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영국 아트페어 출품 소식을 알렸었는데요. 런던에서 진행됐던 리얼팬아트페어는 4월3일 끝이났습니다. 지난 주 아트페어 전시 참여 작가 도록이 나왔는데요, 정말 쟁쟁한 작가들이 많아서, 과연 내가 끼일 자리였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추상화 작가들은 많이 없기에 구색맞추기로 참여됐던거 같다는 생각인데, 그래도 제겐 과분한 자리였던 거 같아요. 어쨌거나 외국 전시에 초짜가 과분한 경험을 했음은 틀림 없었던 거 같아요.


그 연장선을 달립니다. 7월에 뉴욕 아트페어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6월10일까지 10호 작품을 그려야하기에 여유가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7월에 역시 한국미술대전에 출품하기로 했기에 좀 바쁘게 그려야 될 듯합니다.


그리고, 4월17일부터 운좋게 개인전을 하게 됐는데, 오늘 전시 홍보물이 나왔네요~ 아쉬운 점은 A4 2장 반 분량의 원고를 넘겼는데, 글이 짤린 느낌이라...그리고 주제인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에 맞는 이미지가 아닌 '순수의 전조' 이미지라서 좀 황당한 느낌입니다.




근데, 뭐 두 주제를 같이 걸어 놓게 되어서 그냥 그러거니 생각합니다. 혹시 홍대 주변에 거주하시는 분이 계시면 한 번 둘러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작년에 새로 오픈한 마포리움은 도서관과 미술관 그리고 휴계 공간의 복합공간이라 매우 이색적인 장소입니다. 


책도 보고 미술품도 감상하는(누워서 책보는 공간도 곳곳에 만들어 놨습니다) 색다른 곳이라 한번 쯤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어요~ 마포구 평생학습관 5층 마포리움입니다~




[덧]

1. 런던 아트페어 개인전 부스 하라고 해서 부담스러워서 고사했는데, 개인전을 이렇게 이른 시일에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ㅎㅎ

2. 이번 전시는 소품 위주입니다. F3 사이즈가 주된 크기고, F6 2점, 10S 1점 등입니다.

3. 4월 20일에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에 당첨됐습니다..ㅎㅎ 뭐, 지인에게 양도 받긴 했습니다만..ㅎㅎ

호퍼 전시는 우리나라 첫 전시인만큼 모두 매진됐다네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이라 기대가 만빵입니다~



에드워드 호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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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10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서울에서도 볼 수 있군요.
제가 아는 지인중에 미술인은 아직 없는데
이제 야무님 자랑하면 되겠군요. ㅎㅎ
자랑스럽습니다. 축하합니다.^^

yamoo 2023-04-11 19:19   좋아요 1 | URL
네, 서울을 벗어나서 그림을 가져가 설치하고 세팅하는 건 못하겠더라구요~~ㅎㅎ

오~~ 감사합니다! ㅎㅎ 스텔라님의 응원에 힘입어 계속 달려보겠어요!^^

책읽는나무 2023-04-11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전 축하드립니다^^
야무 님이 화가이신 줄 처음 알았습니다.
개인전에 사람들 문전성시 이루시길 기원하겠습니다^^

yamoo 2023-04-11 19: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나무님^^
화가는 아직 아니구...개인전과 초대전을 최소 10여번은 충족해야 명암을 내밀까말까입니다..ㅎㅎ

문전성시는 아니구....그냥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그림을 걸어 놓는 거라 일반인들에게 그림이 노출되는 빈도는 좋은 거 같습니다..ㅎㅎ

새파랑 2023-04-11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런던에 이어 뉴욕까지! 완전 셀럽이시군요~!!
마포구 근처 가면 꼭 가보겠습니다~!!

yamoo 2023-04-11 19:22   좋아요 1 | URL
뉴욕도 신청했는데, 포기자가 생겨 대타로 낙점됐어요..ㅎㅎ

감사합니다!^^

감은빛 2023-04-11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전시회 축하드립니다!
야무님 그림 보러 달려가고 싶지만,
제 몸은 일터에 묶여 꼼짝을 못 하네요. ㅠㅠ

yamoo 2023-04-11 19:2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감사합니다~~~
응원만이라도 저는 고마울 따름이에요!ㅎㅎ
 



부르디외의 주저 중 한권이다. 헌데 이 중요한 책이 다시 번역되어 나왔는데 진짜 한국 번역계,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김현경. 믿고 보는 역자로 회자되는 사람이란다. 훌륭한 번역 덕분에 어려운 저서를 수월히 읽을 수 있었다.” “술술 읽힌다.” 이 책에 달린 짤막한 리뷰들이다.

 

진짜 열 받는 게 리뷰에 이런 식으로 써 놓으면 정말 믿고 보는 번역이라 생각되어 냉큼 구매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구매하기 직전에 알라디너 한 분이 작성한 리뷰 때문에 이 책을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구매했다가는 다시 읽는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 헌데 이 리뷰자는 이 책의 좋은 번역 때문에 감사하다는 논지로 리뷰를 작성했다.

 

두 부분을 꽤 길게 인용해 놓아서 역자의 번역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하게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사람치고 완벽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거의 비문들을 연결해 놓아 번역기 돌린 문장들과 대동소이한 문장들로 번역해 놓고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했단다.

 

알라딘 리뷰자가 인용한 다음 문장들을 보면, 이 책이 왜 믿고 보면 안 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리뷰자에 따르면 다음 부분이 새 번역본에도 똑같이 실려 있다고 언급했기에 인용된 페이지는 구판이다.

 

 


하지만 사회학자들은 또한 대상에 대한 직접적으로 경험된 관계에 따라,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비난과 찬양, 신비화되고 신비화하는 공모와 환원주의적 탈신비화 사이에서 균형을 취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객관적으로 문제적인 것을, 다시 말해 지역과 지역주의가 걸려있는 투쟁의 장의 구조를 객관화하지 않고 수용하기 때문이며, 또 지역주의 운동의 방향를 이야기하거나 그 미래를 예측해줄 수 있는 잣대들에 대한 논쟁에 뛰어들면서도, 그 운동의 방향의 결정 및 그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잣대들에 미치는 투쟁논리에 대해(그것은 지역적인가 국민적인가, 진보적인가 퇴행적인가, 우파냐 좌파냐 등) 묻지 않기 때문이다p.283

 

 

 

일단 한 문장씩 나열해 보자. 문장들이 정말 엄청나게 길다.


 

1. 하지만 사회학자들은 또한 대상에 대한 직접적으로 경험된 관계에 따라,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비난과 찬양, 신비화되고 신비화하는 공모와 환원주의적 탈신비화 사이에서 균형을 취할 수 있다.

 

-> '하지만'과 '또한'이 한 문장 안에 열거되어 있다. ‘대상에 대한 직접적으로 경험된 관계는 프랑스어를 그대로 해석한 비문이다. 그리고 ‘ab’는 나열될 때 그 꼴이 같아야 한다. 명사와 명사가 나열되면서 마지막에는 신비화되고 신비화하는 공모와 환원주의적 탈신비화라는 관형절과 관형절의 꼴이 나열된다. 이게 좋은 번역문인가? 이건 애교수준이다. 

 

 

2. 이는 그들이 객관적으로 문제적인 것, 다시 말해 지역과 지역주의가 걸려있는 투쟁의 장의 구조를 객관화하지 않고 수용하기 때문이며, 지역주의 운동의 방향을 이야기하거나 그 미래를 예측해줄 수 있는 잣대들에 대한 논쟁에 뛰어들면서도, 운동의 방향의 결정 및 그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잣대들에 미치는 투쟁논리에 대해(그것은 지역적인가 국민적인가, 진보적인가 퇴행적인가, 우파냐 좌파냐 등) 묻지 않기 때문이다

 

-> ‘묻지 않기 때문이다의 주어가 무엇인가? ‘그들이인가? 문장의 뼈대는 객관적으로 문제적인 것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에 여러 수식어 절이 중간에 끼어든 모양새다. 그래서 수용하기 때문이다의 주어와 논쟁에 뛰어들면서도의 주어 그리고 지역과 지역주의가주어가 모호해진다. 대부분 프랑스 철학 번역서에서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문제적이라는 건 우리말에 없다.

특히 이 역자는 투쟁의 장의 구조’. ‘운동의 방향의 결정등과 같이 관형격 조사 를 매우 남발하고 있다. 무슨 일본어 문장쓰기 대회하는가?

 

 

 


게임과 불확실성의 몫인 이 부분은 세계관의 복수성의 기초이기도 하다. 후자는 그 자체가 관점의 복수성과, 그리고 정당한 세계관을 생산하고 강요하려는 온갖 상징적 투쟁과 연결된다. 더 정확히 말해서 직접 볼 수 있는 속성들을 넘어서, 미래 또는 과거를 참조하여 사회세계의 대상들의 의미를 생산하는, 충만(remplissement)의 인지전략과 연결된다. 이러한 참조는 후설이 미래지향(protention)과 과거지향(retention)이라고 부른 것, 즉 과거와 미래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는 전망과 회고의 실천형식 자체와 결합되면서, 암묵적이고 함축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명시적일 수도 있다-현재의, 언제나 열려있는 의미를 결정하고, 한정하며, 규정하기 위해, 과거가, 현재의 필요에 맞춘 과거의 회고적인 재구성을 통해('라파예트여, 우리가 왔소'), 끊임없이 원용되며, 무엇보다 미래가, 창조적인 예견과 더불어, 끊임없이 소환되는 정치적 투쟁에서 그렇듯이.p.293

 

 

하여간 역자 김현경은 ‘abc’ 구조를 무척 좋아하는 듯하다. 이런 구가 넘쳐난다. 문학에서 이런 번역문은 절대 볼 수 없는 문장들이다. 이 구의 심각한 문제는 모호성에 있다. 아주 대표적인 문장이 첫 문장이다.

 

1. 게임과 불확실성의 몫인 이 부분은 세계관의 복수성의 기초이기도 하다.

 

-> 이 짧은 번역문에 문장을 모호하게 하는 요소가 대거 들어가 있는데, 역자는 이런 걸 신경도 쓰지 않는다. 번역을 프랑스어와 한국어의 1:1 대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데, 이건 철학서 번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문제이다. 한국어 문장의 기본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고, 프랑스식으로 한국어를 생각하며 번역한다. 그러니 문제의 심각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거다.

 

게임과 불확실성의몫인가 아니면 게임과 불확실성의 몫인가. 모호한데, 뒤이어 이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은 도대체 어디에 걸리는가? 기초가 세계관의 기초인가 복수성의 기초인가. 정말 난감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2. 후자는 그 자체가 관점의 복수성, 그리고 정당한 세계관을 생산하 강요하려는 온갖 상징적 투쟁 연결된다.

 

-> ‘’, ‘그리고’, ‘생산하고’, ‘등의 연결어 등이 계속 나열된다. ‘연결된다의 주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다. 이건 문장도 아니다.

 

 

3. 더 정확히 말해서 직접 볼 수 있는 속성들을 넘어서, 미래 또는 과거를 참조하여 사회세계의 대상들의 의미를 생산하는, 충만(remplissement)의 인지전략과 연결된다.

 

-> ‘사회세계의 대상들의 의미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호한 구다. 헌데 사회세계의 대상들의 의미를 생산하는는 수식하는 게 충만인가 인지전략인가? 그리고 충만의 인지전략은 비문이다. ‘충만한 인지전략이겠지.

 

 

4. 이러한 참조는 후설이 미래지향(protention)과 과거지향(retention)이라고 부른 것, 과거와 미래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는 전망과 회고의 실천형식 자체와 결합되면서, 암묵적이고 함축적일 수 있다.

 

-> ‘과거와 미래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는 전망과 회고의 실천형식..인지 아니면 과거와 미래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는 전망과 회고의실천형식.. 인지 모호하다. 그리고 묵적이고 함축적일 수 있는 주어가 참조는인가?

 

 

5. 하지만 명시적일 수도 있다-현재의, 언제나 열려있는 의미를 결정하고, 한정하며, 규정하기 위해, 과거가, 현재의 필요에 맞춘 과거의 회고적인 재구성을 통해('라파예트여, 우리가 왔소'), 끊임없이 원용되며, 무엇보다 미래가, 창조적인 예견과 더불어, 끊임없이 소환되는 정치적 투쟁에서 그렇듯이.

 

-> 줄표 이하 전체 문장의 주어가 없다. 하지만 이하 전체 문장이 앞 문장의 주어 참조는이라면 이렇게 번역해야 분명한 문장이 된다. “이러한 참조는 암묵적이고 함축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명시적일 수도 있다.” 이 문장이 4.5번 문장의 뼈대다. 그러면 줄표 이하, ‘현재의 과거가 미래가 그렇듯이는 명시적일 수도 있다는 수식어구인데, 이건 그냥 정보를 나열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줄표 이하의 주어는 참조는인데, 명시적일 수도 있다는 절의 주어도 참조는이다. 이걸 하나의 우리말 문장으로 옮겨야하는데, 그게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장을 잘라 단문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고민을 거듭해야하는데 우리나라 인문서 번역가들은 전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문장이 끊임없이 나열되는 불량 한국어본을 갖게 되는 거다.

 

이게 잘된 번역으로 상찬 받는다는 사실이 기가 찰 노릇이고, 그만큼 우리나라 번역 현실이 척박하다는 반증이겠지. 반성하자. 번역할 우리말 깜양이 되지 않으면 번역을 하지 말자. 그리고 제발 번역을 작품으로 인정하자. 번역이 작품으로 대접받지 못하니 이러한 불량 번역본이 양산되는 거다. 무엇보다 이걸 출판사 편집진에서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도 아주 우스운 일이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

1. 이 책 구매할 뻔했는데, 리뷰 보고서 바로 손절했다. 구매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불량 번역서는 불량품인데, 봤다고 반품이 안 된다.

2. 좋은 번역인지 아닌지는 우리나라 소설이나 에세이 작품을 놓고 비교해 보면 된다. 오역을 하지 않는 것은 번역가의 기본이다. 그 기본기 전에 기초도 못 갖춘 번역가는 번역계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본다. 제발 번역으로 명저를 망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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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4-04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너무 좋네요. 일단 인용된 문장만으로 판단해도 진짜 무슨 말인지 진짜 알아먹기 어려운 번역. 번역이란게 정말 말을 그대로 옮기는게 아니라 한국어의 문법과 어법에 맞추어야 되는데 그게 안되는 번역들이 정말 많아요. 특히 철학서로 가면 더 그런듯요. 공감 백개 보내고 싶은데 한개밖에 없어서 아쉽습니다. ^^

yamoo 2023-04-05 17:01   좋아요 0 | URL
음...뭐랄까, 우리나라 인문서 특히 철학서나 사회학 명저 번역본들은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을 보기 매우 힘듭니다. 특히 프랑스 철학이 심합니다. 비문의 보고들이죠. 한 두 권이 아닙니다. 사실 오역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에요. 번역하는 사람들이 국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 우리말 구사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이런 불량 번역본을 가진 나라는 선진국들 중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ㅎㅎ

그레이스 2023-04-05 1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르디외 자체가 어려운데 번역이 난해하면 ...ㅠ
그런 책에 이런 리뷰를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 👍

yamoo 2023-04-05 17:04   좋아요 2 | URL
부르디외 사상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합니다. 번역이 매우 안 좋아 이해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부르디에 저서를 읽기 힘들게 된 거죠. 데리다, 베르그손, 후설, 하이데거 등의 주저들을 보시면 아주 기가막힙니다. 거의 읽을 수 없는 수준의 문장들이 지뢰처럼 깔려있습니다. 모호한 문장들의 대잔치...그러니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게 당연한 거죠..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현상인데, 책을 산 사람들이 데모도 안해요..^^;;

2023-04-04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5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되풀이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이상해 옮김 / 북폴리오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현대소설에서 누보 로망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알랭 로브그리예의 유작 <되풀이>(북폴리오, 2003)를 읽었다. 문학 사조에서 누보 로망이라 하면, 내겐 재미가 더럽게 없는 소설로 분류된다. 이건 뭐 편견이긴 하지만, '누보 로망' 하면, 전통적 소설의 형식을 배격하기에 인칭, 서사적 맥락, 주제 등이 전혀 없거나 매우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난해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누보 로망 어쩌구 하면 나는 아얘 쳐다도 안 봤다. 교과서에서는 반소설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매우 난해한 작품만 나열되어 있어 별로 땡기지 않았다. 내게 소설의 미덕은 재미난 이야기라서 그것 자체가 없는 작품은 나하고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랭 로브그리예는 그 사조를 태동시킨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작가였기에 읽을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질투>(민음사, 2003)를 살짝 봤는데, 그 한 시퀀스를 묘사해 내는 필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오래 전에 읽지는 않지만 컬렉션 해 온 작품들 중 르 클레지오, 로제 그르니에의 작품들과 같이 구매한 작품이 <되풀이>였다. 제목도 참 맘에 들지 않았지만, 로브그리예라서 그냥 컬렉션했다고 볼 수 있다.

 


헌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에 있는 책을 주섬주섬 옮기다가(물론 책이 너무 많아 버릴 책을 선별하기 위해서) <되풀이>의 첫장을 펼쳤는데, 보통 헌사가 쓰인 제일 첫 페이지에서 키에르케고의 <반복>의 한 문장을 보게 되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용한 부분이다.

 


되풀이와 되새김은 동일하지만 서로 반대방향을 지향하는 움직임이다. 우리가 되새기는 것은 이미 있었던 일, 따라서 뒤쪽을 향한 반복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되풀이는 앞쪽을 향한 되새김일 것이기 때문이다. -쇠렌 키에르케고, <되풀이>

 


인용한 책은 분명히 키에르케고의 <반복>이었지만, 로브그리예는 되풀이로 번역하여 문장을 인용했다. 사실 나는 오래 전에 분명히 키에르케고의 <반복>을 읽었지만, 인용된 문장이 그 책에 있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지 반복을 되풀이와 되새김으로 나눈 키에르케고의 탁견에 깊은 인상을 받아 로브그리예를 읽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질투>와는 차원이 다른 뭔가가 잡아끌었고, 첩보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시작되는 <되풀이>는 나의 구미를 돋우기 충분했다. (난 첩보 소설 매니아다!)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과 불가해한 사건들은 페이지를 지속적으로 넘기게 해 줬다. 불가사이한 사건들의 퍼즐을 맞추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었지만.

 


책을 덮고 로브그리예와 누보 로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누보 로망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이 작품은 로브그리예가 20년의 침묵을 깨고 근 80의 나이(2001년)에 선보인 작품이란다. 만년의 유작이 된 작품이 흥미진진한 추리기법과 첩보소설의 형식을 띠었다는 거에 놀랐고, 가독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그가 왜 타이틀을 <되풀이>라 명명했는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무릅을 쳤다.

 


<되풀이>는 표면적 의미가 반복이지만 불어에서는 짜깁기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불가해한 사건들과 분열된 인물(이 작품의 주된 인물은 분열 증상을 보인다)의 퍼즐을 맞추게 한다. 단편적이고 이상한 사건들은 분열된 인물이 불연속적인 시간을 지나며 일으킨 파편들이다. 그 파편들을 다시 맞추는 행위, 그게 바로 <되풀이(짜깁기)>였다.

 


이 소설은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시간 순으로 목차가 짜여있지만 시간 순대로 읽으면서 첫째 날을 다시 읽고 둘째 날을 지나 다섯째 날까지 날짜를 한 번 에 쭉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되돌려 읽고 되풀이해서 읽어야 했다. 궁금해서. 이 인물이 그 인물인지, 시간 대가 어제인지 오늘인지 계속 되풀이하며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헌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궁금증이 지속됐기에.

 


결국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연결되면서(전형적인 메뵈우스의 띠 구조는 아니다!) ‘삶의 부조리한 반복이 어떤 이미지를 띠는지 그려볼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불가해한 사건과 알 수 없는 기억의 부재 그리고 의식의 혼돈은 삶의 부조리그 자체였다. 그래서 <되풀이>를 짧고 간명하게 표현하자면 삶의 부조리한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끝으로 이런 리뷰를 남기게 한 감명깊은 다음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거기에 동일자인 동시에 타자, 질서의 파괴자이자 수호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현존인 동시에 여행객인 누군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와 깥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우아한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이미 뱉어진 옛 낱말들은 늘 똑같은 낡은 이야기를 이야기하며 반복된다. 세기에서 세기로 전해지는, 한 번 더 되풀이된, 그리고 영원히 새로운 이야기를……” (p212)

 

 

[]

0. 이 리뷰가 <되풀이>의 알라딘 첫 리뷰라는 사실!

1. 이 작품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현실의 모호성과 주체의 분열을 다루고 있다는 데에 십분 공감한다.

2. 여기에도 질리도록 세세한 묘사가 넘쳐난다. 아주 신기한 것은 그 세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퀀스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거다.

3.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작품의 근간에 흐른다. 뿐만 아니라 소아 성애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이 신선했다.

4. 여아에 대한 에로틱한 묘사가 <롤리타>를 가볍에 압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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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23-03-2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보로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는 이야기 같습니다 예전에 질투를 읽다가 던져버린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겠네요!

yamoo 2023-03-28 07:40   좋아요 1 | URL
저도 질투를 읽다가 던졌습니다. 치밀한 묘사 때문에 각인된 작가인데, 고민하다가 읽었습니다. 전 되풀이가 꽤 인상깊어서 질투를 다시 읽어야 할 듯합니다!ㅎㅎ 흥미로운 작가의 재발견이었습니다~~ㅎㅎ

stella.K 2023-03-27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질툰가 뭐 하나 읽다 중고샵에 넘겼나 그랬는데
이렇게 쓰시니 읽어보고 싶은데 품절이란 게 잘된 건지 못된 건지 모르겠네요.ㅋ

yamoo 2023-03-28 07:41   좋아요 2 | URL
보통 질투를 읽으면 대부분의 반응이 그렇습니다...ㅎㅎ 읽다가 덮죠..ㅎㅎ
근데 되풀이는 많이 달랐고 읽을만했고 꽤 인상깊었습니다. 근데 이 책이 절판이라 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책을 읽고나서 알았네요..--;;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 본업도 있고, 부캐도 있고 자기만의 방
최재원 지음, 김현주 그림 / 휴머니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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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N잡러가 대세인가 보다. 한승현의 <이번 생은 N잡러>(매경,2021)의 성공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부업을 해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서 그런가 보다. 쉽게 생각해도 인기 유튜버만 되어도 직장을 다닐 필요없이 유투브 제작에만 몰빵해도 수천만원의 수익이 생기니 말이다.


그래서 비슷한 부류의 책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한승현의 책보다 나은 책은 못봤다. 거의가 내용없는 자기 커리어 쌓기로 내놓은 책들인거 같아서다. 특히 최재원의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휴머니스트, 2020)는 이런 부류의 책들 중 최악이었다.


왜냐? 이 책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실천 방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반은 '준비'에 할당되어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는 식이다. 중고교생 대상이라면 뭐 그럴 수 있다. 근데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인 생업전선에서 마음 가짐에 대한 장황한 서술은 그냥 지면 채우기용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주된 업을 가진 사람이 부업, 즉 사이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N잡러를 꿈꾸는 사람들은 실제 주된 업 외에 부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게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아서가 문데다. 그래서 부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게 된다. 이미 '준비'는 끝난 상태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타겟을 아무 준비 없는 평범한 직장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은 있을지언정 전혀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주위에 널렸다). 물론 찾아 보기는 한다. 그런 사람을 위해 '준비'의 중요성을 역설하려면 책의 1/5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주위의 청소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자계서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을 주구장창 나열한다. 책의 반이 그런식이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이건 습관의 문제이고 개인 의지의 영역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언급과 그 사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준비를 하면 실천방안이 나와야하는데, 그 실천 방안이 잘 와 닿지 않는다. 이 책의 3장은(stage3)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나오는 단계인데, 목차를 보자.

나보다 상황을 믿자 : 시간

나보다 상황을 믿자 : 공간

나보다 상황을 믿자 : 사람

기록X기록


이건 뭐, 실천을 하는데 시간, 공간, 사람을 믿자니 믿음이 가지 않는 콘테츠다. 이런 류의 책은 실천 방안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인데, 그 핵심이 뭔가를 믿는 거다. '상황을 믿자 : 시간'의 절이 시작되는 90 페이지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막상 사이드 포르젝트를 시작했으나, 금세 불꽃이 꺼지려 합니다. 의지가 매우 굳은 사람들은 시작과 동시에 계획대로 모모을 움직일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자기 비난에 빠지진 말아요. 대신 꼭 지키고 싶은 약속이나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사람보다 상황을 믿어보세요. 


나를 더 강하게 묶어둘 상황을 위해 '지그재그 몰입' 방식을 추천합니다. 지그재그 몰입은 본업을 할 땐 본업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땐 사이드 프로젝트에만 완전히 집중하는 방식이에요. 하루 중 두 시간이면 두 시간, 일주일 이면 일주일 (중략) 사이드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시간을 만듭니다. (p90)



지금 위에 인용한 부분과 같은 내용들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점령하고 있다. '지그재그 몰입' 방식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하고 있는 방식이다. 중요한건 어느 비중으로 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책에는 이런 구체적인 얘기가 빠져있다. 


기록의 중요성도 하나마나한 얘기다. 내가 수익을 내기 위해서 다른 부업을 시작한다면 기획을 하고 예산을 구상하며 내 시간 투자를 얼마나 하고 어떻게 내 산물을 팔려고 하는지 꼼꼼히 기록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런 걸 구체적으로 잘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산출물만 있고 이걸 수익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거다.


보통 'N잡러'를 위한 이런 류의 책은 기획에서 수익창출까지 자기가 어떻게 기록했는지 알려주는 게 들어 있어야한다. 그래야 구매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는 책은 구매할 가치가 전혀 없다. 자게서 본연의 역할을 전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행 관련 일을 좋아해서 게스트룸에서 외국인과 수다를 떨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나보다. 그래서 지인의 조언을 따라 유튜브 채널을 열어 수익을 올리게 됐나보다. 그래서 본업 외에 수익을 창출한 기회를 얻어 이런 책도 썼나본데, 도대체 왜 유튜브를 통한 수익창출의 방법이 없는지 의아하다. '기록'을 강조한 장에서 이미 언급됐어야 했는데 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한승현의 책보다도 먼저 출간된 책인데, 저자가 구체적인 사례나 방법이 전무한 책을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내놓은 용기가 정말 가상하다. 자기가 부업을 통해 수익을 낸 방법이 쏙 빠진 책은 믿음이 가지 않는 책이다. 더욱이 하나마나 한 소리로 페이지를 채우는 내용은 함량 미달 그 자체다. 이런 책이 휴머니스트라는 지명도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게 신기할 뿐.



[덧]

1. 나도 내 그림으로 뭔가를 해 보기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이런 류의 책을 주섬 주섬 사서 읽는다.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의 책들은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최재원의 책도 그래서 읽게 됐다.

2. 한승현의 <이번 생은 N잡러>를 보고 난 후에 몇 권의 책을 사서 보았는데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는 그 와중에 본 책이다. 한승현의 책과 비교해 보니 너무 함량미달인 책이라 구매하지 말라는 의미로 여기 리뷰로 남겨 놓는다. 이 외에 몇 권의 책이 더 있는데 다른 책들도 대동소이했다. 한승현처럼 구체적으로 뭔가를 제시한 책이 하나도 없었다. 부업이 필요하고 부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승현의 책을 보시라. 최재원의 책은 절대 사지 마시라. 그냥 시간 낭비 돈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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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8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03-20 09:31   좋아요 0 | URL
그림도 있고 페이지 수도 많고...그런데 내용이 없고...하나마나한 얘기를 반이 넘는 분량으로 채우고 있는 책은 정말 독자를 우롱하는 책인듯합니다.

이런 류의 책, 그니까 내용없는 책들이 많은데 비판적 리뷰가 알라딘에 별로 없는게 참으로 거시기합니다~^^::
 



더글로리 파트2를 하루만에 완결하고 그 다음날 주요 회차를 다시 돌려보기까지 했다. 회차를 보면서 그 다음 편을 위해 인정사정 없이 다음회를 눌러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이 올라갈 때 박수를 쳐 주었다. 파트2 기대감이 높았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해서.


사실 더글로리 파트1은 출발이 늦었다. 다들 재밌다고 난리를 친 후에, '그렇게 재밌다고?! 그럼 어디 한 번 봐 볼까~'라는 생각에 1화를 본 때가 2월 초순이었다. 8화를 이틀만에 해치우면서 파트2를 기다렸는데, 사실 이 시간이 견디기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대체재로서 재미있는 소설을 찾아 보았다. <제7의 십자가>는 기대만큼 재밌지 않았고, <가아프가 본 세상>은 2권으로 접어들면서 흥미가 반감되었다. 두 책 모두 읽기를 멈추고 찾아 든 책이 파트릭 모디아노의<한밤의 사고>.



예전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매우 좋은 기억이 있어 펴 들었는데 일단은 성공이었다. 재밌게 읽어가는 와중에 영국으로 갈 그림 반입하고, 국내 전시 알아보고 그림 몇 점 그리니 3월10일이 되었다.




드디어 더글로리 파트2가 올라오는 날이 된 거다. 점심을 먹으면서 더글로리 파트2 정주행을 할 예정이라니, 팀원들 중 한 명이 한 회씩 올라올텐데 무슨 정주행이냐고 핀잔을 준다. 파트1이 어떻게 개봉했는지 몰라 그냥 그런 가 보다 하고...그냥 한 회만 일단 보자는 심정으로 오후 7시에 스타트를 했다.


근데 웬 걸~ 8회차가 모두 올라와 있는 거다. 알아보니 파트1도 8회차 전부 개봉이었고, 파트2도 마찬가지였다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멈출수 없이 16회를 끝내고 보니 새벽3시가 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음날 파트2를 다시 돌려본 후 1화를 또 2번 보았는데, 초반부에 이미 여러 복선이 선명하게 깔려있었다. 특히 연진이 돈과 빽으로 사회적 약자들(소희, 동은, 경란)을 괴롭히는 게 아주 크게 부각됐고 죄책감이라고는 1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9화에서도 여전히 동은에게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멘트를 날린다. 천연덕스럽게.


연진의 뚜렷한 이 평면적 캐릭터가 아주 반가웠던 건 배우자 하도영에게 버림받고 딸과 엄마에게까지 버림받으면서 교도소에 홀로 수감되어 수감자들을 위해 날씨 예보를 해주는 연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다 중 이런 사이다 복수는 없을 듯.


더군다나 연진은 손명오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는 데 자기가 죽인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그걸 끝까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교도소 수감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거. 그게 연진 입장에서는 가장 고통스러울 듯하다. 9화에서까지 '그래 어디 해봐~'라는 연진의 도도한 입장이 겹쳐지면서 복수의 통쾌함은 배가 됐다.


물론 드라마의 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여정의 힘과 부에 기대어 그녀의 복수가 이루어져서 '복수의 순수성'에 손상을 입은 것이 많이 아쉬웠다. 특히 주여정과의 멜로 라인은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다른 조연들의 열연으로 인해 어느 정도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임지현(박연진역), 박성훈(전재훈역), 김히어라(이사라역), 차주영(최혜정역), 김건우(손명오역) 빌런 5인을 손에 꼽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성일(하도영역), 염혜란(강현남역), 안소요(김경란역) 등 3인이 매우 인상깊었다. 


특히 비중이 매우 미미한 역할 중 한 명이 김경란 역을 맡은 안소요인데, 파트1에서는 대사도 별로 없고 부각될 만한 신이 별로 없었지만 파트2에서는 손명오 사건의 숨은 공로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녀는 시종일관 어둡고 우울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흡사 실제 학폭을 당해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처럼 연기했다.


무엇보다 두 장면이 이 배우를 각인시키도록 했다. 원룸에 앉아서 양주명을 꺼내기 전에 흐느끼는 장면과 동은에게 SOS를 치고 자기 원룸에 찾아온 동은이 더이상 체육관에 서 있는 경란이 되지 말라고 말한 직후 오열하는 장면이다. 진짜 또 하나의 명품 배우를 찾은 느낌이었다. 적은 분량이지만 정말 안소요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그녀는 정말 상처입은 사람처럼 보였다.


캐릭터, 플롯, 음악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작품이다. 오징어 게임 이후 이렇게 숨막히게 재밌는 드라마는 처음이었다. 내게 정주행이라는 걸 처음 경험하게 해 준 미드가 <24시>였다. 그 후 미드 <24>를 넘어서는 흡입력을 제공한 드라마는 <오징어게임>이 유일했는데, 이제 <더글로리>도 추가됐다.


학교폭력 문제는 이미 사회의 큰 문제가 되어 버렸고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 임영웅과 정순신 아들의 학폭 문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이런 드라마가 제때 나왔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학폭 가해자는 소급하여 그게 언제가 됐던 철저히 조사하여 응징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글로리> 총평 : 9.5/10



[덧] 

1. 드라마 주연인 송혜교의 연기 변신은 정말 놀라웠다. 이전에 멜로물에서만 보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 개인적으로 송혜교를 무척 싫어했지만 동은을 연기한 송혜교에게는 박수를 쳐주지 않을 수 없었다.

2. 동은의 학교시절을 열열한 정지소 배우. 만신창이가 되는 처절한 절망을 연기한 모습이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다른 역할로 나온 정지소 보다 동은으로 열연한 정지소가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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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3-03-12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시즌 1도 안봤는데, 볼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야무님 페이퍼 보니 볼까 쪽으로 약간 솔깃하네요 ㅎㅎ

yamoo 2023-03-13 18:26   좋아요 1 | URL
강추드립니다! 학폭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 왜 중요한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지요. 무조건 보시길요!!ㅎ

공쟝쟝 2023-03-12 16: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재밌었어요…. 멋있다!! 동은아!!! 🥲😆 상반기 최고 히어로물 ㅋㅋ

yamoo 2023-03-13 18:27   좋아요 2 | URL
넵~ 저도 넘넘 재밌게 봤습니다~~ㅎㅎ

stella.K 2023-03-12 18: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회차를 아예 다 까서 보여주는군요.
고거 마음에 드네요. 그만큼 자신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야무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좋다는 말인데
TV데서도 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컴에서 보는 건 익숙치 않아서 말이죠.ㅜ
근데 왠지 작가도 정점에 오른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송지나 모래시계 이후로 태왕사신긴가 뭐 하나하고 조용하잖아요.
뭐 나름 히트작을 많이 냈으니 더 보여줄게 있을 수도 있지만…ㅋ

yamoo 2023-03-13 18:28   좋아요 2 | URL
스텔라 님, 아직 이거 안보신듯합니다. 무조건 보시라고 강추드립니다!!
요즘 최대 화두인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주제인데...
너무 재밌어서 걍 시각이 순삭합니다~~ㅎ

감은빛 2023-03-12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저녁부터 새벽까지 다 봤어요. 전반적인 느낌은 확실히 잘 만든 드라마는 맞는데, 저는 세부적으로 좀 아쉬운 점들이 있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주여정의 부와 힘에 기댄 부분이 있고, 또 각 악역들이 무너지는 패턴이 좀 전형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초등 교사로서 문동은이 한 일이 별로 없었다고 느껴지는 면도 아쉬웠구요. 현실에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판타지 라는 점이 제일 큰 매력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yamoo 2023-03-13 18:33   좋아요 0 | URL
감은빗 님두 다 보셨군요! 저도 잘 만든 드라마라는데 동의합니다만, 옥에 티는 있듯이 이 작품도 아쉬움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주여정에 기댄 점이 매우 큰 한계였고, 주여정과의 러브라인도 거슬렸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몇 작품 봤는데, 항상 러브라인을 강조해서 이 작품 역시 러브라인 있을거라 예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라는 거에 동감합니다. 법의 정비가 절실하고.. 이게 판타지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문제의식을 다시 환기시켜주는.. 이 작품이 그 마중물이 됐으면 합니다.

transient-guest 2023-03-14 0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기의 학폭장면이나 중간중간 삽입된 회상씬의 학폭장면을 보는 건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다 좋게 끝내자 라는 식의 결말이 아니라서 좋았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 화가 나는 건 여전합니다만.

yamoo 2023-03-15 08:59   좋아요 1 | URL
학폭 씬은 1편이 압도적이었지요. 학폭 신을 보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었지만 제겐 주여정과의 로맨스 라인이 스트레스였습니다.

물론 현실은 드라마처럼 복수가 안되지만 화두를 잘 던져 학폭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있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3-03-14 1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나 더 글로리가 화제네요. 저도 다 보았지요. 8회차가 한꺼번에 올라와 있어서 쭉 이어서 볼 수 있는 건 큰 장점인 듯. 넷플릭스 시대가 오고 있는 중 같습니다.^^

yamoo 2023-03-15 09:00   좋아요 3 | URL
네...공개 3일만에 비영어권 1위에 올랐고, 다음 주가 되면 전체 1위도 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ㅎ

넷플 시대는 이미 왔다고 생각하는 1인이에요..ㅎㅎ

얄라알라 2023-03-19 0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3월 책을 좀 덜 읽은 데, <더 글로리>가 한 몫(?) 했다싶을 정도로,저는 관련 컨텐츠까지 샅샅이 다 뒤져 봤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yamoo 2023-03-20 09:32   좋아요 0 | URL
마저요. 글로리 보느라고 책 못읽었던 거...분명한 사실이에요..ㅎㅎ
저도 관련 영상 많이 찾아봤습니다..ㅎㅎ
요즘도 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