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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네지릭
기 드보르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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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쓰는 사람에게..

직독직해는 금물이지만..

스펙터클의 시대는 어떤 사유의 번개가 떨어지는 자리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을까..



아침에 마시는 술이 있다. 아침은 꽤 오랫동안 맥주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대부분 바로 러시아산 보드카가 당겼다. 식사 중에 마시는 술이 있는가 하면 점심과 저녁 식사 사이 오후에 마시는 술이 있다. 밤에는 와인과 증류주가 있고, 그 다음에 마시는 맥주가 또 매력적이다. 그 때 마시는 맥주는 갈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밤 끝자락에, 날이 다시 밝아올 즈음에 마시는 술도 있다. 이렇게 술을 마셔대느라 정작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히려 그게 딱 적당했다. 글쓰기란 흔치 않은 행위로 남아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의 글을 발견해내기까지는 오랫동안 술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음주로 인해 마침내 불면증에서부터 통풍, 현기증까지 이런저런 병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아픈 곳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알코올중독자의 손떨림처럼 아름다운"이라고 로트레아몽은 말했다. 감동적이지만 힘겨운 아침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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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환상 - 개정판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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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광설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발자크는 ‘인간희극‘이라는 거대한/무모한/환상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19세기 사회학/인류학의 꿈-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잃어버린 환상>은 그 꿈의 한 일단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희극 전집 번역출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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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와 크레이크 미친 아담 3부작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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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M. Atwood의 작품들은 꼼꼼이 챙겨보는 편인데, 품절되었던 <인간종말리포트>가 <오릭스와 크레이그>라는 본명으로 재출간되었다.. 같은 출판사에 번역자도 동일하니, 아마 미친 아담 삼부작 시리즈를 위해 개정판을 낸 것 같다.. 절판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이니 일단 1권을 구입하기로 한다.. 그래도 예전 2권으로 나눠서 냈던 것을 한 권으로 만들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인가.. 요새 민음사가 자꾸 책을 2권으로 나눠 출간해서 이래저래 욕을 먹고 있는 것 같긴 하던데..

 

어쨌거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미친 아담 삼부작 을 읽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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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마을>(엘리트들의 거주지)과 <평민촌>의 구분.. 인간성을 상실한 과학기술의 폭주.. 국가의 경계를 넘어버린 자본들.. 유전자 변형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생명체들.. 새로운 종의 인간 탄생(크레이커.. 선과 악의 관념마저 부재하는 완전히 순수한 형태의 인간.. 인류멸종계획(인류종말마라톤).. 그리고 세상의 끝..

물론 이러한 도식 자체는 이제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많은 소설/영화들--<가타카>, <눈먼자들의 도시>, <20세기 소년>,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 뭐가 있더라--에서 한 번씩은 보았음직한 <토폴로지>들의 변주..  
하지만 저자는 이 낯익은 도식들을 가지고 실로 놀랍고 <멋진 신세계>를 연출해낸다.. <인류 멸망 마라톤>을 꿈꿨던 한 천재 몽상가가 만들어낸 변종 바이러스로 멸종된 인류.. 초식동물로 화해버린 <새로운 인간/크레이커들>--그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인간들의 사체를 먹으면서 텅 빈 도시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변종 동물들--<늑개>, <돼지구리>, <너구컹크>--.. 그것들은 인간만큼 교활하고 사악하다..그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간 중 하나인 주인공 스노우맨의--그 이외에 살아남은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소설의 후반부에야 비로소 잠깐 내비쳐진다-- 눈을 통해 펼쳐지는 세계는 실로 <아포칼립스, 나우>의 풍경이다..

이 곳에는 돼지구리들의 흔적이 너무 많다. 그 야수들은 물러가는 척 했다가 다음 골목에서 기다리는 짓을 할 정도로 약다. 놈들은 그를 쓰러뜨리고 짓밟은 다음, 그의 몸을 찢어발기고 내장부터 먹어버릴 것이다. 그는 놈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머리가 좋고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동물, 돼지구리. 몇몇 돼지구리들의 교활하고 사악한 머릿속에서는 인간의 대뇌 신피질 조직이 자라고 있을 수도 있다..
... 돼지구리, 그놈들은 언제나 탈출의 명수였다. 만일 놈들에게 손가락이 있었다면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다. ... 놈들이 여기로 오고 있다. 놈들은 코로 밀어 문을 열고 이제 첫 번째 방에 들어와 있다. .. 놈들은 꾸역꾸역 들어와 초조한 듯 꿀꿀거리며 그의 발자국 냄새를 맡는다. 그 중 한 마리가 창문 너머로 그를 발견한다. 더 시끄럽게 꿀꿀거리는 소리. 이제 놈들 모두가 일제히 그를 올려다본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시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맛있는 고기 파이에 붙어 있는 그의 머리다. 가장 큰 수컷 두 마리(물론 날카로운 엄니가 났다)가 나란히 문 앞으로 와서 어깨로 들이받기 시작한다. 돼지구리들은 협동작업을 하는 존재들이다. 저 밖에는 엄청난 근력을 가진 놈들도 도사리고 있다..

원래 <돼지구리>라는 변종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이는 다름 아닌 스노우맨, 아니 어린 시절 <지미>의 아버지였다.. 돼지구리 프로젝트의 목표는 인간과 동일한 조직을 지닌 아주 간단한 여러 가지 장기를 성공적인 유전자 이식용 돼지 숙주 내부에서 배양하는 것이었다.. 이식이 순조롭고 거부반응이 없는 장기, 그러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매년 더 많은 변종을 만들어내는 미생물과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장기를 생산해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돼지구리의 신장과 간과 심장이 보다 빨리 완성될 수 있도록 조숙 유전자가 접합되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것만 같은, 지극히 <자본적이고> <인간적인> 발상.. 그래서 애트우드는 자신의 소설을 SF가 아니라, 사변소설(speculative novel)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불멸>을 꿈꿨던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세포를 지닌 변종 동물이 아포칼립스 이후 인간의 시체를 들쑤시며 내장을 파먹고, 또 살아 있는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스노우맨.. 그는 바이러스로 세계의 인류가 멸망하던 그 날, 새로운 인간들(크레이커들)을 이끌고 세계의 끝으로 향한다.. 바이러스와 함께 크레이커들을 만들어낸 친구 크레이크가 신이라면, 그는 <노아>이자, 동시에 <모세>이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결코 이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할 수 없다.. 세계의 끝에서,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그는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는 흐느낀다.. "크레이크! 내가 왜 지구상에 있는거지? 왜 나만 홀로 남겨진거야? 내 프랑켄슈타인 신부는 어디 있어?"

소설은 두 가지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하나는 크레이커들이 <진화>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창조주인 크레이크의 계획대로라면, 크레이커들의 사회에는 영장류의 파괴적인 특징, 즉 현재 세계의 병적 상태를 유발시킨 특징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위계질서를 창조해낸 신경 복합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냥꾼도 아니고 땅에 굶주린 경작자도 아니기 때문에 텃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뭇잎과 풀과 뿌리와 한 두 가지의 나무 열매만을 먹고 살기 때문에 식량은 언제나 풍부하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모든 포유류처럼 그들 역시 정기적으로 발정기에 도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성(性)은 계속 되는 괴로움이 아니며 사나운 호르몬의 구름도 아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 본다면 인간의 폭력성이 일체 제거된 개체들의 군집..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사회>가 아니다..
 
사실 이들은 물려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가계, 결혼, 이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거주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기 때문에 주택이나 도구 혹은 무기 같은 것, 또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옷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이들은 왕국, 성상, 신, 돈같은 위험한 상징적 표현을 고안해 낼 필요도 없다. 가장 좋은 점은 자신들의 배설물을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해 유전적 재료를 결합시킴으로써..

하지만 그들은 진화하기 시작한다.. 무리 중의 하나는 서서히 일종의 지도자로서 각성을 시작한다.. 그리고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자기방어본능>도 깨어난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는 원시적인 종교적 의식도 생겨난다.. 며칠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스노우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들었다는 그를 닮은 <조상>이다.. 드디어 <상징>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주의 의도를 벗어나버린 그들의 <진화>는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또 하나는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자기종족의 출현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스노우맨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사람들이 여기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크레이커들로부터 전해듣는다.. 그는 바로 그들을 찾기 위해 행동에 착수한다.. 마치 무인도의 모래사장에서 자신 이외의 발자국을 발견한 로빈슨 크루소가 느꼈을 환희와 공포에 몸을 떨면서..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과연 그들과 접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그는 텅 빈 허공에 대고 속삭인다..
...
습관처럼 눈사람은 자신의 시계를 든다. 시계가 공허한 얼굴을 내보인다.
0시로군. 눈사람은 생각한다. 갈 시간이다.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세계의 끝>에서 또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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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체파리의 비법 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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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산 책임에도, 계속 책장 한 구석에 모셔져 있던 책을, 10일간의 연휴가 주는 해방감 때문에 다시 꺼냈다. 깜깜한 밤을 달리는 기차에서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를 읽다가, 한방 먹은 느낌이다. 인류학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자가 역시 이수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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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종교의 광기에 맞서 싸운 인문주의자, 아롬옛글밭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아롬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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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켜내며 살아갔던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삶을 통해 1930년대 독일 사회에서 살아가는 유대인 작가로서 자신의 좌표를 찾으려 했던 츠바이크의 고뇌가 묻어나오는 저작. 이상도, 성격도 전혀 다른 두 인물인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대립을 그려내는 대목이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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