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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 개정증보판 ㅣ 줄리언 반스 베스트 컬렉션 : 기억의 파노라마
줄리언 반스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평점 :
쇼스타코비치의 일대기에 대해서는 이미 훌륭한 주석들이 많이 나와 있다. 또 그를 불멸의 음악가로 만든 레닌그라드 전투와 교향곡 7번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서도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작년 겨울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을 읽은 후, 반스의 이 책과, 그가 작품 집필에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엘리자베스 윌슨의 <쇼스타코비치> 평전, 그리고 위작이 의심되는.. 그래서 '쇼스타코비치 전쟁(논란)'을 야기했던 그의 회고록도 관련 도서로 함께 구입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이런 <무용한 글읽기>를 이어가게 해 줄만큼 이 세상은 한가하지 않고.. 그래서 또 <절박한 글읽기>를 계속 하면서, 시간이 속절 없이 흘러버렸다.. 그나마 <무용한 글읽기>가 가능해지는 <마법의 시간>인 6월 하순이 도래하여.. 먼지 쌓인 책장에서 우선, 그나마 얇은 반스의 책을 꺼내 읽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미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훌륭한 평전들 및 역사서가 많이 출간된 상황에서.. 이 책의 의의는 무엇보다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한 음악으로, '시대의 소음'에 맞섰던 한 음악가의 일생을 픽션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이상주의적 음악가를 둘러싼 온갖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언어를 '시대의 소음'이라는 메타포로 표현해낸 것도 인상적이다..
그는 평생을 아이러니에 의지하며 살았다..
물론 (반스도 쓰는 것처럼)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젊은이는 아이러니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 나이 대에는 아이러니가 성장을 막고 상상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남을 믿고,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며,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이에게 솔직하게 대하는, 활기차고 개방적인 마음 상태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과연 2025년의 한국 사회에서도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의미에서 아이러니는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버린 사람들이 취하는 전략이다..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 삶에서, 아이러니의 감각은 비관주의를 누그러뜨려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현재 나의 삶 자체가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성공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삶이 이러할 것이라고 상상하거나 가정하거나 바라는 것과 실제 삶 사이의 간격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는 자아와 영혼을 지켜주는 수단이자, 우리가 매일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무기이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아이러니에 기대하며 무시무시한 스탈린 체제에서, 그리고 이어지는 후르시초프 체제 하의 그로테스크한 소비에트 치하에서 살아남았다. (그와 비슷한 탄압을 받았던 프로코피예프가 스탈린이 죽던 날과 같은 날, 하지만 그보다 6시간 빨리 죽었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다른 여느 의미들이나 마찬가지로 삶의 우연과 시간에 취약하다는 것.. 그래서 아이러니에 등을 돌리게 되면 그것은 냉소주의로 굳어진다는 것.. 말년의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저자는 냉소주의로.. 영혼을 잃은 아이러니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말년에 그는 현악사중주에 모렌도를 점점 더 많이 썼다. '사라지듯이', '마치 죽어가듯이'. 그가 자기 삶에 부틴 표시도 이것이었다. 포르티시모에 장조로 끝나는 삶은 거의 없었다. 제때 죽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무소륵스키, 푸시킨, 레르몬토프 -너무 일찍 죽었다. 아치콥스키, 로시니, 고골- 이들은 더 일찍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베토벤도 그럴지도 몰랐다. 물론 유명한 작곡가나 작가들에게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적절한 수명을 넘어서까지, 삶이 더는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실망과 무시무시한 일들만 일어나게 될 때까지 살게 되는 문제.
영화를 전공하는 지인에게..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룬 영화는 없는지 물어봤다.. 이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천재음악가를 영화감독이 놓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대답은 "영화음악은 많이 있는데 영화는 기억나는게 없네요.."였다.. 쇼스타코비치가 영화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비에트의 국책사업이었던 영화 사업에 그가 동원된 것은 사실이다.. 반스 역시 이 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관련된 질문 하나, 훌륭한 작곡가의 나쁜 음악이 어디까지 허용될까? 한때는 그 답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 형편없는 수많은 영화들에 삽입될 많은 나쁜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음악 탓에 그 영화들이 훨씬 더 나빠졌고, 그렇게 진실과 예술에 봉사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니면 그건 그저 궤변에 불과한가?"
그래도 그는 재빨리 검색해서(실로 검색의 여왕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음악을 다룬 영화/다큐멘터리 한 편을 찾아주었다..
알렉산더 소쿠로프,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81)
한 예술가가 죽을 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자신의 예술인생에 관한 이미지들의 모음.. 또는 전지적 시점으로 한 예술가를 회고하는 이미지들의 모음.. 이란다..
벤야민을 떠올리게 하는 한 줄 평이다.. 역시 영화는 기억을 다루는 가장 훌륭한 장치인가보다..
하지만 이런 다큐멘터리를 소개받을 때마다 항상 맞닥뜨리는 난제..
이런 영화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