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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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에스프레소가 떠올랐다. 검고, 진하고, 쓰고, 향기로운. 또한 나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렇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마시지 않을 것이다.- 경험이라는 점에서. 


익히 알려져 있듯이, 토니 모리슨은 실존 인물인 '마거릿 가너'의 실화를 소재로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마거릿 가너는 농장 노예였는데, 자식들과 함께 도망쳤으나 도망노예법에 따라 주인에게 송환될 처지에 처하자 자식들을 죽이려고 했고, 한 명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재판 과정에서 "노예는 사람인가", 즉 노예가 사람이라면 가너는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지만 노예가 단지 소유물이라면 재산을 잃어버린 것에 불과하여 무죄방면될 것이므로 법리적 논쟁을 불러 일으킨 위 질문이 많은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457쪽 해설을 참조하자). 그 때문에 오히려 가너의 변호인이 가너를 살인죄로 처벌해달라고 변론했다고 하니, 슬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현재'는 1873년부터 1874년으로, 세서는 딸 덴버와 단둘이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 124번지 집에서 살고 있다. 세서는 18년 전 농장에서 도망쳐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가 살고 있는 124번지로 왔다. 베이비 석스와 세서, 세서의 두 아들들,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딸과 막 태어난 갓난쟁이 딸(덴버)과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꾼 지 불과 한달 만에 참극이 벌어진다. 그 후 아기 유령이 깃든 124번지는 집 나간 두 아들들과 세상을 떠난 베이비 석스의 추억을 간직하며 조용히 머물러 있다. 고인 물 같은 평화, 애써 막은 귀 같은 정적이 이어진다. 

어느날 이 평화와 정적을 깨뜨리며 폴 디가 등장한다. 폴 디는 세서가 있던 농장, '스위트홈'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다. 그가 124번지에 나타남으로써 과거가 소환된다. 그리고 폴 디의 등장으로 쫓겨났던 아기 유령이 '빌러비드가 살아 있었다면 딱 그 정도 나이였을' 육신을 입고 돌아온다. 과거는 현재가 되고, 이제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빌러비드는 과거의 망령일 뿐이다. 독자는 '그 후로 세서와 덴버는 빌러비드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론은 있을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할 것이다.


노예의 삶이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새끼의 목에 톱질을 하는 어미의 마음은 대체 어떤 것일까? 잘리고, 불태워지고, 새끼 치는 암퇘지와 같이 값이 매겨진 채 교미당하고, 재갈이 물려지고, 강간당하고, 구덩이에 갇히고, 채찍질당하는 삶에 자식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자식의 목숨을 빼앗겠다는 절절한 심정 앞에, 감히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세서는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한다. "뭐가 더 나은지 나쁜지 아는 건 내 일이 아니야. 지금 어떤지를 알고, 또 내가 끔찍한 줄 아는 일로부터 그애들을 지키는 게 내 일이지. 난 그 일을 해냈어."(272쪽) 그를 비난할 수 있는 대상, 세서가 속죄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 죽임당한 자식, 바로 빌러비드다. 1865년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세서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지만,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세서에게, 그 순간 든 생각은 그저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뿐이다. 


자식들은 그녀의 보배였다. 백인들이 그녀 자신은 더렵혀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녀의 보배만큼은, 마법처럼 놀랍고 아름다운 보배만큼은, 그녀의 순결한 분신만큼은 그렇게 되게 할 수 없었다. 머리도 발도 없이 표시만 남은 채 몸통만 나무에 매달린 시체들이 내 남편인지 폴 에이인지 고민하는, 그런 꿈으로조차 꿀 수 없는 꿈들은 더이상 안 된다. 애국자들이 흑인학교에 불을 질러 부글부글 달구어진 여학생들 가운데 내 딸이 있는지, 백인 무리가 내 딸의 은밀한 곳을 침범하고 허벅지를 더럽힌 후 마차 밖으로 내던지지는 않았는지 괴로워하는 꿈들은 더이상 꿀 수 없었다.  -409쪽


소설의 현재는 노예제가 폐지된 후이므로 세서와 덴버는 더이상 도망노예가 아니다. 그들은 124번지 집에서 살며 세서가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간다. 노예일 때보다는 확실히 낫다. 그러나 스위트홈이 예외적인 백인들의 자비로움 아래 유지되었듯이 124번지도 예외적인 백인들의 선의로 마련된 곳이다. 주인부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자 스위트홈이 즉시 끔찍한 곳으로 변모하였듯이, 124번지에 대한 선의도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 


스위트홈은 확실히 전에 있던 곳들보다 좋았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한가운데, 자신이 아닌 자신이 둥지를 튼 그 황량한 마음 한가운데에 이미 설움이 자리를 잡아 버렸기에. 자식들이 어디 묻혔는지, 혹시 살아 있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설움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실 자신에 대해서보다는 자식들에 대해 더 잘 알았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할 수 있는 지도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232쪽

오히려 노예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인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여전히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그들을 뼛속까지 지치게 만든다. 흑인들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스탬프 페이드는 어느날 강에서 "아직도 머릿가죽이 고스란이 붙어 있는 젖은 곱슬머리에 묶인 빨간 리본"을 줍는다. 그는 신에게 묻는다. "대체 이 사람들은 뭐란 말입니까? 말씀해주십시오, 예수님. 그들은 어떤 인간들인가요?"(296, 297쪽)  폴 디는 스탬프에게 묻는다. "대체 검둥이는 얼마나 참아야 합니까? 말 좀 해보세요. 네?"(385쪽)


백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어떻든, 새까만 피부 밑에는 예외 없이 정글이 도사리고 있다고 믿었다. 항해할 수 없는 급류, 줄타기를 하며 끽끽대는 개코원숭이, 잠자는 뱀, 백인들의 달콤하고 하얀 피를 언제나 노리는 붉은 잇몸. 어떤 점에서는 백인들이 옳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흑인들이 사실은 얼마나 점잖고 영리하고 다정하고 인간적인지를 입증하려고 기를 쓰면 쓸수록, 흑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백인들에게 납득시키느라 자신을 소진하면 할수록, 흑인들의 마음속에는 점점 더 깊고 빽빽한 정글이 자라났으니까.  -327쪽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는 세서의 검은 눈동자가 독자를 빤히 바라본다. 당신이 감히 나를 심판할 수 있는가? 그 눈길은 이 책을 읽는 모든 백인들에게, 당신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운지 묻는다. 빌러비드의 비석 앞에 속죄할 것을 요구한다. 세서는 이미 죄값을 치렀다. 이제 그들이 죄값을 치를 차례다.  


시적인 문장들을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매끄럽게 잘 읽힌다. 오랜만에 소설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별 다섯개가 모자라다.

"사랑니인가보네. 아프지 않아?" 덴버가 물었다.
"아파."
"그런데 왜 안 울어?"
"뭐라고?"
"아프다면서 왜 울지 않느냐고."
그래서 그녀는 울었다. 식탁에 앉아 있던 그대로, 조그맣고 하얀 이를 매끈하기 짝이 없는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피처럼 붉은 새가 나뭇잎 사이로 사라지고, 그러자마자 거북이들이 연이어 물 밖으로 나왔을 때 이렇게 울고 싶었다. 세서가 계단 아래 물통 속에 서 있던 그에게 가버렸을 때 이렇게 울고 싶었다. - P222

"뭐가 더 나은지 나쁜지 아는 건 내 일이 아니야. 지금 어떤지를 알고, 또 내가 끔찍한 줄 아는 일로부터 그애들을 지키는 게 내 일이지. 난 그 일을 해냈어."
"당신은 잘못했어, 세서."
"거기로 돌아가야 했다는 거야? 내 아이들을 데리고 거기로 돌아가야 했다고?"
"방법이 있었겠지. 뭔가 다른 방법이."
"무슨 방법?"
"세서, 당신은 두 발 달린 인간이야. 네 발 달린 짐승이 아니라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숲이 생겨났다. 길도 없이 고요하기만 한 숲이. - P272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동전처럼 동그란 두 눈은 대담하지만 불신으로 가득차 있었고, 곡선이 뚜렷한 검은 입술이 미처 다 가리지 못한 커다랗고 튼튼한 이가 드러나 보였다. 상처받기 쉬운 성품이 콧대를 가로질러 뺨 위에 엿보였다. 그리고 그 피부. 잡티 하나 없는 얇은 피부가 경제적으로 뼈를 가릴 만큼만 덮여 있었다. 이제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쯤 되었으리라, 레이디 존스는 열두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짙은 눈썹, 갓난아이처럼 빽빽한 속눈썹, 그리고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발산하는 사랑에 대한 분명한 요구.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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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09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뭐에요. 에스프레소 안 마셔보셨으면서 에스프레소 떠오르는 거 반칙 ㅋㅋㅋㅋ
설탕 넣어서 안 젓고 걍 마시면 위에서는 쓰고 진하다가 나중에 달콤... 그런 맛이란 말이쥬?
저 이거 안 읽었는데 곧 읽겠습니다!

독서괭 2021-06-09 14:40   좋아요 2 | URL
ㅋㅋㅋ 안 마셔봤는데 써도 괜찮나 싶었지만 이미지가 떠나질 않아서요 ㅋㅋ 이건 내용의 달콤함은 조금도 없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문장이 좋아서 조금은 달콤한 독서가 될 수 있겠네요. 잠자냥님이 안 읽은 소설을 먼저 읽었다니 괜히 뿌듯..?

잠자냥 2021-06-09 14:47   좋아요 2 | URL
아이구, 저 유명한 작품 중에 안 읽은 거 은근히 많아요. 대표적인 예 <백년의 고독>- 이거 올해는 과연 읽을지...;

독서괭 2021-06-09 14:54   좋아요 1 | URL
앗싸 전 읽었는데요 ㅋㅋ 근데 재밌었다는 기억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ㅠㅠ 앞으로는 리뷰 좀 열심히 남겨보려구요.

레삭매냐 2021-06-09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러비드>를 읽기 전에 내용에
대해 듣고 적잖이 두려워하다가
너튜브로 해외에서 만든 동영상
을 보고 마음의 준비를 단디 하
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푸른 눈>도 참 슬펐던 것
으로 기억합니다.

독서괭 2021-06-09 17:18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해서 읽으며 꽤나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완급조절을 잘해서 끝까지 읽을 수 있더라구요. 영화화도 됐다고 나오던데 영화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가장 푸른 눈>도 읽어보고 싶어요!

transient-guest 2021-06-1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참 읽기 힘들어요. 이 나이가 되었어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소설은 참 어렵습니다. 노예제가 폐지되고도 100년이 넘도록 분리정책이 유지되었다가 이것도 공식적으로 철폐되고나서 5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이곳엔 흑백갈등과 전방위적인 차별이 존재합니다. 기타 유색인종은 외국인 혹은 이민자로 대상화를 하지만 African American들의 경우에는 2등 혹은 3등시민으로 바라보는 사회/법/관습 등 문제가 여전히 심각합니다. 멍청이들이 다시 멍청이들을 낳고 멍청한 교육을 시키고 그걸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는 한 쉽게 한번에 바뀔 것 같진 않아요.

독서괭 2021-06-10 10:30   좋아요 0 | URL
네 공감합니다. 이번에 검색해보다가 미시시피주에서는 2013년에야 공식적으로 노예제 규정이 폐지된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최근에도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뉴스에 보도되고... 얼마나 쌓인 한이 많을지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소설이 힘들다고 하시니 <완벽한 아이>도 힘들어 하실 것 같아 걱정이네요. 아동학대 실화 이야기라 들으면서 괴롭습니다ㅜㅜ

transient-guest 2021-06-11 00:48   좋아요 1 | URL
너무 적나라한 묘사에서 오는 거부감이 좀 있어서 구해놓고 못 읽은 책이 더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서 온전히 소화시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걸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완벽한 아이‘가 그런 내용이면 읽기 쉬운 책은 아니겠습니다...
 

잭리처 시리즈 두번째로 1030을 읽고 있다.
이번에도 매력적이고 능력있는 여성파트너와 함께 하네. 과연 잭리처는 이번에도 파트너와 잘 것인가? 이게 궁금한 나 ㅋㅋ

그런데 이런 대화가 나온다.

“거기서 누굴 좀 만났거든.”
“예뻤어요?”
“기막히게.”
“칼라 딕슨보다?”
“막상막하.”
“나보다?”
“자네는 한참 쫓아와야 하고.”

아니 이런, 니글리. 저런 말을 하는 놈이랑은 자지 않을 거지?

그런데 읽다보니 바로 그 칼라 딕슨이 (죽은 줄 알았는데) 등장하는 것 아닌가. 후보가 둘이 되어 버렸다.. 흥미진진
아 물론 메인 스토리가 더 궁금하다. 진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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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09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잭 리처가 정착하지 않는 사람이라 시리즈가 이어지는거긴 하지만 그래도 정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잭 리처 너무 역마살… 😩

독서괭 2021-06-09 07:2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정착해도 셜록처럼은 안 되는 걸까요😗 근데 이거 쓰고 나서 좀더 읽는데 금방 둘중 한명과 자더라구요 ㅋㅋ 내 너 이럴 줄 알았다!!

다락방 2021-06-09 08:4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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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한탄스럽다. 처참한 내용과 아름다운 문장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평범한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 없겠다 싶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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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8 14: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앗 서평에 매료됩니다!

독서괭 2021-06-08 15:38   좋아요 1 | URL
우앗 감사합니다! 이책은 꼬옥 리뷰를 써야지 다짐합니다.

그레이스 2021-06-08 14: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제가 역설의 극치죠.

독서괭 2021-06-08 15:39   좋아요 0 | URL
빌러비드.. 사랑받은 건 맞긴 맞는데.. ㅜㅜ 슬프네요

레삭매냐 2021-06-08 14: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루고 미루다가 작년 초에
읽었답니다.

독서괭 2021-06-08 15:40   좋아요 0 | URL
오 역시 안 읽은 소설이 없는 레삭매냐님. 일단 다음책으로는 소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잉크>를 주문해 놨답니다!
 

여유롭게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고 불평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요즘만큼 책을 가까이한 시기가 있나 싶다. 책을 읽는 행위 뿐만 아니라 책소개 팟캐스트를 듣거나 북플에 접속하는 등 책의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것으로 나의 짜투리 시간들이 가득 차 있다. 


출근길

즐겨듣는 팟캐로 '책읽아웃'(특히 김하나작가의 측면돌파와 삼천포책방), '혼밥생활자의 책장'이 있고, 최근에는 북튜버로 유명한 김겨울 작가의 목소리에 빠져서 '라디오북클럽'을 정주행 중이다. 가끔은 '듣똑라'를 듣는다.


사무실에 두고 읽는 책들


사무실에 두고 점심시간에 조금씩 읽는다. 몇 쪽이라도 읽는 게 목표인데, 바쁠 때는 그 시간마저 나지 않는다.. 세 권 다 제법 읽었는데 최근 바빠서 멈춰 있다.
















오며가며 읽는 전자책


사무실에서 화장실 오갈 때, 자다가 새벽에 깨어 화장실 갔을 때 등, 진정한 짜투리 시간에는 북클럽에 있는 전자책을 읽는데, 지금 읽는 건 이 두 권. 
















퇴근길


퇴근길에도 책소개 팟캐스트를 들으니 보관함만 가득해지고 읽지는 못해서(궁금한 책은 일단 보관함에 넣고 봄), 오디오북이나 낭독연재 등으로 바꿨다. 진짜 너무 피곤해서 책을 못 듣겠다 싶을 때는 '비밀보장'을 듣는다.


 이 책은 오디오클립에 김영하 낭독연재 되어 현재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언제 무료가 끝날 지 몰라 서둘러 듣고 있다.

 중간에 흐름이 끊겨버려서 완독하지 못하고 있는 <배움의 발견>과 비교하여 읽어보면 좋을 듯.













주차장


차에 두고 퇴근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뒤 한두 챕터 정도 짧게 읽는 책. 퇴근이 늦었거나 눈이 너무 피곤할 때는 포기한다. 


  애정하는 김하나 작가의 첫 책의 개정판이다. 














밤 시간


아이들을 재우다가 함께 잠들어버리지 않았을 때, 다른 방에 가서 조금 읽고 잔다. 늘 졸린 나는 오래 읽지는 못한다..


 대체 나는 이런 소설을 왜 쭉 읽어가지 못하고 야금야금 읽어야 하는가, 한탄했는데 

 오히려 야금야금 읽기에 좋은 소설인 것 같기도 하다. 한번에 쭉 읽으면 좀 마음이 힘들었을 거다. 내용이 너무 처참해서... 음미할 만한, 곱씹어볼 만한 문장이 많다. 아름답다. 













이 책들 모두 절반 이상은 읽은 상태이기 때문에 6월에 힘내면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절대적 시간과 체력이 너무 부족해서 아쉽지만, 만일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책을 많이 읽었을까?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모자란 짜투리 시간을 모조리 책에 바치고 있다. 유일하게 하는 SNS도 북플이다. 북플도 내 보관함 포화상태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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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6-04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사고 싶은 사람은 북플 켜기 전에 ˝나는 지금 이순간부터 무슨 글을 봐도 절대 책을 장바구니에 담지 않을거야˝라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 각오 없이 덜컥 들어섰다가는 책을 ‘거어어어어업나 많이‘사게 되기 때문입니다......

독서괭 2021-06-05 0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 그래서 전 일단 보관함에 쑤셔 넣은 다음 장바구니를 외면하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의 긴 목록을 떠올린답니다...
 

스스로 느끼는 것에 대하여 "~한 것 같다"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하고 싶은 것 같아요."라든가 "즐거운 것 같아요."라는, 단정하여 말해도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자기 마음에 대한 것들. 뉴스 인터뷰 등에서 이런 표현을 만나면 참 거슬리고 마는 것이다. 나의 거슬림조차 오지랖일 수 있지만.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확실하고 단호한 표현을 하기를 꺼려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말 한마디 까딱 잘못하면 그것이 언제 화살이 되어 돌아올 지 모르는 세상인데다가, 바쁘게 살다보면 내가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건지, 내가 정말 즐거운 건지 아리송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반대로 단호하고 가감없이 말하는 태도로 "팩폭"이라는 별명을 얻는 사람들도 있는데, '폭격기'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팩폭"이라는 신조어는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사용된다. 팩폭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즉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소신과 자기확신으로 뭉친, 그래서 타인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민낯을 깨닫게 하는 사람에 대한 찬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데 입에 발린 말이 나쁜 것일까? '입에 발린 말'은 권력을 적게 가진 사람이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할 때에는 아부가 되고, 아부 중에서도 자기에게 떨어질 이익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첨이 되나,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음으로써 받게 될 불이익을 최소화 하고자 하는 것은 생존전략이 된다. 그리고 동등한 관계에서 행해질 때에는 그저 사소한 호의일 뿐이다. 

인간관계에서 팩트가 얼마나 중요할까? 단호하고 단정적인 말은 호쾌함이 있지만 쉽게 사람을 찌른다. 어쩌면 팩폭은 그저, 사실을 에둘러 부드럽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거친 입방정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설령 그것이 업무관계이더라도 팩트보다 호의에 기대고 있다. 


오래 전 읽었던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런 말이 나와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위선이 위악보다 낫다" (맞겠지?)


 













이 말이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위악을 떠는 사람에 대해 내가 긍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 많이 사용하는 "츤데레"는 위악의 귀여운 버전이다. 일견 퉁명스럽고 냉랭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속정이 있는 인물인데,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표현할 줄 몰라 겉으로 쌀쌀맞게 대하는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어 인기가 있다. 그러나 그건 드라마나 만화에서 그 인물이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그렇지 현실에서는 드러나는 태도만이 우리에게 닿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인물이 싫다. 그의 태도 때문에 수없이 상처받을 것이다. 

반대로 위선은? 위선을 싫어하는 이유는 '진심은 그렇지 않으면서 좋은 사람인 척 군다'는 것일텐데, 이는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토라레>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져 버리는 상황이 내게 닥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 안에는 착하고 좋은 생각만 있지 않다. 불쑥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이나 시기심, 못된 생각들이 튀어 나온다. 그렇다고 그게 나의 진심일까? 나쁜 생각이 튀어나와도 잘 갈무리 해서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러니까 중요한 건, 진심보다 태도일 수도 있다.


<태도의 말들>이 이런 생각을 담고 있다고 들은 것 같아, 읽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출근길을 나서 책읽아웃-오은의옹기종기 김소영교수 편, 을 듣는데 바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냉소보다 선의가 낫다고. 이 책도 궁금한데, 당장 읽을 책이 많아 우선 보관함에 담아 두었다. 보관함에 책이 차고 넘친다..


 














 아이들은 진정한 팩트폭격기다. 할머니에게 "주름이 많아서 밉다"느니 하는 말을 했을 때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말과 태도를 가다듬도록 가르치는 것도 부모의 중요한 역할인 듯 싶다. 그래도 다섯살이 되니 나아졌다. 휴.. 

 장황한 페이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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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6-03 1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팍팍 찔립니다ㅋㅋㅋㅋ저 ‘~같아요‘아주 옷처럼 달고다니거든요ㅋㅋ 왜이렇게 쓰디쓰면서도 읽으면서 좋은지ㅋㅋ 쌈디가 한때 츤데레로 ˝오다 주웠다˝이거 많이 했는데 생각납니다.(립서비스 중독자 미미;;)이 책들 읽고 반성좀 해볼래요🙄

독서괭 2021-06-03 20:58   좋아요 0 | URL
응? 반성하실 일 없으실 것 같은데요?ㅎㅎ 전 예전에는 직설화법을 하는 편이었는데 사회생활 하며 많이 세련(?)되어진 것 같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 좀 하고 살면 어떤가요. 열심히 칭찬하고 춤추며 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