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황
글을 왜 안 올리냐는 질문에 해당하는 안부 인사를 받는다. 근 한 달 이상 아무 책도 안 읽으며 글도 쓰지 않았던 이유를 나 자신도 설명하긴 곤란해 그때마다 그냥요, 서재가 싫어져서요, 좀 노느라구요, 이런 식의 대답을 돌려가며 막았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분간은 달라지지 않을 듯한 걸 어떻게 하나.
매일 서재에 들어와 이웃의 글을 확인하고 새로 나온 책을 검색하고 무슨 새로운 소식이 없나 기웃거리던 일상을 때려 친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넘었다. 대신 온라인이 아닌 오프의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책을 덮고 사람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시발점이 된 건 아무래도 내 스스로 글에 대한 진정성의 여부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인 듯. 내가 회의를 느끼니 꼭 나 같은 사람만 보였달까. 사람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를 보면서 통감한지 오래지만 대상이 타인이 될 경우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일치하지 않는 정도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설 때 그리고 그 현장을 똑바로 확인할 때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만큼 나는 내공이 쌓여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더 이상 리뷰를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책과 관련한 어떤 글도 끄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다. 아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았다. 책에 화가 난 것인지 글에 마음이 상한 것인지, 책 읽고 글 쓰는 사람들이 싫어진 것인지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질 않았다. 모두 거짓말 쟁이라는 생각과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위선자, 글이라는 무기로 우아하게 타자를 짓밟는 무서운 사람들, 앞과 뒤, 속과 겉이 다른 서늘한 사람들, 온라인에서 중독과 집착으로 존재감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나 역시 다를 건 하나 없는 비루한 나날들. 이런 시간과 작업들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고 따라서 다른 재미난 사람과 그들의 글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건 말건 당신의 글을 쓰세요, 이렇게 충고한다면 할 말은 없다. 모든 건 내 탓이다. 무언가 해온 것도 무언가를 느낀 것도 모두 나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 한,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력의 여부는 이성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다분 감성의 결과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이곳에서 글로만 비슷한 생김새, 비슷한 생각, 비슷한 이야기에 공감을 하였다고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판단하는 건 대단한 착각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사람은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뿐이지 그 다음 그 사람에 대한 이성적, 합리적인 의견은 좋거나 싫기 때문에 불과한 파생적 나머지, 부연의 사족 일뿐이다. 우리의 이성은 절대 직관을 이기지 못한다.
#2. 글과 생각
그나마 이곳을 떠나 최근엔 - 근 보름에 걸쳐 - 거북이 걸음으로 한권의 책을 겨우 읽은 적이 있다. 이곳에서 떠밀리듯 자리를 떠난 이웃분이 글을 계속 써야할지 고민이라는 말에 한번 읽어보라 전해주신 책이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칼 같은 글쓰기>.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상대에게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랬다 하여도 상대가 모두 이해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실 어려웠고 보편적이지 않았고 저자의 다른 소설을 하나도 읽어보지 않아 그저 상상만 할 뿐이었다. 나는 어쩌면 나와 비슷한 이유를 찾아보려 했는지 모르겠는데 비슷한 것 같다가도 그 철학적 깊이에 가끔 내 주제를 깨우치곤 했달까... 어떤 일을 왜 하는지 스스로에게 조차 설명, 설득할 수 없다면 타자에게 떠드는 이야긴 모두 그들이 원하고 익숙해 하는 잡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의 글쓰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기억나는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말하고 싶은 욕구, 글을 적어 알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뜻은 무언가에게 화가 나 있다는 말과 같다. 마음을 닫으면 입을 답고 손을 접는다. 그래봤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말하고 싶지 않았고 쓰고 싶지 않았다고 또 떠들게 분명하면서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사람의 한계일까. 마치 화해하고 어차피 또 만나게 될 걸 알면서 싸운 연인에게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은 방황 중, 지금은 고독 중, 지금은 반성 중, 지금은... 이별 중... 다음은 선택과 행동이 차례인 것이다.
하지만 뜻 모를 이야기도 도움은 된 것 같아 책을 덮으며 가슴이 넓어진 느낌은 들었다. 그가 왜 하필 이 책을 읽어보라 했는지 이해할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일만 글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책으로 마음을 건넨 그는 정작 이곳을 사랑하고 이곳에 의지했기 때문에 다시는 글로써 돌아 올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옛친구 하나는 자존심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었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건 현재 내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온라인 생활도 십 오년 정도 되었을까. 경험상 글로 받은 상처는 내 생각에 완전 회복은 불가다. 영원한 상흔에 가깝다. 만나서 얼굴보고 욕설을 들은 것보다 오래간다. 마음에 새겨지는 화인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면 아무렇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보면 구경꾼인 사람도 마술을 보고 죽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보고 들은 것, 말하고 뱉은 것은 없었던 일이 되지 못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흘러 다른 좋은 일들이 그의 가슴에 우리들 머리에 채워지길 기원한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은 경제 이야기엔 주저하지 않다가도 정치 쪽으로 가면 선뜻 발언하길 주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말부터 신문엔 안철수의 책 출간소식과 의미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문자가 날아온 날 저녁에 주문을 했더니 - 책을 산 이유는 순전 등떠밀려서... 네가 빨리 읽고 전해달라는 압력에 의해서 - 몇 시간 후 새벽에 배송을 했다는 메일을 받았고 다음날 아침에 책을 받았다. 알라딘에서 주문하고 가장 빨리 받아본 듯하다. 더불어 일개 독자로서 안철수의 책이 어떤 국가적으로 전사적인 프로젝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를 예상하기 보다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태도와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일을 결정할 때 나름의 원칙이 있다하면 그건 어떤 기준일까 하고. 누군가에게 충고를 할 때 어디서 주워 들은 말이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체득된 가르침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건 누구도 틀렸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인데, 우린 공감하지 못한다 해서 너무 쉽게들 비판하고 사는 건 아닐까... 단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가' 의 세 가지만 생각했고 성공가능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 존경하던 한 분이 간단한 문제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회사를 그만두려는 이유가 돈 때문인가, 사람 때문인가, 일 때문인가를 냉정하게 돌아보라고 했다. 이 세 가지는 결국 다른 회사를 선택할 때에도 중요한 문제이며 사람은 월급, 인간관계, 일의 재미중 하나만 만족해도 그런대로 버티며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세 가지는 결국 내가 어떤 사항을 가장 중요시 하는지 역으로 알 수 있게 한다. 대부분 나는 일이 재미없어진 이유가 인간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이만큼 했기 때문에 상대에게 원하는 바가 생겼던 것인지 모른다.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 본다.
의미부여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진부한 답을 떠올린다. 그러나 열정의 지속은 관심과 재미가 없다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열정 없이 잘하길 기대한다는 건 명백한 욕심이다. 원래부터 잘할 수 있었다 해도 언젠가는 못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잘하고는 결과의 우수성이 아니라 시작에의 자신감일 것이다. 시작이 반인데 그 시작의 발걸음이 매번 무겁다면 언젠가는 지치게 된다.
여름까지는 좀 더 더워볼 생각이다. 더 놀아볼 생각이다. 더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다. 혹시나 휴가를 앞둔 이 여름,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이 있다면 그분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분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그렇게 생각을 했으면 뭐라도 선택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건 안철수도 김철수도 예외는 아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