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예전에, 전작인 <한국전쟁>(창비, 1999)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논문집이 아닌 통사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가까스로 봉우리에 올라서니, 다시 새로운 봉우리가 보이네..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우리는 적절한 세 가지 모자이크를 볼 수 있었을 뿐이며, 그 가운데 둘은 복잡하고 상충되는 증거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증명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초조한 독자들은 저자가 명확히 말하지 않고 특정 해석을 지지하지 않으려는(그래서 전문 분야의 특정 학파에게 공격받지 않으려는) 태도에 당혹스러웠을 테고, 그가 잘못된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연구를 처음 계획했을 때부터 이념적 폭탄을 품은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질문에 답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전에 대한 질문이 아니며, 동족간의 갈등으로 직접 고난을 겪은 세대는 아직도 관심을 둘 것이다.

북한의 침공이, 다시 말해 어떻게 시작됐든, 조용한 일요일 아침의 평화를 부순 전격전이 지닌 마지막 의미는 무엇인가? "만일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외교기관은 없다고 애치슨은 말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외교기관이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미래에 자신을 맡기는 젊은이만 가질 수 있는 대담한 만용과 차가운 계산이 뒤섞인 한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예상된 결과에 대한 무관심 안에는 유아론과 열광적 애국심이 존재했는데, 이런 사실은 그 결정을 내린 주체가 한국이고 그 실패는 엉망이 된 파우스트의 도박처럼 비극적이지도 고귀하지도 않았음을 알려준다. 거기에는 조급하고, 한발 앞서가려는, 벼락부자가 되기를 고집하는,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적"인 어떤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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