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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H. 로렌스의 미국 고전문학 강의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임병권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5월
평점 :
이 책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예전 <한국인의 탄생>에서 최정운 선생이 로렌스의 이 책을 주의 깊게 언급했기 때문일 터인데..
초기 미국을 관찰했던 가장 예리한 유럽의 지식인이었던 토크빌로부터,
어제 읽은 <1945 Six Months in 1945>까지..
아니 저 <루쉰>을 썼던 다케우치 요시미까지..
19-20세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사의 문제에 천착했던, 아니, 현실정치의 문제에 천착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물음은 ..
<저 불가사의한 아메리카의 힘, 혹은 미국인의 정신esprit이란 무엇인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은 동시에 19세기 나폴레옹 이후로 20세기의 히틀러까지 서쪽으로부터의 사람/문명/무력의 흐름을 일정 정도 수용하면서도 그 침범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어머니 러시아'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대구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토크빌이 러시아를, 톨스토이가 아메리카를 사유의 자장 속에 놓고 있었다면, 이를 교차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19세기 사상사의 작업이 될 듯 한데..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역시 대가에 속하는 로렌스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미국 문학에 대한 비평을 통해 미국의 정신 깊은 곳으로 파들어간다.. 다른 장은 몰라도 11장 허먼 멜빌의 <모비 딕> 만큼은 꼭 읽어볼 만한 장인 것 같은데.. 일단 잠깐 인용해두기로 한다..
최후의 끔찍한 사냥. 흰 고래
그렇다면 모비 딕은 무엇인가? 모비 딕은 백인 종족의 가장 깊은 피의 존재다. 모비 딕은 우리의 가장 깊은 피의 본성이다.
모비 딕은 우리 백인 정신 의식의 광적 정신에 사냥을 당하고, 사냥을 당하고, 또 사냥을 당한다. 우리는 모비 딕을 추적해서 잡고 싶다. 우리 의지에 복종시키고 싶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 광적인 의식적 사냥에서, 우리는 거무스름한 종족과 창백한 종족으로 하여금 우리를 돕게 하고, 적색, 황색, 흑색, 동쪽과 서쪽의 인종들과 퀘이커 교도와 배화교도들로 하여금 우리의 파멸과 우리의 자살인 이 무서운 광적 사냥에서 우리를 돕게 한다.
백인의 마지막 남근적 존재 이 존재는 사냥을 당해 상층 의식과 이상적 의지의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의지에 복종당한 우리 피의 자아, 기생적 정신 혹은 이상적 의식에 의해 약화되고 활력을 잃어버린 우리의 피 의식. 바다에서 태어난 다혈질적 모비 딕. 관념의 편집광에게 사냥을 당한다....
그러나 <모비 딕>은 1851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만약 위대한 흰 고래가 1851년에 위대한 백인 영혼의 배를 침몰시켰다면, 그 이후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