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올 하반기 기대작이라고 회자되는 영화 <전란>을 봤다. 물론 넷플렉스로. 나는 네플 애청자다..ㅎㅎ 넷플은 끊임 없이 내 취향의 영화와 드라마를 추천해 준다. 넷플 켜고 플레이 누르면 가장 최근에 올라온 영화나 드라마를 보여준다.
뭐, 그렇게 본 영화나 드라마들이 다 재밌었던 건 아니다. 그냥 저냥 볼 만 했던 게 다수를 차지한다. 정말 재밌게 본 건 내가 찾아서 본 작품들. 유명한 작품들은 그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
<이태원 클라쓰>, <그해 우리는>, <다음 생도 잘 부탁해>, <청춘기록> 등등. 모두 재밌게 본 드라마들이다. 영화는 재밌게 본 작품이 거의 없지만 최근에 본 <테넷>은 그나마 볼 만했다.
어쨌거나 어제 넷플이 내게 추천해 준 영화는 <전란>. 박찬욱 감독이 각본을 쓰고 김상만이 감독을 맡은 넷플 최신작이다. 이거 보기 전에 예고편을 보긴 했는데, 강동원, 정성일, 차승원 등 라인업을 보면서 기대는 했다.
아, 근데 막상 보니 영화는 '빛좋은 개살구'였다. 도대체 영화가 말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다. 도련님과 그의 몸종이 적이 되어 서로 싸우는, 그러다가 죽으면서 '우린 친구였나'하고 눈물을 흘리는...
7년 조일 전쟁의 배경은 분량이 상당하다. 제목이 전란이라서 임진왜란의 다른 버전인줄 알았는데, 왕의 호의무사인 이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인 천영(강동원)의 대결 구도를 그린 게 전부인 영화다. 왜란의 배경은 들러리였다.
거기다가 고니시의 선봉장인 겐신(정성일)은 그 역할이 애매하다 못해 헛웃음이 났다. 마지막에 종려, 천영, 겐신의 칼싸움 장면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개막장 싸움 같았다.
그 싸움을 위한 선조의 결단은 짜맞추기식이라 개연성이 거의 없었다. 아니, 거의 모든 플롯이 개연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 이야기의 전개가 뚝뚝 끊겨 보는 내내 짜증이 났다.
세트장과 동원된 인력이 아까울 정도. 시나리오 자체는 나쁘지 않다. 조선 후기 두 소년이 신분의 차이를 넘어 서로 친구로 지내다가 장성하여 신분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양반과 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전제.
그 와중에 7년 조일전쟁이 발발하여 하나는 왕실의 입장을 위해, 하나는 의병 입장을 위해 싸워 나가는 와중에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나리오의 구도는 괜찮았다는 말이다.
헌데 이러한 류의 영화, 그러니까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신분을 대변하는 두 인물의 갈등이 영화의 주제가 되려면 연출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시대 속에서 두 인물의 갈등과 아픔이 잘 형상화 되는데, 이 영화는 모든 볼거리가 시대적 배경에 가 있다.
도대체 왜 정여립의 대동계로 영화를 시작했을까? 마지막에 대동계의 새로운 결사를 만들기 위해서? 조선 후기 두 인물을 통해 신분제 질서의 동요를 보여주기 위해서?
조선 후기 정여립 모반 사건은 정말 큰 사건이었다. 이건 정말 한국 사상사적으로 혁명적 사상이었다. 반상의 구별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왕과 천민이 다를 게 없다는 건 저 고려 무신정권이 외쳤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라는 것과 상통하는 거였다. 성리학의 세계에서 말이다.
그래서 내게 엄청난 기대를 갖게 했다. '아, 정여립이 나오는 구나. 이 신분제적 문제를 캐릭터에 어떻게 담아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다는 말이다. 러닝 타임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기대감은 실망감을 바뀌어 갔다.
차승원의 선조는 어울리지 않았고, 진선규의 김자령은 밋밋했다. 강동원은 보는 내내 맞지 않는 캐릭터를 입은 느낌이었다. 배우들 라인업에 비해서 캐릭터를 살리지 못한 느낌이랄까. 감독이 작품의 캐릭터 성격에 아무 관심이 없는 듯.
결국 영화는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됐고, 캐릭터들은 생동감이 없었다. 분장과 미술 그리고 동원된 엑스트라를 볼 때 자본이 많이 투여된 영화인듯한데, 이런 게 바로 '돈으로 쳐바른 영화'이지 않을까. 김상만이 연출한 영화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