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 황현이 본 동학농민전쟁
황현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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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본업인데도 불구하고.. 

요새 책을 읽을 때마다 어딘가 뜨끔뜨끔한 느낌이 들어 책을 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얼마 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금 한국사회의 풍경이 흡사 신소설의 풍경과 유사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매천의 <오하기문: 오동나무 아래서 역사를 기록하다>을 읽노라니 19세기 구한말의 풍경과 지금의 시국이 겹쳐지면서 자꾸 한숨이 나오게 된다..

 

몸과 마음이 내려앉아서 더 이상 글쓰기가 쉽지 않다.. 다만 글을 읽다가 또 뜨끔한 대목이 나와 잠시 적어둔다.. 예나 지금이나 궁궐에 계신 분들은 우주의 기운을 받기를 좋아하나보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임오년(1882, 고종 19년) 변란 당시에 왕비는 충주에 머물면서 요사스러운 한 무당과 자주 왕래했다. 그 무당은 길흉화복을 기막히게 알아맞혔다. 왕비가 몇 월 며칟날 복위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대로 들어맞았다. 왕비는 그 무당에게 홀딱 반해, 마침내 서울로 불러들여 북묘에 살면서 기도를 주관하게 했다. 무당은 왕비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머리를 쓰다듬고 배가 아프다고 하면 배를 쓰다듬었는데, 그 손길을 따라 통증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잠시도 서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왕비는 그 무당을 '언니'라고 불렀으며, 때에 따라서는 '진령군' 또는 '북관부인'으로 부르기도 했다. 무당은 궁중을 출입한 지 겨우 1년밖에 안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윤영신, 조병식, 이용직 등이 그 무당과 의형제를 맺고 누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모두 그녀의 도움으로 관찰사 자리를 꿰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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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8-04-2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시감이라니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