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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부제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저자 - 추이칭
중국 문학은 ‘서유기’와 ‘삼국지’ 정도에서 멈춰있기에, 역시 이 책의 주인공인 샤오홍이라는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샤오홍은 1930년대에
활동을 한 여류작가로 본격적으로 집필한 10년 동안 1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홍콩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이 책은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다간 샤오홍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이다.
부제와 어울리게, 이 책은 그녀가 일생동안 만나고 사랑했던 일곱 명의 남자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우선은 그녀의 어린 시절, 어린 손녀를 사랑하고 지켜줬던 ‘할아버지’. 그와 함께 성장하면서 샤오홍은 여러 가지 추억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추억들은 후일 그녀의 작품에서 배경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학창 시절 첫사랑이었던 ‘루쩐쑨’. 집안에서 정해주는 남자가 아닌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사랑의 도피까지 했지만,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둘 사이는 끝이 난다. 할아버지는 그녀의 정신적인 고향이었고 아련함과 추억이라면, 루쩐쑨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 대해 뼈저리게 깨우쳐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두 번이나 약혼을 파기하고 도망간 샤오홍을 돌봐줬던 ‘왕언지아’. 솔직히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결혼을 앞두고 두 번이나 도망갔던 여자가
길거리에서 고생하고 있으면 속으로 고소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짧은 동거
생활 역시 끝이 난다. 돈을 빌리러 집으로 갔던 그에게서 소식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임신한 몸으로 혼자 여관에 남게 된 샤오홍.
그런 그녀에게 나타난 남자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샤오쥔’이었다. 그녀가 보낸 칼럼을 읽고 문학적 재능을 알아준 사람이었다. 그와 지내면서
샤오홍은 본격적인 문학가로 활동하고, 다양한 문인들과 친분을 맺는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는다. 샤오쥔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어쩌면 작가로 명함도 못 내밀어보고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수 있는 계기를 이끌어준 존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경쟁을 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마초 정신이 강한 남자라면,
자기가 여자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거기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샤오쥔은
샤오홍에게 손찌검을 할 때도 있었다. 이런 나쁜 XX! 여자를 때리다니!
이때 샤오홍에서 나타난 남자가 있었으니, 문학청년을 꿈꾸는 ‘두안무홍량’이었다. 이 둘의 만남은, 지인들에게서 지탄을 받게 된다. 샤오홍은
샤오쥔의 여자였기에, 두안무가 사이에 끼어들어 선배의 여자를 빼앗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안무는 샤오홍과 결혼을 하고, 그녀가 글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샤오홍이 결핵에 걸려 병원에 있는 동안, 그는 돈을 벌어야 했다. 혼자 병실에 누운 샤오홍은
외로워했다.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는 건 머리로 알고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그녀를 위로해준 것은, 동생의 추천으로 알게 된 후배 작가 ‘뤄빈지’였다. 그는 병상에 누운 그녀를 간호해주면서, 그녀의 마지막을 지켰다.
물론 이 때 샤오홍은 두안무와 혼인 상태였다. 불륜인가……. 아니면 바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남자는 ‘루쉰’이었다. 그와 샤오홍의 관계는 보통 선후배 작가 사이라기보다는 아빠와 딸 같은 관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녀의 재능을 처음 알아본 것이 샤오쥔이었다면, 그 재능에 양분을 부어주고 싹이 자랄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루쉰이었다. 언제나 그녀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그녀의 작품에 추천사를 써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켰다.
작가라는 것을 빼고 보면, 참 남성 편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삶이었다.
생각해보자, 한 여자아이가 있다. 어린 시절 집안에서 정한 남자가 싫다고 학교에서 만난 선배랑 눈 맞아 도망갔다가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오고, 다시 결혼할 생각하니 싫어서 도망치고. 그러다가 파혼한 약혼자를 만났는데 사람이 알고 보니 괜찮아서 살다가, 남자가
행방불명. 만삭의 몸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한 남자를 만나서 동거 시작. 그런데 그 남자가 좀 고집이 세고 걸핏하면 여자를 무시하고
폭력을 써서 정떨어지고 있을 때 쯤, 다정다감한 남자가 나타나 따뜻하게 대해주니 홀랑 마음이 가버린다. 그 사람과 결혼까지 해서 잘 사나
싶었는데, 전쟁 중 집안이 기울면서 설상가상 그녀는 병원에 입원. 남자가 병원비 마련한다고 잘 와보지도 않으니까 또 마음이 흔들린다. 마침
동생이 소개한 후배가 ‘선배 아프지 마요.’라고 다가와 잘 해주니까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그녀가 낸 결론은 이거다. ‘사랑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따뜻한 위로와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나쁘게 말하면 돈 벌어오는 남자
따로, 옆에서 챙겨주는 남자 따로……. 아침 드라마 소재로 딱인 것 같다. 이 때 후배가 재벌집 후계자로 실장님이면
금상첨화.
어쩌면 그녀는 일처다부제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은 돈 벌어오고, 한 명은 옆에서 다독여주고, 한 명은 문학적 조언을
해주고 등등. 저자는 그녀가 아버지나 새어머니에게서 제대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몰라 애정 결핍에 걸려서
그렇다는 식으로 서술을 해놓는데, 흐음.
결국 그녀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 자신만 사랑했을 뿐이다. 단지 그녀에게 잘 해주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면 아무나 다
좋은 것이었다. 어리광쟁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글을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미성숙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과 애정, 보살핌을 갈구하여 그것을 주는 사람을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고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고향에서 가족들에게 말했던 ‘평생 남의 말을 들으면서 살 수 없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가고 싶은 길을
가며,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결국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 주위 사람들은 남자들이었다. 그렇게 얽매이고 싶지 않아
도망쳤던 남자라는 존재의 도움으로만 살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그녀가 원하는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음,
그러니까 놀고먹으면서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거였을까?
아! 그리고 저자의 지나친 감정 이입 강요가 조금은 역효과가 난 것 같다. 읽으면서 '그건 저자님 마음이죠'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