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자료나 보고서에 치이면서도, 보관리스트를 꾸준히 업데이트는 하고 있었는데 한동안은 리스트에 줄만한 맛깔나는 먹이들이 없어서 흐음..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11월 말에서 12월 사이에 그런 흐으음...이 무색해지게 구미를 당기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밑에 2권의 책이 일단 무작정 사고 볼 책이라면, 이 책들은 조금씩 조금씩 탑처럼 쌓아올려야 할 책들이다. (물론 '탑처럼 쌓아올린다'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라는 지극히 밋밋한 제목과 달리 아주 흥미로워 보이는 책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가 강남 성형외과 코디로 3년간 일하면서 성형수술 당사자가 된 경험을 엮은 책이라니..이 끔찍한 혼종, 아니 이상한 조합은 뭐지?
말과 이미지에 민감한 사람들은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사고를 만들어 낸다. 솔직히 거지같은 보고서들을 계속 읽다보면 그게 내 뇌세포를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실제로 자료를 읽으면서 그런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 8비트 팩맨에 나오는 노란 먹깨비가 야들야들한 뇌세포를 잡아먹는 상상...) 이 책은 그런 뇌세포를 조금 더 맛있게 해줄 것 같다.
카메라와 스캐너의 알고리즘이 24시간 작동되는 재교육 수용소. 신장 위구르의 수용소에서 중국이 벌이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의 먼 저편에는 실리콘 밸리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끔찍한 혼종"이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다.
존 스타인벡 글, 로버트 카파 사진. 뭐 사실 이것만으로도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런 책을 읽으면 위의 책을 읽고난 후 조금은 힐링이 될 것 같아서 골라봤다. "사람들이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저녁에는 무얼 먹는지, 러시아인들도 파티를 여는지, 파티에는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또 어떻게 죽는지, 이들은 무엇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지, 이들은 춤을 추고, 노래하고, 여흥을 즐기는지, 애들은 학교에 가는지에 대해 쓴 사람은 없었다. 이런 것을 찾아내고, 사진을 찍으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과이불개'라고 하던데, 올해의 키워드를 하나 뽑으라면 '반지성주의'아닐까. (비슷한 말로는 "그래서 어쩌라고.") 신앙적 확신, 성찰 불능, 적대적 표현. 강준만이 정의한 반지성주의의 3대 요소. 우리 누구도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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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쓰고 싶은 아이템을 몇 개 생각도 했었는데, 회사에 와서 여러 잡다한 것들을 보는 순간 머리 속이 싹 날아가 버린다. (이거 이상한 거 아니죠? 다들 그러시죠?) 월드컵 이란과 웨일즈전을 보면서 이런 나라들이 언제 또 만나서 축구 한 게임하겠나 싶어서 이란의 정치적 상황과 거의 60년만에 본선에 오른 웨일즈의 상황과 거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매닉스까지(이 형님들의 웨일즈 축구팀 사랑은 찐이다. 웨일즈 국가대표팀 응원가까지 내신 분들이니) 곁들여서 잡담이나 쓰려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 버렸고...최근에는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을 까는 글을 쓰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타이밍을 놓칠 것 같다. (그 글은 '진짜 도둑넘은 준이'라는 삼행시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사실 안 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월급도둑의 길은 가까우나, 내 의지력으로 향하는 길은 늘 멀다. 그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