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의 설계자들 -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WEA 총서 8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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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이 책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유학을 떠난 뒤 미국에서 영주권을 획득하고 평생 교편을 잡은 역사학자라는 포지션에 대한 고려가 중요_ 포지션의 중요성은 저자 스스로 몇 번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긴 미국 청중에게 이야기할 것인가, 일본 청중에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을 듯.. 번역된 이 책은 영어판을 상당히 개정증보한 일본판이라는 점도 염두. 


2,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종결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양자관계를 넘어 <소련의 역할>에 주목한 점은 분명 새로운 시도.. 특히 1945년 5월의 단계에서 일본의 전쟁 지도부가 소련의 참전을 막는데 힘을 기울였고, 6월 이후부터 계속해서 소련의 알선을 통해 종전을 도모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왜 일본의 전쟁 지도부는 소련의 알선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일까.. 정말 일소중립조약을 그대로 믿었던 걸까.. 아니면 연합군 내 미영과 소련 사이의 틈새를 파고들고 싶었던 걸까(일본 외교가 그 정도의 능력이 있었을지는 미지수지만). 아니면 어차피 만주나 사할린 정도는 원래 자기 땅도 아니니, 이런 걸로 협상하면서 본토를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3. 원폭 투하, 소련참전부터 포츠담 선언의 수락에 이르는 10여일 동안 일본 정부 내부의 극심한 대립, 즉 화평파와 계전파의 대립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정책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이 '국체'(고쿠타이)를 둘러싼 정의에 있었다는 점을 당대 일본 정치구도 속에서 잘 입증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장점.. 


4.1945년 8월 8일 소련의 참전과 만주, 그리고 특히 종전 이후 20일 이후인 9월 5일까지 전개된 쿠릴 열도의 전투를 상세히 기술하고 그 전쟁의 의미를 규정-이데올로기적인 해방전쟁이라는 소련의 프로파간다와는 거리가 먼, 철저히 지정학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전쟁-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신선한 점. 사실 이러한 소련의 움직임이야말로, 지금 일본의 북방문제의 기원이자, 전후 일본의 피해자의식 민족주의를 만들어낸 중요한 이유인 것은 분명(야스쿠니신사의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한다> 등등).. 다만, 이 지역을 접수해야 한다는 스탈린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에는 친숙하지 않은/40년간의 조선 신탁통치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오히려 굉장히 부정적인 인상이 강한..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대국,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버둥을 치는 영국 사이의 전후 땅따먹기 게임(또 하나의 그레이트 게임)의 서막인 <얄타회담>의 전모를 이해할 필요성.. 이에 대해서는 마이클 돕스의 <1945>가 도움이 될 듯.. 그런데 분명 그 책에서도 폴란드 문제는 다뤘던 것 같은데, 쿠릴 열도 문제는 어떻게 다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그리고 몇 년 전에 번역된 <8월의 폭풍> 역시 1945년 8월 소련군의 참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5. 미국의 원폭 투하가 정당했는가.. 뭐, 이 문제는 정의로운 전쟁 vs. 전쟁 수행상의 정의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이나 일본사회에서는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겠지만) 그건 별도로 하고.. 다만,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것이 아니라,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도록 압박/강요했다는 해석(소련 측 싸인이 빠진 채)은 한 번 생각해볼 지점.. 왜 원폭을 투하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미국 사회 내부의 문제에서부터 당시 태평양전쟁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이 부분은 꼼꼼히 따져봐야 함.. 


6. 원폭 투하는 전쟁 종결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전쟁지도부에서 보더라도 종전을 결의하게 된 계기는 원폭보다는 소련의 참전이었다는 주장은.. 당대의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저자인 하세가와의 사료 독해 및 해석이 타당한지 이성적으로 따질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8월의 급박한 상황에서 전쟁지도부의 발언들(그것도 일기나 회고록 등)을 어떻게 교차검증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책이 그걸 잘 수행하고 있는지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 이 부분은 물음표로.. 뭐 둘 다 중요했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우선 순위를 따지는 문제는 분명 정치적으로 중요하니까..


7. <패전>인가 아니면 <종전>인가.. 이 문제 역시 전후 일본사회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고.. 그래서 포츠담 선언 수락이 조건부 항복인지, 아니면 무조건 항복인지를 둘러싸고도 일본 사회 내부에서 일찍부터 논쟁이 치열했는데.. 이 책은 포츠담 선언과 그 후 8월 11일에 일본 정부에 보내진, 다소 수정된 <번스 회신>, 그리고 이를 수락한 8월 14일 종전조서 반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면서.. 자신들의 조건부 항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황실의 안태>를 어느 정도 허용한 듯한(국체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은 있지만) 번스 회신을 수락하며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내용상 조건부라고 해석될 수 있지만, 어쨌건 형식적으로는 무조건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황의 성단이 강조되고.. 8월 15일의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들이 입증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다룰 필요는 없을 듯..   


8. 꼬박 사흘에 걸쳐 읽다.. 뭐 두꺼운 책이니까.. 그래도.. 책읽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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