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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최용우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은, 혹은 한 사회는 승리에서보다 패배에서 훨씬 많은 교훈을 얻는다..
일본 사회는, 점점 옅어져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후>라는 시대인식을 여전히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출발점으로 여기는 사회다..
그리고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쟁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의 감각은 여전히 어떤 균형점을 만들어내어 왔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이 책의 장점은 패전이 임박한 시기부터 패전 이후 무장해제에 이르기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하급장교로서, 그리고 또 1년 반의 시간 동안 미군의 포로로서 일본 육군의 생리를 현장에서 체험했던 저자가 제국 육군이라는 괴물의 실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겨눈 비판의 창 끝은 전후 풍요의 사회가 도래한 현재에도, 여전히 전전의 유산을 상당부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당대 일본 사회를 향해 있다..
전문적인 학자는 아니지만, <사고정지>, <정리하다>, <사물명령> 등등, 그가 전시기 일본 (육군) 사회의 병리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개념화한 표현은, 체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전문학자의 현학적 서술보다 더욱 생생하고 설득력이 있다.. 특히 당대 군부 파시즘을 지배하는 궁극의 원리로서 지적한 '죽음의 철학'에 대한 기술은,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돌아온 저자가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괴물과 정면으로 맞대면하면서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는 처절한 시도라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군부 파시즘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통수권, 전쟁비용, 실력자, 조직의 명예'의 기반에 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죽음의 철학'이었다. 제국 육군이란 살아 있으면서도 '물에 빠진 시체이자 유골'과 같은 존재로서 산 자를 지배하는 그런 세계였다. 그것은 언론의 지배가 아닌 죽음이라는 침묵에 의한 지배였기 때문에 '언어가 없는' 것이었다. ...
이렇듯 제국 육군의 어두운 지배력의 배후에는 '죽음의 지배력'이 존재했다. 이는 집단 자살조직과도 유사하며, 일단 조직에 흡수되면 자신을 죽음과 동일시하는 사람의 지배로부터 헤어날 수 없는 것과 매우 유사한 상태가 된다. 그것은 1억 옥쇄라는 슬로건에서 엿볼 수 있으며, 주민 7000명을 강제로 동반시켰다고 여겨지는 마닐라 방위대 2만 명의 최후에서도 나타나고, 오키나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통해 본토 결전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예측 가능했다.
그러나 예측이 분명해질수록 사람들은 이런 죽음의 지배자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 '죽음과의 동거를 통해 산 자를 지배'하는 세상에 자유는 없다. 인권이나 법 따위는 공문에 불과하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역시, 죽음과 동거하며 산 자를 지배하는 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과의 동거'를 통해 산 자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사상은, 일본에서 제국 육군이 생기기 이전부터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언제든지 일본적인 파시즘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예전, 일본 파시즘의 죽음의 미학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인용했던 부분인데, 번역본으로 다시 보니 새로운 느낌이 난다.. 야마모토는 그의 분석을 누군가 계승해주기를 바랐겠지만, 아직 본격적인 분석은 이루어지지 못한 듯 하다..
식민지, 그리고 3년전쟁을 경험했으면서도 한국 사회에서는 몇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무용담(백선엽 류의)을 제외하고는 전장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기묘한 침묵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식민지와 어마무시한 전쟁을 치렀으면서도 그 체험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어딘지 알 수 없는 심연으로 폭주하는 듯한 한국사회에서 야마모토와 같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