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자들 -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절상 6월은 사람의 신체를 몽유병자로 만드는 시즌인데..
몽유병자의 신체로 2주간에 걸쳐 틈틈이 <몽유병자들>을 읽다. 
20세기 초 발칸의 지형학을 설명하는 다소 느린 전개의 1부와 복잡하게 뒤얽힌 당대 유럽의 정치질서를 분석하는 2부, 그리고 사라예보 사건 이후 1차세계대전 발발에 이르는 1개월여의 기간 동안 급박하게 돌아가는 유럽 정계를 박진감있게 기술하는 3부에 이르기까지 8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기나긴 서술을 마친 후, "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라는 결론의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저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그리고 전쟁발발의 책임은 독일과 그 동맹에 있다는 이른바 '피셔 테제'의 전통적인 주장에 맞서, 저자가 그린 1914년은 서로를 불신하면서 한정된 정보만으로 상대를 오판하면서 급기야 치명적인 비극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비극의 서막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알바니아 영토국가의 갑작스러운 등장, 흑해에서 오스만과 러시아가 벌인 해군 군비 경쟁, 소피아에서 베오그라드로 방향을 돌린 러시아의 정책 등, 당시 국제체제의 급속한 변화는 1914년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면서 정치적 행위자들의 시야를 가렸고,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본다면, 1914년 1차세계대전 발발을 바라보는 저자의 신중한 관점이 1914년의 전쟁은 혁명과 자본, 그리고 제국의 시대라는 장기 19세기를 거쳐 부풀어오를대로 부풀어오른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모순이 한 폭발이라는 맑스주의자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 책의 장점은 그러한 결과론을 뒷받침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파국으로 치닫는 기나긴 과정의 섬세한 재구성에 있겠지만.. 

거듭되는 위기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전면적인 파국의 가능성을 자신들의 특정한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버리는 몽유병자들의 위험한 도정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