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 저,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은 ‘한 시대를 뒤흔든 33인의 삶을 분석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으로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다이애나, 톨스토이, 루소, 사르트르, 알튀세르 등 33인의 삶을 ‘정신분석’이라는 렌즈로 살펴본다.
사람들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경제적 형편, 부모의 성향, 부모와의 관계, 어릴 때의 특별한 경험 등 성장 시절의 환경이나 특징이 어른이 된 뒤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래서 성장 시절의 삶을 모르고선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인간관계와 여러 경험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즉 인간이란 자신의 천성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병욱 저,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를 통해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의 경우엔 10세가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잃었는데 그래서 그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고 그런 그의 집착은 작품 속에서도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일 것이다. 또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단란한 가족의 행복을 맛보며 자라지 못해서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의 염세주의적인 태도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만을 통해서 얻은 교훈과 지혜만으로 삶을 산다면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덜 어리석기 위해서, 현명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타인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유익하다. 타인의 생애를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안목을 한층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33인의 삶을 한 권에 담다 보니 각각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하지만 이 점은 한 사람의 삶을 한 권에 담은 책과 비교하면 당연할 일일 것이다. 나는 그런 단점보다 여러 명의 삶을 비교하며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장점에 무게를 두고 읽었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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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저, <절망은 나의 힘>은 카프카가 쓴 일기, 편지, 산문 등의 글에서 뽑아 쓰고 이에 대해 일본 번역가인 가시라기 히로키가 그의 글마다 설명을 덧붙인 것으로 인간 카프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변신>, <소송> <성(城)> 등의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카프카의 배경에는 그의 어두운 정신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카프카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낙관보다는 비관에 친숙한 삶을 살았다. 카프카처럼 절망과 비관에 친숙한 삶을 산 작가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어두운 정신세계를 가진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어두운 정신세계가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을 만들기 때문일 것 같다.
<절망은 나의 힘>,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도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같아서 책 제목이 맘에 든다. 실제로 카프카는 그의 절망감과 열등감이 문학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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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이애나의 삶
이병욱 저,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에 따르면 다이애나의 삶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다이애나는 20세 때에 33세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신혼 초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찰스는 다이애나에게 성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둘은 말다툼이 잦았다. 특히 둘째 아들 해리를 낳고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찰스 왕세자는 과거의 옛 연인인 카밀라 볼스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으며, 다이애나 역시 그녀의 승마 코치인 제임스 휴이트와 염문을 뿌렸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된다.
다이애나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가 8세 때에 부모는 이혼을 했고, 그녀가 15세일 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재혼하였다. 다이애나로서는 부모 양측 모두에게서 배신과 버림을 당한 셈이다. 그녀는 계모를 미워해서 함께 살기를 거부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을 오가며 지냈다. 이처럼 혼란스럽고 갈등적인 상황에서 성장한 그녀였기에 어려서부터 매우 공격적이며 충동적인 성향을 보였으며, 찰스와 여왕이 시기할 정도로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시절에도 그녀 자신의 내면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정서적 혼란을 겪었다. 미국의 전기 작가 샐리 스미스는 다이애나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것으로 보고, 그녀의 우울증, 정서적 불안정, 편집증, 폭식 등을 주된 증세로 지적한 바 있다.
1997년 그녀는 아랍계 부호의 아들인 바람둥이 도디 알 파예드와 함께 파리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고 만다.
다이애나의 삶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녀는 20세에 찰스 왕세자와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음에도 그 이후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영국의 왕세자비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것으로 인생이 완성되지 않았던 것. 오히려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새 인생이 펼쳐졌다. 누구나 자신이 열망하는 위치에 오르는 수가 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오를 수 있으나, 그것으로 인생이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다이애나의 삶을 읽고서 카프카가 쓴 다음의 글이 떠올랐다.
인간의 근본적인 연약함
인간의 근본적인 연약함은 승리를 쟁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모처럼 손에 넣은 승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 프란츠 카프카 저, <절망은 나의 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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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을 갖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고, 어떤 계획을 실천하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목표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니다. 목표가 이뤄진 다음에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므로. 모처럼 손에 넣은 승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으므로.
2. 톨스토이의 삶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모순 덩어리’인지를 알고 있다. 그 점을 나타내기 위해 작가들이 쓴 소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이 ‘모순 덩어리’임을 보여 주는 삶을 산 작가가 있다. 바로 톨스토이다. 이병욱 저,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에서 조명한 톨스토이는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적인 삶을 살았다.
이 책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인도주의에 입각한 비폭력 무저항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는 50대에 극심한 회의론에 빠져 그 후로부터 죽을 때까지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무소유사상 및 비폭력주의에 바탕을 둔 이타적인 기독교 신앙에 몰두했다.
톨스토이가 내세운 신앙적 지침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첫째, 화내지 말라. 둘째, 간음하지 말라. 셋째, 맹세하지 말라. 넷째,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 다섯째,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이 다섯 가지 실천 도덕이야말로 그가 내세운 톨스토이즘의 핵심이 되는 지침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라고 강조하는 것과 다르게 그는 아내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는 결혼 초기에는 행복한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말기로 갈수록 "결혼이란 단지 무덤에 불과한 끔찍스런 재앙"처럼 불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특히 그가 가족을 위한 아무런 대안이 없이 자신의 영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엄청난 저작권 수입조차 추종자들에게 넘겨주고자 해서 아내 소피아와 큰 마찰을 일으켰다. 더욱이 말년엔 톨스토이 사상의 열렬한 추종자이던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가 이들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이간질함으로써 부부 사이가 더 악화되어, 톨스토이는 82세에 병든 몸으로 가출하여 폐렴에 걸려 조그만 시골 역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딸들이 결혼하는 것에 대해 ‘결혼은 무덤이요 지옥이라며 끝까지 반대하는 입장을’ 보일 만큼 결혼에 대한 환멸감을 표시했다. 그가 쓴 일기를 보면, 결혼 초부터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톨스토이는 여성혐오증이 있는 금욕주의자로서 대중에겐 금욕적 생활 태도를 요구하였으나, 이와 모순되게도 무려 12명의 자식들을 둘 만큼 왕성한 성욕을 보였다. 또한 그는 인간은 사랑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주장하였으나, 이와 모순되게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으며 자신보다 총명하고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 강한 질투심을 지녔다. 한마디로 톨스토이의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 찬 인생의 한 전형이었다.
톨스토이의 삶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41세에 <전쟁과 평화>를 그리고 49세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하여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자리를 굳힐 수 있었음에도 그 이후 극심한 염세주의 및 우울증에 빠졌고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 가고 싶지 않은 인생의 곁길로 들어서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톨스토이의 삶을 읽고서 카프카가 쓴 다음의 글이 떠올랐다.
인생의 곁길로 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곁길로 새는 일이다. 원래는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가. 뒤돌아보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 프란츠 카프카 저, <절망은 나의 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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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으로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되는 것과 같은 행운을 갖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실패한 삶을 산다는 통계가 있듯이, 자신이 바라던 위치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오히려 이때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인생의 갈림길에 놓이는 중요한 때이므로.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로 가느냐 아니면 가고 싶지 않았던 곁길로 새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으므로.
3.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
우리는 성공과 행복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바라던 방향으로 무조건 성공만 하면 행복한 삶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성공과 행복을 다른 각도로 보면 그 둘의 다른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성공해야 행복한 삶이 되는 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 삶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중요한 건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