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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 평전 - 정통을 걸어간 이단
미조구치 유조 지음, 임태홍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5월
평점 :
맹렬한 더위가 꺾이지 않는 한여름 오후. 미조구치의 유조의 <이탁오 평전>을 읽다. 분명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새로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사이고 다카모리에 대한 논고를 쓰다가, 메이지 조슈 번의 반역의 정신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책이었다. 제목은 <이탁오 평전>이지만, 실제로 이 책의 전반부는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분명 과거에 책을 읽었다는 뜻인데, 왜 이렇게 새로운 것일까-. 막부 말기, 쇼인은 자신이 신뢰했던 제자들이 ‘충의(忠義)’가 아닌 ‘공적’을 쌓는 데만 급급한 것에 실망, 연이어 ‘절교’를 선언하면서, 고독 속에서 이탁오의 글들을 읽어나가며,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이 점에 착안하여 지인들에게 200년 전 이탁오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부합한다고 쓰며, 그의 글을 읽어볼 것을 권했던 쇼인이 남긴 글들을 다시 읽으며, 쇼인에 의탁하여 이탁오의 사상의 핵심에 근접해 들어가고자 하는 저자의 방법론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분명 독특한 것이다. 미조구치 정도의 대가니까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하면 너무 쉽게 정리해버리는 것일 테고, 사실, 그래서 결코 친절한 설명방식은 아니고, 또 그 집필 의도를 달성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아쉬운 대목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유학의 전통을 가진, 하지만 그 계승의 방식은 상이한 동아시아의 두 사회-중국과 일본-의 이단적 사상가들이 걸어간 궤적을 비교한다는 문제의식만큼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정통을 걸어간 이단/정도를 걷는 이단”은 바로 그 문제의식을 집약한 부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게 된 계기는, (맺음말에 잠깐 쓰고 있는 것처럼) 하기(萩)의 쇼인 신사를 방문했을 때의 위화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동아시아 기억-전쟁을 재점화시킨 계기이기도 했던 메이지일본의 근대산업혁명유산(‘사도광산’은 그 연장선상의 전투이지만)의 자산군 중에서도 가장 문제적인 것이 하기의 손카손주쿠(松下村塾), 즉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인 다카스기 신사쿠, 가쓰라 고고로,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등을 키워낸 요시다 쇼인의 서당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제철소, 조선소, 탄광과는 결이 조금 많이 다르다는 의미에서-, 손카손주쿠를 포함한 하기 전체는, 얼마 전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아베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해서, 한 번 방문해보면 정말 이곳저곳 돈을 쳐바른 흔적들이 역력하다. 물론 미조구치 선생님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 전에 하기를 방문하셨겠지만, 국가주의자들의 비호를 받는 위풍당당한 쇼인신사를 보며, 어떤 위화감을 느끼신 듯하다. 그래서 거기서 조금 더 안쪽의 인기척이 전혀 없는 숲으로 들어가서 찾은 쇼인의 묘지가 자아내는 청초함에 놀라워하며 문득 쇼인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고 쓰고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쇼인에게서 발견해내고 있는 ‘광기’와 ‘우둔함’, 혹은 어떤 ‘회심(回心)’이 속류 국수주의나 국가주의로 회수될 수 없는 쇼인의 정신의 진수(esprit)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쇼인이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 ‘광(狂)’이라는 글자는 <논어>에서 말하는 ‘광견(狂狷)’의 ‘광’이다. ‘견’은 자신을 지키고 고수하는 것이 견고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반면 ‘광’은 주위를 거부하고, 주위 사람들과 다투더라도 자신의 길을 고집스레 돌진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또 다른 사람들이 비정상이라 여기는 것을 자신은 어디까지나 정상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앞서서 행한다는 뜻도 있다.
‘패(悖)’는 사리에 어긋나다는 뜻이며, 도에 어긋나고 도에 위배된다는 뜻이다. 세상이 신봉하는 어떤 규칙이나 습관을 파괴하는 것도 ‘패’라고 한다. ‘우(愚)’는 지혜가 무디고, 우둔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기(氣)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도 ‘우’라고 한다. ‘당(戇)’은 우직(愚直)하다, 고지식하다는 뜻으로 사고의 폭이 몹시 좁고 정직하여 기가 움직일 여유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광패(狂悖)’ ‘우당(愚戇)’ 등의 표현을 써서 자신을 조롱하는 글에서 쇼인은 몰래 이탁오로부터 자신과 같은 부분을 찾아낸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그가 서하책을 추진할 때는 거기에 몰두하여 전체 국면의 승패를 걸었다. 그때 그는 그러한 책략의 성패를 전체 국면의 성패로 간주했다. 그래서 거기서 죽음의 의미를 찾았던 것이다. 결국 쇼인이 ‘죽음이라는 글자’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이룸으로써 시점 자체도 바뀐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어둠 가운데서 한 점의 죽음을 응시하고 있었던 협소한 시야가 와이드스크린처럼 넓어졌다. 쇼인은 거기서 유구한 미래를 관망했는지도 모른다. 고립된 가운데 사건 하나하나에 희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신념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서 느긋하게 관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신념의 확대가 이 시기의 그에게서 느껴진다. 회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식의 대전환이 ‘죽음이라는 글자’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탁오의 글에 나타난 ‘광(狂)’ ‘패(悖)’ ‘우(愚)’ ‘당(戇)’과 같은 한자의 의미를 풀이해가며, 이탁오의 어리석음과 직관적으로 일체화해가는 쇼인의 감정을 정리해나가는 대목, 그리고 비정상적일 만큼 정직하고 성실하게 추구하며, 또 주위로부터 이단시되고 소외되면서도 그 고독을 감내하면서까지, 거짓을 끊고 순수하게 참다운, 즉 비타협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쇼인의 태도에서 막부 말기 “정통을 걸어간 이단”의 모습을 찾아내는 대목은 과연 탁월하다. 물론 마지막 회심에 대한 기술은 조금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지만, 그건 요시다 쇼인을 악마화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내 몸 속에 깃든 어떤 '생리적 거부감’ 정도로 정리해두자.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사이고 다카모리 논고도 어찌 보면 정한론의 주창자(동아시아 침략의 화신)나 보수 우익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혹은 쇠퇴해가는 지역경제 부흥을 주도하는(지역소멸이 가속화되는 일본 사회에서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관광대사의 이미지에 가려진 ‘반역의 정신’이 갖는 의미를 재사유해보자는 취지의 글이긴 한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글읽기와 글쓰기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