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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의 해 ㅣ 미친 아담 3부작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2020년 2월의 마지막날..
2월 초만 하더라도 조기 종식될 것처럼 보였던 신종 코로나(코로나 19)가 한 교단(?)의 수상쩍은 전도에 의해 대구/경북을 진원지로 하여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지 10여일이 흘렀다.. 이미 코로나 확진자수는 현 시점에서(2020.02.29. 오전 10시 37분) 2,931명, 사망자 수도 16명에 이르렀고, 아마 오늘을 넘기면 숫자는 3천명을 훌쩍 넘길 것 같다.. 문제는 이제 몇몇 확진자들의 동선만으로 전염을 막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에 도달한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 신용평가사가 예측한 것처럼, (그들이 신봉하는 수학적 계산에 따른다면, 그리고 그건 불행히도 대부분 다 들어맞지만)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는 아마 2만을 넘을 것이고, 이제 사태는 중국, 한국, 일본, 이탈리아 등 몇 개의 국가만이 아닌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징조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19의 '판데믹'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번 사태가 과연 자연발생적인 것인지, 아니면 (잠깐 유행했던 괴담처럼) 중국 우한의 한 연구소의 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것인지 밝혀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니, 원인 규명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어떤 집단의 의도적인 생화학 테러는 아닌 것 같으니까.. 코로나 19의 낮은 치사율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제 얼마든지 이런 바이러스균을 퍼뜨리는 것에 의해 한 국가가, 아니 전세계가 파국의 상황에 치달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악마적인 유혹에서 인류사회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놀랍게도, 아니 안타깝게도 이미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충분한 성취를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인류멸종계획>, <인간종말마라톤>은 가시적인 것이 되었다..
2월 28일 하루 꼬박 <홍수의 해>를 읽었다..
전작 <오릭스와 크레이그>를 읽은지 2개월 만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책 한 권을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집중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어제는 날도 음산하고 비도 내렸고.. 또 몸상태도 안 좋아서.. 일찌감치 다른 작업들을 포기하고 점심을 먹고 바로 책을 꺼내들었다..
<오릭스와 크레이그>의 무대가 최첨단 바이오기술을 관리하는 기업체 단지의 세계였다면, <홍수의 해>의 무대는 전작에서 얼핏얼핏 보였던 단지 바깥의 평민촌 세계다. 이미 전작이 구축한 세계를 서로 다른 두 명의 여성의 시점에서 재서사화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전작의 세계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텍스트이다.. 더구나 소설의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저자는 전작의 주인공들인 글렌과 지미의 동선을 토비, 렌의 동선과 연결시키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친절도 베풀어준다..
하지만 전작의 지미, 즉 스노우맨의 무기력함에 비한다면, 홍수 이후 살아남은 주인공 여성들이 끊임없이 현 상황을 개척해내고, 또 이를 통해 성장해나간다는 점에서, 마치 예전에 보았던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시키는 페미니즘적 로드 무비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또 파국의 시대에서 <여성성>의 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저자의 입장도 강하게 드러난다.. 하긴, 두 작품에서 '젭', 즉 '미친 아담'이라는 다소 수상한 인물을 제외하면 호감을 주는 남성형은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고.. 실제로 파국적 상황에서 남성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가 람보나 슈퍼맨을 소환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이 쪽이 훨씬 개연성이 높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쨌거나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저자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전염(홍수)으로 인한 인간사회의 파국, 인간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너구컹크, 돼지구리, 사자양, 늑개와 같은 새로운 치명적인 종들의 출현,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유포자이자 인류종말계획의 입안자이기도 한 한 미친 과학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류, 즉 섹스경쟁이나 탐욕이 없고 동물성 단백질 없이 광합성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종족인 한 무리의 크레이커들-이들을 인류라는 종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속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간들을 집어넣고,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종종 언급되듯, SF소설이 아니라 사변소설이라고 주장하듯이, 저자는 판데믹 시대에 '이야기꾼'이라는, 이제 그 기능을 상실해버린 듯이 보였던 고전적인 직업군에 속하는 이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혹은 해야 하는가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 그렇다면 3부작의 마지막 권인 <미친 아담>에서 그녀는 2권에서 멈춰버린 그 종말론적 세상에 다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