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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15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7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百鬼夜行抄, 1995
작가 - 이마 이치코
『아버지의 마중』은 허물 예정인 도서관의 마지막 강좌에 참석한 ‘리쓰’와 ‘즈카사’에게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어릴 적 리쓰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귀신 그림을 보고 홀릴뻔했던 기억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요괴들의 장난에 당황해하던 리쓰는 한 여인을 만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여인과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부로’를 그리워하는 ‘아키라’, 두 사람의 마음이 안타깝게 다가왔던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가규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자손들은 고생이 많다. 아,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된 작품이기에 가능한 트릭이 숨어있었다. 초반에 ‘음? 왜?’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연결될 줄은 몰랐다. 작가의 소소한 함정이 재미있었다.
『도깨비 탈』은 주소를 착각해 잘못 들어간 ‘나츠키’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 근처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그녀는 자기가 가면을 쓴 범인을 목격했다고 생각했다. 한편, 리쓰의 대학 동기인 ‘콘도’의 소개로, 리쓰와 콘도 그리고 나츠키와 그녀의 친구 ‘마리코’는 소개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츠키는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다는 얘기를 꺼내는데….
악의 없는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주제를 가진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씁쓸한 결말을 보여줬다. 나츠키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정의감이 있는 것 좋았지만, 조금만 더 침착하고 신중했으면 어땠을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문제없다는 얘기가, 그리고 선의의 피해자라는 단어가 얼마나 의미 없는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버려진 들판』은 어느 날 깨어나니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린 ‘쇼’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를 어린아이처럼 대한다. 그리고 리쓰는 그에게 자기 집에서 가져간 물건을 내놓으라 얘기하는데……. 빙의에서 전생 그리고 윤회에 주술로 이야기가 계속해서 변해가는데, 어쩐지 그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어떻게 들으면 로맨틱한데, 또 다른 상황에서는 오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붉은 실』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아이’의 이야기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몸에 감겨있는 붉은 실을 볼 수 있었다. 그게 뭔지 물어보는 아이에게 엄마는 사람들이 운명의 상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표라 얘기해준다. 부모를 잃은 아이는 큰아버지 부부의 보살핌으로 성인이 되었는데, 두 사람은 그녀를 자기들의 딸로 입적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에게는 입적하면 죽는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오는데…….
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내 소원이 놀고먹는 백수이고 날로 먹는 걸 좋아하지만, 그 때문에 가족에게 해를 입힌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짓을 저질렀다. 붉은 실은 대개 운명의 상대와 연결된 거라는 속설이 있는데, 여기서는 다른 개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난 이게 더 마음에 든다. 하아, 어린 시절 여장한 리쓰는 너무도 귀여웠다.
『검은 천장』은 리쓰의 친구인 콘도의 이야기다. 전날 밤 리쓰가 그를 위해 ‘원령초롱불’이라는 걸 켜줬는데, 그 때문에 길이 꼬여버렸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흘린 돈 때문에 콘도는 누명을 썼고, 엉겁결에 리쓰도 휘말리고 만다. 게다가 돈 주인의 집에는 엄청난 결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리쓰의 삼촌인 ‘카이’도 연관이 있었다. 카이는 부동산 업자와 손을 잡고,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집을 정화해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돈 주인의 집에 거대한 요괴가 나타나는데…….
우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은 카이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요괴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원한이나 미련을 품고 죽은 인간만이 요괴가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예전에 우리 전설에도 오래된 물건이 도깨비로 변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건 일본도 비슷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냥 오래되었다고 물건이 변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곁들여져야 가능한 것 같다. 아, 그런 건 서양 호러 영화에도 비슷한 설정이 있다. 집이나 자동차 같은 것이 악의를 품은 뭔가로 변신하는 것 말이다. 흐음, 그렇게 따지면 모든 것의 원인은 역시 인간이라고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