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진화론 - 창작의 원리에서 도구까지 위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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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창작의 원리에서 도구까지 위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저자 - 이인화

 

 






 


  원래 저자나 책 소개를 미리 접하지 않고, 제목과 부제로 내용을 추측하면서 읽기를 좋아한다. 예상대로라면 ‘역시 난 천재!’라고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역시 세상은 넓어‘라면서 감탄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읽으면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1장을 볼 때까지는 책을 쓰려는 사람이나 그것에 대해 비평하려는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서사 창작의 구도라든지 표상 발전 방법론, 205가지나 되는 모티프의 설명과 작품 예시 등등, 창작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이론들이 간략하게나마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문학 입문서인가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물론 중간에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도표가 간혹 나왔지만, 전공자들은 이런 걸 배우는 가보다라며 넘어갔다.

 


  그러다 2장에서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고 하여, 컴퓨터로 창작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었다. 음, 1장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도표는 바로 그런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

 


  마지막 3장에서는 외국과 한국의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 현황과 사용 빈도, 그리고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도구인 ‘스토리 헬퍼’의 사용법 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우선 창작을 하려는 사람은 프로그램에서 시키는 대로, 만들고 싶은 영화의 장르와 영화 타깃, 인물의 성격과 배경, 그리고 대응 유형, 영화가 전반적으로 말하고자하는 전략적 드라이빙 모티프를 입력한다. 그러면 그가 원하는 작품과 유사성이 있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등등이 추천된다. 이때 창작자는 그것을 약간만 변형을 주어 재사용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르게 바꿀 수도 있다. 저자는 여기서 영화 ‘늑대와의 춤을’과 ‘아바타’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했지만, 난 두 작품 다 접하지 않았기에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유용하고 실용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면 최악의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들었다. 창작하고픈 욕망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좋은 쪽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교묘하게 표절을 비껴가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기본 모티프와 서사 구성은 비슷하지만, 다른 요소들이 다르다고 항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선설적 인간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이라면, 그런 유사성이 높은 작품들이 나오면 그걸 피해가면서 새로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성악설적인 인간들도 득실대고 있다. 그러니 여러 작품들을 짜깁기해서 창작이라고 만들어낼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 이후로 진정한 창작은 없다’는 말을 내뱉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과연 그런 프로그램에 의존해서 만들어낸 작품이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런 프로그램을 창작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모르겠지만, 전적으로 의존해서 작품을 만든다면? 그러니까 인물의 갈등이나 감정으로 인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입력한 내용대로 프로그램에서 출력한 사건에 개연성을 주기 위해 창작자가 인물의 심리나 갈등을 써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창작물들이 우리가 명작을 보면서 느꼈던 인간의 고뇌나 삶에 대한 고찰을 줄 수 있을까?

 


  앞으로 20년 내에 사라질 직업군에 전문 작가가 들어있는 표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라면서 비웃었지만, 이 책을 보니 어쩌면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의 후손들은 어떤 느낌으로 창작물을 만들거나 접하고,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창작이라는 말은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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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실천윤리
피터 싱어 지음, 노승영 옮김 / 시대의창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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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How Are We to Live?, 1993

  부제 -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실천윤리

  저자 - 피터 싱어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다른 책이 생각났다.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그리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두 저자는 알기나 하고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그리고 다른 궁금증이 줄줄이 들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이렇게 살면 괜찮지 않을 삶’은 과연 어떤 걸까? 또한 저자가 ‘괜찮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삶’은 어떤 걸까? 이 책이 처음 나온 지 20년이 지났는데, 다시 나오는 이유는 무얼까?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까? 그래서 여전히 이렇게 살면 괜찮지 않다고 저자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저자가 보기에 그 때와 변함이 없을까 아니면 더 나빠졌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자가 괜찮다고 하는 삶이 진짜 괜찮은 걸까? 그러니까 선진국들이 자기들은 개발을 다 해놓고 개발도상국들에게 환경 오염문제가 심각하니까 너희들은 개발을 자제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처럼,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책은 아닐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런 논리를 펼치는 사람이나 책이다. 현대 사회는 물질을 추구한다. 그런데 간혹 물질을 추구하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 손 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가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더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흔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 사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하지만, 글쎄? 난 아직까지는 배부른 돼지가 더 끌린다. 꼭 내가 돼지띠라서 그런 건 아니다.

 


  이 책도 약간 그런 방향으로 흐를 뻔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하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거기에 몇 가지를 더 첨부했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지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바로 윤리와 도덕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지나친 개인주의가 어떻게 변질되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었다. 이를 위해 각 종교와 철학의 인식 변화까지 다룬다. 그리고 도덕과 윤리란 무엇인지, 도덕적인 삶이라는 게 뭔지, 윤리를 지켜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역시 철학과 역사적 예를 들면서 설명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이론을 얘기하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들어 보이며, 지나치게 강조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도 말한다. 특히 칸트의 정언 명령에 대한 부작용은 상당히 놀라웠다. 하긴 인간의 창의력과 응용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전혀 연관도 없이 기승전병으로 이루어진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철학자들의 이론이 악용되는 일이 없으면 더 이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현대 철학이 어떻게 나아가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대의 교육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지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현대 한국의 교육은 친구를 밟고 넘어서야하는 것을 알려주니 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저자의 말대로라면, 아이들에게 로또 1등이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고,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양심에 따라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 혼자 교통 규칙을 지키고 잘 다닌다고 해도 어느 순간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뛰어들지도 모르는 게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마구 규칙을 어기면서 다닐 수는 없다. 모두가 다 마음대로가 아닌,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기 때문에 통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괜찮은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모두가 다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면서 사는 세상. 그런데 그 최소한의 규칙에서 우리는 꽤나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뭐였는지 잊은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꼭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이 떠오른다. 오늘밤에도 들으면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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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프레드 로델 지음, 이승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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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oe Unto You, Lawyers!, 1939

  저자 - 프레드 로델

 

 

 




 


  이 책의 초판 발행일은 1939년도이다. 헐, 어머니와 나이가 똑같다.

 


  지금까지 어머니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 태어나서 유년기 때는 6.25 전쟁을 겪으셨고, 이후 이승만 정권 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박정희 정권 때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셨다. 그러니까 제국주의와 전쟁, 독재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까지 두루 겪으신 것이다. 외형도 많이 변하셨고, 여러 가지 외적인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아가에서 소녀, 아가씨, 새댁 그리고 누구 엄마를 거쳐 누구 할머니까지 많은 이름을 가지셨다. 하지만 겉은 변했을지라도, 내적인 면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 본 어머니와 지금 나이가 들어서 보는 어머니는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그러면 어머니와 동갑인 이 책은 어떠할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930년대의 법과 2014년의 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적어도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을 보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법과 그것을 다루는 법률가의 본질은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시대 변화에 맞춰서 조항이 추가되고 이름이 바뀐 것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법과 사람은 비슷한 것 같다. 그 본질적인 면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긴 그건 당연한 것 같다. 사람도 이리저리 우왕좌왕 줏대 없이 굴면 간사하고 박쥐같은 인간이라고 배척을 받는다. 법도 마찬가지로 어떤 달은 모두가 다 징역형을 받고, 다른 달에는 똑같은 사안인데 벌금형을 받는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확고한 중심을 가져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그 법을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과연 법이 그러한가?’하는 의문을 던진다. 법이 진짜로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누구나 다 공감하며 믿을 만한 것인지, 법률가들은 명확하고 명쾌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저자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서 얘기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곳곳에 법률가들과 법에 대한 회의가 가득하다. 특히 1장을 펼치자마자 나온 문장은 인상적이다.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p.21


  헌법 어구의 부정확한 해석, 관할권과 관련된 공허한 일반 원칙에의 호소, 모순된 현실에 아랑곳없는 조세 명칭에 대한 집착, 논점과 한참 멀리 떨어진 내용을 다루었던 오래전 사건의 흐리멍덩한 언어가, 법률가의 멍청한 허장성세와 함께, 연방 대법원이 한 덩어리의 헌법률을 구축하는 기초로 봉사했다. - p.148.


  그러므로 ‘정의’라는 개념을 법적 문제의 해결에 적용하고자 하는 법률가나 법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 p.210

 


  가끔 뉴스를 보면, 왜 재판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과연 자기들 가족이 비슷한 일을 당해도 저런 판결을 내릴까하는 분노를 느낄 때도 있다.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법은 그것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법의 일관성과 확실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례에 오랫동안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원칙에 근거해야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사람이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지만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법도 기본적인 것은 유지돼야 한다는 말인가 보다.

 


  하지만 그 부분을 읽으면서, 뭔지 모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본적인 것은 당연히 바뀌면 안 된다. 하지만 그걸 조금 융통성 있고 시대에 맞춰 적용시키는 방법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꼭 그렇게 꽉 막힌 방식을 고집해야하는 걸까? 이건 어쩌면 내가 법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서 이 책의 서문에서 한 판사가 법이 너무 난해하고 어려운 용어로 되어있다고, 그래서 일부 아는 사람들만 알 수 있고, 그들이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비난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 역시 법률가들을 현대의 주술가라고 표현했고 말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지만,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눈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이니 말이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그에 따른 법규도 많아지고, 클릭 한 번 잘못하면 뭔가 불이익이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알아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아, 그래서 법률용어가 어려운 거구나. 공부하기도 어렵고 말이다. 누구나 다 이해하고 적용하기 쉽다면 법률가들이 필요가 없어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아, 그렇게 보면 70년 전의 세상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단지 과학 기술만이 발전했을 뿐이지, 다른 부분은 퇴보했거나 머물러있는 것 같다.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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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세계사 2 : 중세 이야기 - 교과서 속 세계사 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
김민우 지음, 이창우 그림, 역사사랑 감수 / 계림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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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교과서 속 세계사 이야기 중세 이야기

   저자 - 김민우

   그림 - 이창우

   감수 - 역사사랑

 

 

 

 

  이 책 1권을 작년 막내 조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골랐었다. 그리고 올해는 2권! 음, 이 책이 5권짜리니까 속도를 좀 내봐야겠다. 1권의 배경이 고대였다면, 2권은 중세를 다루는데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과 동양을 다 아우르고 있고, 또한 중세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많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물론 자세히가 아니라 간략하게 이야기되고 있어서, 어렵다는 생각은 안든다. 각 장 끝부분에 다른 그림 찾기나 관련이 없는 그림 찾기 같은 퀴즈가 들어있는 게 독특했다. 다만 문제가 너무 쉬웠다.

 

 



  『1장 큰 변화 속의 동아시아』는 중국과 일본을 다루고 있다.  중국 한나라부터 삼국시대, 진나라를 거쳐 위진남북조에다가 수나라 당나라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위에서도 말했지만 자세한 문화라든지 정치적 특징,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등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대신 각 나라의 특징만 알려주고 있다. 아!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고구려를 공격하다가 망한 수나라 정도로만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일본 역시 큰 줄기만 보여주고 있다.



  『2장 다양한 문화 속 인도와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특히 베트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인도 부분에서는 힌두교라든지 이슬람 같은 종교적인 얘기의 비중이 높았다. 특이한 것은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다른 책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았는데, 특이했다.




  『3장 사막에서 세계로 뻗어 나간 이슬람』은 이슬람교의 창시부터 발전까지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중동지방이라 불리는 지역의 문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 부분에서 이미 이슬람에 대해 나왔는데, 여기서 다시 처음부터 말하고 있어서 순서를 바꾸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구성을 지역별로 나눠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4장 크리스트교와 중세 유럽』은 유럽에 세워진 프랑크 왕국과 동로마 서로마의 분열 그리고 십자군 전쟁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이후 유럽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간단하게 서술한다.

 



 

  음, 이번 2권은 좀 실망스러웠다. 너무 많은 정보를 담으려고 해서인지, 좀 산만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미 이슬람교에 대한 얘기가 2장에서 나왔는데, 3장에서 이슬람교의 시작을 다루고 있는 등 뒤죽박죽 느낌도 들었다. 시대를 약간 세분화시키는 게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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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프의 개 - 심리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50가지 실험
애덤 하트데이비스 지음, 이현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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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심리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50가지 실험

  원제 - Pavlov's Dog, 2015

  저자 - 애덤 하트데이비스

 

 

 



 

 

  ‘파블로프의 개’라는 말은,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대표하는 상징어라고 할 수 있다. 교과서에도 실리니까 말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심리학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고리타분하고 어렵기만 한 심리학 이론보다는, 지금까지 학자들이 해온 다양한 실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심리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기까지 행해졌던, 그 중에서도 특히 커다란 의미를 갖는 50개의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책은 심리학이 생겨난 180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총 여섯 단계로 나누었다.

 

 

  첫 번째 장은 『심리학의 태동: 1848~1919년』으로 주로 동물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졌던 시기를 말한다. 다윈이나 손다이크,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파블로프 같은 과학자들이 동물을 이용해 여러 가지 인지 실험을 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장인『행동주의의 도전: 1920~1940년』처럼, 인간에 대한 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동물과 인간을 이용해, 여러 가지 다양한 가설을 확인해보는 단계였다. 여기서 ‘아기 알버트’ 실험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생후 9개월 된 아기를 대상으로 공포감을 인공적으로 심어줄 수 있는지 연구한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개가 아기로 대체된 것 같았다.

 

 

  그러다 학자들의 관심사가 행동에서 마음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장인『변화하는 관심사: 1941~1961년』이 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인지부조화라든지 이명의 원인, 동조 실험 등등을 통해 다른 이와의 상호관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려고 한 모양이다. 이때에도 인간은 물론 원숭이를 이용한 실험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린아이들과 원숭이는 무슨 죄가 있어서…….’라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마음과 뇌와 다른 이들: 1962~1970년』은 네 번째 장인데, 여기서는 집단과 개인의 상호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특히 권위에 대한 개인의 복종불복종에 대한 심리적인 원인을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밀그램 실험이라든지 병원 실험 등은 부적절한 명령을 내리는 상사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지가 주된 연구였다. 역시 어린 아기들에 대한 실험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앞 시대에 있었던 개인과 복종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지고, 그에 따라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것에 무엇이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려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때를『인지 혁명: 1971~1980년』이라고 저자는 정의 내렸다. 다섯 번째 장이다. 단지 역할을 맡은 것만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는지 연구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과 맨 정신으로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실험, 상벌의 부작용 등등. 인간이 내리는 결정이 반드시 논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여섯 번째 장은『의식 속으로: 1981년~』으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초감각과 같은 분야를 다루는 요즘의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행동과 인지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가 되었다고 생각해,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것 같다.

 

 



  연도별로 나누어 놓으니, 학자들의 관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파악하기 쉬웠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서 안으로 파고들어간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는 어떤 분야를 연구할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이론과 가설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대중을 현혹시키는 상업 광고나 정치인들의 말장난 또는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에 사용되는 건 아닐까? 물론 좋은 쪽으로도 쓰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조삼모사처럼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쪽으로는 사용되지 않기를 빌어본다.

 

  책을 읽으면서, 실험체가 되었던 동물들과 사람들에 대해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반드시 살아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해야 실험이 이루어지는 건 알겠지만, 그 이후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과연 이후 정상적인 삶이 가능했었는지, 아니면 실험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지는 않았는지. 특히 어린 아기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실험을 한 연구진뿐만 아니라,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도 기록에 남겨야 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없었으면 실험은 가능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이 리뷰를, 실험에 참가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 거절은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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