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날씨가 춥지만 않으면 거의 매일 걷는다. 한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걸을 수 있으며, 많이 걸을 땐 두 시간도 걷을 수 있다. 운동 삼아 걷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걷는 재미로 걷고, 엠피쓰리와 이어폰을 이용해서 음악 듣는 재미로 걷는다.

 

 

걸으면서 거리의 풍경을 보는데 이것도 재밌다. 같은 길을 걷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걷기도 한다. 최근엔 한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그 부근을 많이 다녔지만 골목으로 들어가 깊숙이 위치해 있는 학교라 눈에 띄지 않아서 늦게 발견한 것이다. 학교가 참 맘에 든다. 나 어릴 적 학교와 닮아서인 듯하다. ‘초등학교’하면 연상되는 그런 모습의 학교다. 낮이든 밤이든 학교에 들어서면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운동장을 돌고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날은 나도 그들 속에 끼어 운동장을 돈다.

 

 

그래도 걷는 재미 중에서 으뜸은 내 마음의 풍경과 만나는 일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걷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어제 걸으면서 오쇼 라즈니쉬가 쓴 글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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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가 할머니를 모시고 걸작 미술 전시회를 구경 갔다. 거기서 생전 처음으로 빈센트 반 고호의 진짜 그림을 본 할머니는 그림을 보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젊은이가 물었다.

“왜 웃으세요, 할머니? 그림이 마음에 드세요?”

“웃기지 않니? 이 복사판 그림 좀 봐라. 내가 이십 년 동안이나 갖고 있는 달력 그림을 똑같이 베꼈지 뭐니?”

사실은 그 달력이 이 그림을 베낀 것이고 이것이 진짜 그림인데 할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그림의 진짜는 내 방에 이십 년 동안이나 걸려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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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에 감염될 때 그대, 진짜를 놓치고 만다. 그대의 눈이 가짜로 가득 차 있으면 진짜와 만났을 때 그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지 않겠는가.

 

- 오쇼 라즈니쉬 저, <배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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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마음의 방에 가짜의 달력 그림을 갖고 있으면서 진짜라고 여기는 게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짜를 알아보지 못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가짜의 달력 그림을 떼지는 못하더라도 가짜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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