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님 서재에서 가져온 이미지. 사진 찍은 곳이 개단식으로 만들어진 나무 쉼터>
그제 빵가게님이 올려놓으신 알라딘 중고서점에 다녀왔다. 3시간 정도 꼼꼼히 둘러보고 고른 책이 얼떨결에 40여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책을 골랐는데도 21권의 책을 사게 되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헌책방의 혁명(?)같다. 넓은 구조에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를 연상시키는 새 책꽂이에 꽂혀 있는 새 책들. 깨끗하고 넓은 공간은 지금까지 다녔던 헌책방의 분위기를 단번에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예전에 가끔 가던 강남역 리브로 헌책방과 분위기가 흡사)
나름 헌책방 매니아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 보지 않은 헌책방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책방에 진열된 책과 책 가격에 아주 민감하다. 예상하는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비싸면 그 헌책방은 다시는 가지 않는다.
헌데, 요즘 헌책방 중 일부는 참으로 해괴한 방법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서울대 주변의 대학동 OO서점과 낙성대 OO서점(최근 오픈), 그리고 설대 입구역 OO서점은 절판된 책도 많고 총서류도 즐비하다. 하지만 골라서 계산대에 가져가면 주인은 인터넷으로 인터넷상 헌책방의 가격사이트를 조사한 다음 가격을 부른다.
그러면 90년대 초반이나 80년대 후반에 출간된 3천원짜리 책은 5-6천원을 훌쩍 넘으며, 일부는 만 원 이상도 부른다. 나는 이런 헌책방을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헌책방은 저렴한 가격에 절판된 책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책에 표시된 정가의 50% 내지 80%의 가격 정도면 원하는 책을 구입할 수 있다. 먼지 때문에 손이 더러워지는 손해는 감수해야 하지만.
어제 방문한 종로의 알라딘 중고 서점은 책의 종류와 비치 그리고 가격 면에서 확실히 매혹적인 공간이다. 이제까지 이러한 헌책방은 대한민국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 대학로에 있었던 이음 서점 정도가 특색 있는 서점이었다.
이음 서점은 새책과 헌책을 비슷한 비율로 팔았는데, 절판된 주옥같은 인문 사회과학 도서들이 상당히 많았다. 책을 앉아서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유명인(?)을 초대해 세미나와 같은 행사도 자주 열었다. 주인이 바뀐 지금 헌책 비율은 크게 줄고 가격도 비싸졌다.
물론 공간은 작은 편이다. 알라딘 중고 서점의 1/5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 알라딘 중고 서점은 그만큼 크다. 크기만 크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놓았다. 나무 계단 식으로 만들어 놓아 약속 장소로도 그만이다. (입구의 큼직한 공간이 모두 쉼터이다)
내가 방문한 시간은 4시였고, 7시 정도에 서점에서 나왔는데, 6시가 넘으니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아졌다. 한가롭게 책을 고를 수 없는 수준. 대부분 약속 장소에 나온 연인들이었다.
이제, 알라딘 중고 서점이 왜 매혹적인지 그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책에 관심이 있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하게끔 책을 배치하고 책 가격을 정해놨기 때문이다.
이곳에 비치되어 있는 책은 70% 이상이 새 책이다. 완전 새책도 있고, 책에 밑줄이 쳐진 새책같아 보이는 헌책도 있다. 하지만 모두 책 정가의 50% 미만의 가격이 붙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책의 하단에 작은 동그란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는 점이다. 노란색, 빨간색, 녹색, 회색 등등. 노란색은 2천원 이하의 책이고, 빨간색은 3천원 이하의 책이다.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은 책은 정가의 50% 가격이다. 이런 식으로 가격 구분을 해 놓고 있다.
가장 비싼 책은 ‘최근 들어온 책’ 코너이다. 여기에 비치된 책들은 모두 신간이다. 정가의 30% 정도의 가격이 붙어 있다. 가장 좋은 코너는 ‘절판된 책’코너. 정가의 50~60% 가격으로 새책같은 헌책을 데려올 수 있다.
또 하나 눈길을 끌만한 점이 있다. 헌책방이지만 대형 일반 서점처럼 책을 분류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대형 서점에서 책 쇼핑하는 것과 흡사하다. 철제 쇼핑 바구니도 비치해 놓았다!
소설류, 경영 경제, 사회과학 등 일반 헌책방에서는 볼 수 없는 분류 체계를 실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아이들 책 코너가 단독으로 구획되어 있다. 분위기 상 대형서점에서 책바자회하는 것과 비슷하다.
매장을 열 때 점장이 개장 첫 날 3천권이 팔려 놀랐다는데,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다. 이곳의 헌 책 가격은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황학동 헌책방 2곳과 아주 비싼 대학동 OO서점의 딱 중간이다.
헌데, 책의 상태는 두 곳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알라딘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은 새 책과 다름없다. 3시간 정도 책을 보고 골랐는데, 손에 묻은 먼지도 거의 없다. 이런 서점이 중고 책방이라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 (예전에 애용했던 강남 리브로 헌책방보다 책의 질과 가격면에서 나은 듯)
어느 분은 이런 대형 매장의 개장이 동네의 헌책방들을 죽이는 거라는데, 나는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요즘 동네 헌책방들은 가격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이고 있다. 물가와 입대료가 뛰니 할 수 없이 책값만 올리는 것이다. 책을 살 때는 경기 때문에 책값을 높게 쳐줄 수 없다고 하고, 팔 때에는 물가 때문에 더 높이 책정한다는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건 내가 헌책을 동네 헌책방에 책을 팔아 알아낸 사실이다)
더 웃기고 열받는 것은 따로 있다. 헌책방 주인들에게 80년대 나온 절판된 도서를 팔러 다닌 적이 있다. 이런 책들을 그들은 사려고도 하지 않거니와 사달라고 사정을 하면 100원 200원 부른다. 아쉬워서 팔고 한 달여 후에 가 보면, 그렇게 입수한 책의 뒤편에 4천원 이나 5천원 짜리 스티커를 붙여놓고 있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능청스럽게 따지면 이들은 하나같이 절판된 도서라 어디서 구할 수도 없다는 답변을 해댄다.
난 이런 동네 헌책방을 적어도 5곳 이상을 안다. 이런 헌책방은 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5곳 중 두 곳이 작년에 망했다. 합리적인 헌책의 가격이 무엇인지 헌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좀 생각을 해봐야 할 듯하다.
종로2가의 알라딘 중고 서점. 이 체계와 가격 정책을 고수하는 이상 2호점과 3호점의 개장은 시간문제일 듯싶다. 중고 서점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 현 헌책방들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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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책. 21권구입했는데, 1권이 빠졌다. 모두 64980원. 들고오는데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20여권 놓고 온 책들이 눈에 아른 거린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