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치열하게 살까, 말까 : 이왕 글을 쓰려면, 또 책을 읽으려면 치열하게 해야 될까, 말까. 그러니까 계획을 세워 일정을 빡빡하게 해서 열심히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즐기며 쉬엄쉬엄해야 할까. (빨리) 성공하는 삶을 최고로 쳐야 할까, 아니면 (천천히) 즐기는 삶을 최고로 쳐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있다.

 

 

토드 부크홀츠 저, <Rush 러쉬!>는 경쟁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라는 행복전도사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새 일이 없다면 뇌세포가 시들해진다고 말한다. 팽팽한 경쟁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며, 일로부터 탈출하는 게 행복이 아니라, 일에 몰입하는 게 행복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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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계속 회전하고 발전한다. 행복도 그 속에서 찾아야 한다.

 

- 토드 부크홀츠 저, <Rush 러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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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한가로움과 일할 때의 바쁨, 이 두 가지 중에서 자신은 어느 것이 행복한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예전에 주부로서 집안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일주일에 삼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논술 수업을 하면서 지낸 적이 있다. 수업이 없는 날엔 수업을 준비하는 일과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읽고 첨삭해 놓는 일도 해야 돼서 일주일 내내 바빴다. 그래도 좋았던 건 바쁜 날들의 사이사이에 휴식 시간의 달콤함이 끼어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해야 할 일을 끝내고 길을 한가롭게 산책하는 시간이 달콤해서 좋았다.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대중목욕탕에 가서 한가롭게 사우나를 하는 시간이 달콤해서 좋았다. 이런 한가로운 휴식 시간은 바쁜 일을 마친 다음에라야 최대의 행복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때 휴식 시간은 길지 않아야 좋다. 휴식 시간의 특징은 짧아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휴식 시간이 길어서 지루해지면 ‘달콤한 시간’이 아니라 ‘지루한 시간’이 될 테니까.

 

 

 

 

 

2. 하루 두 시간만 하기 : 지난 2월에 지방에 있는 시댁에서 명절 연휴를 보내고 돌아와서 병이 났다. 몸살이 났고 목의 임파선이 부었고 허리 디스크가 도졌다. 일을 많이 한 건 아니었다. (일을 잘하는 아래 동서 덕분에 나는 조금만 일했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먼 거리의 이동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체중이 빠져 기운이 없어진 탓도 있을 것 같다.

 

 

최근 체중이 몇 킬로 빠져서 속상했다. 나처럼 마른 체형의 사람은 살이 빠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살이 더 빠지기도 한다. 몸에 이상이 있어 체중이 빠지나 싶어 병원을 다니며 여러 검사를 해 봤다. 병원에서 ‘이상 없음’의 결과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책도 끊고 컴퓨터도 끊는다면 살이 찔지도 몰라.’

 

 

내 생활을 잘 관찰해 보면 쉬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어떤 일을 끝내고 자리에 앉는 시간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내 손은 책을 집거나 컴퓨터를 켠다.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도 사실 피로한 노동이다. 그래서 내 몸이 축나게 된 게 아닐까, 그래서 체중이 빠진 게 아닐까, 해서 책과 컴퓨터를 끊는 게 답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진짜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다. 이건 마치 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애주가가 술을 끊어야 할 텐데,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끊지 않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책과 컴퓨터를 끊으면 내가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니, 그저 건강을 위해 책과 컴퓨터로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침 내 눈에 잡힌 것, <공부하는 삶>에서 공부는 하루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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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시간을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가? 그 두 시간을 온전히 열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을 해야 할 경우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혼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고도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당신이 혼자라면 더욱더 고귀한 목적에 전념할 것이 요구될 것이다.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어떤 소명을 따랐다. 나는 많은 이들이 지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매일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단언했다. 제한된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라. 갈증을 씻어주는 동시에 다시 목마르게 하는 샘에 매일 매일을 쏟아 부어라.

 

-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저, <공부하는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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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예를 들면, 하루에 두 시간만 책을 읽는다면 한 달이면 육십 시간 동안 책을 읽는 게 된다. 넉넉히 잡아 열 시간에 한 권을 읽는다고 가정하면, 한 달에 여섯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글쓰기로 예를 들면, 하루에 두 시간만 글을 쓴다면 한 달이면 육십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게 된다. 무엇을 하든 하루 두 시간씩을 지속해서 한다면 그 합은 굉장한 시간이 될 것이다.

 

 

<공부하는 삶>에서 또 하나의 위안이 되는 건, 책을 많이 읽지 말고 적게 읽되 지적으로 깊이 읽으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많이 읽는다고 좋은 건 아니란다. 지식의 근원은 ‘책’이 아니라 ‘우리의 사유’에 있기 때문이란다. (아, 맘에 드는 말이다. 적게 읽어도 되다니... 다독보다는 정독으로 사유하기라니... 정독하다 보면 저절로 사유하게 되지 않나...)

 

 

결국 나는 ‘치열하게 살까, 말까’에서 ‘말까’를 택했다. 지금보다 책을 적게 읽을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도 적게 할 것이다. (글은 원래 적게 썼으니까 그대로 함.)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 나의 서재활동은 날아가지 못하고, 뛰어가지도 못하고, 걸어가지도 못하고, 기어가는 수준으로 할 예정이다. 그러므로 파워블로거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내 글을 보려는 방문자가 매일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분들을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열심히 글을 쓸 것이다. 많이 쓰겠다는 게 아니고 글을 쓸 땐 최선을 다하겠단 뜻이다. 그런데 그동안에도 글을 쓸 땐 나로선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다만 잘 쓴 글이 되지 못하는 건 내 능력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일 뿐이다.

 

 

 

 

 

3. 사유의 힘 :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다.

 

 

랍비 메이어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어느 평화로운 안식일, 메이어가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 때 사고로 집에서 놀던 두 아들이 죽고 말았다. 랍비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두 아들의 시체를 흰 천으로 덮어 주었다.

 

 

설교를 끝내고 메이어가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슬픔을 참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아주 귀하고 값진 보석 두 개를 맡기셨지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분이 찾아와 맡긴 보석을 돌려 달라고 하지 않겠어요?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메이어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보석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지.”

 

 

그의 말에 아내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사실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셨던 두 개의 귀중한 보석을 가지고 하늘로 돌아가셨답니다.”

 

 

아내의 말뜻을 알아차린 메이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얘기는 최대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식의 죽음’마저도 생각하기 나름임을 깨닫게 한다.

 

 

이와 비슷한 실화가 있다. 지인 중에 주식에 투자하여 일억 원 가까이 잃은 남편 때문에 속상해 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내게 전화해서, 일억 원 때문에 남편과 크게 싸웠다며 곧 이혼할 것이라고 흥분하며 말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서 내게 전화를 한 그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차분하였다. 마음의 평화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주식으로 날린 일억 원을 하나님께 잠시 맡겨 놓았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 다음부터 마음이 편해졌어요.”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남편의 친구의 아내이다. 우리는 부부 동반으로 많이 만났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천국에 갈 수도 있고 지옥에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어떤 삶을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해석하느냐가 된다. 사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해석, 나는 이것이 사유의 힘 중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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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3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5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3-03-04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열하게 살까, 말까 ; 저의 의견은 팔자(타고난 성향, 유전자)에 따라 살게 되죠. 단지 주어진 조건(대개의 경우 환경)에 따라 치열하게 사는 것이 미덕으로, 또는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작용하는 운이 따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3-03-05 13:5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마립간 님!
반복해 읽게 되는 댓글이에요.
글을 읽다가 반복해서 읽는 부분이 생기는 것은,
이 글을 내 머릿속에 저장해 놓고 싶다, 일 때가 많아요.
님의 댓글이 그렇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