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인간은 아무래도 마지막에 와서야 뒤를 돌아보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나 보다. 마지막 책 추천 페이퍼를 쓸 때야 되서야 지난 몇 개월 간을 돌이켜보게 된다. 서평단 활동이라는 것, 동시에 같은 책을 읽고, 한 가지 책에 대해 각자 다양한 견해를 내어놓는다는 것.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동시간에, 같은 기한을 정해놓고, 같은 책을 읽게 되어 있는 이 구조 말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책을 읽고서도, 각자 나름의 (매우) 다른 목소리들이 나온다. 그래서 가끔 놀라거나, 아리송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거기에는 일종의 시기나 경쟁, 혹은 반대라는 것보다는 견해의 나눔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개인적으로는 이 서평단 활동을 통해,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법에서도 그렇고,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글을 쓰는 방식에 있어서도 다른 분들의 좋은 글들을 보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의 일차적인 시작은 좋은 책을 만나게 됨에서 비롯되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도 서평단 경험이 있지만, 이번의 서평단이 더 좋았던 이유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들을 스스로 고를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상당수의 경우는 다른 분들이 고른 책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들도 있었지만, 예전처럼 밀실 속에서 전혀 알 수 없는 경로로 선택되는 책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보다는, 이번과 같이 상당히 오픈되어 진행되는 경우는, 다른 분들의 고견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여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 추천 페이퍼도 기쁜 마음으로 작성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이니만큼, (그간은 그저 마음가는 대로 아무 책이나 선택해왔으므로), 이번에는 조금 더 정치적이고, 특정의 목적을 내세우고 책들을 골라본다. 그것은 여차저차한 이유로, 그간 소외되었다고 생각되는 분야의 책들을 추천해보는 것이다.  

인문/사회의 해당 분야로는 고전, 과학기술, 사회과학, 역사, 인문학, 인물/평전과 같은 것들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간 많은 책들의 선정이 사회과학이나 인물/평전 부분에 치우쳤던 것 같다(물론 이 분류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긴 하지만). 과학기술 분야도 이번에 <대칭>이 선정됨으로써 구색을 겨우 맞추게는 되었는데, 고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역사나 문화, 종교 분야의 책들이 선정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다. 그러므로 마지막 책들은 역사, 문화 및 종교 같은 관련 분야들에서 골라본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 정민, 김동준 외 / 태학사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책이다. 우리의 젊은 인문학자 27명이 각자 자신의 분야의 이야기들을 여러 볼거리와 함께 들려준다. 제목은 '그림과 만나다'지만, 여기에는 그림만 포함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박영효의 양장(洋裝) 사진을 통해 한국 근대 복식의 흐름을 살펴보기도 하고,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조선시대의 공연 문화가 담고 있던 담론들을 펼쳐내 보이기도 한다. 한문학, 희곡, 미술사, 군사학, 연극학, 서지학 등의 다양한 소장 학자들이 필진으로 포진되어 있는 만큼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들과 다채로운 볼거리들을 기대해 본다. (예술/대중 문화 파트에 들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책 분류도 인문학으로 되어 있기에 추천도서로 넣어본다.) 



러시아 혁명의 진실 / 빅토르 세르주 / 책갈피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더불어, 러시아 혁명을 다룬 고전으로 불리는 빅토르 세르주의 <러시아 혁명의 진실>이 전면개역되어 출간되었다. 아주 예전에 과방에서, 혹은 선배 방에서 굴러다니던 책을 주워서 같이 굴러 다니며 떼굴떼굴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좀 더 진중하게 다시 읽어볼 때이다. 제목은 어떤 특정의 시각을 담은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데, 그보다는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르포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르포이자, 하나의 전환기적 역사를 다룬 책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집트 및 아프리카 여러 곳곳에서 혁명의 기운이 꿈틀대는 이 때에 혁명이라는 것의 전면적인 양상을 한 번 고찰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런 전면개역은 언제든 환영.  



장자 교양강의 / 푸페이룽 / 돌베개

최근에 동양고전, 특히 장자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진 것 같다. 이는 무엇을 반영하는 것일까. 글쎄. 이는 어쩌면 '너'에 대한 관심에서 '나'에 대한 관심으로의 이행이라는 현대 사회의 풍경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상대에 대한 '인'과 '예'라는 유가적인 가르침에서,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를 탐구하는 자신의 내면으로의 이행. 조금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북경TV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자 이야기'라는 문구가 반갑다. 장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보는 것은 어떨지. 



신의 이름으로 - 종교 폭력의 진화적 기원 / 존 티한 / 이음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많은 사람들은 '종교'라는 말에 '폭력'이라는 말을 연상하는 것 같다. 종교와 가장 먼 곳에 있어야 할 이름이 종교의 뒤에 가장 가깝게 따라붙는 이 아이러니. 그렇다면 종교의 어떤 '타락'이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일까. 저자 존 티한이 보는 관점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는 종교의 본성을 거슬러 올라가면, 도덕이라는 이름의 종교와 폭력이라는 이름의 종교가 뿌리가 같음을 드러내보인다. 종교학 교수인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의 여러 이론들을 여기에 접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결론은 종교의 근원을 일종의 악에서 찾고, 결국 종교를 부정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종교의 본질을 찾아나가는 흥미로운 기원 여행.  

 

중국 소수민족의 눈물 / 루셴이 외 / 안티쿠스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에 사라진 언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세계의 6000여 개의 언어 중 90% 이상이 없어져 가고 있다고 했다. 거의 대부분 한정된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 소수민족들의 언어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이 포함된다.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의 어계(語系)만도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며, 그 안에는 세부적인 수많은 언어가 있다(정재남, <중국의 소수민족>, 살림지식총서 333 참고).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거기에 담긴 문화, 종교, 생활풍습, 역사,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또 한편으로 이러한 사라짐에 일종의 강제성이 들어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이 책 <중국 소수민족의 눈물>은 풍부한 사진 도판과 이야기들로 그들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여러모로 소중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덧.
버트런드 러셀의 삶과 그의 이론을 만화로 쉽게 풀어낸 <로지코믹스>를 추천의 글까지 다 썼다가 지워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리고 <게이 컬처 홀릭>을 추천할 수 없는 것도 안타깝다. 왜 이 책이 '에세이' 파트에 들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언론에 보도되는 혐오스러운 게이와 드라마들의 샤방샤방한 게이들의 사이 어딘가쯤에 위치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나의) 인식의 오해들을 조금이라도 걷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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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4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3-14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와 러시아 혁명의 진실, 게이 컬처 홀릭, 로지코믹스에 관심이 갑니다. 검색해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맥거핀 2011-03-14 13:3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는 서점에서 너무 책이 이뻐서 몰래 가져오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의 진실>은 뭐 말이 필요없는 책이구요...<게이 컬처 홀릭> 같은 경우는 <씨네21>에서 처음 소개글을 보고 관심이 생겼는데요. 이 책을 보게 되면 '아차'하고 깨닫게 되는 점이 있다더군요. 그게 뭔지 참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볼까 생각중입니다.^^;

세실 2011-03-1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서평단 희망하는 책을 받을수 있군요. 전 예전에 읽고 싶지않은 책도 많이 와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꼭 읽어야 겠어요^*^

맥거핀 2011-03-14 13:37   좋아요 0 | URL
이번 차수부터 희망이 반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경험들이 있는데, 원치 않는 책들을 보며(아무래도 홍보의 느낌이 너무 나는 책들이 많지요..) 계속 의무감으로 서평을 쓰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을까..이런 자괴감이 막판에는 생기더군요. 이번에는 그런 게 없어서 참 좋습니다. 물론 서평단 담당자 님의 고생은 더 심해졌지만..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는 조금 보면 교양이 팍팍 쌓일 것 같은 책입니다. 저도 막상 우리나라 것들에 대한 교양은 참 약한데, 이번에 한번 좀 쌓아봤으면 좋겠어요. ^^

비의딸 2011-03-14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지코믹스>는 저도 읽고 싶은 책인데요... 썼다 지우셨다니, 저도 무척 아쉽네요. <게이 컬처 홀리>이 왜 에세이로 분류되는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맥거핀 2011-03-14 13: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특별히 지운 이유가 있지는 않구요. 그저 위의 책들에 밀렸습니다. <게이 컬처 홀릭>은 내용상으로 보자면 인문학에 더 가까울텐데, 가끔 알라딘 책 분류가 조금 공감이 안가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알라딘 만의 문제는 아니지만요.
(그러나저러나 여러 분들이 모두 지운 책들에 더 관심을 보여 주시네요..책 선정을 잘못한 것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엄습..;;)

네오 2011-03-1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러시아 혁명의 진실'이 추천책이라니 반가습니다~ 매번 소개시켜주는 책이 정말 좋더군여:D

맥거핀 2011-03-15 22:27   좋아요 0 | URL
네오님이 좋아하실 책일줄 알았습니다.^^ 예전 책은 표지부터가 좀 칙칙하고, 약간은 골방틱(?)한 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멋있더군요.

네오 2011-03-15 23:10   좋아요 0 | URL
아~ 오늘 편혜영 신간이 나왔다길래 한번 서점서핑을 했거든여~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 정민, 김동준 외 / 태학사 이 책 맘에 들더라구여^^ 물론 이 페이퍼를 보고 난 후 직접 다시 확인한 결과였습니다..아~ 항상 신간고를때 이 페이퍼 매번 참고한답니다 ㅎㅎ

아~ 또 맥거핀님이 러시아 혁명의 진실을 처음 접했을때의 에피소드를 언급하셔서 저도 불현듯 생각이 나네여,,사실 이 책을 전 굉장히 오랜전에 접했어여,,(허세떨자면ㅋㅋ)중학교때,, 당연히 그때 당시에 읽어봤다는게 아니라(아직도 읽지는 않았습니다) 외가에 갔는데 삼촌책장에 김학준의 러시아혁명사랑 나란히 꼿혀읽더군여~ 그때 역사의 관심이 있어서 혁명사를 챙겨오고(그때당시의 혁명의 혁자의 뜻도 몰랐습니다) 방학때 읽어봤는데 상당히 재미있더라구요~(당연히 이해불가 하지만 왜 야사같은거 있잖아여) 그래서 김학준교수님 참 존경했는데,,
나중의 참 안습이예여ㅠㅠ

맥거핀 2011-03-15 23:49   좋아요 0 | URL
중학교 때 혁명사를 읽으셨다니..골수 좌파 인증입니까?^^; 편혜영 작가님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 혹시 미모 때문에..는 아니겠지요.^^

네오 2011-03-15 23:58   좋아요 0 | URL
하하하 아 진짜 (속마음) 들켰네여~ 미모 맞아여 미모여 ㅋㅋㅋㅋ

반딧불이 2011-03-15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마지막 추천도서네요. 그동안 선정된 책들이 어느 한권도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 없었어요. 저는 아직 신간을 첫번째 책 외에는 살펴보지 못했는데 소개글이 아주 유익합니다.

맥거핀 2011-03-15 22: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 책들은 거의 다 좋았습니다(샌델 책은 조금 실망스러운 구석도 있었지만요). 마지막이라는 것이 아쉽네요. 다른 때는 별로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추천한 책 중에서 한 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네요.

cyrus 2011-03-15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지코믹스>도 읽어볼만 했습니다. 일단 장르가 만화라는 점에서
좋았어요 ^^;; 빅토르 세르주의 <러시아 혁명의 진실> 관심이 갑니다.
마지막 선정이라서 그런지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맥거핀 2011-03-15 22:30   좋아요 0 | URL
<로지코믹스>도 물론 흥미가 가는 책입니다. 목차는 꽤 무시무시한데, 그 내용들을 도대체 만화로 어떻게 풀어내었을지 관심이 갑니다. 모두들 마지막이라서 다들 신중을 기하시는 듯 합니다. 이번 달에도 좋은 책이 선정이 되겠지요.^^

굿바이 2011-03-1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는 책 자체가 참 곱더라구요 :) 그나저나 <러시아 혁명의 진실>이 선정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맥거핀 2011-03-15 22:36   좋아요 0 | URL
네..저도 곱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청개구리 끼가 있어서 평소 이쁘기만한 책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책은 내용을 보고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도 굿바이 님이 추천하신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이 선정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유의 악보>가 된다면 뭐 죽었다..생각하고 읽어보지요.^^)

꽃도둑 2011-03-1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추천하신 책들 다 좋은데요...
샤방샤방해요...ㅎㅎㅎ

맥거핀 2011-03-17 15:21   좋아요 0 | URL
분위기를 살짝 보니, 이번달 제가 추천한 책들은 선정이 안 될듯..
하하하.
이상하게 추운 목요일이네요. 건강관리 잘 하시길..^^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이렇게 의무적으로 몇 권의 책을 추천하다보면, 때때로 선택의 순간에 마주한다. 이 책이 좋을까, 아니면 저 책이 좋을까. 이것은 물론 책들의 줄 세우기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단지, 그 과정은 그저 나의 취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신간평가단으로서의 책 고르기는 일종의 정치적 과정이므로 단순히 '취향의 문제'만이 반영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때때로 돌아보곤 가끔은 살짝 갸우뚱 거리기도 한다. 내가 저 책을 좋아했던가. 왜 그런데 저 책은 보관함에 들어있는 것일까. 내가 언제 저런 책을 넣어두었던 말인가.

이런 기억력 모자라고, 갸우뚱 거리는 나같은 사람을 위한 재미있는 테스트가 있어서 오늘 해보았다. 독서 취향 테스트. 나의 테스트 결과는 "현실적인 품격, "사바나" 독서 취향". 이른바 죽음의 건기를 대비하는, 대초원 위의 야생동물과 같은 심정으로다가 절제와 품격을 가지고, 잘 정돈된 책들을 선호하는 취향 되시겠다. 이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다가도, 뭐 하여간, 계획없이 이것저것 들쑤시는 자들은 사바나에서 말라죽기 딱 좋을지도 모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시라도 테스트 해보고 싶은 분이 있으시다면, 다음의 사이트로. 물론 사이트 홍보는 아니다.
http://book.idsolution.co.kr/)

책 추천하려다 별 쓸데없는 이야기나 한 기분인데, 뭐 하여간, 이번 달에도 의무감으로 쓰는 2011년 1월 출간된 내가 읽고 싶은 인문/사회/혹은 과학 신간들.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 마커스 드 사토이 / 승산

얼마 전에 블로그에도 잠깐 끄적거리긴 했지만, <바흐 이전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어떤 소리들의 조합은 우리가 듣기 좋은 음악이 되고, 어떤 소리들의 조합은 듣기 싫은 소음이 되는 걸까. 왜 어떤 특정의 구도나, 특정의 색의 조합은 우리가 보기에 좋은가. (물론 특정의 얼굴도 그렇고.) 영화에도 강조되어 있지만, 아마도 그 핵심의 하나로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은 '균형과 대칭'이 될 것이다. 이 균형과 대칭이 사실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는 것은 자연과 수학의 세계이다. 인간들이 만들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은 사실 이 균형과 대칭을 어설프게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자연과 수학, 특히 그 중에서도 수학의 세계에 담긴 대칭을 탐구하려는 시도가 담긴 책. 그곳에서 수학 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또다른 美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이전 / 안토니오 그람시 / 갈무리

안토니오 그람시는 아직 유효한가? 맑스의 유령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계속 죽임을 당하지만, 아직도 어디선가 다시 살아나, 새로운 언어들로 말해진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어쩌면, 맑스야말로 누군가 그를 죽이려고 시도한다는 것이 그가 다시 살아나야할 이유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야말로 이 안토니오 그람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6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국에 의해 체포되기 이전에, 그가 쓴 글들의 모음집. 지난 2001년에 同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개정판이다. 



욕망의 아내 - 진화를 넘어서는 섹스의 심리학 / 데이비드 레이 / 황소걸음

도발적인 제목과 도발적인 표지와 도발적인 내용의 삼위일체. 본격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비(非)일부일처 관계를 탐구한 책. 핫와이프와 쿠콜드, 스윙잉과 폴리아모리라는, 사실 그렇게 크게 알고 싶지는 않으나, 뭐 그리 알아도 나쁠 것 같지않은..쿨럭쿨럭 사실은 매우 알고 싶은 단어들이 출몰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의 소개를 보면, 생각보다는 꽤 무거운 내용인 것 같다. 김어준 씨는 이 책을 "매우 지적인 소수의. 그 외 절대다수, 촉수 엄금"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도 본격 어른들을 위한 책. 



퀀텀 브레인 / 제프리 새티노버 / 시스테마

생물학적 측면이 아니라, 양자물리학의 측면에서 뇌를 탐구한 책. 이렇게만 써놓고 보니 꽤나 무시무시한 책인 것 같지만, 서점에서 잠깐 살펴본 바로는 책의 설명이 상당히 세세하여, 나같은 문외한들도 읽어보려는 시도를 해도 괜찮은 책이라 생각된다. 누군가가 한 말처럼, 19세기가 뉴턴물리학의 시대라면, 20세기는 양자물리학의 시대다. (그러니 20세기가 다 지나간 지금에 양자물리학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알아두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곧 다른 물리학의 시대가 올테니까.) 뇌에 대해서 알게 될 뿐만이 아니라, 곁다리로 양자에 대해서도 살짝 알게된다면 좋지 않을까. 물론 이 책으로만은 턱 없겠지만. 



8시간 VS 6시간 /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 / 이후

8시간 노동은 언제부터 정해진 것일까? 물론 이 질문은 오만한 것일 수 있다. 8시간만 노동하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그 8시간 노동제가 채 자리잡기도 전에, 6시간 노동제를 외친 이단아, 혹은 선구자 격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6시간 노동제는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를 언도받았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 패배의 기록들. 그 패배의 기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8시간 노동제가 죽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은 혹시 아닐까. 미래에 혹시 오게 될 <10시간 VS 8시간>, 혹은 <12시간 VS 10시간>의 출간을 막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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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 분야에 워낙에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써 그런지 이번 달은 어떤 책이 선정될지
감을 못 잡겠네요. 그리고 뭘 소개해야될지 고민되네요. ^^;;

맥거핀 2011-02-08 16:00   좋아요 0 | URL
음..저도 지금까지 신간평가단분 서재를 휘 둘러보며 뭘 추천하셨나 봤는데, 이번달은 겹치는 책이 상당히 적네요. cyrus님 말대로 좋은 책이 그만큼 많이 나왔다는 뜻도 될테구요. 뭐 고민이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맘 가는대로 고르면 되지요.^^ (모든 것은 운에 맡기구요.;;)

네오 2011-02-0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정말로 책선정하시는데 탁월하신데여~ 욕망의 아내 급 읽고 싶어지는군여 ㅎㅎ, 니알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 책의 두께가 후덜덜하더군여,,책값도 만만치 않구요~ 그런데 소개한책들중 교보문고 강남점에서는 못본것 같아여~ 주말마다 가는데 무슨신간나왔나 살펴보면 그대로 있는것 같구여,,종로 교보나, 영풍,반디앤루이스는 책들이 참 잘정리가 되있는데,,강남은 책찾을때마다 조금은 헤매는 경향이 있어여,,그러니깐 철학이나 사회학책을 살펴볼려면여,,그러니깐 맥거핀님이 소개해주신책 좀 오프라인에서 뒤젹거릴려면 시간이 흐른뒤예여~ 신간평가단의 책들은 도대체 어떻게 고르나여? 서점이용, 출판사 블로그, 조금 궁금하네여 헤헷

맥거핀 2011-02-09 22:17   좋아요 0 | URL
특별한 방법이 있지는 않구요. 제가 틈나면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서점의 신간판매대를 열심히 기웃대고는 합니다. 서평단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은 더 열심히 보구요. 그래서 좀 괜찮다 싶은 책은 제목을 적어두고, 집에 왔을 때,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그리고 알라딘 같은 경우에는 RSS피드로 최신간들을 보내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편리하기도 하구요.
예전에 강남 교보는 몇 번 갔었는데, 요즘에는 강남이라는 동네를 거의 통 안가게 되서요. 집근처에 잠실 교보가 있어서 종종 가고, 종로 영풍은 분위기가 맘에 들어서 가끔 갑니다.^^

세실 2011-02-1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인문학 책읽기를 하기로 맘은 먹었지만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전 아직 욕망의 아내 이런 책은 읽지 못하겠어요. 아무리 지적 수준이 높다고 해도요. 전 넘 보수적인가 보아요.
8시간보단 6시간 근무가 훨씬 집중력을 요할수도 있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어차피 내일은 내가 해야하니까요. 앞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ㅎ

맥거핀 2011-02-12 12:20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 서재를 들락날락 하면서 늘 느끼는 건데, 여기 계신 여러분들을 보면, 저 역시도 인문학에 관해서는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정규교육을 받은 게 도대체 몇 년인데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또 뻔뻔스럽게도 책 추천을 하고 있으니..^^;
자극을 받는다는 것은 그래도 좋은 일이지요. 또 책을 읽어야할 의지를 끄집어올려 주니까요.

herenow 2011-02-1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의 아내는 좀 쌘 것 같습니다. ㅋㅋ
대칭이랑 퀀텀브레인은 표지부터도 멋지죠.. 내용이야 뭐 호기심 팍팍~
이번달에는 다른 분들이 어떤 책을 골라놓으셨나 미리 둘러보고 있는데
역시 다양하시군요. 저도 <대칭>을 골라두었으니 어떻게 될지 한번 볼까요? ㅎㅎ

맥거핀 2011-02-12 23:19   좋아요 0 | URL
하하. 좀 쌘가요? 근데, 위에도 잠깐 썼지만, 상당히 어렵고, 학문적인 책인듯..그래서 선정되어도 도리어 약간 걱정이네요.
이번달 신간평가단 분들 추천서는 거의 모두 흥미로워요. herenow님의 추천서들도 기대가 됩니다. (왠지 <대칭>에 힘이 모아지는듯..? 그러나 힘이 모아진다고 그 책이 되라는 법은 없으니...)

암향부동 2011-02-1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저도 <대칭>은 추천해 놓았습니다. 이번 만큼은 자연과학 서적이 선정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쉬의 옥중 수고>는 읽고는 싶은데 제 짧은 능력으로는 맥거핀님보다 잘 소개할 자신이 없어서 제외했구요^^ <욕망의 아내>는… 읽고는 싶은데 이렇게 제목과 책 소개가 자극적인 책 치고 좋은 책을 별로 만나지 못해서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격언에 따라 저는 제외했지만 선정된다면 정말 즐겁게(몰래) 읽을 것 같습니다^^. 퀀텀 브레인은… 흠… 요새 뇌과학 서적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기존 뇌과학 서적과 좀 다른 것 같아서 제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간 평가단에서 신간 선정은 확실히 <정치적>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맥거핀 2011-02-14 00:04   좋아요 0 | URL
오~이로써 <대칭>에 한 표 더 추가네요. 비공식 집계 현재 단독선두입니다.ㅎㅎ (물론 1위한다고 선정된다는 법은 없습니다만)
암향부동님도 친 과학파(?) 중에 한 분이시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는 과학서적을 한 번 받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요. (물론 과학책이 꼭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양성 확보의 차원이죠.;) 뇌과학책이 조금 식상한 감도 있는데, 뇌과학이 요즘 과학책들 중에서도 유달리 많은 편이라, 한 권씩 넣게 되네요.

암향부동 2011-02-14 00:24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이 자연과학이라…. 신간평가단 중에 저라도 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칭>은 사실 추천하면서도 겁이 좀 나는 책입니다. 책 설명엔 쉽게 쓰였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지ㅎㅎ

뇌과학 분야는 제가 한동안 빠져서 시중에 있는 뇌과학 책을 거의 전부(대략 20권 정도 읽었을까요?) 읽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 10권 넘어가니 그 내용이 그 내용이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좀 방면에서 뇌과학을 살펴본 책이 나온 것을 보니 반갑습니다.

그리고 뇌과학 서적이 많은 것은 요새 뇌과학이 속된 말로 '뜨는 과학'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동안 자연 과학의 영역 밖이라고 여겨졌던 감정이나 의식이란 부분을 뇌과학을 통해 자연 과학의 손길이 닿기 시작했거든요.

herenow 2011-02-15 11:06   좋아요 0 | URL
정치적이라는 말씀에 깊이 동감~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분히 '정치적'이죠. ㅎㅎ


꽃도둑 2011-02-17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 님의 안목을 믿어요...추천하신 책들이 다 흥미로워요. 특히 옥중수고, 대칭이 조금 더 땡겨여 캬~~ 안토니오 그람시 머리모양 죽이는데요?..ㅎㅎ

맥거핀 2011-02-17 14:44   좋아요 0 | URL
저래뵈도, 당시 최신 이태리 스따일입니다.^^ 워낙 좋은 책들이 많아서, 이번달은 여러모로 선정이 궁금해지네요.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서평단 활동이 3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감일을 며칠 앞두고부터는 어떻게든 다 읽고, 뭔가를 끄적거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것과 서점에 가게 되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신간들을 조금 더 주의깊게 보게 되는 의무감이 생긴다는 점. 그러나 이것은 기분좋은 압박감이고, 나쁘지 않은 의무감이다. 오늘도 서점에 들른 김에 일종의 의무감으로 신간들을 살펴보았는데, 조금은 새로운 사실을 눈여겨 보게되었다.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꽤나 상당수의 책들이 비닐에 고이 싸인 채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글쎄. 서점에서 하는 것인지, 출판사 쪽의 조치인지 모르지만, 이것은 씁쓸한 기분을 들게 한다.  서점이나 출판사의 고충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인터넷 서점이 점점 발전하고 있고, 많은 책 수요자들을 그들이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프라인 서점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책의 물리적 속성들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책을 들었을 때의 그 적당한 무게감, 책을 펼쳐든 후에 느껴지는 새 책 냄새, 종이의 느낌, 종이의 질, 활자의 모양, 그리고 구입한 책을 들고 집으로 향할 때의 그 묵직한 기분좋음. 그러나 책에 싸여진 투명한 비닐은 그 모든 것을 원천적으로 방해한다. 더구나 나는 대부분의 경우, 목차를 주의깊게 보고, 저자 소개를 충분히 읽어본 후 책을 구입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 어떠한 책들은 도리어 온라인에서 다시 책의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이제 표지나 명성만으로 책을 고르는 때가 도래한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의 와중에서 건져낸 2010년 12월에 출간된 내가 읽고 싶었던 인문/사회 신간들.
 

 

증오의 세기 -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 / 니얼 퍼거슨 / 민음사

인간은 생존이나 식량의 확보라는 이유가 아니고서도, 같은 종족을 죽이는 유일한 종이다. 즉, 그것만으로는 20세기에 일어났던 수많은 대량학살들을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유대인의 절멸 계획은 그 당시, 게르만인들이 유대인에 느꼈던 경제적 위협에 근거하여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사실 굳이 먼 곳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의 20세기야말로, 학살이 횡행하였으며, 그 중 많은 수의 죽음이 단지 그들이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고, 아주 단순한 증오 때문이었다. 클라이브 폰팅의 <진보와 야만>도 20세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는데, 이 책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줄 것 같다. 



게임의 문화 코드 / 이동연 / 이매진

우리가 가끔 게임을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 그것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게임에 열중하던 40대가 게임방에서 3일 밤낮을 어쩌구..혹은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청년이 실은 게임에 빠져 있던 사람이었다는 어쩌구..즉 우리가 접하는 것은 그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인 '현상'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현상'은 그 현상에 주목하면 할수록, 그 '본질'과는 조금씩 더 멀어져가며, 그 '본질'을 모르면 우리는 '현상'을 '현상'만을 놓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의 하나는 패륜범죄가 단지 게임의 폭력성때문이었다는 이상한 결론이다(예를 들어 그것은 게임의 '다른 면' 때문일 수 있다). 저자 이동연은 현상이 아니라, 게임을 문화 텍스트로 정의하고, 그것의 본질을 살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 뭐 아무튼 게임은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테니. 



미디어 카르텔 / 이은용 / 마티

드디어 이 정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지난 연말, 모두들 한 해의 마감과 새로운 새해 준비로 정신없던 그 때를 노려, 정부는 몇몇 보수신문들에게 종편이라는 엄청난 떡고물을 아니, 먹고먹어도 다 못먹을 엄청난 케익을 던져주었다. 소셜 네트워크의 등장이나, 블로그 등의 새로운 미디어들의 출현으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미디어 혁명을 꿈꾸었으나, 혁명은 장미빛 전망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소셜 네트워크나 블로그는 거대한 미디어들과 기이하게 결합하고 있고, 저질 콘텐츠와 왜곡된 정보들은 예전의 몇 배 이상으로 많아졌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우리 앞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인간과 뇌에 관한 과학적인 보고서 / 에두아르도 푼셋 / 새터

인간의 기원에서부터 현대 인간까지 372페이지 안에 넣는 것이 가능한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을 이 책은 용케도 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아무래도 책의 내용이 부실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서점에서 읽어본 앞의 몇 장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며, 뒷 내용들을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심리학, 인류학을 넘나드는 책. 우리는 아직도 인간에 대해서도, 뇌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다. 



리영희 평전 / 김삼웅 / 책으로보는세상

마지막에는 이 책을 넣을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 많은 선배들이 리영희 선생의 글들을 읽어볼 것을 권했지만, 그 글들은 고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어리석어 보였다. 나는 읽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많은 인간들이 지금의 이 이상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이 세상이 이상하게 느껴지고, 몇 가지가 도무지 알 수 없어진 나는 뒤늦게야 리영희 선생의 글들을 쪼가리로 접했다. 그리고 뒤늦게야 어렴풋이 감지했다. 선생의 글들은 그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말들이었다는 것을. 그가 지금의 시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듣고 싶지만, 이제 그는 더이상 여기에 없다. 


(축구를 보면서 썼더니, 6권이 된 줄 몰랐다. 책 중의 한권을 뒤로 돌려 그저 번외로 넣어본다. 나도 평소에는 지나친 애국심 어쩌구 하지만, 일본이 지는 건 여전히 고소하다...) 



소설 파는 남자 / 이구용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이 책이 추천도서로 선정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하고, 솔직히 '에세이' 파트에 들어가야 하는지 '인문/사회' 파트에 들어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저 단순히 '읽고 싶다'는 기준에서 넣어본다. 한국 문학은 오랫동안 노벨문학상을 노려왔고, 그간 수상에 계속 실패해 왔다. 물론 노벨문학상을 타야만, 한국문학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라는 경쟁적 사고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왜 한국문학이 그간 수상에 실패해 왔는지도 궁금하며, 한국문학들이 외국에서는 어떠한 시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 변명이 될까. 한국 문학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하는 저자의 경력이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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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1-1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 고쳐서 올리는 사이에 동점골 들어갔다..역시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네오 2011-01-1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한국축구,,이번에 대단하더군여, 기분 좋습니다,,

맥거핀 2011-01-12 18:48   좋아요 0 | URL
이번 경기력은 상당히 괜찮은 것 같아요. 아직 첫 경기일뿐이긴 하지만..하기는 뭐 우리가 언제는 경기력이 많이 떨어져서만 우승을 못한건 아니죠..

네오 2011-01-13 12:23   좋아요 0 | URL
앗! 축구이야기를 하다가 본문내용을 깜박했네여,,음,,니얼퍼거슨이 새책이 출판이 됐군요,,진보와 야만은 아직 읽지는 않고 고이모셔두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좋은 책이라면,, 아르도르가 그러지 않았나요? 홀로코스트이후 유럽에는 철학이 없다고요,,이동연, 이은용, 이구용은 생소한 이름들입니다.리영희 평전 선택하셨군요,그분이 원하는 좋은 날을 빨리 보여드려야 할텐데요,

맥거핀 2011-01-13 23:29   좋아요 0 | URL
니얼퍼거슨 책은 아주 땡기기는 하는데, 가격이 좀 있는 책이라, 서평단 책으로 선정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아무래도 제 돈으로 사봐야 할 듯 해요. 리영희 선생님이 보고 싶은 날들은 아마도 상당히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죠..ㅎㅎ
보고싶은 책들은 많은데, 저 역시 문제가 많아서, 잘 읽지 못하고 있네요. 네오님도 책 많이 보시던데, 새해에도 좋은 책 더 많이 보시길..^^

herenow 2011-01-1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까지 직접 가서 확인한 다음 쓴 추천이니 나름 내용 확실하겠군요? ^ ^
저도 둘러싼 비닐 앞에 답답한 적이 많았더랬어요.
그런데, 웬만한 대형 서점들은 직원한테 내용이 궁금해서 보겠다고 이야기한 다음
비닐 벗겨서 보고 다시 돌려주면 되더군요. 만화책 같은 건 피차 곤란하지만
비닐 포장은 랩핑 기계로 다시 한번 돌리면 간단하거든요. (서점입장에선 번거롭겠죠;)
말 없이 몰래 찢어서 본 다음 슬쩍 도망가버리는 얌체 손님도 더러 보이지만.. ㅎㅎ;
서평 마감일이 또 슬슬 다가오네요~

맥거핀 2011-01-12 18:52   좋아요 0 | URL
아..그런 심플한 방법이 있었네요. 저는 소심해서 항상 툴툴거리기만 했지, 서점 직원에게 말해볼 생각은 못했네요. 혹시 일종의 마케팅전략도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왠지 비닐로 포장해두면, 뭔가 내용이 궁금해지잖아요.
제가 서점에서 괜찮겠다..싶은 건 위에 추천한 책 말고도 2-3권 더 있는데, 그 중에서 푼셋 책을 고른 건 herenow님이 추천하신 것 보고 했어요. 이왕 이면 될놈(?)을 밀어주자 싶어서..^^;

cyrus 2011-01-1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원들이 소개하신 책들 중에는 니얼 퍼거슨의 신작도 눈에 많이 띄네요.
사실, 저도 은근히 이 책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 책도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처럼 가격이 샌 편이라서 선정 가능성이 희박한 거 같아요^^;;

맥거핀 2011-01-16 22:20   좋아요 0 | URL
아마도 내부 기준선(?) 같은 게 있지 않을까...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니얼 퍼거슨의 책은 선정이 안되면, 개인적으로 구매하려구요. 서점에서 좀 봤는데, 내용이 너무 땡겨서요.
신간 평가단 분들의 추천하신 책을 보면, 특정의 책들로 편중되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예전의 신간평가단 방식보다는 지금의 방식이 훨씬 좋습니다.^^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아직 11월에 온 <바다>나 <왜 도덕인가?>도 하나도 읽지 못했는데, 벌써 새로운 책들을 추천해야 하나 보다. 이렇게 별로 책도 읽지 않고, 뻔뻔스럽게도 이 책이 어떻고, 저 책이 어떻고 하는 글을 써야하니 민망한 노릇이다. 어쩌면 이렇게 중언부언 설명을 붙이지 않고, 그저 책들만 죽 나열하는 다른 글들이 더 솔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래도 민망해서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는 차원에서라도 몇 마디 흰소리를 덧붙여 본다.  

머리 속에 지식은 점점 얇아져만 가고, 보관함에 든 책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앨버트 O. 허시먼 / 웅진지식하우스

레토릭(rhetoric, 수사학)은 때로 다른 것들과 결합해 부정적인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수 신문들의 레토릭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그 레토릭 이면에 숨어 있는 다른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역으로 생각해보면 보수 신문들이 어찌 되었건 우리나라 매스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에는 그들의 현란한 레토릭이 한몫을 한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지난 대선에도 먼저 경제에 대한 주제를 선점하고, 그로 인한 보수의 레토릭들이 보수정권에 승리를 안긴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은가. 지배하기 위해서는 레토릭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수사학하면 소피스트들을 연상하고, 소피스트하면 소크라테스의 독배를 연상하는데, 독배를 마시지 않기 위해서는 그 독배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추상적 사유의 위대한 힘- 튜링 & 괴델 / 박정일 / 김영사

현대는 인공지능의 시대이고, 우리는 싫든 좋든 인공지능에 둘러싸여 있다. 인간 이외에 또다른 생각하는 기계들의 출현. 이 출현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튜링과 괴델이다. 괴델은 '불완전성의 정리'를 내세워 논리적 사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튜링은 '튜링 기계'를 고안하여 현대 컴퓨터의 시초를 만들었다. 그 튜링과 괴델의 시작들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또 앞으로의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에 놓여있는 암초들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을 것 같다! 



엥겔스 평전 / 트리스트럼 헌트 / 글항아리

엥겔스는 마르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고, 그의 생애 역시 총체적으로 조망되어 국내에 소개된 적은 드물다. 이 책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이 부제가 그의 고민과 그가 처했던 위치를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고민들은 왠지 현재 사회와도 조금은 연관이 되는 듯 하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 사회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면(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그것의 주축은 노동자들이 아닌, 아마도 중상류층 이상의 지식인 층이 될 것이다. 왜 그런걸까. 이 책이 조금은 힌트가 될 수도 있을 듯.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 아브람 노엄 촘스키, 미셸 푸코 / 시대의 창

촘스키와 푸코라. 언뜻 생각하면 두 사람을 연관지을 수 있는 끈은 '구조주의' 외에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르게 생각하면 두 사람의 공통점의 실마리가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촘스키는 자신의 주전공인 언어학 외에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해, 미국 및 강대국들의 권력에 대해 끊임없이 딴죽을 걸었던 학자이고, 푸코 역시 권력의 메커니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꾸준히 논의를 전개해 왔다. 일단 그 두 사람의 만남이니 흥미가 가고, 그 두사람의 TV 토론을 책으로 만들었다니, 쉽게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공자 평전 / 안핑 친 / 돌베개

중국에서 최근 공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 같다. 물론 중국에서 공자에 대한 숭상은 계속 이어져 왔으나, 최근 들어 그것이 더욱 강력해진 감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주윤발 주연의 <공자>라는 영화가 개봉한 것도 그 맥락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그런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공자는 이미 박제된 지 오래고, 오래된 낡은 관념으로만 남아 있다. 그것은 물론 나도 마찬가지인데, 우리의 고정관념 속의 박제된 공자나 영화로 만들어진 스펙터클한 공자가 아니라, '인간 공자'는 진정으로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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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0-12-0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감벤의 <세속화 예찬>이나, 네그리의 <네그리의 제국 강의>를 추천하고도 싶었으나, 일단 쉬운 책들부터라도 좀 읽자. 아감벤이나 네그리는 상태가 좋을 때에....
어째 올리다 보니 평전이 두 권. 지난 번에 산 <박헌영 평전>도 아직 읽지 못했는데!!

cyrus 2010-12-06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평전이 꽤 많이 나오는가 봅니다. 故 리영희 씨의 평전도 그렇고,
오늘 확인해봤는데 비스마르크 평전도 나왔더군요. 갑자기 평전에도 급 땡기네요.

맥거핀 2010-12-07 00:55   좋아요 0 | URL
한 사람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평전들이 교양을 쌓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취향에도 맞고, 무엇보다도 아무래도 재미있게 잘 읽히는 측면이 있어서 그런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그런데 확실히 평전은 누가 썼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위의 책들의 저자들이 어떤 분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제가 책소개를 잘 믿지 못해서..;;)

꽃도둑 2010-12-1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 님 부산 지하철 역에서 봤어요...피리부는 소년 맞죠?...^^
얼마 전 배병삼 교수님의 논어 강의를 들었는데 공자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죠..
공자 급 땡깁니다..^^

맥거핀 2010-12-10 20:29   좋아요 0 | URL
저를 보셨다는 이야기인줄 알고 순간 멈칫 했습니다.^^; 피리부는 소년을 보셨다는 이야기시겠지요. 네..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맞습니다.
저는 누군가 예전에 선물해주셔서 <논어>를 가지고 있고, 가끔 들여다보곤 하는데요. 볼 때마다 묘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도대체 공자님은 왜 이렇게 맞는 말씀만 하실까요..(절대 빈정대는 것 아닙니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지, 이 <논어>의 이야기들은 현재의 시대에도 거의 들어맞는 듯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며칠 동안 예비군 훈련을 갔다왔다. 언뜻 보면 예비군 훈련이란 건 책과 어지간히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예비군 훈련만큼 책이 어울리는 시간 및 장소도 없다. 앞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미안한 말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실외 학과를 제외한) 강의들이 거의 들을 만한 가치가 없는 데다가, 훈련의 특성상 여러 자투리 시간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폰도 강의 중에는 허용되지 않고, 음악을 대놓고 듣기에는 너무 눈치 보이고, 다른 전자기기의 반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책은 가능하며, 그래서 책은 (어떠한 내용이든) 여전히 그곳에서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간 중 손에 책 한 권 씩을 들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알라딘 서평단으로 받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였다. 자투리 시간 중 읽기 좋도록 글들이 짤막하게 나뉘어져 있는 데다가, 상당수가 전쟁 기간에 쓰여졌으며, 전체주의에 끊임없이 항거하는 조지 오웰의 이 에세이들은 예비군 훈련과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뭐 아무튼 고맙다는 인사는 이것으로 대신.

그리고 이달의 추천하는 (사실은 그저 내가 읽고 싶은) 책들. 다시 보관리스트에서 건져본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공장 - 기억, 시간, 그리고 나이 / 다우어 드라이스마 / 에코리브르

인지심리학 시간에 들은 몇 개의 이야기들은 나를 실망하게 했다. 우리가 가진 기억의 신비로운 부분, 그리고 우리가 동시에 반복하는 망각의 그 아련함이 그저 뇌 속의 정신 작용의 일부분이라니. 그것이 그저 우리의 뇌의 몇 개의 뉴런들과 호르몬들과의 복잡한 신경 작용이 불러 일으키는 물리적인 현상일 뿐이었다니. 우리의 놀라운 반응과 기억의 메커니즘이란 실상은 많은 혼란과 오인의 산물로서 구성된 것이라니. 그러나 다우어 드라이스마의 <나이들수록 시간은 왜 빨리 흐르는가>는 일상과 밀착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것이 단순한 어떤 물리적인 작용만이 아님을, 그것에는 아직 많은 신비로움이 남아 있음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그런 다우어 드라이스마의 신작.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 폴 슈메이커 / 후마니타스

세상의 여느 곳이나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우리나라만큼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 있을까. '100분 토론'을 즐겨보곤 하는데,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지극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인사가 의외로 상당히 진보적인 발언을 하는가 하면,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인사가 의외로 매우 보수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방송의 영향인지, 일종의 미봉책인지, 아니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보수와 진보의 개념들이 잘못된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하기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이 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것의 의미는 그저 상대방과 나와 구별짓고, 상대방에게 낙인을 찍으려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그리 놀랄 것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 기본적인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될까. 



당신이 모르는 줄도 모르는 100가지 수학 이야기 / 존 배로 / 이미지박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인간의 삶에 있어서 수학은 밀착되어 있다.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들이 나중에 사회나가면 다 써먹을 때가 있다고 할 때 속으로는 비웃었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서 수학이란 게 이렇게나 많은 부분과 사실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종종 깨닫고 한다. (예를 들어 예비군 짐 쌀 때도 말이다!) 그리고 수학에 연관된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의외로 수학의 세계는 재미있는 부분이 너무 많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점도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이 책도 한 재미 할 듯. 



위스트르앙 부두 / 플로랑스 오브나스 / 현실문화

이 책에는 '우리 시대 '투명인간'에 대한 180일간의 르포르타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실업자에서 시급 8유로의 청소부가 되기까지의 몇 개월의 경험을 적은 르포. 얼마전에 <한겨레21>에서 몇 개월의 노숙 체험을 바탕으로 노숙인의 생활실태를 분석한 논문을 발췌해 놓은 것을 읽었다. 그것을 읽고 조금 충격이랄까, 놀라움이랄까, 혹은 찜찜함이랄까 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애써 내가 외면하려고 했던 마음 한 구석의 불길함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프랑스에서 투명해졌고, 또 동시에 많은 이들이 여전히 투명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창백한 얼굴을 늘 거울에 비춰보며, 불안감을 애써 지우며. 



선제공격 / 앨런 M. 더쇼비츠 / 바이북스

약간은 위험해 보이는 책이다. '국가 간의 전쟁에서 선제공격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먼저 이같은 일들이 실제로 매번 반복되고 있음을, 따라서 그것에 대한 어떤 고찰과 국제법적인 논의가 필요함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예를 들어 부시 행정부의 (어떤 불확실한 정보에 따른)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에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지금은 지나간 논의가 되었지만, 한국전쟁을 둘러싼 선제공격 논란도 있었다.) 원혜욱 교수의 반론도 같이 들어 있는 것으로 봐서 꽤 흥미로운,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볼 만한 논쟁거리들이 들어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 이상 어렵게 5권을 골랐다. 움베르트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도 넣고 싶었으나, 왠지 마음에 걸려서.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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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0-11-05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써놓고 다른 분들 리스트를 보니 겹치는 게 거의 없넹..;;

cyrus 2010-11-0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슈메이커, 존 배로, 플로랑스 오브나스의 책이 끌리네요.
특히 플로랑스 오브나스의 책 내용이 조지 오웰의 르포와도 흡사하고요.
그리고 지금 신간도서 후보 중 대세가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군요^^;;
이 좋은 책을 19분의 신간평가단원분이 읽으면 참 좋을텐데,,
가격이 세다보니 출판사가 선뜻 알라딘 신간도서로 제공해줄지 모르겠네요.

맥거핀 2010-11-05 22:52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위에 올린 책 중에 폴 슈메이커의 책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거든요.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읽고 싶은 마음에 선정해 봤어요. 사실 800쪽이 넘어가는 책이라 선정되어도 문제지만..^^; <궁극의 리스트>는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소장 욕구에 더 가깝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