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것들 - 바르샤바 게토의 아카이브로 떠난 여행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지음, 여문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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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부패한, 판독하기 어려운 기억의 조각들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읽어내는 작업은, 게토라는 상상 너머의 공간에서 생존의 불가능성을 잔존의 기회로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의지를 발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흩어짐은 파종이기도 하다는 마지막 메시지는 너무나 절절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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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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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를 받고 읽기 시작한 책..

한 살짜리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아마 이래저래 바쁜 시간을 쪼개면서 생활하고 있을 그/녀가, 최근 <필사>를 하며 읽고 있다며, 메일로 소식을 전하면서 알려준 책이었다.. 

이북도 있었지만.. 왠지 이 책은 페이지를 손으로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읽고 싶었다..

이곳에 며칠 들른다는 지인이 있어, 책을 부탁했고 얼마 전 건네받았다..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햇볕이 몸에 좋다는 핑계를 대면서.. 근처 고쇼를 산보하고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가 빈 의자가 있길래 앉아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이스라엘군의 점령, 일반인 시설에 대한 폭격, 군대 투입에 대한 소식들을 띄엄띄엄 뉴스를 통해 전해 듣기는 했지만.. 그리고 초기에는 오카 마리 선생의 강연이나 팔레스타인과 가자 지구 분쟁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일란 파페의 책들도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면서 한동안 관심을 가지고 읽기는 했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고.. 또 페르시아만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전면화되는 등.. 여러 긴급한 국제정세들 속에 가자 지구에 대해서는 한동안 무심하게 뉴스를 흘려듣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소식보다는, 네타냐후의 혐오스러운 얼굴이 더 빈번히 나와서(대개 항상 비슷하게 혐오스러운 트럼프의 얼굴과 항상 함께 나온다).. 그냥 채널을 돌려버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본질은 동일하다.. 가산 카나파니의 잊혀지지 않은 문장.. "그들은 왜 물탱크의 벽을 두드리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은 잘못된 것이다.. 세상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 아니 들었지만(빤히 지켜보았지만) 무관심하게 외면했을 뿐이라는 것.. (물론 그것이 오래 전.. 가산 카나파니의 작품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일 것이다.. 그의 작품집도 최근 복간되었다.. 이전 작품집에 실렸던 <하이파에 돌아와서>가 빠진 것이 조금 안타깝다..)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쟁 기구의 작동-우아하게 말하면 '통치성'이겠지만-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에도 소개된) 미셸 음벰베가 <죽음정치necro politics>에서 탁월하게 정리한 바 있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대한 후기 근대의 식민 점령에 나타난 죽음권력이라고 부르는 특정한 공포 구조의 특징을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1)봉쇄와 정착촌의 확장과 같은 영토 파편화의 역학, (2)수직적 주권에 의한 도시형 광학장치 정비와 게이티드 커뮤니티와 같은 분열적 점령, (3)적의 사회적, 도시적 기반시설망에 대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파괴, 즉 인프라전쟁.. 이 세 가지 권력의 결합, 그리고 포위상태(계엄상태)를 지속함으로써 식민 권력은 점령지 주민들에 대한 절대적 지배력을 갖는다. 가히 탁월한 정리다..


이러한 전쟁 기구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은, 물론 흔히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최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 이후가 아니다.. 그것은 2차대전 직후, 그리고 가자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양비론에 빠질 것을 강요받는다(아니 양비론에 빠지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냥 손쉽게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폭력도 나쁘지만, 하마스의 폭력도 나쁘다고.. 자신은 공정하다고 자위하면서..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사유(thoughlesstness)일텐데.. 그리고 우리가 한때 사회과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어떤 현상 너머의 구조적 폭력에 대한 인식을 얻기 위함이었을텐데. <비판 사회과학>이라는 앎이 화석화되고 있는 <문송의 시대>에 새삼 자괴감이 든다..


물론 알라 알카이시의 이 책은 그러한 구조적 폭력의 얼개를 그리고 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 폭력의 현장 안에서-매일 폭탄이 터지고, 이스라엘 군의 총격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쓰러지는, 그리고 모든 기반 시설이 파괴된 지구를 둘러싼 봉쇄 하에서 -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시선에서 보는 풍경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가고 있는' 이라고 썼지만.. 가자 지구에서의 사람들의 삶을, 문자 그래도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아감벤의 현학적인 조에/비오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삶이란 적어도 최소한의(minima) 어떤 존엄을 내포하는 단어가 아니었던가..


배고픔은 자신만의 언어를 키워낸다. 조용하게 사람을 갉아먹는 언어를. 그것은 극적으로, 혹은 요란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둘 다 흐물흐물해지고, 구부러지고, 닳아 없어지게 만든다. 배고픔은 생각 위에, 기억 위에, 피부의 연약한 껍질 위에 먼지처럼 내려 앉는다. 한때는 나와 상관없는 시공간에 속해 있는 듯 보였던 조지 오웰의 말들이 이제는 내 안구 뒤쪽의 은밀한 현기증에 직접 말을 걸어온다. "굶주림은 사람을 완전히 등뼈도 뇌도 없는 것 같은 상태로 전락시킨다. ... 마치 해파리로 변해버린 것처럼." 한때는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게 느껴졌던 저 비유가 이제는 정확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내가 변해버린 모습이다. 구조 같은 거라곤 없이 떠다니는 존재. 생각을 의도에 고정해 놓은 능력이 없는 존재. 나는 생각을 향해 손을 뻗지만, 그건 붙들기도 전에 흩어져 버린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는 무엇일까.."은유가 부서져 나가는", "아름다움마저 상처에 섞여 오는" 그런 땅에서 그는 팔레스타인의 한 시인의 "비바람에 시달린 낮은 목소리"의 문장을 기억해낸다. 


영혼이 한 번에 모두 죽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것은 허물어져, 한 번에 한 자아씩 죽어간다.


"한번에 모두 죽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이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이지러진다. 해석이 가능한가.. 하지만 한 번에 모두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곳 가자에서는 한사람씩 한사람씩 단계적으로 쓰러진다.. 굶주림, 환멸, 박탈, 무감각을 차례로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malgré tout/ 디디-위베르만이 썼던 것처럼) 그는 글을 쓴다.. 이것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총체성에 저항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라고..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산들 산들 가을 바람이 부는 공원의 벤치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런 글에 대해 해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글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응답>은 자신에게 어떤 책임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여전히 무력한 언어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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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이즈 ㅣ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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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자마자 몸의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통증을 확인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몸 전체의 면역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진통제의 성분을 조금 바꿔본다..

운이 좋으면 오전이 지나 서서히 몸이 풀린다..

침대에 누워서 제프 다이어의 <라스트 데이즈>를 읽는다.

어쩌다보니 1년간 외국에서 생활을 하게 되어,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것은 이북뿐..

공교롭게도 늙어가는 예술가의 이야기다.. 여기서 방점은 "늙어가는"이다..


"건강한 낙관주의와 자족감, 불만 섞인 중얼거림, 다소 심각한 질환, 요양, 회복, 그리고 다시 병드는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평생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병마에 대해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로런스의 삶에서 위안을 얻는다..


건강 때문에 아주 성가시다네. 정말 꼴도 보기 싫어

나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지만, 내 기관지와 천식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내 병이 나와 별개인 듯한 느낌이 매우 강하다. 나 스스로는 완벽하게 건강하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느낌인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가슴이 내 위에 얹혀 있고,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악마가 그 곳에 의기양양한 기세로 살아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내 모든 병이 어떤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훌륭하지 않은가..

그러니 진통제 정도로 어느 정도 잡히는 통증 때문에 우울해질 필요는 없다.. 

오후, 통증이 많이 진정되어 숙사 바로 건너편.. 가을이 슬쩍 내려 앉은 고쇼를 산보한다..

수령이 수백 년이 족히 되어 보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새삼 의연해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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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사 1 -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 흑사병에서 30년 전쟁까지 ㅣ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43
에곤 프리델 지음, 변상출 옮김 / 한국문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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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문화사의 체계와는 너무 다른데, 뭔가 멋진.. 전문가가 아닌 ‘딜레탕트‘, 하지만 굉장히 고급진 딜레탕트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체계. 그리고 여운이 남는 문장들.. 무의미한 형식주의 논문만 대량 양산하는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책. 바로크를 정리하는 부분에서 실로 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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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 ㅣ '전후' 일본의 운동과 사상 1
니시무라 히데키 지음, 심아정 외 옮김 / 논형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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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한국어 번역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 

아마 책이 나오자마자 주문해서 구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분명히 내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이, 우선순위에 밀려, 혹은 음..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인데, 또 읽어야 하나.. 등등 여러 이유 때문에 많은 책들은 점점 책장 깊숙이 들어가게 되고, 또 다른 책들이 그 앞에 놓이면서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이 사라진 책들은 아주 가끔씩, 그리고 아주 우연한 계기로 다시금 소환된다.. 

그 계기가 된 건 올 겨울 한 캠프에서 있었던 스이타 사건 답사였다. 


답사 루트는 한큐 전철 <쇼지쿠역>에서 JR 교토선 <다케노하나 가드> 부근을 통과하고, JR 교토선<센리오카역>으로 이어지는, 꽤나 긴 도보 루트였다. 사건의 흔적은 커녕, 제대로 된 기념비 하나 세워지지 않는 이 공간에서 전후 일본의 3대 소요사건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스이타 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오전 답사로 무거워진 다리를 끌면서도 묵묵히 따라갔던 것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면서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던 재일조선인 선생님의 열변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역사가 피에르 노라의 첫 시도가 이미 충분히 입증했던 것처럼 <기억의 장소>라는 것은, 애초부터 기억의 국민경제라는 논리를 충실히 수행한다. 거기에는 한나 아렌트가 언급했던 것처럼 <기억의 구멍> 같은 것은 철저히 배제되기 마련이다. 더구나 스이타 사건처럼 아직 전쟁의 기억이 생생했고, 그래서 반전의 분위기가 농후하게 남아 있던 1950년대 초, '일본인'과 '조선인', 그리고 그 범주에 속할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들의 반전 공투가 빚어낸 초국적 연쇄('연쇄'는 역자 심아정 선생의 말처럼, 프랑코 베라르디-도미야마 이치로의 사상의 흔적이다)가 만들어낸 사건은 국민국가-전후 일본이든, 대한민국이든, 아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든,-의 기억 속에서는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래서 스이타 사건은 전후 일본에서는 잊혀졌고, 대한민국에서는 아예 사건의 존재 자체가 말소되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획정한 경계들을 침범하고 횡단하는 '불편한, 그래서 '위험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답사 루트는 스이타 반전 투쟁 당시의 산넘는 부대들의 동선이었던 사이코쿠 가도도 아니었고, 또 한 때 동양 최대라 불렸던 스이타 조차장은 이미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한 시간여의 짧은 도보 답사로 사건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다만 꼼꼼하게 만들어진 답사 자료집을 보며, 한국전쟁 당시, 바다 건너 불타고 있는 조국을 바라보며, 한국으로 포탄과 네이팜탄을 실어 나르는 군수열차를 10분 늦추면, 동포 1,000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스이타로 향하던 재일조선인들과 그 뜻에 공감했던 일본인들의 공투의 현장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의 장소는 감정/심정의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스이타 사건, 그리고 옴진리교 1심 공판보다 길었던 11년의 소송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니시무라 히데키의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스이타 사건에 대한 기나긴 취재를 마치고 책으로 정리하면서 저자가 쓴 마지막 장이 계속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 있다.. 


스이타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에 대해 김시종(시인)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준비해서 부덕수에게 전했다.

“그걸로 됐다, 거기에는 나의 지순한 시절이 있었으니.”

러시아의 혁명가 크로포트킨의 일기에서 인용한 것이다. 김시종은 스이타 사건 이후, 잡지 <진달래>를 발행하여 조선총련의 비민주적인 운영에 대해 비판했는데, 그 때문에 조직으로부터 철저한 비판을 받는다. 김시종은 ‘의식의 정형화’를 강요하고 개개인의 창의적 생각을 무시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조직은 문제가 있다며 비판했지만, 조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그런 가혹한 비판 속에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던 세월을 10년 넘게 지내면서도, 나를 견디게 한 것은 크로포트킨의 말이었습니다. 그걸로 됐다. 거기에는 나의 지순한 시절이 있었으니.”

 

그 세월에는 스이타 사건을 준비했던 날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 시기가 재일조선인들에게 지순한 시절이었을 리 없다. 스이타 사건에는 많은 이들의 인생이 얽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선인 측 ‘주모자’로 기소되어 결국 무죄판결의 승리를 쟁취한 부덕수와 그의 친구 이방일, 그리고 김시종, 이들 재일조선인 세 명의 배경을 더듬어 가다 보면 거기에는 제주도 4.3봉기, 한신교육투쟁이 있다.

 …

 분명, 스이타 사건은 지순한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는 측면 또한 갖는다. 그럼에도 되묻고 싶다. 스이타 사건은 정말 지순한 세월이었을까.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기지국가가 되어버린 일본은 그러한 상태를 바로잡았는가. 부덕수가 스이타 사건에 대해 말문을 연 것은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일장기와 기미가요가 ‘강제’되고, 일본국헌법의 ‘개정’ 문제가 정치과정에 대두되던 시기였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의 戰後이자, 한국전쟁의 戰中에 스이타, 히라카타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戰前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 번 더 묻고자 한다. 그렇다면 현재는 지순한 세월인가.

 

일본은 민주적인 세상이 되었는가.

일본국헌법에 규정된 기본적 인권은 지켜지고 있는가.

양심의 자유, 표현의자유는 지켜지고 있는가.

적극적 평화주의를 규정한 헌법은 지켜지고 있는가.

 

김시종이 부덕수에게 전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가만히 되뇌어 본다.

 

그걸로 됐다. 거기에는 나의 지순한 시절이 있었으니.

 


한국의 독자들은 시인 김시종이 전했던 이 말에서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재는 지순한 세월인가".. 다음에 이어지는 일본인 저자의 물음들은, 공투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재일조선인, 그리고 전쟁의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혹독한 전장의 경험, 그리고 반공과 군부독재로 이어진 고난의 세월을 거쳤던 휴전선 이남의 땅에 사는 우리들의 물음과 공명할 때 그 의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캠프를 마치면서, 나는 어느 정도까지 의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로부터 벌써 1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나의 우둔함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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