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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다 1 - 빨간 수염 사나이 하멜 ㅣ 일공일삼 85
김남중 지음, 강전희 그림 / 비룡소 / 2013년 9월
평점 :
이번에는 바다다. 책을 본 순간 작가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나, 작가 소개를 보니 선상에서 뭔가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나도 여행을 정말 좋아하고 많이 다니려고 하는 편이지만, 과연 여행을 하고 나면 내게 무엇이 남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일반인에게는 추억으로 남는 여행이 작가에게는 작품으로 남으니 하는 얘기다.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를 여행하다가 이 책을 쓰기로 했다니 작가란 고달픈 직업이기도 하지만 생각한 것을 이룰 수 있는 뿌듯한 직업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하멜에 대해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인으로만 알고 있을 뿐 거기서 더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서로 새로운 대륙을 찾는다며 각축을 벌이던 시기에 일어난 일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화에 대한 비판적인시각을 갖고 본 적은 있어도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생활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맨날 뒷북만 치고 있으니 일반인의 수준을 못 넘나 보다.
하멜이 표류하다 제주도에 발을 디딘 후 한양과 강진에서 살았지만 흉년 때문에 다시 여수, 순천, 남원으로 흩어져 살게 되는데 그 중 하멜 일행이 해풍이네 마을에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한다. 당시 마을에 외국인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신기하면서도 두려웠을 것이다. 해풍이도 그런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의 소년이었으나 아버지가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고 배를 사면서 진 빚 때문에 누나가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가게 되는 상황에 이르자 큰 결심을 한다. 백성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이었으니 해풍이네도 마찬가지다.
비록 해풍이는 하멜 일행이 탈출하는 배에 몰래 숨어들어 일본으로 가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긴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책이 이제부터가 시작임을 말해준다. 처음에 읽을 때는 해풍이가 하멜에게 돌맹이를 집어 던지고 누나인 해순이가 작은 대수를 좋아하게 되는 부분이 한참 뒤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훑어 보니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불과했다. 처음 읽을 때는 초반부터 워낙 긴박한 상황이 펼쳐져서 중반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외국으로 나가는 일이 공적인 업무 외에는 절대 불가능했던 시절에 일본으로 갔으니 해풍이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 물론 본인의 의지였다고는 하지만 그처럼 힘들고 위험한 줄 알았다면 애초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민초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으니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해풍이는 일본으로 건나가 다행히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을 만나 무사히 일본에서도 하멜을 따라 네덜란드로 떠난다. 이것은 2권에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도예촌에서 만난 박 노인과 연수는 같은 조선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기무라 같은 사람까지도 해풍이에게 큰 도움을 주고 보살펴 주는 걸 보면 주인공은 역시 어딜 가든 혼자가 아니라는 평범한 원칙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분명 두 권이 전부인데도 마지막에 해풍이가 아버지가 있을지도 모르는 바타비아나 홀란드로 떠나는 이후의 이야기가 3권에서 펼쳐질 것만 같다. 문득 홀란드 때문에 벌어졌던 딸과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독일에 있는 딸이 수학여행을 폴란드로 간다기에 좀 멀리 가나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네덜란드였다. 친구들이 홀란드라고 했는데 그걸 폴란드로 알아들었다나. 이 책이 진작 나와서 딸이 읽었다면 바로 알아들었을 텐데.
'김남중의 첫 해양 동화'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던데 굳이 그렇게까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바다를 항해하고 외국에서 모험을 하는 동화는 (내가 아직 못 읽었을 수도 있지만)처음 만났다. 그만큼 새로운 소재와 굵은 필치로 모험을 그려내는 덕분에 다양한 동화를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사실 초반에 만났던 <주먹곰>(처음에는 다른 제목이었으나 개정되면서 이렇게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을 읽고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드러나서 다소 거부감이 일었는데 그 후에 만난 작품은 모두 재미있었고 '역시 김남중'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동화판에서 남자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의 역할모델을 할 만한 남자 주인공이 많지 않은 환경에서 만나는 소중한 작가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여자 작가가 남자 주인공을 그리는 것과 남자 작가가 남자 주인공을 그리는 것은 차이가 있을 테니까. 물론 근거 없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