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고전적이다, 클래식하다... 뭐랄까 신인다운 발랄함이나 참신함 보다 우직하다고 생각했다,

기교도 없고  어찌보면 그저  담담하게 그러나 절실하게 써내려간 그런 투박한 이야기가 그대로 마음을 치고 들어와 앉아버렸다,

이건 뭐지 싶었다,

내가 평론가는 아니니까 뭐라고 평을 할 수는 없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한 독서가 어느 순간 정자세를 하게 만들고 읽다가 잠들든지 뭐... 하던 나른함이 다시 어깨를 토닥이면서 다  읽어야 할거 같은 의무감을 들게 했다,

별 거 아닌데,.. 멋진 구성도 아니고 어딘가 툭툭 끊어지고 이어지고 하는 이야기인데

그냥 그렇게 쑥 들어왔다, 어떤 예고도 없이

이건 반칙이지...

사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싶었었다,

누군가를 담담하게 기억하면서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순식간에 들어가버리는 글을 쓰고 싶었다.

소설 거의 중반이후에 나오는 주인공 소유의 감정의 결이 거의 내것처럼 그대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 그가 쇼코를 바라보는 시선 할아버지를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기대했다가 경멸했다가 혐오했다가 그렇게 인정하게 되는 순간순간이 퍽이나 이해가 가면서 동시에 내가 이해받고 있는 기분 그러면서 이런 이해와 공감을 한 10년도 더 전에 내가 느꼈더라면 나는 지금 다른 내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이건 뭐지? 싶어 한참을 있다가 다음 작품을 읽었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읽으면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라는 공통점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스며드는 일 누군가가 내게 스며드는 일에 대해  조금 더 나도 그렇게 스며들고 싶었던 거 같다,

80분의 기억을 가진 수학자 그리고 그녀의 집을 드나드는 가사도우미 그리고 그녀의 아들

그리고 수학과 야구

예전에 나는 이 책을 '사람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의이자 배려'라고 했다,

지금도 그럴까?

그때나 지금이나 책에서의 첫 인상은 일본인답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등장인물의 성격이라고 해야할까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해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고 그래서 깍듯해지고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두며 그 사이의 공간을 존중해주는 느낌... 그거였다,

누군가의 바운더리를 존중해주는 것 나에게 그건 예의의 처음이었다,

친해지고 다가오고 다정한 사이도 좋지만 그렇게 상대가 가지고 있는 공간을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을 가만 내버려 둘 줄 아는  여유가 예의이자 배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냉정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박사가 가지는 기억의 한계는  늘 박사를 깍듯하게 만든다.

내겐 낯선 사람이지만 어쩌면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사람일 수도 있는 상대에게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조금은 미안해하며 다가가는 박사의 모습과 그런 박사의 이질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하는 도우미와 그의 아들 루트 ..

그건 어쩌면 최은영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공감과 이해 그것과 같은 결일것이다,

누군가에게 훅 하고 다가가진 않지만, 그저 주변에서 서성이고 주저하고  생각이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 주저하는 시간동안 상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 입장을 이해하고 또 이애하고 머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그렇게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그것이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박사가 말하는 여러 수식과 숫자의 아름다움은 낯선 것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지만 그 말들이 나를 인정하고 나를 배려하고 나를 존중한다는 의미라는 걸 도우미는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누구에게 그렇게 존중받고 인정받고 존재감을 느꼈을까

낯설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수식의 세계에서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공감하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었다,

지속되지 못할 기억일지라도 추억을 만들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이 비록 잊혀졌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

기억은 없어도 관계와 존중은 지속되는 것... 그것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밋밋하지만 따뜻하다,

그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고고 뻐근한 근육들을 풀어주는 나른한 시간같은 순간들이었다,

 

문득 그런 박사와 도우미와 아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안채에서 보고 있던 미망인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했다,

영원히 나와의 시간은 잊지 못하는 사람

나를 잊어서는 안되는 그 사람이 지금은 불구가 되어 80분의 기억밖에 지속하지 못하지만

그가 가진 낡고 오래된 기억속에 나는 영원하다는 사실은

그 미망인에게 위로였을까 아니면  저주였을까?

나는 늙고 이렇게 변했는데 그의 기억속에서 나는 영원히 영원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예전엔 외롭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며 바라보고 또 바라보기만 하는 미앙인의 마음도 이젠 알 거 같다,

 

 

다시 <쇼코의 미소>로 돌아와서....

 

"넌 왜 그런 얘길 하면서 웃어?"   (씬짜오 씬짜오 중에서)

 

어린 투이의 그 한마디에 나는 순간 무안해졌을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면서 웃는 아이는 자기에게 박히는 말들을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애써 지우리고 하는 게 아니라 애써 기억해내지 않으려고 한다

이 두가지는 비슷해보이지만 다르다,

지우겠다는 적극적 의지조차 내 보이지 못하고 그저 보이지 않도록 보여지지 않도록 남모르게 혼자 애쓸 뿐이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건 그 이야기가 아프다는 걸 안다는 거다,

아픈 이야기지만 아프다는 걸 보이고 싶지 않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쿨하다고 보여지고 싶고 그리고 누구에게도 내 속내를 보이고 싶지 않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한자락 깔려있다,

 

나와 발음이 같은 응웬 아줌마도 역시 잘 웃었다 잘 이해해주었고 상대의 좋은 점을 잘 알아봐 주었고 슬프면서도 언제나 웃고 있었다, "행복이 슬픔과 너무나 가까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목이 매이거나 괜히 명치 끝이 먹먹해지는 기분

그걸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을까

이런 모순되고 이상한 마음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닐까 하고 어릴적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알고 있는 걸까

혹시 나만 느끼는 것 아는 게 아닐까

나만 아는게 좋은 건지 나쁜건지도 몰랐지만 왠지 나만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고 나말고도 다 아는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반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신은 항상 그런식이야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 안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혹은 못하는 사람을 나도 알고 있다,

언제나 자신은 잘못을 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잘못이구나 하고  알겠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자기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잘못을 말하는 순간 자기가 지는 거라고 자기가 없어지는 거라고 믿어서 그게 두려워서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요즘 생각을 한다,

그냥 못나고 고집세고 안하무인으로 보이는게 차라리 낫다고 믿어버리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안쓰럽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절대 그런 내색을 나는 하지 않는다

그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동안 나는 절대 그를 이제는 알거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끝까지 모른 척 이해 못하고 알지 못하는 저쪽 별에 사는 사람처럼 대하면서 내가 조금 그를 알아가고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해인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받아주려고 한다는 걸 절대 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유치하지만 이게 복수라고 믿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루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 보다 훨씬 더 전에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

 

아니다 속이 깊은 아이들은 아이처럼 유치하게 굴기도 하지만 다 아는 어른 처럼 냉소적이고 진지하기도 하다, 어떤 행동을 보이든 그게 타인의 눈에는 어리게만 보인다는 걸 본인만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거나 웃기거나 혹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팔짱을 끼고 찡그리고 있거나 그건 지금 내가 몹시 약하고 불안하고 힘들다는 말인데 그걸 사실 타인은 모른다 나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오래되면 그게 나의 본성인듯 여겨진다,

나는 원래 냉소적이고 쿨한 사람이야. 라고 자기를 착각하거나 나는 웃기고 유머감각이 있는 아직은 아이같은 면이 있지.. 하고 자기를 그렇게  정해버린다,

오래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은 이제 내 피부인지 합성고무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처럼 이젠 그런 외피가 없으면 오히려 더 불안하다, 불안을 감추기 위해 써 온 내 겉모습이 이제 내가 된다, 익숙하다, 그렇게 미리 어른이 된 아이들은 나중에 영영 어른이 못되기도 하는 걸까

어릴 적에는 그렇게 조숙해버린 아이가 되었고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는 영원히 철들지 않고 어른이 되지 못한 어정쩡한 나이먹은 아이가 있다,

둘의 공통점은 언제나 지금 현실과 붕 떠있다는 것

아이일 적엔 아이인적이 없었고 지금은 어른이 너무 힘들고 낯설다,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이 말이 가장 많이 입을 통해나오면서 가장 저주스러운 말이되었다,

괜찮지 않다고 아무렇지 않을리가 있겠냐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건 자존심의 문제가 되기도 하고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고 언제나 나보다 타인이 더 중심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괜찮아야 하고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일들이 쌓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한 마음이 계속 불어났다,

그리고는 이젠 습관처럼 그렇게 말이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간다,

괜찮아요.  별일 아니니까요

세상에 내게 별일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온다,, 라는 말처럼 허무맹랑한 말이 있을까 이렇게 환상적인 환타지가 있을까 세상은 수학공식이 아닌데 늘 들어가는 수에 따라 나오는 수가 일정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박사는 수식의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그건 그저 추상적인 수식일 때의 아름다움이다,

세상은 우리가 사는 이곳은 그렇게 딱 떨어지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노력보다 큰 걸 갖는 사람도 있고 노력따위는 쓸모조차 없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해도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제로섬게임도 아니다, 누가 더 많이 가져서 누가 덜 가져가는 일이아니라 그냥 우연이고 운명이고  신의 장난같은 거다, 신도 가끔은 변덕을 부리거나 마음이 내키거나 말거나 할 일이 있을 테니까,,,,

커다란 우주의 진리는 그러한데 세상은 지금 소수점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세어가며 누가 얼마나 더 많이 노력했는지 더 많이 이루었는지를 깨알처럼 따진다, 이렇게 노력하고 애써서 이만큼 이루었는데 나보다 덜하고 덜 이룬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부당하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본다, 누가 중간에 새치기를 하는지 누가 노력없이 먹으려고 하는지... 그래서 점점 세상이 모래알처럼 되어가고 있다,

가장 큰 세상의 비밀은 언제나 불공정하고 언제나  모든 것이 비례든 반비례든 딱딱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인데 그걸 아무도 모른다,

 

 

이외의 다른 최은영의 단편들 속에서도 주인공은 늘 머뭇거리 오래 생각하고 멈칫하고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행동이 굼떠 보이고 그래서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오해를 그냥 내버려둘 수 밖에 없어 혼자 속으로 곪아가기도 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게 오래오래 속에서 삭힌 생각들 상대에 대한 생각 자신에 대한 생각들이 배려가 된다,

아 그랬구나

켈리는 사람에게는 제각각의 개인구상개념이 있다고 했다,

내가 본 것 알아낸 것 느낀 것 배운 것들이 모여서 내가 세상을 판단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어떤 틀 같이 각각 개인은 개인만의 개인구성개념을 가지게된다, 개인이 어떤 구성개념을 가졌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 다르고 개인의 성격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개인의 구성개념은 또 다른 경험이나 감정 생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렇게 딱딱하게 굳기도 하는 것이다,

최은영의 인물들은 모두가 스스로의 개인구성개념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봐도 될까 이렇게 받아들여도 될까  저건 어떤 의미일까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거나 오해하는 건 아닐까

그러다 아 다 싫다 피곤하다 남따위는 모르겠다고  주저앉기도 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타인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넓어지고 깊어진 각각의 개인구상개념을 가진다고 하면

켈리박사에게 실례가 될까?

모든 소설속에 내가 있고 내가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면서 그럴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혹은 미워하고 복잡하다가 쥐어짜다가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그를 사랑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

 

박사와 가정부도 서로에게 조심하고 조심하고  고용인과 고용주라는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키다가 서로를 살펴주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쌓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도 사랑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나는 상대를 생각해서 조언이랍시고 하고 그 입장을 생각해서 말을 꺼내지만

그게 참 어설픈 조언이나 하나마나한 잔소리 심지어 소음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절실히 알아가는 요즘이다,

나는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냥 내가 보기에 저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좀 더 세심하게 남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이라도 하면 좋겠고 비록 속마음은 아닐지라도  세련된 척 괜찮은 척하라고 조언하고 싶어 죽겠다,

그래도 남의 입장에 함부로 입질하지 말자고 참고참고 참다가 결국은 꼭 사단나는 한마디를 한다

말은 하는게  더 후회가 많고 왠만한 말은 다 사족이다,

내가 타인을 이해고 배려한다는 것

그건 그냥 오래오래 그를 마음에 품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말고

그냥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믿어주고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냥 웃어주는 것 뿐이란 열패감이 섞인 깨달음이 든다,

아는 건  쉬운데 그렇게 해주는 건 참 어렵다,'

 

공감이라는게....

그게 오히려 폭력으로   전해질 수 도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책만 뒤적인 요 몇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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