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는 사실 조금 이상하다고 보일 수 있는 둘로 나뉜 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영화 전반, 소희(김시은)를 둘러싼 주변을 무심하게 따라가던 영화는 소희의 죽음 후,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유진 형사(배두나)가 소희가 죽은 어떤 일련의 메커니즘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를 취한다. 그러니까 사실 주인공 중에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오유진 형사는 영화가 거의 1시간이 지나가서야 실질적으로 등장하며(그 전에 한 번 살짝 스치고 지나가기는 한다) 오유진 형사와 소희는 끝끝내 만나지 못한다. 오유진 형사가 대면하는 것은 이제 시신이 된 소희일 뿐이다. 여기에 이 영화의 비극이 있다.


배두나가 '그알 유튜브'에서 말했듯이 사실 오유진은 형사라기보다는 사건의 메커니즘을 추적하는 시사고발 PD에 가깝다. 다만 '그알'과 이 영화가 다른 점은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그 당시의 소희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쩌면 (시사고발 다큐와 다른)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아닐까. 그러나 물론 이 영화 <다음 소희>의 파괴력이 단지 영화라는 매체의 힘에 기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평가가 될 것이다. 이 영화의 파괴력은, 혹은 힘은, 그러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을 남용하지 않는 것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쉬운 선택은 이것들의 순서를 뒤바꾸는 것이다. 시간을 바꾸고 가장 자극적일 수 있는 장면, 예를 들어 소희의 죽음이라든가, 아니면 소희가 콜센터에서 고통의 시간을 겪는 것을 처음으로 돌리는 선택. 심지어는 '그알'과 같은 시사고발물도 이러한 선택을 즐겨 사용한다. 가장 자극적인 장면, 가장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장면을 시작부에 집어넣고, 우리는 '어우어우, 저 나쁜놈'하며 끝까지 화면에 눈길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소희>는 끝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여학생 소희는 춤을 추고, 친구를 만나고, 학교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콜센터에 들어가고, 쉼 없이 콜을 받다가, 아니 욕설을 듣다가,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 형사 유진은 그런 소희를 시신으로 대면한 후, 그녀가 왜 죽음에 이르게 되었나를 생각하며 그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소희는 절대 플래시백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가 등장하는 것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 유진이 바라보고 있는 영상 속에서다. 다 지웠으면서도 남겨둔 자신의 춤추던 모습. 그녀가 우리에게 바라봐 주기를 바랐던 것은 그 영상이었다. 열심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던 한 인간으로의 소희.


사실 영화에서 해결된 것은 없다. 결국 유진은 소희의 시신을 부모님에게 인계할 수 밖에 없었으며, 교육부에 이르기도 전에 높은 벽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이, 아니 영화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롯이 그 켜켜이 쌓인 정직한 장면들의 힘이다. 무엇인가를 덧씌우기를 거부하고, 끝끝내 참으며 기다렸던 장면들의 힘 말이다. 말이 쉽지, 참으며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영화에 무엇인가를 덧붙이기는 쉬워도 참으며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정직하게 장면들을 쌓은 영화는 정직하고 명징한 질문을 남길 뿐이다.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덧. 

긴 시간을 출퇴근을 하면서 요새 지나간 드라마들을 보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나의 해방일지>. 이제 겨우 4화까지를 봤다. 4화의 그 유명한 '구씨'의 멀리뛰기씬. 어쩌면 별것도 아닌 이 장면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3화까지 끈덕지게 캐릭터를 천천히 소개하며 버틴 작가의 힘일 것이다. 영화와 달리 여러 화로 구성된 드라마를 보다보니 어떤 작품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 방식, 장면들을 전달하는 방식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더 글로리>가 던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주던 작은 카운터펀치들을 재빠르고 색다르게 던지며 쾌감을 쌓는 방식이라면, <나의 해방일지>는 느리게 캐릭터를 만든 다음, 그 캐릭터들이 (내 머리속에서) 헤엄치게 내버려 두는 방식이다. (물론 4화까지 본 것이니, 그 이후에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어떤 게 더 좋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방식을 꿋꿋이 어쩌면 정직하게 지켜가는 그 자체에 이 작품들의 매력이 있다. 아마도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각종 자료나 보고서에 치이면서도, 보관리스트를 꾸준히 업데이트는 하고 있었는데 한동안은 리스트에 줄만한 맛깔나는 먹이들이 없어서 흐음..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11월 말에서 12월 사이에 그런 흐으음...이 무색해지게 구미를 당기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밑에 2권의 책이 일단 무작정 사고 볼 책이라면, 이 책들은 조금씩 조금씩 탑처럼 쌓아올려야 할 책들이다. (물론 '탑처럼 쌓아올린다'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라는 지극히 밋밋한 제목과 달리 아주 흥미로워 보이는 책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가 강남 성형외과 코디로 3년간 일하면서 성형수술 당사자가 된 경험을 엮은 책이라니..이 끔찍한 혼종, 아니 이상한 조합은 뭐지?



말과 이미지에 민감한 사람들은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사고를 만들어 낸다. 솔직히 거지같은 보고서들을 계속 읽다보면 그게 내 뇌세포를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실제로 자료를 읽으면서 그런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 8비트 팩맨에 나오는 노란 먹깨비가 야들야들한 뇌세포를 잡아먹는 상상...) 이 책은 그런 뇌세포를 조금 더 맛있게 해줄 것 같다.



카메라와 스캐너의 알고리즘이 24시간 작동되는 재교육 수용소. 신장 위구르의 수용소에서 중국이 벌이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의 먼 저편에는 실리콘 밸리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끔찍한 혼종"이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다.



존 스타인벡 글, 로버트 카파 사진. 뭐 사실 이것만으로도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런 책을 읽으면 위의 책을 읽고난 후 조금은 힐링이 될 것 같아서 골라봤다. "사람들이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저녁에는 무얼 먹는지, 러시아인들도 파티를 여는지, 파티에는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또 어떻게 죽는지, 이들은 무엇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지, 이들은 춤을 추고, 노래하고, 여흥을 즐기는지, 애들은 학교에 가는지에 대해 쓴 사람은 없었다. 이런 것을 찾아내고, 사진을 찍으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과이불개'라고 하던데, 올해의 키워드를 하나 뽑으라면 '반지성주의'아닐까. (비슷한 말로는 "그래서 어쩌라고.") 신앙적 확신, 성찰 불능, 적대적 표현. 강준만이 정의한 반지성주의의 3대 요소. 우리 누구도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여러가지 쓰고 싶은 아이템을 몇 개 생각도 했었는데, 회사에 와서 여러 잡다한 것들을 보는 순간 머리 속이 싹 날아가 버린다. (이거 이상한 거 아니죠? 다들 그러시죠?) 월드컵 이란과 웨일즈전을 보면서 이런 나라들이 언제 또 만나서 축구 한 게임하겠나 싶어서 이란의 정치적 상황과 거의 60년만에 본선에 오른 웨일즈의 상황과 거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매닉스까지(이 형님들의 웨일즈 축구팀 사랑은 찐이다. 웨일즈 국가대표팀 응원가까지 내신 분들이니) 곁들여서 잡담이나 쓰려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 버렸고...최근에는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을 까는 글을 쓰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타이밍을 놓칠 것 같다. (그 글은 '진짜 도둑넘은 준이'라는 삼행시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사실 안 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월급도둑의 길은 가까우나, 내 의지력으로 향하는 길은 늘 멀다. 그게 문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2-12-14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거핀 님 너무 오랜만입니다 ^^

맥거핀 2022-12-15 08:27   좋아요 0 | URL
너무 오랜만에 와서 민망할 지경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잊지 않고 와서 인사남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따뜻한 겨울 되세요. :)

희선 2022-12-16 0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이불개가 2022년 사자성어였군요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어요 좋은 말인 듯한데 잘 모르기도 한 말이군요 잘못한 걸 알아도 잘 고치지 못하는 건 많은 사람이 그럴 듯합니다 저도 다르지 않군요

맥거핀 님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맥거핀 2022-12-19 11:07   좋아요 1 | URL
하도 오랜만의 알라딘 서재 방문이라 (민망해서) 글만 남기고 바로 사라질까 했는데 이렇게 인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고 계실까요? 말씀하신 대로 건강이 제일 중요한 건 맞지 싶습니다. 올해는 일도 바쁘기도 했고, 중간에 건강이 좀 안좋아지고 해서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희선님은 아프시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날씨가 많이 찹니다. 따뜻한 겨울 되시기를 바랍니다.

희선 2023-01-0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 많이 오고 추운 날이 오래 이어지기도 했는데, 며칠은 좀 따듯했네요 아직 눈 다 안 녹았어요 제가 사는 곳은 눈이 많이 와서... 이번 겨울에 볼 눈 다 본 걸지... 앞으로도 눈 조금 오면 좋겠네요 아직 겨울이니...

맥거핀 님 건강 안 좋을 때 있었군요 지금은 좋아지셨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3년 좋은 해이길 바랍니다 가끔 소식 전해주세요


희선

맥거핀 2023-01-06 16:45   좋아요 0 | URL
답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새해 인사도 늦었구요. 언젠가부터 날씨가 참 변덕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추웠다가 갑자기 따듯해졌다가..세상 모든 것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생각인데, 날씨도 그런 걸까요?

희선님도 올해는 아프신 곳 없이 건강하게, 좋은 일들이 생기는 한해였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특별하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은 한해가 역설적으로 좋은 해인지도 모르겠고요. 나이가 들수록 점차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도 물론 그렇구요.
 

이 달에 무조건 사야할 책 2권.



책 소개의 첫 문장을 빌려오면 이렇다. "19세기 일본 작은 마을에 사는 어느 승려의 딸인 ‘쓰네노’가 자신을 옭아매는 고향을 떠나 더 크고 광대한 세계인 에도로 향한 발자국을 추적하는 논픽션이다." 어떤 픽션도 사실 논픽션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아직도 가끔 8시 뉴스를 보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저 얘기는 분명히 누군가가 썼거나 써야만 해,라고. 무엇보다도 이런 표지의 책을 안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를 출판사의 이창동 각본집은 순서가 거꾸로다. 버닝, 시, 그리고 밀양. (그렇다면 이제는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의 차례인가?) 물론 버닝과 시는 가지고 있고, 이제는 밀양 차례다. 어떤 영화들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중반부 신애가 보이는 이상한 허영심을 예전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이런 표지의 책을 안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 장면이 어디에 있었더라?)


이렇게 생존신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양 2022-12-2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이런 표지의 책을 안 살 수는 없지 않은가. ” 저 혼자 중얼거리며 스크롤을 내리다 같은 마음에서 공감 또 공감하고 갑니다

맥거핀 2022-12-26 14:45   좋아요 0 | URL
표지가 무슨 상관인가..라는 분들도 있으시지만, 저는 꽤나 표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단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인데, 내용이 정말 좋았던 책들이 개인적으로 더 많았던 거 같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1.

모든 창작물은 무엇인가를 '미화'한다. 예를 들어 그 대상은 언뜻 보면 매우 복잡해보이는 누군가의 일대기일 수도 있고,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누구나 긍정할만한 추상적인 무엇일 수도 있으며, 혹은 전화기이거나, 달력이거나, 컵이거나 하는 (사무실 눈앞에 보이는 아무 것이나 쓰고 있다) 무생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안기부일수도 있다. 아니, 벌써부터 화를 낼 필요는 없다. 나는 '단지 예를 들고 있을 뿐이지' 안기부에 대한 미화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단 '미화'라는 단어에는 면죄부를 주고 싶을 뿐이다. 사실 최고의 예술작품은 역설적으로 '고도'의 미화가 성공했을 때 나오는 법이기도 하니까.


2.

즉 다시 '예를 들어 말하자면' 진짜 그 드라마가 안기부나 독재정권을 미화하고자 하는 것이라면(물론 사실은 안기부나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1로 돌아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럼 무엇을 미화합니까?), 나의 관심은 그런 것을 미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미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미화의 양상이나 미화의 성공 여부에 있다. ("호오, 용케 그런 것을 미화하려고 생각했군. 근데 미화를 잘 하기는 한 건가?")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논쟁, 이 드라마가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혹은 무엇인가 매우 잘못된 것을 미화하고 있다,라는 주장에 조금은 나는 비껴서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드라마를 자세히 보지도 않았거니와 자세히 본다고 해도 잘 모를 것 같다. 아직 2회밖에 하지 않은 드라마에 그것을 정확히 말할 수가 있나? 영화로 따지자면 초반 10분을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

그런데 여기서, 그러니까 방영 중지! 이렇게 얘기가 돌아간다면 나는 그것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아직 2회밖에 하지 않았으니까 판단하기가 어렵고, 그러니까 방영을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창작자가 아닌 타인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창작자가 아닌 이들이 어떤 창작물에 대해 최고의 형벌을 내리는 것은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넘어서는 폭력을 저지를 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주어지는가?


덧.

별 시덥잖은 길지도 않은 글을 1과 2와 3으로 나눈 이유는, 이 모든 것이 혼재되어 돌아가는 지금의 논란에 머리가 아파서다. 1과 2와 3을 나눠서 생각하는 것, 그것부터가 일단 시작인 것 같다. 단지 나는 그냥 2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창작물이 아닌 논문의 경우지만, 굳이 아래의 글을 덧붙여 봄.

(그리고 한 가지 더, 촘스키는 유대인이다.)


1979년, 프랑스 리용2대학에서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로베르 포리송 박사는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거짓말”이며 “히틀러에 목숨을 잃은 유대인은 다행스럽게도 한 사람도 없었다”는 논문으로 법정에 기소되었다. 그러자 박해를 받지 않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요청하는 국제적인 탄원서가 작성되었다. 촘스키는 친구의 요청으로 500명의 서명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서명자 가운데 그가 가장 유명했던 탓에 프랑스 언론은 이 탄원서를 ‘촘스키 탄원서’라고 불렀다. 촘스키는 이 일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자, 네오나치주의자, 유대인을 혐오하는 인종주의자로 낙인 찍혔다. (중략)


드니 로베르와 베로니카 자라쇼비치가 촘스키와 했던 인터뷰를 정리한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시대의창,2002)에서 촘스키는 “나는 포리송의 글을 전혀 읽지 않았”으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데 그 내용을 검토할 이유는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포리송이 “반유대주의자고,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정말로 신나치주의자라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표현의 자유까지 박탈당해서는 안 되며, 표현의 자유는 어떤 이유로도 제한될 수 없는 권리”이다.


[장정일 칼럼] 촘스키가 반유대주의자 처벌을 반대한 이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4291485267270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희선 2021-12-2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 님 오랜만이네요 드라마 이야기 잘 모르지만, 방영 중지 이야기까지 나왔군요 지금 기사 보니 어떤 시민단체에서 그 드라마 방영 중단 가처분 신청했다는 말이 있네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면 좋겠지만, 역사가 들어가면 그러지 않는 듯합니다

중국에서 만든 영화 지난해였나 올해였나 꽤 많이 봤다는데, 그것도 그런 거 있다고 하더군요

며칠 전에 맥거핀 님을 잠깐 생각했는데,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곧 성탄절이네요 저는 늘 똑같은 날이지만, 성탄절 마음 따듯하게 보내시고 남은 2021년도 잘 보내세요 늘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맥거핀 2021-12-23 11:37   좋아요 1 | URL
희선님도 잘 지내시죠? 요새 너무 발길이 뜸했습니다. 알라딘은 책 살 때 외에는 요새 거의 잘 안들어와 보는 것 같아요. 희선님도 성탄절 잘 보내시고 몸건강 마음건강 잘 챙기시면서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뭐 꼭 그 드라마 얘기라기보다는 제 생각에는 조금 너무 지나친 것 같아서 잠깐 짬을 내어 끄적거려 봤습니다. 물론 뭐 동의하시지 않는 분이 더 많을 얘기라고는 생각합니다. :)

희선 2022-01-0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날이에요 몇 분 뒤면 둘째날이군요 쓰다가 둘째날로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새해 첫날도 게으르게 지냈네요 이런저런 꿈을 꾼 듯합니다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맥거핀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늘 하던 거 하기... 이번에는 별로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지난해에도 별로 못했군요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맥거핀 2022-01-03 10:57   좋아요 0 | URL
희선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준점이라는 게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뭔가 놀라운 것, 큰 변화, 이런 것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런 거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저 조금씩 나아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지난해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
 



지난 번 이상문학상과 관련한 짤막한 페이퍼에 썼던 문단 경력 10년차 이상 소설가의 소설만을 심사 대상으로 한다는 부분이 아무래도 조금 이상하여 여러 내용을 찾아보다가 나온 기사 하나.


이상문학상 심사에 문제 있어. 과도한 자사 문예지 밀어주기부터 수상에 대한 비판까지 (링크 클릭)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755


요약하자면, 첫째, 최근 이상문학상 수상작의 30% 정도가 자사 문예지 월간 <문학사상>에 발표된 소설들이다. 둘째, 수상자의 경력과 연령대 구성에도 의문이 있다. 셋째, 대상을 받은 이승우 작가의 수상소감이 아쉽다. (관심있으신 분은 기사를 한번 읽어보시길.)


이승우 작가의 수상소감에 대한 부분은 조금 너무 나간 부분이 있는 것 같고, 둘째 부분은 사실 의혹이긴 하나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설혹 이유가 있다 해도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 성 싶지는 않다. 다만, 첫 번째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조금 문제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2017년부터 최근 4년간 대상을 포함하여 선정되는 소설은 매년 총 6편 정도. 그 중에 매년 꼬박 2편씩 자사 문예지 <문학사상>에 발표된 소설들이 선정되었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대상을 받은 소설들은 모두 <문학사상>에 발표된 소설이었다. 이쯤되면 수상의 공정성이 당연히 의심될 수밖에 없다. 이게 사실이라면 책 뒤편의 각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과 심사 과정에 대한 장황한 글은 다 뭐란 말인가.


글쎄, 관행일까. 위 기사에 나온대로 창비에서 주는 신동엽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고 하니 일종의 관행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문학상도 이미 방송사 연말 시상식처럼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신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린, 가끔은 보고 있는 게 민망해지는 방송사들의 연말 시상식. 그래도 방송사 시상식들은 허허 그러려니, 하고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멍하니 보고 있을 수도 있지만, 문학상이 이렇게 되어가는 건 아쉽다. 특히 가장 권위있다고 알려진, 혹은 그래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상문학상이 그렇다는 것은 더 아쉽다.


한국문학은 이래저래해서 안 본다, 하는 분들한테는 가끔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찾아보면 좋은 작가들 꽤 있기는 한데, 그런 마음. 그러나 그저 이렇게 자신들만의 민망한 잔치가 되어 간다면 그런 마음이 점차 줄어드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좋은 소설'을 (그런 이러저러한 것이 개입되지 않은) '좋은 소설'로서 남겨놓는 것이 그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드러내 보이고, 그것이 결국 독자들을 붙잡아두거나 끌어온다는 점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21-02-0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다고 했다가, 아쉽다고 했다가 엉망이군.

희선 2021-02-05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 받은 작품이 어디에 실린 건지 몰랐습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는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주는 상 후보라는 말을 먼저 하기는 하더군요 그것도 본래 다른 잡지에 실린 걸 문학과지성사에서 보고 소설 보다에 싣는 거겠습니다 거기 실린 작품이 다른 데서 상 받기도 하더군요 그럴 때는 문학과지성사 상은 못 받는가 한 적 있는데...

상이 좀 그렇지요 그런 거 생각한 적은 없지만... 팔이 안으로 굽을 때 많다는 말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소설 보는 게 좋을 듯해요 상 받았구나 하고 볼 때도 있겠지만...


희선

맥거핀 2021-02-05 15:19   좋아요 1 | URL
뭐 이렇게 되면 될수록 상의 권위라는 게 점차 떨어지는 거겠지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인데, 저만 몰랐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기본적으로 생각이 조금만 있다면 일부러라도 자사 문예지에 실린 소설들을 배제할 법도 한데, 이렇게 대놓고 한다는 것은 뭐랄까요...기본적으로 그게 문제라는 인식을 아예 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작년에 사건도 결국 그게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거구요.
저도 상을 받았다고 그 작품을 일부러 보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좋은 소설은 아닐까...하는 약간의 믿음은 있거든요. 그런데 조금 실망스럽네요.

2021-02-11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