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좌반구 - 새로운 비판이론의 지도 그리기 컨템포러리 총서
라즈미그 쾨셰양 지음, 이은정 옮김, 배세진 해제 / 현실문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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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서구 비판이론의 복잡다단한 계보를 재구성하면서, 비판이론과 사회운동 사이의 '도래할' 마주침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제시한다는.. 써놓고 보면 왠지 진부해져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책.

 

하지만 여전히 비판이론과 사회적 투쟁 사이의 관계를 명료하게 제시하는데는(해제에서도 지적하는 것처럼)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이론의 교과서처럼 보이는 책..

 

다만, 시중에 유행하는 미국식 '포스트' 개론 교과서와는 조금 다른, -그 이유는 프랑스 학계에 속해 있는 저자 자신의 위치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히 실천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책..

 

그렇다면 한국에서 비판이론이란 무엇이었는가/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해제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는 책.. -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비판이론과 사회운동 사이의 단절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냄으로써, 이론의 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책..

 

 

비판이론이 처음부터 구체적인 현장/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문제의식, 그리고 그 분석을 통한 어떤 실천적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기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한국의 비판이론이 미디어연구나 영문학을 통해 정립되었다는 것은 역시 태초부터 절름발이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진태원이나 이상길 식의 제언은 학계의 비판이론 학습자들에게는 하나의 조언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실천적 전망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이렇게 쓰고 해제의 후반부를 읽으니, 배세진 선생님도 그렇게 쓰신 것 같다. 공감. 정교한 이론 내적 탐구를 위한 내적인 전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공감.. 워낙 이론이 빈곤한 사회에서 살다보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 

그렇게 본다면 그러한 문제점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던 90년대 이후 사회사나 인류학의 현장연구들이 실증주의에 빠져버린 것도 안타까울 따름이고.. 최근의 페미니즘이 보여준 하나의 성취는 눈부신 것이지만, 역시 그에 대한 엄청난 반동.. 그리고 페미니즘 내부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분화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우리의 비판이론이 만들어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은 이러한 여러 갈래의 실천들-아직은 결코 만나지 못하고 있는-의 소통과 접합, 그리고 자신들의 장에서의 전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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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 하는 일본 -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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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몰입하며 읽은 책..

 

최근 몇년 사이에 "과연 지금의 일본이 내가 전에 알던 일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라면, 이 책에 꽤 많은 흥미를 느낄 듯 싶다. 당연시되어왔던 통념들(예를 들어 왜 일본만이 근대화를 성취했는가")을 과감하게 뒤집으면서, 기존 문제틀을 전환시켜내는 것이 이 책의 미덕..

즉, 메이지유신의 신화로 시작하는 일본 근대의 통설을 깨고, 메이지유신은 중국화와 재에도화의 투쟁의 분기점이었고, 결국 쇼와 일본은 <재에도화: 아름다운 애도로>의 길을 갔다는 것, 그리고 전후 일본의 부흥은 너무 오래 지속된 에도시대의 결과물이며, 혼란과 방황의 헤이세이 일본이야말로 그러한 '긴 에도시대의 종언'의 산물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일본사회는 다시 중국화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거기에 한중일 삼국의 동아시아사회에 대한 최근의 논의성과들을 그야말로 과감하게 주파하면서, 현재 일본사회가 처한 여러 위기들을 진단하고, 그 곤경을 극복해나가는 사상사적 응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현실적인 대안들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를 찾기가 꽤 어려웠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지만, 정말 이 책의 진가를 읽어줄 편집자는 많지 않았을 것 같고.. 그래도 결국 출간되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 일본이라는 사회가 가진 저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왜 결과적으로 현실정치는 아쉽게도 저자가 탄식하는 것처럼 재에도화, 아니 나아가 '북한화'로 귀결되어버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최근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 나아가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해서 불거져나오는 한국사회의 여러 정치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꽤 많은 '떡밥'들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도 일독을 권한다..

 

예를 들어 진보와 보수/우익(?)라는 이데올로기적 차이는 있지만, 경기지사 이재명씨와 오사카 하시모토 지사의 정치방식의 형태상의 동형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한국사회에서 최근 나타나는 지나친 평등주의 -다른 사람의 별 것 아닌 특권이 없어지고 자신 정도로 끌어내리는 것 자체로 쾌재를 부르는 민중의 증가-와 그에 영합하는 정치세력들의 난립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등등..

두 사회가 처해 있는 공통의 위기들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듯 싶다..

 

 

물론 세세한 지점들에 이르면, 굉장히 논쟁적인 부분도 많고, 궤변에 가까운 억지논리도 때로 보이지만..

그래도 30대 초반의 연구자가 이런 거침없고 유쾌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한국사회와는 다른 일본 사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낄낄대며 읽었지만.. 조만간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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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1
라울 힐베르크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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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학살을 넘어선 유럽 유대인의 파괴, 절멸에 대한 기록.2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지면 안에 유럽 유대인들의 절멸의 역사를 담아낸 이 노작 앞에 서 있노라면 왠지 모를 경이로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그리고 하루빨리 복간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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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해부 - 나치 전범들의 심리분석
조엘 딤스데일 지음, 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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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밀도는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 비하면 분석이 약하고, 나이첼, 벨처의 <나치의 병사들>에 비한다면 압도적 사례의 충실함이 부족하다. 다만, A급 나치전범의 정신세계의 일단을 볼 수 있다는 점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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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H. 로렌스의 미국 고전문학 강의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임병권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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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예전 <한국인의 탄생>에서 최정운 선생이 로렌스의 이 책을 주의 깊게 언급했기 때문일 터인데..

초기 미국을 관찰했던 가장 예리한 유럽의 지식인이었던 토크빌로부터,  

어제 읽은 <1945 Six Months in 1945>까지..

아니 저 <루쉰>을 썼던 다케우치 요시미까지..

19-20세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사의 문제에 천착했던, 아니, 현실정치의 문제에 천착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물음은 ..

<저 불가사의한 아메리카의 힘, 혹은 미국인의 정신esprit이란 무엇인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은 동시에 19세기 나폴레옹 이후로 20세기의 히틀러까지 서쪽으로부터의 사람/문명/무력의 흐름을 일정 정도 수용하면서도 그 침범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어머니 러시아'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대구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토크빌이 러시아를, 톨스토이가 아메리카를 사유의 자장 속에 놓고 있었다면, 이를 교차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19세기 사상사의 작업이 될 듯 한데..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역시 대가에 속하는 로렌스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미국 문학에 대한 비평을 통해 미국의 정신 깊은 곳으로 파들어간다.. 다른 장은 몰라도 11장 허먼 멜빌의 <모비 딕> 만큼은 꼭 읽어볼 만한 장인 것 같은데.. 일단 잠깐 인용해두기로 한다..

 

최후의 끔찍한 사냥. 흰 고래

그렇다면 모비 딕은 무엇인가? 모비 딕은 백인 종족의 가장 깊은 피의 존재다. 모비 딕은 우리의 가장 깊은 피의 본성이다.

모비 딕은 우리 백인 정신 의식의 광적 정신에 사냥을 당하고, 사냥을 당하고, 또 사냥을 당한다. 우리는 모비 딕을 추적해서 잡고 싶다. 우리 의지에 복종시키고 싶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 광적인 의식적 사냥에서, 우리는 거무스름한 종족과 창백한 종족으로 하여금 우리를 돕게 하고, 적색, 황색, 흑색, 동쪽과 서쪽의 인종들과 퀘이커 교도와 배화교도들로 하여금 우리의 파멸과 우리의 자살인 이 무서운 광적 사냥에서 우리를 돕게 한다.

백인의 마지막 남근적 존재 이 존재는 사냥을 당해 상층 의식과 이상적 의지의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의지에 복종당한 우리 피의 자아, 기생적 정신 혹은 이상적 의식에 의해 약화되고 활력을 잃어버린 우리의 피 의식. 바다에서 태어난 다혈질적 모비 딕. 관념의 편집광에게 사냥을 당한다....

그러나 <모비 딕>은 1851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만약 위대한 흰 고래가 1851년에 위대한 백인 영혼의 배를 침몰시켰다면, 그 이후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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