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스마스에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원래는 <소방관>을 보려고 했는데, <하얼빈>이 24일 개봉했다고 해서 25일 저녁 타임에 봤다. 영화 평이 하도 좋아서, 그리고 예고편이 기대감이 들게해서 봤는데, 결과적으로 만족한 영화였다.


요즘 영화관에 갈 땐 큰 맘 먹고 가야한다. 올 여름까지 8천원에 볼 수 있던 CGV가 갑자가 내부 공사로 인해 문을 닫았다. 그 두배인 1만5천원에 영화를 보려면 결코 실망스러운 영화를 보면 돈이 아까워서 안 된다. 그래서 검증된 영화만을 보게 된다. 


25일 본 영화 <하얼빈>은 촬영, 영상, 음악, 연기, 서사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거 없는 웰매이드 영화였다. 하지만 단 하나 아쉬웠던 점은 '고뇌하는 인간'으로서의 안중근의 모습이 미미했다는 점. 고뇌하는 인간 안중근의 현빈은 별로 안 보였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서사는 우리가 아는 안중근 업적을 착실히 따라간다. 너무 단순한 이야기라 빼고 더할 게 없을 정도로 매우 심플하다. 하지만 감독은 그런 심플한 이야기에 '아마도 이렇게 거사가 이루어 졌을 거야'라는 상상을 했고, 그걸 매우 사실적으로 영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실제 블라디보스토크처럼 보였던 라트비아 촬영 씬과 몽골 사막 씬 등은 영화를 넘어 거의 사진 미학의 정점을 보는 듯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이런 영상미는 보기 힘들다. 


당시 시대상으로 관람자를 데려가 실제 독립 지사들이 그렇게 활동했을 거라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냈다. 몰입감의 원천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건 순전히 감독의 역량이다. (특히 미술감독 기보묵이라는 분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영화 오프닝 장면. 그리고 마지막 다시 등장한 그 얼음판 씬의 수미상관된 영상 미학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한다. 화면으로 보여지는 압도적인 얼음판에 홀로 누워 있는 안중근의 모습은 미술관에 걸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300호 작품이었다.


아울러 마지막 바로 그 시작 장면과 동일한 얼음판을 걷는 안중근의 내레이션. 마지막 내래이션만으로도 이 영화는 돈 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현재의 시대상과 절묘히 유비되면서 감독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메세지가 너무도 명확히 다가왔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당시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하기 위해 싸운 독립군은 대한의군. 안중근은 이 대한의군 참모 중장의 신분으로 이토를 격살했다. 이를 위해 이름 없이 숨진 대한의군 동지들은 20-30대의 청년들이었다. 현재 굥 탁핵을 위해 거리로 나와 탄핵봉을 흔드는 이들이 약 1세기 전 청년들과 겹치는 것은 우연일까.


예술영화치고는 2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이건 영화관에서 봐야 할 영화다. 액션 영화인줄 알고 다소 실망하는 관객들이 있긴 하겠지만 감독의 마지막 메시지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다. 반드시 보시라!


[덧]

1. 유일한 아쉬움이 배우 캐스팅. 특히 현빈. 김명민이나 조진웅이 안중근 배역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2. 현빈 보다는 이동욱이 더욱 빛났던 영화.

3. 김훈의 <하얼빈>이 원작이 아닌가보다. 김훈 소설을 얼른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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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2-27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상이 뛰어나다는 얘기는 들어서 저도 이 영화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해요. 듄을 만들었던 팀이 촬영을 했다나 뭐라나 그랬던 것 같은데. 현빈은 약간 선이 가는 게 있죠? 생각해보니 진짜 김명민이나 조진웅 괜찮겠네요. 영웅에서의 정성화 배우도 나쁘진 않았어요.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텍스트로 했겠죠? 차라리 고뇌를 보려면 책을 읽는 게 낫지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yamoo 2024-12-30 17:19   좋아요 1 | URL
영상미와 연출력이 극대화된 예술영화인데, 시간이 금방갑니다~
김훈 작가 하얼빈이 원작이면 자막에 나왔을 건데...이상하게 김훈 원작이라는 자막이 없어 좀 다른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못봤을 수도 있어요..^^;;

transient-guest 2024-12-28 0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뮤지컬 ‘영웅‘은 영화로는 크게 성공을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 ‘하얼빈‘은 잘 됐나보네요. 이래저래 한국영화를 미국에서 보는 건 어렵고 이상하게 COVID이후로는 극장에 안 가게 되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건 인디애나 존스 5가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보고 싶고 감동 받고 싶네요. 지금 시국엔 더더욱...

yamoo 2024-12-30 17:22   좋아요 1 | URL
뮤지컬을 못봐서 뭐라 말씀드리긴 어렵고...
영화 자체는 매우 잘 만든 웰메이드 작품입니다. 배우들도 모두 좋고, 연출도 좋고, 영상미도 뛰어납니다. 음악은 말할것도 없구요..영상미와 웅장한 음악 때문에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해요. 영상미와 음악이 만난 장면은 정말 압도합니다~~

transient-guest 2025-01-03 04:35   좋아요 0 | URL
뮤지컬은 정성화배우가 한 것이 유명하고 YouTube에 보면 노래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이 배우가 직접 ‘영웅‘ 주연을 맡고 뮤지컬영화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떨어졌는지 흥행은 못했어요. ‘하얼빈‘은 지금 시국에 힘을 주는 영화 같고 흥행도 잘 되고 있어서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5-01-05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다운 영화평입니다. 잘 쓰셨네요. 안중근 역으로 너무 미남자를 캐스팅한 것 같습니다.
김훈, <하얼빈>을 읽었어요. 좀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작가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유튜브 보니까 개정판을 낼 계획을 갖고 있더라고요, 안중근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점이 좋았어요. 언제 리뷰를 써 보려 합니다.^^

yamoo 2025-01-06 11:0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현빈 캐스팅은 미스 캐스팅은 아니라도 아쉬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현빈은 선굵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니라 멜로물 이미지가 강한 배우라서뤼..^^;;

김훈의 <하얼빈>에 대한 혹평이 하도 많아서 읽지 않고 있습니다. 본 소설이 영화의 원작은 아닌 것같아요. 자막 올라갈 때 원작이었으면 표기되었을텐데 못봐서 원작이 김훈 소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뷰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