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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 ㅣ '전후' 일본의 운동과 사상 1
니시무라 히데키 지음, 심아정 외 옮김 / 논형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이 한국어 번역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
아마 책이 나오자마자 주문해서 구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분명히 내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이, 우선순위에 밀려, 혹은 음..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인데, 또 읽어야 하나.. 등등 여러 이유 때문에 많은 책들은 점점 책장 깊숙이 들어가게 되고, 또 다른 책들이 그 앞에 놓이면서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이 사라진 책들은 아주 가끔씩, 그리고 아주 우연한 계기로 다시금 소환된다..
그 계기가 된 건 올 겨울 한 캠프에서 있었던 스이타 사건 답사였다.
답사 루트는 한큐 전철 <쇼지쿠역>에서 JR 교토선 <다케노하나 가드> 부근을 통과하고, JR 교토선<센리오카역>으로 이어지는, 꽤나 긴 도보 루트였다. 사건의 흔적은 커녕, 제대로 된 기념비 하나 세워지지 않는 이 공간에서 전후 일본의 3대 소요사건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스이타 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오전 답사로 무거워진 다리를 끌면서도 묵묵히 따라갔던 것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면서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던 재일조선인 선생님의 열변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역사가 피에르 노라의 첫 시도가 이미 충분히 입증했던 것처럼 <기억의 장소>라는 것은, 애초부터 기억의 국민경제라는 논리를 충실히 수행한다. 거기에는 한나 아렌트가 언급했던 것처럼 <기억의 구멍> 같은 것은 철저히 배제되기 마련이다. 더구나 스이타 사건처럼 아직 전쟁의 기억이 생생했고, 그래서 반전의 분위기가 농후하게 남아 있던 1950년대 초, '일본인'과 '조선인', 그리고 그 범주에 속할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들의 반전 공투가 빚어낸 초국적 연쇄('연쇄'는 역자 심아정 선생의 말처럼, 프랑코 베라르디-도미야마 이치로의 사상의 흔적이다)가 만들어낸 사건은 국민국가-전후 일본이든, 대한민국이든, 아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든,-의 기억 속에서는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래서 스이타 사건은 전후 일본에서는 잊혀졌고, 대한민국에서는 아예 사건의 존재 자체가 말소되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획정한 경계들을 침범하고 횡단하는 '불편한, 그래서 '위험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답사 루트는 스이타 반전 투쟁 당시의 산넘는 부대들의 동선이었던 사이코쿠 가도도 아니었고, 또 한 때 동양 최대라 불렸던 스이타 조차장은 이미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한 시간여의 짧은 도보 답사로 사건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다만 꼼꼼하게 만들어진 답사 자료집을 보며, 한국전쟁 당시, 바다 건너 불타고 있는 조국을 바라보며, 한국으로 포탄과 네이팜탄을 실어 나르는 군수열차를 10분 늦추면, 동포 1,000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스이타로 향하던 재일조선인들과 그 뜻에 공감했던 일본인들의 공투의 현장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의 장소는 감정/심정의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스이타 사건, 그리고 옴진리교 1심 공판보다 길었던 11년의 소송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니시무라 히데키의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스이타 사건에 대한 기나긴 취재를 마치고 책으로 정리하면서 저자가 쓴 마지막 장이 계속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 있다..
스이타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에 대해 김시종(시인)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준비해서 부덕수에게 전했다.
“그걸로 됐다, 거기에는 나의 지순한 시절이 있었으니.”
러시아의 혁명가 크로포트킨의 일기에서 인용한 것이다. 김시종은 스이타 사건 이후, 잡지 <진달래>를 발행하여 조선총련의 비민주적인 운영에 대해 비판했는데, 그 때문에 조직으로부터 철저한 비판을 받는다. 김시종은 ‘의식의 정형화’를 강요하고 개개인의 창의적 생각을 무시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조직은 문제가 있다며 비판했지만, 조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그런 가혹한 비판 속에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던 세월을 10년 넘게 지내면서도, 나를 견디게 한 것은 크로포트킨의 말이었습니다. 그걸로 됐다. 거기에는 나의 지순한 시절이 있었으니.”
그 세월에는 스이타 사건을 준비했던 날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 시기가 재일조선인들에게 지순한 시절이었을 리 없다. 스이타 사건에는 많은 이들의 인생이 얽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선인 측 ‘주모자’로 기소되어 결국 무죄판결의 승리를 쟁취한 부덕수와 그의 친구 이방일, 그리고 김시종, 이들 재일조선인 세 명의 배경을 더듬어 가다 보면 거기에는 제주도 4.3봉기, 한신교육투쟁이 있다.
…
분명, 스이타 사건은 지순한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는 측면 또한 갖는다. 그럼에도 되묻고 싶다. 스이타 사건은 정말 지순한 세월이었을까.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기지국가가 되어버린 일본은 그러한 상태를 바로잡았는가. 부덕수가 스이타 사건에 대해 말문을 연 것은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일장기와 기미가요가 ‘강제’되고, 일본국헌법의 ‘개정’ 문제가 정치과정에 대두되던 시기였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의 戰後이자, 한국전쟁의 戰中에 스이타, 히라카타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戰前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 번 더 묻고자 한다. 그렇다면 현재는 지순한 세월인가.
일본은 민주적인 세상이 되었는가.
일본국헌법에 규정된 기본적 인권은 지켜지고 있는가.
양심의 자유, 표현의자유는 지켜지고 있는가.
적극적 평화주의를 규정한 헌법은 지켜지고 있는가.
김시종이 부덕수에게 전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가만히 되뇌어 본다.
그걸로 됐다. 거기에는 나의 지순한 시절이 있었으니.
한국의 독자들은 시인 김시종이 전했던 이 말에서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재는 지순한 세월인가".. 다음에 이어지는 일본인 저자의 물음들은, 공투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재일조선인, 그리고 전쟁의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혹독한 전장의 경험, 그리고 반공과 군부독재로 이어진 고난의 세월을 거쳤던 휴전선 이남의 땅에 사는 우리들의 물음과 공명할 때 그 의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캠프를 마치면서, 나는 어느 정도까지 의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로부터 벌써 1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나의 우둔함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