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나도 이 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로.
1.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 최근 나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경험을 했다. 아버지의 입원, 병원에서의 생활, 고통, 불안, 장례식 등.
지난 8월, 배에 통증이 있어서 여러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입원한 지 12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CT 검사, 조직 검사, PET(페트) 검사를 한 결과 병명이 ‘폐암 말기’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호흡을 멈추는 것으로 죽음을 표시하셨다. 그렇게 고통 없이 편히 가셨다. 연세가 많아서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가족이 죽는다는 건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고 허무한 일이기도 했다. 더욱이 형제가 없는 나는 부모님에게 마음을 많이 두며 살았기에 무척 쓸쓸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도 그럴 것이다.
2. 호상일까 : 병원에선 아버지의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연세가 86세라서 항암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을 절망에 빠지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병으로 며칠만 고생하셨고 주무시다가 편히 돌아가셨으므로 문상객들은 호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선 호상일 리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3. 고통스러웠다 : 2주일 가까이 병원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의 목구멍에서는 가래가 끓어올랐다. 어떤 날은 한 시간에 한 번씩 가래를 뽑아내야 할 정도로 심했다. 아버지는 가래를 뽑는 일을 가장 고통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간호사가 가래를 뽑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오면 아버지는 싫다는 뜻으로 손을 저으셨다. 어떤 날은 간호사가 가래를 뽑고 있는 도중에 눈물을 흘리셨다.
이를 보고 간호사가 말했다.
“아버님이 많이 힘드신가 봐요. 눈물까지 흘리시는 걸 보니 더 이상 가래를 뽑지 못하겠어요.”
이 말을 듣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시면 눈물이 다 나오실까 싶어 아버지가 가여웠다.
환자를 간호한다는 것은 예상한 대로 쉽지 않았다. 몸은 당연히 힘들었고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이었다. 특히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며칠 동안 나 역시 고통스러웠는데, 가족의 고통을 본다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여겼다.
4. 지옥 같았다 :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했다. 아침에 가서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병원 문을 나서는 생활을 했다. 간병인은 저녁 8시에 와서 그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있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간병인이 나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아버지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병원 문을 나설 땐, 마치 아버지를 버리고 가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집에 가서는 밥을 먹어도 맛있지 않았고, 샤워를 해도 상쾌하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을 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저 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 생각뿐이었다. 공포와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병원으로부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올 것만 같아 한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하였다. 이 조마조마함이 나를 지옥 속에 있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두려워했다.
5. 죽음을 목도하며 생각했다 :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옆에 내가 있었다. 아버지가 호흡을 멈췄다. 고통스런 시간 끝에 구세주처럼 찾아오는 게 죽음이었다. 장엄하지도 심각하지도 않고 싱겁게 느껴지는 게 죽음이었다.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게 죽음이란 말인가!, 한 인간의 생애가 이렇게 싱겁게 끝난다는 말인가!’
그리고 생각했다.
‘싱거워도 이 순간은 오래 기억될 슬픈 시간이겠지.’
6.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 아버지는 국가유공자라서 현재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안 납골당에 안장해 있다. 놀랍고 영광스러웠다.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사후 60년간 국가에서 관리해 주고 무료라니. 아버지에게서 아주 좋은 선물을 받은 듯했다. 우리를 이렇게 기쁘게 하고 떠나시다니….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국립묘지가 있어서, 아버지가 가까이 계신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그리고 감사하다.
7. 친구들이 고마웠다 : 이번 경험을 통해서 결혼식은 가지 못하더라도 장례식은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이 들어올 때마다 내가 감동했기 때문이다. 슬픈 일을 겪으면 그런가 보다. 와 주신 모든 사람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특히 내 친구들은 더욱.
부산에서 온 홍림.
대전에서 온 옥경.
분당에서 온 도경.
분당에서 온 인숙.
두 번이나 온 서울의 문숙.
두 번이나 온 서울의 순화.
그 밖에도 멀리서 전화로 마음을 전해 온 친구들.
(장례식장은 서울이었다.)
8. 남편이 고마웠다 :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 와 준 남편이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병원에 가 있느라 집에 없는 동안 남편이 나 대신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해 준 것은 나를 든든하게 했다.
주부 습진이 생겼다는 남편에게 대학생인 큰딸은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아빠 귀여워 죽겠어.”
“나,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라고.
어머니도 남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내가 사위를 잘 얻은 것 같아.”라고.
9. 시댁 식구들이 고마웠다 : 아버지가 병원에 계셨을 때 대구에서 형님들(남편의 누나들) 두 분이 병문안을 오셨다. 그런데 이틀 뒤 장례식장에도 또 오셨다. 그것도 이번엔 고모부님들(누나들의 남편들)과 부부 동반으로 오신 것이다. 더운 날 대구에서 서울로 어려운 걸음을 하신 분들이라 매우 고마웠다. 서울에 사는 시동생 내외도 병원과 장례식장으로 두 번이나 와 줘서 고마웠다.
10. 재밌는 아버지였다 : 내가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어릴 적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들어오시면 나를 찾았다. 거실로 들어서며, “우리 딸 어딨어?”, 하신다. 내 방에 있던 내가 거실에 나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면 “어, 우리 맏딸.”하고는 내 얼굴에 당신의 얼굴을 비비신다. 아버지의 까칠한 수염 때문에 따가워서 “그만 해.”하고 내 방에 들어가면 이번엔, “우리 막내딸은 어딨어?”, 하신다. 그러면 나는 또 거실로 나가 막내딸인 척해야 했다. 딸이 나 하나밖에 없으니 나는 맏딸과 막내딸이 되어야 했다.
11.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 :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3년 동안 나는 친정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드나들었다. 친정에서 가까운 데로 우리 집이 이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많았고 얘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운 적도 많았다. 화투를 치기도 했다. 아버지가 고스톱을 워낙 좋아하셔서 어머니와 내가 인심을 쓰듯 쳐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셋이 쌓아올린 추억의 탑은 높았다.
토요일에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하고 와서 일요일에 친정에 가면 아버지는 꼭 물으신다. “어제 학교는 잘 갔다 왔니?”라고.
12. 또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 참 좋은 아버지였다. 나를 혼낸 적이 한 번도 없는 맘 좋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딸이란 가족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었던 것 같다. 딸에게 아버지 역시 가족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었던 것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또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13. 앞으로 할 일 : 앞으로 나에겐 어머니를 위로하며 살아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는 씩씩하게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울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가 편히 잠들 것이다.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담담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겪는 일이므로.
그러나 한동안 슬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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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란 그저 양치기가 영광스러운 손길을 기다리며 왕 앞에 설 때의 떨림에 불과합니다.
양치기는 왕의 은총을 입게 되었으니 떨리는 와중에도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허니 떨리는 감각에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요.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바람 속에 벌거벗고 서 있는 것이자, 태양 아래 몸을 녹이는 것일 뿐.
숨이 멈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끊임없이 흐르는 물결에서 벗어나 숨이 자유로워지는 것이자, 날아오르고 부풀어 올라 아무런 장애물 없이 신을 찾아가는 것일 뿐.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90쪽~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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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겪으면서 죽음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죽음을 최후에 남겨 놓고 있는 게 우리의 삶이라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