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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비애극의 원천 한길그레이트북스 101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김유동 옮김 / 한길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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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아카데미쿠스들이 기억해야 할 우화..

 

나는 장미공주에 대한 동화를 재차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시나무 울타리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그녀는 깨어납니다. 그런데 한 행복한 왕자의 입맞춤으로 깨어난 것은 아닙니다. 요리사가 그녀를 깨운 겁니다. 그가 요리견습생의 뺨을 때렸는데 아주 오랫동안 비축된 힘으로 때린 거라 소리가 성 전체에 울렸던 것입니다. 다음 쪽에 이어져 나오는 가시로 뒤덮인 울타리 뒤에 예쁜 한 아이가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학문이란 휘황찬란한 장비를 갖추고 있는 어떤 행운의 왕자도 그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부에게 하는 입맞춤을 하다가는 그 아이가 물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문의 홀에서 날카롭게 울려야 할 따귀 때리는 소리는 너무 오래도록 울리지 않았습니다. 따귀 때리는 소리가 울린다면, 금지되어 있는데도 헛간에서 교수 가운을 짜려다가 구식물레의 실패에 찔렸던 이 가련한 진리도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일단 적어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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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 - 어느 저주받은 개념의 계보학
알베르토 토스카노 지음, 문강형준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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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에 며칠에 걸쳐 두터운 이론서 한 권을 정독했다.. 짧은 호흡에 다량생산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서는 이제 책 한 권 꼬박 읽는 것도 어려워졌다.. 하물며 이런 긴 호흡의 책을 쓴다는 것은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불가능할 듯 보인다..

 

2. 저자의 문제의식을 요약한다면..

현재 다시 힘을 얻고 있는 반광신 담론의 탈정치적 성격이 광신의 가능성, 즉 보편적 평등과 억압받는 자들을 향한 연대를 통해 해방적 정치의 전망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애초부터 봉쇄해버린다는 것, 따라서 오염되어버린 <광신>이라는 개념 속에서 혁명적 힘을 복원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2.1. 이를 위해 그는 광신이라는 개념을 다시 열정, 격정, 정동 등의 개념으로 세분하기도 하고, 토마스 뮌처로 상징되는 중세 후기 유럽의 천년왕국운동부터, 이단의 계몽사상가 루소, 그리고 전혀 광신적이지 않을 것 같은 철학자 칸트를 거쳐, 메시아주의의 가능성에 눈을 떴던 에른스트 블로흐, 벤야민 등을 소환해내는 등 기나긴 이론적 탐구의 여정을 떠난다. 나아가, 마지막 6장에서는 정치 종교 개념 및 세속화주의자들의 냉전적이며, 탈정치적 경향을 비판하며 아감벤, 슈미트, 한스 블루멘베르크, 데리다, 바디우, 지젝 등의 사상가들이 최근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메시아주의(혹은 바울의 정치철학)를 통해 정치철학이 어떻게 광신의 문제를 피해가면서 동시에 해방의 가능성을 담보해낼 수 있는지 검토한다.. 물론 이들 사상가들의 문제의식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저자는 맑스주의자로서, 그들의 관념론적 성향을 비판하면서, 혁명의 정치란-그것이 얼마나 위태롭든간에- 실제의 사회적, 경제적 정향들 속에서 발판을 찾아야 한다는 맑스의 금언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메시아적 사건의 개별적 절대성-숄렘의 도식을 빌자면, "역사 자체를 소멸시키는 침입"으로서의 지위를 갖는-은 그것을 보편화하려는 역사적 노력에 의해 단련된다"는 6장의 마지막 문장은 그런 점에서 계시적이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1장과 2장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3장은 압축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고, 4,5장은 자신의 맑스주의적 충성도를 보여주기 위한 소품이다., 6장 역시 뛰어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상가들을 인용하면서 자신 역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마지막에는 역사유물론이라는 불빛을 따라 길을 찾아가지만, 그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면서 얻은 결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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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GPE 총서 3
지주형 지음 / 책세상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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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연구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0년의 진보정치가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끌어안게 되었는가를 분석하는 대목은 탁월하다. 마침내 신자유주의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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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독트린 -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살림Biz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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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 가운데, 소리소문 없이 의료민영화 법안이 변칙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가공할 파괴력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쇼크요법>, 혹은 <재난자본주의>로 명명한 그 힘의 기원과 작동방식을 면밀히 추적한다. 허무하지만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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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뒤에 오는 것들 - 상실과 트라우마 그리고 슬픔의 심리학
조지 보나노 지음, 박경선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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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이 책이 화제가 되었다..

이 책 어때?

글쎄요.. 제가 보기엔 좀 가벼운데요.. 뭔가 집중하려 하다가 다시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빠져버리는 느낌..

나는 심리학이 왠지 싫어..

왜요?

왠지 심리학은 우리 시대의 <사제>들이 하는 것 같아서 (맘에 안들어)..

....

 

선배의 마지막 말에 동의하면서도, 어쨌거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심리 상담사들로부터 <도움>을 얻고 있다면, 그 나름대로 심리학의 역할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그런 시시한 결론을 내리며 화제는 딴 곳으로 옮겨갔지만.. 솔직히 심리학에 대해서는 거부감은 나 역시 가지고 있다.. 그건 아마 우리 시대의 정신의학에 대한 푸코의 비판kritik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고, 또 왠지 지극히 미국적 느낌이 나는 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비틀린 거부감이기도 하다..

 

보나노의 책 역시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은 이미 명확한 타겟을 가지고 있다.. 기존 프로이트 학파의 애도 이론, 그리고 퀴블러 로스의 상실에 대한 단계 이론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 서서 그가 자신이 모은 경험적 사례들을 통해서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연적 회복력>이다.. 즉, 인간은 본래 해법을 스스로 지니고 태어났으며, 언제까지고 계속 슬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경험은 왔다가 간다, 즉 진동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은 필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기가 길어지고 점차 균형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갖는 보편성을 입증하기 위해 중국 사회의 장례문화로까지 연구 영역을 확장시켜간다.. 저자가 눈여겨보는 것은, 중국 사회에는 상실을 개인 수준이 아닌 가족/친족/지인과 같은 공동체의 수준에서 극복하게 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죽은 자에 대한 정교한 의례ritual가 있다는 것이다.. "의례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인류학자 제임스 왓슨의 논의에 그는 깊은 공감을 표한다..

 

물론 <grief>라는 감정이 지극히 서구중심적인 것이라는 점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중국과의 비교문화적 연구는 그에게 매우 <유익>한 경험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가 중국 사회의 망자 의례를 서술하는 대목은 지극히 유형론적고 인상주의적인 것에 머무르고 있어, 중국 사회의 망자 의례가 갖는 실천적 측면 자체가 사상되어 있다.. 이는 그가 주로 중국 사회의 상례가 아닌 제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소중한 사람이 자기 곁을 떠나는 것이 어느 사회에 사는 누구에게건 슬프지 않겠는가.. 그 파토스를 표출하는 방식 자체가 문화적으로 다를 수는 있겠지만, 슬픔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감정이고 또 매우 강력한 힘power을 가진 것이다.. 자칫하면, 그는 예전 로살도가 비판한 것처럼, 중국 사회에는 <울기 의례>weeping rite가 있다는 매우 유형화되고 건조한 해석에 빠질 우려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회복력에 대한 보나노의 확신은 비탄에 빠진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부여잡고 싶은 믿음이다.. 보나노는 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딸을 잃은 한 어머니의 말을 잠시 인용한다.. 죽은 아이의 기억은 희미해져가지만 절대 꺼지지 않는 빛과 같다는 것.. 그 불이 사그라든 뒤에 남은, 반짝이는 작은 불씨와도 같아, 늘 그 작은 불씨를 지니고 다니다가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 아주 부드럽게 입김을 불어주면 다시 환하게 타오르는 빛과 같다는 것이다..

 

너무도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우리 부모들의 까맣게 타들어간 마음이 이렇게 회복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러한 회복은 이 사회가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주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침몰 80여일이 지난 후 우리 사회, 그리고 정치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눈을 감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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