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날이라 3박 4일 동안 시댁(대구)에서 머물다가 왔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행복하다. 하지만 아직 피곤함이 다 풀리지 않은 듯. (그래서 즉흥적으로 대충 이 글을 쓴다. 빨리 쓰고 쉬어야 하니까. 아, 친정에 가야 한다.)
2. 내가 결혼할 당시, 우리 시어머님의 연세가 55살이었다. 27살의 새색시인 나는 시어머니를 할머니로 생각했다. 이미 7살의 외손자가 있었기에 할머니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또 외모도 할머니로 보였다. 그래서 시댁에 갈 때 시어머님에게 드릴 선물로 할머니가 입는 스웨터(흰 색에 흰 색의 털이 달린 것)를 사 갔는데 그게 큰 실수였다. 꼬부랑 할머니나 입는 옷이었던 것.
큰시누이 : 이렇게 할머니 옷을 사 오면 우짜노. 엄마가 어떻게 입노?
싸가지 없는 새색시 : 어머님이 할머니 맞잖아요.
큰시누이의 말은 어머니가 할머니가 아닌데 어떻게 그 스웨터를 입으시냐는 거였다.
ㅋㅋ 지금 생각하면 나, 참 철없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시어머니는 그 스웨터를 입지 않으신다. 아직도 자신이 꼬부랑 할머니는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지금 시어머니의 연세는 81이시다.
3. 설날 연휴가 끝난 뒤, 내가 어느 서재에 들어가 댓글을 남겼더니 이런 답글이 있었다.
pek0501 : 헨리의 트랩을 듣고 있어요. 일요일 밤의 즐겁지 않음을 음악으로 푸시기를... 어느 알라디너 분 : 헨리의 트랩이 뭐지, 하고 유튜브 검색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취향이 젊으셔요. ㅋ |
취향이 젊으시다니...
그럼 내가 젊지 않다는 말이잖아. (빠바방...) ㅋ
내가 나이가 많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깔깔깔... 웃었다. (그러니깐 기분이 나빴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것을 밝혀 둠.)
나는 내가 아직도 젊다고 착각하고 산다. (우리 시어머니와 똑같다.) 그 착각의 거울을 쨍그랑 깨지게 해 준 그분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착각은 깨져야 할 것 아닌가. 어디에선가 망신당하기 전에.
4.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게 있다. 내 서재에 댓글을 남기시는 분들 중에서 내 또래가 있다는 것. 나와 동갑이신 분도 있고, 두 살 위인 분도 있고, 한 살 아래인 분도 있다는 것. (그런데 한 살 아래인 분이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서 억울했다. 겨우 한 살 차이인데, 하는 생각으로. 반대로 내가 한 살 적으면 나도 언니라고 불러 보는 건데, 하는 생각으로. 이 나이가 되면 상대보다 내가 젊어서 언니라고 부르는 게 좋다. 이게 늙었단 증거겠지. 젊음을 밝힌다는 건 그만큼 늙었다는 증거니까.)
내 서재에 댓글을 남기시는 분들 중에선 나보다 4~5살이 적은 분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그분들은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 줘서 고맙다. 나를 존중해 주는 느낌이 드니까.
5. 요즘 헨리의 ‘트랩’을 즐겨 듣는다. 나는 좋은 음악이 있으면 반복해서 듣는 버릇이 있어서 아마 이 노래도 3백 번쯤 듣게 될 것 같다. 아이의 아이패드로 듣기도 하고 유에스비에 저장해 놓고 내 넷북으로 듣기도 한다.
고등학생인 작은애가 아이패드로 ‘랜덤으로 듣기’를 설정해 놓고 음악을 듣곤 하는데 그것이 내게까지 들려와서 이 노래를 알게 되었고 자꾸 듣다 보니 좋아졌던 것. 그러니 내 음악 취향이나 수준은 자연히 그 애와 같아진다. 결론은 내 음악 수준은 고딩 수준이라는 것이다.
6. 그런데 음악만 고딩 수준인 게 아니라 요즘 내가 말하는 수준도 고딩 수준인 게 문제다. 가끔 작은애가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수준 좀 높여. 난 이제 초등학생이 아니야.”
“(할 말 없음.) 빠바방...”
아이가 컸긴 컸나 보다. 엄마 수준을 운운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 내 수준을 높이는 게 하나의 과제다. 이 해에 높일 수 있을까? 갑자기 어떻게?
<후기>....................................
‘시댁’이 아니라 ‘시집’이라고 써야 맞는데 그냥 ‘시댁’으로 썼다.
‘그분들이‘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써야 맞는데 그냥 ‘그분들이’로 썼다.
이렇게 글에서 높임말을 써야 하지 않는 이유는 독자가 왕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통령께서 미국 순방길에 오르셨다.’가 아니라
‘대통령이 미국 순방길에 올랐다.’가 맞다.
난 어떤 원칙은 알면서도 무시하고 쓴다. (예의를 위해서이니 이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