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은행에 대해 무지하구나

 

 

어머니와 함께 어느 은행에 간 적이 있다. 어머니가 들어 놓은 예금이 만기가 되어 다른 금융 상품으로 계약을 하러 간 것이다. 어머니가 내게 같이 가 달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보다 젊은 내가 따라가면 더 현명한 계약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은행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30대 후반(또는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팀장이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며 자기의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그리고 새로 계약하면 좋을 금융 상품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는데 꽤 똑똑하게 말을 잘했다. 그 많은 상품에 대해 어떻게 외워서 그렇게 잘 말할 수가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그 사람이 가진 ‘직업적 유능함’이란 무기가 화려한 빛을 뿜어내어서 나를 기죽게 만들었다. 키가 작은 편이고 약간 뚱뚱한 체격으로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는 내 눈에 무척 멋있어 보였다. 각 금융 상품 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나는 잘 몰라서 어머니에게 어떤 조언도 해 줄 수가 없었다. 펀드상품이나 신탁상품을 비롯하여 내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것들도 많아서 뭐가 뭔지 잘 몰랐다. 거치식펀드와 적립식펀드의 차이, CMA통장의 장점 등 그 팀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 내가 이렇게 무지하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어머니는 그 팀장이 권하는 금융 상품으로 계약을 했고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조언을 하지 못하고 공연히 발품만 팔았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직업적 유능함이란 게 그렇게 멋있는 것이구나, 자기 방도 따로 있고 멋지네.’하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초라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논술에 대해선 논술 강사인 나보다 모를 거야, 논술은 내가 전문이잖아.’하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래도 초라함에 대한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글을 떠올리고 나선 위로가 되었다.

 

 

내게 위로가 된 글은 버나드 쇼(1856~1950)의 글이다.

 

 

 

우리 중 최고라는 사람도 99퍼센트는 군중에 속하고 1퍼센트만 적임자에 속한다. 그래서 자기가 아는 몇 가지가 다인 줄 알고 자기가 모르는 수많은 것들은 받아들일 여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자만’이라는 천박한 질병에 시달린다. 나는 몇 가지는 매우 잘한다. 하지만 그 밖의 분야에서 구제불능의 얼간이나 다름없는 내 모습을 보며 나의 자부심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결국 군중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나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는 셈이다.

- G. 버나드 쇼 저, <쇼에게 세상을 묻다>, 51쪽~52쪽.

 

 

 

교육에 대한 언급에선 겸손한 자세를 배운다.

 

 

 

교육은 유년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올해로 미수(米壽, 88세)에 접어들었지만, 내가 가진 미약한 능력으로도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 G. 버나드 쇼 저, <쇼에게 세상을 묻다>, 315쪽.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이자 극작가인 버나드 쇼도 88세에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는데 나는 얼마나 배워야 할 게 많을 것인가. 내가 은행에 대해 무지한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그것에서 초라함을 느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의 자만이 아닐까.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므로 나의 자만이 아닐까.

 

 

나의 무지를 깨닫기도 하고 나의 자만을 깨닫기도 하였다.

 

 

 

 

 

 

 

**********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버나드 쇼의 지적인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이 책은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세상일에 대해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우리 인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명쾌하게 해석해 준다.

 

 

 

 

 

(끝)

 

(이 페이퍼는 여기서 끝날 뻔했다. 그러나...)

 

 

 

 

 

 

2. 내가 내 감정에 대해 무지하구나

 

 

그러나 며칠 뒤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팀장이 멋있어 보였던 건, 또 내가 초라함을 느꼈던 건 그녀의 ‘직업적 유능함’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뽀얀 피부의 얼굴에 분홍색의 볼터치가 돋보이는 화장을 해서 화사한 얼굴이었고, 투피스 정장의 옷차림이었는데, 그런 모습에서 보기 좋게 부티가 흘렀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한 것인지 몰랐다. (그녀에 비해 나는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었고 정장의 옷차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날 나를 기죽게 만든 건 그녀의 화장한 얼굴과 정장의 옷차림이었나, 만약 화장기 없는 얼굴에 정장이 아닌 옷차림이었어도 그녀가 멋있어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에 따르면 작화증(作話症)이라는 용어는 보통 꾸며낸 말로 기억의 빈틈을 메우면서 그것을 사실로 믿는 상태를 뜻하는데, 인간은 누구나 감정에 대한 지식의 빈틈을 작화하듯이 메우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나 친구들에게 “왜 그 차를 타니?”, “왜 그 남자를 좋아하니?”, “왜 그 농담에 웃었니?”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스스로 그 답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를 때가 많다. 누군가 이유를 대보라고 하면, 일종의 자기 성찰과도 같은 숙고를 통해서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아무리 잘 안다고 믿더라도, 실은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를뿐더러 그 무의식적 기원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가 많다. 우리는 대신에 그럴싸한 설명을 지어내고, 아예 틀렸거나 일부만 옳은 그 설명을 믿어버린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59쪽~260쪽.

 

 

 

 

이런 오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것은 어쩌다 우연히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고,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현상이며,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감정적, 문화적 정보의 저장고를 기반으로 삼아서 벌어지는 활동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설명할 때 머릿속에 저장된 문화적 규범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져서 가장 그럴싸한 설명을 골라낸다는 것이다.

 

 

이것을 ‘채용’으로 예를 들면 이렇다.

 

 

 

만약 당신이 사람을 채용해보았다면, 내가 왜 저 사람을 옳은 선택으로 여길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정당한 대답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런가? 여전히 그때 생각했던 그 이유로 그 사람을 골랐다고 믿는가? 어쩌면 당신의 추론은 거꾸로였을지도 모른다. 상대에게서 받은 느낌으로 먼저 선호를 형성한 다음에,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규범을 끌어들여서 그 감정을 설명한 것이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61쪽.

 

 

 

이 책에서 재밌는 실험이 하나 소개된다. 바위투성이 땅으로부터 70미터 위에서 흔들거리는 나무판 다리에 있는 남자들을 각각 한 여성과 인터뷰를 하게 했다. 그 남자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성 때문에 많이 긴장하게 될 것이다. 이때 그들은 빠른 맥박 등 아드레날린의 효과를 느끼게 되는데, 이런 자신의 신체 반응이 나무판 다리 때문임을 자각했을 텐데도, 그것을 성적 공감대에 의한 반응으로 착각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실험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가 위험한 나무판 다리 때문이 아니라 그 매력적인 여성 때문인 것으로 착각한다는 결과가 나오는 실험이다.

 

 

이것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당신이 친구나 동료와의 갈등 때문에 신체적으로 교란된 상태라고 하자. 어깨와 목이 딱딱하고, 머리가 아프고, 맥박이 빨라진다.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그 감각을 야기한 갈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과 대화할 때, 당신은 그 감정이 눈앞의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55쪽.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잘 안다고 믿는다. 누군가가 어떤 것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잘 정리하여 설명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종종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이 책이 그걸 증명하고 있으므로.

 

 

다시 생각해 본다. 그날 은행의 그 팀장이 내 눈에 멋있어 보였던 이유는 뭐였을까. 각 금융 상품을 막힘없이 설명하는 그녀의 직업적 유능함 때문인가, 자기의 방을 따로 가질 수 있는 그녀의 사회적 위치 때문인가, 화사한 얼굴 때문인가, 정장 옷차림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가. 나는 모르겠다.

 

 

<새로운 무의식>에 따르면, 인간에겐 ‘감정적 착각’이란 게 종종 일어난다. 그러니 자신의 어떤 감정에 대한 확신은 금물이다.

 

 

이 글의 마지막은 다음의 글로 마무리한다.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블레즈 파스칼)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19쪽.

 

 

 

 

 

 

 

 

**********

‘무의식’이라고 하면 프로이트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 당대에는 무의식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다. 오늘날엔 fMRI가 등장함으로써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엮은 것이 <새로운 무의식>이란 책이다. 무의식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심리학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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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3-2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적 착각. 스스로 깨치셨군요. 단기적 판단 수단에서 장기적 판단 수단으로 (본능)-감정-이성이 있고, 그 나름대로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페크pek0501 2013-03-26 13:53   좋아요 0 | URL
책을 읽어서 좋은 점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책에서 읽은 내용을 현실에 대입해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뭐 그래서 제가 더 똑똑해지는 건 같지 않고(오히려 책을 읽을수록 비현실적인 바보가 되어가는 걸 느껴요.) 그저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되는 경우는 많은 것 같아요.
독서가 삶을 특별히 이롭게 하는 건 없고 다만 정신 건강엔 좋은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요.

두 번째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3-03-2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좋은 책 두 권 담아갑니다.
인간이란 참 이해불가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이해가능한 동물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드네요. 새삼, 단순하게 가는 것도 좋을 듯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상에서 진지한 생각을 건져 조근조근 들려주시니 참 좋습니다.
느긋한 봄날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3-03-26 13:55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단순하게 살고 싶은 1인이에요.
또 일상에서 진지한 생각을 건지고 싶은 1인이에요.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것...쯤은 알게 된 나이에 있네요.
오늘 햇살이 푸짐한 날이네요. 창문 열고 이불을 털고 청소를 잽싸게 하고
(청소하는 시간이 아까워요.ㅋㅋ) 봄날의 푸짐한 햇살을 받으러 밖에 나가야겠어요. 많이 걸어야겠어요. 뭐 살 것도 있고요.

세 번째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종이달 2022-05-20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2-05-24 12: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날씨가 춥지만 않으면 거의 매일 걷는다. 한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걸을 수 있으며, 많이 걸을 땐 두 시간도 걷을 수 있다. 운동 삼아 걷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걷는 재미로 걷고, 엠피쓰리와 이어폰을 이용해서 음악 듣는 재미로 걷는다.

 

 

걸으면서 거리의 풍경을 보는데 이것도 재밌다. 같은 길을 걷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걷기도 한다. 최근엔 한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그 부근을 많이 다녔지만 골목으로 들어가 깊숙이 위치해 있는 학교라 눈에 띄지 않아서 늦게 발견한 것이다. 학교가 참 맘에 든다. 나 어릴 적 학교와 닮아서인 듯하다. ‘초등학교’하면 연상되는 그런 모습의 학교다. 낮이든 밤이든 학교에 들어서면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운동장을 돌고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날은 나도 그들 속에 끼어 운동장을 돈다.

 

 

그래도 걷는 재미 중에서 으뜸은 내 마음의 풍경과 만나는 일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걷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어제 걸으면서 오쇼 라즈니쉬가 쓴 글을 생각했다.

 

 

....................

한 젊은이가 할머니를 모시고 걸작 미술 전시회를 구경 갔다. 거기서 생전 처음으로 빈센트 반 고호의 진짜 그림을 본 할머니는 그림을 보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젊은이가 물었다.

“왜 웃으세요, 할머니? 그림이 마음에 드세요?”

“웃기지 않니? 이 복사판 그림 좀 봐라. 내가 이십 년 동안이나 갖고 있는 달력 그림을 똑같이 베꼈지 뭐니?”

사실은 그 달력이 이 그림을 베낀 것이고 이것이 진짜 그림인데 할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그림의 진짜는 내 방에 이십 년 동안이나 걸려 있었단다.”

 

*****

가짜에 감염될 때 그대, 진짜를 놓치고 만다. 그대의 눈이 가짜로 가득 차 있으면 진짜와 만났을 때 그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지 않겠는가.

 

- 오쇼 라즈니쉬 저, <배꼽>에서.

....................

 

 

 

나도 내 마음의 방에 가짜의 달력 그림을 갖고 있으면서 진짜라고 여기는 게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짜를 알아보지 못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가짜의 달력 그림을 떼지는 못하더라도 가짜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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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있었던 일이다. 동네 슈퍼에 전화해서 쌀 십 킬로를 배달시켰다. 누런 종이 포대에 든 쌀이 배달되었다. 쌀을 씻기 위해 종이 포대의 윗부분을 가위로 자르고 쌀을 푸려고 보니 쌀 위에 흰 종이가 보였다. ‘이게 뭐지?’하고 꺼내 보니 흰 봉투였다. 봉투 안을 보니 돈이 있었다. 자그마치 만 원짜리 지폐였다. 처음엔 가짜 돈인가 싶어 의심했는데, 살펴보니 진짜 돈이었다. 쌀을 샀더니 이런 횡재가 생기다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만 원이 든 봉투에는 김포 쌀을 애용해 달라는 문구와 함께 ‘신김포 농협’이라고 씌어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신김포 농협에서 1월 한 달 동안 백 포대에 하나씩 만원을 넣는 행사를 한다는 것이니, 내가 만 원이 든 쌀 포대를 만날 확률은 일 퍼센트였던 것. 내가 일 퍼센트의 행운을 잡은 것이다.

 

 

몇 년간 김포 쌀을 사 먹으면서 천 원의 지폐가 나온 적이 한 번 있기는 했다. 그때도 공짜로 얻은 돈에 기분이 좋았는데, 이번엔 그 열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라 그때보다 열 배로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이 돈 때문에 우리 네 식구가 즐겁게 하하하 웃었다.

 

 

쌀을 홍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돈을 넣은 것이겠지만, 그 쌀을 계속 사 먹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어쩌다 한 번 공짜로 돈을 얻는 행운을 주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 아이디어를 낸 누군가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직접 돈을 넣는 작업을 했던 누군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들은 누군지 모를 타인이 그 돈을 발견하고 즐거워할 표정을 상상하며 그런 일을 했으리라.

 

 

그날 ‘만 원’은 우리 집에 몰래 온 귀한 손님이었다. 그것은 세상이 내게 전해 주는 사랑의 손길이었으므로. 세상과 나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시가 생각난다.

 

.....................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약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대륙이나 모래톱이 그만큼 작아지듯,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내가 일 퍼센트의 행운을 잡아 본 것,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일 퍼센트의 행운이 즐거운 이유를 말해 보시오.”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게 될 것 같다.

 

 

첫째, 공짜로 만 원이 생겨서 즐겁다.

둘째, 내가 운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져 즐겁다.

셋째, 훈훈한 인정미가 있는 세상이 느껴져 즐겁다.

 

 

이 가운데, 셋째의 대답이 가장 맘에 든다. ‘세상은 아름다운 책이지만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골도니)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자 세상을 아름답게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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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열하게 살까, 말까 : 이왕 글을 쓰려면, 또 책을 읽으려면 치열하게 해야 될까, 말까. 그러니까 계획을 세워 일정을 빡빡하게 해서 열심히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즐기며 쉬엄쉬엄해야 할까. (빨리) 성공하는 삶을 최고로 쳐야 할까, 아니면 (천천히) 즐기는 삶을 최고로 쳐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다.

 

 

토드 부크홀츠 저, <Rush 러쉬!>는 경쟁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라는 행복전도사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새 일이 없다면 뇌세포가 시들해진다고 말한다. 팽팽한 경쟁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며, 일로부터 탈출하는 게 행복이 아니라, 일에 몰입하는 게 행복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세상은 계속 회전하고 발전한다. 행복도 그 속에서 찾아야 한다.

 

- 토드 부크홀츠 저, <Rush 러쉬!>에서.

....................

 

 

산책하는 한가로움과 일할 때의 바쁨, 이 두 가지 중에서 자신은 어느 것이 행복한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예전에 주부로서 집안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일주일에 삼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논술 수업을 하면서 지낸 적이 있다. 수업이 없는 날엔 수업을 준비하는 일과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읽고 첨삭해 놓는 일도 해야 돼서 일주일 내내 바빴다. 그래도 좋았던 건 바쁜 날들의 사이사이에 휴식 시간의 달콤함이 끼어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해야 할 일을 끝내고 길을 한가롭게 산책하는 시간이 달콤해서 좋았다.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대중목욕탕에 가서 한가롭게 사우나를 하는 시간이 달콤해서 좋았다. 이런 한가로운 휴식 시간은 바쁜 일을 마친 다음에라야 최대의 행복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때 휴식 시간은 길지 않아야 좋다. 휴식 시간의 특징은 짧아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휴식 시간이 길어서 지루해지면 ‘달콤한 시간’이 아니라 ‘지루한 시간’이 될 테니까.

 

 

 

 

 

2. 하루 두 시간만 하기 : 지난 2월에 지방에 있는 시댁에서 명절 연휴를 보내고 돌아와서 병이 났다. 몸살이 났고 목의 임파선이 부었고 허리 디스크가 도졌다. 일을 많이 한 건 아니었다. (일을 잘하는 아래 동서 덕분에 나는 조금만 일했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먼 거리의 이동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체중이 빠져 기운이 없어진 탓도 있을 것 같다.

 

 

최근 체중이 몇 킬로 빠져서 속상했다. 나처럼 마른 체형의 사람은 살이 빠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살이 더 빠지기도 한다. 몸에 이상이 있어 체중이 빠지나 싶어 병원을 다니며 여러 검사를 해 봤다. 병원에서 ‘이상 없음’의 결과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책도 끊고 컴퓨터도 끊는다면 살이 찔지도 몰라.’

 

 

내 생활을 잘 관찰해 보면 쉬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어떤 일을 끝내고 자리에 앉는 시간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내 손은 책을 집거나 컴퓨터를 켠다.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도 사실 피로한 노동이다. 그래서 내 몸이 축나게 된 게 아닐까, 그래서 체중이 빠진 게 아닐까, 해서 책과 컴퓨터를 끊는 게 답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진짜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다. 이건 마치 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애주가가 술을 끊어야 할 텐데,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끊지 않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책과 컴퓨터를 끊으면 내가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니, 그저 건강을 위해 책과 컴퓨터로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침 내 눈에 잡힌 것, <공부하는 삶>에서 공부는 하루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위안이 되었다.

 

 

 

 

 

 

 

 

 

 

 

 

 

 

 

 

 

 

....................

하루에 두 시간을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가? 그 두 시간을 온전히 열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을 해야 할 경우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혼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고도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당신이 혼자라면 더욱더 고귀한 목적에 전념할 것이 요구될 것이다.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어떤 소명을 따랐다. 나는 많은 이들이 지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매일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단언했다. 제한된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라. 갈증을 씻어주는 동시에 다시 목마르게 하는 샘에 매일 매일을 쏟아 부어라.

 

-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저, <공부하는 삶>에서.

....................

 

 

독서로 예를 들면, 하루에 두 시간만 책을 읽는다면 한 달이면 육십 시간 동안 책을 읽는 게 된다. 넉넉히 잡아 열 시간에 한 권을 읽는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여섯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글쓰기로 예를 들면, 하루에 두 시간만 글을 쓴다면 한 달이면 육십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게 된다. 무엇을 하든 하루 두 시간씩을 지속해서 한다면 그 합은 굉장한 시간이 될 것이다.

 

 

<공부하는 삶>에서 또 하나의 위안이 되는 건, 책을 많이 읽지 말고 적게 읽되 지적으로 깊이 읽으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많이 읽는다고 좋은 건 아니란다. 지식의 근원은 ‘책’이 아니라 ‘우리의 사유’에 있기 때문이란다. (아, 맘에 드는 말이다. 적게 읽어도 되다니... 다독보다는 정독으로 사유하기라니... 정독하다 보면 저절로 사유하게 되지 않나...)

 

 

결국 나는 ‘치열하게 살까, 말까’에서 ‘말까’를 택했다. 지금보다 책을 적게 읽을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도 적게 할 것이다. (글은 원래 적게 썼으니까 그대로 함.)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 나의 서재활동은 날아가지 못하고, 뛰어가지도 못하고, 걸어가지도 못하고, 기어가는 수준으로 할 예정이다. 그러므로 파워블로거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내 글을 보려는 방문자가 매일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분들을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열심히 글을 쓸 것이다. 많이 쓰겠다는 게 아니고 글을 쓸 땐 최선을 다하겠단 뜻이다. 그런데 그동안에도 글을 쓸 땐 나로선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다만 잘 쓴 글이 되지 못하는 건 내 능력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일 뿐이다.

 

 

 

 

 

3. 사유의 힘 :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다.

 

 

랍비 메이어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어느 평화로운 안식일, 메이어가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 때 사고로 집에서 놀던 두 아들이 죽고 말았다. 랍비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두 아들의 시체를 흰 천으로 덮어 주었다.

 

 

설교를 끝내고 메이어가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슬픔을 참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아주 귀하고 값진 보석 두 개를 맡기셨지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분이 찾아와 맡긴 보석을 돌려 달라고 하지 않겠어요?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메이어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보석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지.”

 

 

그의 말에 아내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사실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셨던 두 개의 귀중한 보석을 가지고 하늘로 돌아가셨답니다.”

 

 

아내의 말뜻을 알아차린 메이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얘기는 최대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식의 죽음’마저도 생각하기 나름임을 깨닫게 한다.

 

 

이와 비슷한 실화가 있다. 지인 중에 주식에 투자하여 일억 원 가까이 잃은 남편 때문에 속상해 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내게 전화해서, 일억 원 때문에 남편과 크게 싸웠다며 곧 이혼할 것이라고 흥분하며 말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서 내게 전화를 한 그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차분하였다. 마음의 평화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주식으로 날린 일억 원을 하나님께 잠시 맡겨 놓았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 다음부터 마음이 편해졌어요.”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남편의 친구의 아내이다. 우리는 부부 동반으로 많이 만났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천국에 갈 수도 있고 지옥에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어떤 삶을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해석하느냐가 된다. 사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해석, 나는 이것이 사유의 힘 중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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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3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5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3-03-04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열하게 살까, 말까 ; 저의 의견은 팔자(타고난 성향, 유전자)에 따라 살게 되죠. 단지 주어진 조건(대개의 경우 환경)에 따라 치열하게 사는 것이 미덕으로, 또는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작용하는 운이 따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3-03-05 13:5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마립간 님!
반복해 읽게 되는 댓글이에요.
글을 읽다가 반복해서 읽는 부분이 생기는 것은,
이 글을 내 머릿속에 저장해 놓고 싶다, 일 때가 많아요.
님의 댓글이 그렇군요. ^^
 

 

 

 

이병욱 저,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한 시대를 뒤흔든 33인의 삶을 분석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으로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다이애나, 톨스토이, 루소, 사르트르, 알튀세르 등 33인의 삶을 ‘정신분석’이라는 렌즈로 살펴본다.

 

 

 

 

 

 

 

 

 

 

 

 

 

 

 

 

 

 

 

사람들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경제적 형편, 부모의 성향, 부모와의 관계, 어릴 때의 특별한 경험 등 성장 시절의 환경이나 특징이 어른이 된 뒤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래서 성장 시절의 삶을 모르고선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인간관계와 여러 경험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즉 인간이란 자신의 천성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병욱 저,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를 통해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의 경우엔 10세가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잃었는데 그래서 그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고 그런 그의 집착은 작품 속에서도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일 것이다. 또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단란한 가족의 행복을 맛보며 자라지 못해서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의 염세주의적인 태도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만을 통해서 얻은 교훈과 지혜만으로 삶을 산다면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덜 어리석기 위해서, 현명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타인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유익하다. 타인의 생애를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안목을 한층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33인의 삶을 한 권에 담다 보니 각각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하지만 이 점은 한 사람의 삶을 한 권에 담은 책과 비교하면 당연할 일일 것이다. 나는 그런 단점보다 여러 명의 삶을 비교하며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장점에 무게를 두고 읽었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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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저, <절망은 나의 힘>은 카프카가 쓴 일기, 편지, 산문 등의 글에서 뽑아 쓰고 이에 대해 일본 번역가인 가시라기 히로키가 그의 글마다 설명을 덧붙인 것으로 인간 카프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변신>, <소송> <성(城)> 등의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카프카의 배경에는 그의 어두운 정신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카프카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낙관보다는 비관에 친숙한 삶을 살았다. 카프카처럼 절망과 비관에 친숙한 삶을 산 작가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어두운 정신세계를 가진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어두운 정신세계가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을 만들기 때문일 것 같다.

 

 

<절망은 나의 힘>,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도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같아서 책 제목이 맘에 든다. 실제로 카프카는 그의 절망감과 열등감이 문학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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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이애나의 삶

 

 

이병욱 저,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에 따르면 다이애나의 삶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다이애나는 20세 때에 33세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신혼 초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찰스는 다이애나에게 성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둘은 말다툼이 잦았다. 특히 둘째 아들 해리를 낳고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찰스 왕세자는 과거의 옛 연인인 카밀라 볼스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으며, 다이애나 역시 그녀의 승마 코치인 제임스 휴이트와 염문을 뿌렸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된다.

 

 

다이애나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가 8세 때에 부모는 이혼을 했고, 그녀가 15세일 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재혼하였다. 다이애나로서는 부모 양측 모두에게서 배신과 버림을 당한 셈이다. 그녀는 계모를 미워해서 함께 살기를 거부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을 오가며 지냈다. 이처럼 혼란스럽고 갈등적인 상황에서 성장한 그녀였기에 어려서부터 매우 공격적이며 충동적인 성향을 보였으며, 찰스와 여왕이 시기할 정도로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시절에도 그녀 자신의 내면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정서적 혼란을 겪었다. 미국의 전기 작가 샐리 스미스는 다이애나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것으로 보고, 그녀의 우울증, 정서적 불안정, 편집증, 폭식 등을 주된 증세로 지적한 바 있다.

 

 

1997년 그녀는 아랍계 부호의 아들인 바람둥이 도디 알 파예드와 함께 파리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고 만다.

 

 

다이애나의 삶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녀는 20세에 찰스 왕세자와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음에도 그 이후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영국의 왕세자비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것으로 인생이 완성되지 않았던 것. 오히려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새 인생이 펼쳐졌다. 누구나 자신이 열망하는 위치에 오르는 수가 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오를 수 있으나, 그것으로 인생이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다이애나의 삶을 읽고서 카프카가 쓴 다음의 글이 떠올랐다.

 

 

 

 

인간의 근본적인 연약함

 

인간의 근본적인 연약함은 승리를 쟁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모처럼 손에 넣은 승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 프란츠 카프카 저, <절망은 나의 힘>에서.

 

 

 

어떤 직업을 갖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고, 어떤 계획을 실천하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목표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니다. 목표가 이뤄진 다음에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므로. 모처럼 손에 넣은 승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으므로.

 

 

 

 

2. 톨스토이의 삶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모순 덩어리’인지를 알고 있다. 그 점을 나타내기 위해 작가들이 쓴 소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이 ‘모순 덩어리’임을 보여 주는 삶을 산 작가가 있다. 바로 톨스토이다. 이병욱 저,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에서 조명한 톨스토이는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적인 삶을 살았다.

 

 

이 책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인도주의에 입각한 비폭력 무저항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는 50대에 극심한 회의론에 빠져 그 후로부터 죽을 때까지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무소유사상 및 비폭력주의에 바탕을 둔 이타적인 기독교 신앙에 몰두했다.

 

 

톨스토이가 내세운 신앙적 지침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첫째, 화내지 말라. 둘째, 간음하지 말라. 셋째, 맹세하지 말라. 넷째,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 다섯째,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이 다섯 가지 실천 도덕이야말로 그가 내세운 톨스토이즘의 핵심이 되는 지침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라고 강조하는 것과 다르게 그는 아내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는 결혼 초기에는 행복한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말기로 갈수록 "결혼이란 단지 무덤에 불과한 끔찍스런 재앙"처럼 불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특히 그가 가족을 위한 아무런 대안이 없이 자신의 영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엄청난 저작권 수입조차 추종자들에게 넘겨주고자 해서 아내 소피아와 큰 마찰을 일으켰다. 더욱이 말년엔 톨스토이 사상의 열렬한 추종자이던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가 이들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이간질함으로써 부부 사이가 더 악화되어, 톨스토이는 82세에 병든 몸으로 가출하여 폐렴에 걸려 조그만 시골 역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딸들이 결혼하는 것에 대해 ‘결혼은 무덤이요 지옥이라며 끝까지 반대하는 입장을’ 보일 만큼 결혼에 대한 환멸감을 표시했다. 그가 쓴 일기를 보면, 결혼 초부터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톨스토이는 여성혐오증이 있는 금욕주의자로서 대중에겐 금욕적 생활 태도를 요구하였으나, 이와 모순되게도 무려 12명의 자식들을 둘 만큼 왕성한 성욕을 보였다. 또한 그는 인간은 사랑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주장하였으나, 이와 모순되게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으며 자신보다 총명하고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 강한 질투심을 지녔다. 한마디로 톨스토이의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 찬 인생의 한 전형이었다.

 

 

톨스토이의 삶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41세에 <전쟁과 평화>를 그리고 49세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하여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자리를 굳힐 수 있었음에도 그 이후 극심한 염세주의 및 우울증에 빠졌고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 가고 싶지 않은 인생의 곁길로 들어서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톨스토이의 삶을 읽고서 카프카가 쓴 다음의 글이 떠올랐다.

 

 

 

 

인생의 곁길로 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곁길로 새는 일이다. 원래는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가. 뒤돌아보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 프란츠 카프카 저, <절망은 나의 힘>에서.

 

 

 

우리는 앞으로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되는 것과 같은 행운을 갖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실패한 삶을 산다는 통계가 있듯이, 자신이 바라던 위치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오히려 이때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인생의 갈림길에 놓이는 중요한 때이므로.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로 가느냐 아니면 가고 싶지 않았던 곁길로 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으므로.

 

 

 

 

3.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

 

 

우리는 성공과 행복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바라던 방향으로 무조건 성공만 하면 행복한 삶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성공과 행복을 다른 각도로 보면 그 둘의 다른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성공해야 행복한 삶이 되는 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 삶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중요한 건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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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2-1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우에 있어서) 성공이 아니라 행복에 중요성을 두려면,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어두운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스스로 행복해질 수가 없는 모순을 낳는군요.

페크pek0501 2013-02-19 20:33   좋아요 0 | URL
아하하... 마립간 님.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이 오히려 안 행복한 것 같아요. 그 반대로 생각 많지 않고 낙천적인 사람이 즐겁게 사는 듯해요. 우리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살아요. ㅋㅋ
저는 요즘 대충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한답니다. 그냥 대충 대충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는...
첫 댓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크아이즈 2013-02-19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절망은 나의 힘 - 제목 한 번 맘에 듭니다.
기형도가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중얼거렸을 때 혹 이 책이 곁에 있었던 건 아니겠지요. ㅋ
날마다 절망이고, 날마다 흔들리고, 날마다 타협하는 저는 제 내면의 풍경을 누가 스캔이라도 할까 두렵습니다.
성공보단 행복이란 그 말에 위안을 삼으며 추천 날리고 도망갑니다.^^*

페크pek0501 2013-02-19 20:38   좋아요 0 | URL
호호~~ 고마운 님아... ㅋㅋ
저는 열등감은 나의 힘, 이라고 외치며 살겠사와요.
오늘 외출했었는데 겨울바람이 찼어요. 우리의 마음은 봄이길 바랍니다. ^^
님으로부터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

마태우스 2013-02-19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카프카는 왜 자기 작품을 그리도 부끄러워했을까요. 태워버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2) 다이애나는 그래도 많은 것을 누리고 산 사람인데, 의외로 추앙받더라고요. 사실 전 그게 지금도 미스테리예요. 물론 좋은 일도했지만, 음음... 오드리헵번과는 좀 다른 경우 같던데...
3) 저는 실패 안하는 10%가 될 거예요. 되게만 좀 해주세요^^ 벌써 복권산지 10년째, 꼬박꼬박 샀으니 언젠가 되겠죠?^^

페크pek0501 2013-02-21 13:36   좋아요 0 | URL
아, 반가운 마태우스 님!!!!!!!!!!

1) 세계적으로 탁월하다고 인정받게 된 작가들 중엔 그런 작가들이 많더군요. 글의 눈높이가 높아서가 아닐까요. 또 글에 대한 높은 안목으로 자신의 글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잘 알아서가 아닐까요. 누군가가 말했듯이(니체였던가? 모르겠음) 자기 작품에 만족하는 사람은 싸구려 예술가뿐인지도 모르겠어요.

2) 그녀가 추앙 받는 건 워낙 국민들의 인기를 받고 있었던 터에, 왕세자비의 지위를 잃을 수 있는 이혼을 과감하게 하고 나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여러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인 듯해요. 또 남편의 외도로 인해 그녀가 받은 상처에 대한 국민들의 연민도 작용했을 듯하네요. 이것 말고도 그녀가 얻은 인기엔 그녀의 미모와 매력도 영향을 미쳤을 듯...

3) 으음~~ 저는 님이 (소액은 괜찮지만) 거액의 복권 당첨이 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돈을 지금은 좋은 일에 쓰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지만 또 그걸 실천할 수 있지만, 아마 큰돈이 생기면 논문을 열심히 쓰지 않을 걸요. 그리고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일이 생기면 ‘당장 학교를 때려치울까’하는 생각으로 갈등하는 시간이 생길 것 같고 그 갈등은 님을 불행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모아 가는 그 즐거움을 잃을 수 있어요. 월급을 푼돈으로 여기게 될 테니까요.
또 친구를 잃을 수도 있어요. 아마 친구들과 식사하면 자동으로 님이 내야 할 것이고 한 번이라도 안 내면 그 친구가 섭섭해 할 거예요. 복권에 당첨까지 됐는데 짜게 군다고... 한마디로 인간관계가 피곤해지죠. 그래서 남들에겐 복권 당첨을 비밀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할 거예요.
저는 자신이 노동한 대가로(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수입을 얻는 게 참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도 막상 복권 당첨의 행운이 오면 기절하게 좋아하겠지만요...ㅋㅋ)

(님 덕분에 제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감사~~^^)

마태우스 2013-02-23 14:28   좋아요 0 | URL
3번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요, 저는 아내랑 복권이 됐을 때에 대비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무지하게 많이 했어요. 돈은 건드리지 않고 이자만 가지고 뭔가를 할 거구요, 지금까지 그냥 살던대로 살 거예요.주위 사람들에게 절대 비밀로 할 거예요. 전 의외로 입이 무거울 땐 무겁답니다. 뭐, 훈련과 실제는 다를 테지만, 그래도 훈련을 전혀 안한 사람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페크언니, 되도록 좀 도와주세요. 오늘밤 추첨입니다^^

페크pek0501 2013-02-25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뭐 힘이 있나요... 후후후~~~ 입이 무거우시군요. 그래도 당첨되면 저에겐 알려 주세요. 두 분이 어떻게 그 돈을 쓰고 사시는지 궁금하거든요. 참고로 저도 입이 무겁습니다. 으음~~ 오늘밤 추첨인 것도 궁금... 앞으로 추첨인 것도 궁금... 꾸준히 10년째 사셨다니 언젠가 될 것 같아요. 행운을 빌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3-02-2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나 배우자와 불화한 작가들이 많죠.안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힘들죠.작픔에 감동했다가 그 작가의 생애를 알고 막장드라마 같아서 충격을 받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저는 그 정도는 감안하고 읽습니다.저는 오히려 막장드라마 같은 생을 산 작가들에게 흥미가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3-02-25 20:09   좋아요 0 | URL
막장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봐야 삶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좋은 소설을 쓰려면 고통의 쓴맛을 봐야 한다는 거죠.
다양하게 느끼고 깊이 느끼려면 막장드라마 같은 인생이 최고죠.

그런데 님은 오랜만에 방문하시는 것 같군요. 반갑습니다. ^^

2013-02-26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3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