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있었던 일이다. 동네 슈퍼에 전화해서 쌀 십 킬로를 배달시켰다. 누런 종이 포대에 든 쌀이 배달되었다. 쌀을 씻기 위해 종이 포대의 윗부분을 가위로 자르고 쌀을 푸려고 보니 쌀 위에 흰 종이가 보였다. ‘이게 뭐지?’하고 꺼내 보니 흰 봉투였다. 봉투 안을 보니 돈이 있었다. 자그마치 만 원짜리 지폐였다. 처음엔 가짜 돈인가 싶어 의심했는데, 살펴보니 진짜 돈이었다. 쌀을 샀더니 이런 횡재가 생기다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만 원이 든 봉투에는 김포 쌀을 애용해 달라는 문구와 함께 ‘신김포 농협’이라고 씌어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신김포 농협에서 1월 한 달 동안 백 포대에 하나씩 만원을 넣는 행사를 한다는 것이니, 내가 만 원이 든 쌀 포대를 만날 확률은 일 퍼센트였던 것. 내가 일 퍼센트의 행운을 잡은 것이다.
몇 년간 김포 쌀을 사 먹으면서 천 원의 지폐가 나온 적이 한 번 있기는 했다. 그때도 공짜로 얻은 돈에 기분이 좋았는데, 이번엔 그 열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라 그때보다 열 배로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이 돈 때문에 우리 네 식구가 즐겁게 하하하 웃었다.
쌀을 홍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돈을 넣은 것이겠지만, 그 쌀을 계속 사 먹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어쩌다 한 번 공짜로 돈을 얻는 행운을 주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 아이디어를 낸 누군가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직접 돈을 넣는 작업을 했던 누군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들은 누군지 모를 타인이 그 돈을 발견하고 즐거워할 표정을 상상하며 그런 일을 했으리라.
그날 ‘만 원’은 우리 집에 몰래 온 귀한 손님이었다. 그것은 세상이 내게 전해 주는 사랑의 손길이었으므로. 세상과 나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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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약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대륙이나 모래톱이 그만큼 작아지듯,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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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 퍼센트의 행운을 잡아 본 것,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일 퍼센트의 행운이 즐거운 이유를 말해 보시오.”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게 될 것 같다.
첫째, 공짜로 만 원이 생겨서 즐겁다.
둘째, 내가 운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져 즐겁다.
셋째, 훈훈한 인정미가 있는 세상이 느껴져 즐겁다.
이 가운데, 셋째의 대답이 가장 맘에 든다. ‘세상은 아름다운 책이지만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골도니)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자 세상을 아름답게 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