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기와 마음이 자라는 나무 35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부모님이 소위 '내가 어렸을 때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무척 싫어했다.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했지만 비교하면서 지금을 평가하고자 하는 이야기라면 처음부터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이들한테 어렸을 때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지나칠 정도로. 그리고 남편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로 이야기를 시작할라치면 조목조목 따지곤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이 책이 마치 어른이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가 겪었던,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러나 작가는 마치 나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작가의 말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에만 기대는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라는 지하자원을 현재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면서. 그런데 왜 나는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에 기대어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걸까.

 

  이 책은 문화혁명의 격변기에 중학생이었던 남자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담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아동청소년문학은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목적이므로. 그래서 대개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우리의 성장소설을 읽다가 이처럼 몇 년간의 생활을 주루륵 훑는, 특별한 사건이랄 것은 없지만 분명 인물들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읽으려니 마음은 편안했으나 심심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황선미 작가의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이 생각난다. 상당히 자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그동안 날카롭게 문제를 끄집어내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황선미 작가의 여타의 작품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모르긴 해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묻어두고는 배길 수가 없나 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더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혹시?

 

  린빙이 문화혁명 당시 중학생이었다면 그나마 부모님이 상당히 깨인 분이 틀림없다. 하긴 린빙의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니 공부는 해야한다고 생각했겠지. 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서, 혹은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학교에 보내지 않은 부모가 많았던 상황이 우리의 5,60년대와 비슷하다. 린빙은 학교가 멀어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추억이 쌓였을 것이다. 게다가 유마디 중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것 자체로 식자의 상징이자 우러음의 대상이었으니 그들의 어깨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겠지.

 

  처음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게 된 마수이칭과 셰바이싼, 류한린과의 생활이 소소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린빙이 자신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현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담히 서술할 뿐이다. 특히 마수이칭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아이다. 자신의 분노를 죄없는 할아버지에게 풀며 지내는 모습은 아슬아슬하다. 혹시 저러다 무슨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다. 우리 작가의 책이었다면 분명 사고치고 여차저차하면서 뉘우치던가 새사람이 되는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마수이창은 끝까지 인간적이다. 아니, 현실에서 마주칠 수 있는 전형적인 청소년의 모습이다. 어쩌면 이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 다녔던 문화혁명 당시의 상황도 잠시 보여준다. 어찌보면 유마디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을텐데 아직 생각의 깊이가 얕은 학생들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당시 지식인으로 보이기만 하면 고초를 겪었다던데 유마디 중학교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소설 속에서 만나는 이러한 사건이나 문화가 책을 읽는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이런 책의 존재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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