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느끼는 것에 대하여 "~한 것 같다"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하고 싶은 것 같아요."라든가 "즐거운 것 같아요."라는, 단정하여 말해도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자기 마음에 대한 것들. 뉴스 인터뷰 등에서 이런 표현을 만나면 참 거슬리고 마는 것이다. 나의 거슬림조차 오지랖일 수 있지만.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확실하고 단호한 표현을 하기를 꺼려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말 한마디 까딱 잘못하면 그것이 언제 화살이 되어 돌아올 지 모르는 세상인데다가, 바쁘게 살다보면 내가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건지, 내가 정말 즐거운 건지 아리송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반대로 단호하고 가감없이 말하는 태도로 "팩폭"이라는 별명을 얻는 사람들도 있는데, '폭격기'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팩폭"이라는 신조어는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사용된다. 팩폭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즉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소신과 자기확신으로 뭉친, 그래서 타인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민낯을 깨닫게 하는 사람에 대한 찬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데 입에 발린 말이 나쁜 것일까? '입에 발린 말'은 권력을 적게 가진 사람이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할 때에는 아부가 되고, 아부 중에서도 자기에게 떨어질 이익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첨이 되나,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음으로써 받게 될 불이익을 최소화 하고자 하는 것은 생존전략이 된다. 그리고 동등한 관계에서 행해질 때에는 그저 사소한 호의일 뿐이다. 

인간관계에서 팩트가 얼마나 중요할까? 단호하고 단정적인 말은 호쾌함이 있지만 쉽게 사람을 찌른다. 어쩌면 팩폭은 그저, 사실을 에둘러 부드럽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거친 입방정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설령 그것이 업무관계이더라도 팩트보다 호의에 기대고 있다. 


오래 전 읽었던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런 말이 나와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위선이 위악보다 낫다" (맞겠지?)


 













이 말이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위악을 떠는 사람에 대해 내가 긍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 많이 사용하는 "츤데레"는 위악의 귀여운 버전이다. 일견 퉁명스럽고 냉랭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속정이 있는 인물인데,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표현할 줄 몰라 겉으로 쌀쌀맞게 대하는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어 인기가 있다. 그러나 그건 드라마나 만화에서 그 인물이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그렇지 현실에서는 드러나는 태도만이 우리에게 닿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인물이 싫다. 그의 태도 때문에 수없이 상처받을 것이다. 

반대로 위선은? 위선을 싫어하는 이유는 '진심은 그렇지 않으면서 좋은 사람인 척 군다'는 것일텐데, 이는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토라레>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져 버리는 상황이 내게 닥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 안에는 착하고 좋은 생각만 있지 않다. 불쑥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이나 시기심, 못된 생각들이 튀어 나온다. 그렇다고 그게 나의 진심일까? 나쁜 생각이 튀어나와도 잘 갈무리 해서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러니까 중요한 건, 진심보다 태도일 수도 있다.


<태도의 말들>이 이런 생각을 담고 있다고 들은 것 같아, 읽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출근길을 나서 책읽아웃-오은의옹기종기 김소영교수 편, 을 듣는데 바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냉소보다 선의가 낫다고. 이 책도 궁금한데, 당장 읽을 책이 많아 우선 보관함에 담아 두었다. 보관함에 책이 차고 넘친다..


 














 아이들은 진정한 팩트폭격기다. 할머니에게 "주름이 많아서 밉다"느니 하는 말을 했을 때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말과 태도를 가다듬도록 가르치는 것도 부모의 중요한 역할인 듯 싶다. 그래도 다섯살이 되니 나아졌다. 휴.. 

 장황한 페이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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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03 1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팍팍 찔립니다ㅋㅋㅋㅋ저 ‘~같아요‘아주 옷처럼 달고다니거든요ㅋㅋ 왜이렇게 쓰디쓰면서도 읽으면서 좋은지ㅋㅋ 쌈디가 한때 츤데레로 ˝오다 주웠다˝이거 많이 했는데 생각납니다.(립서비스 중독자 미미;;)이 책들 읽고 반성좀 해볼래요🙄

독서괭 2021-06-03 20:58   좋아요 0 | URL
응? 반성하실 일 없으실 것 같은데요?ㅎㅎ 전 예전에는 직설화법을 하는 편이었는데 사회생활 하며 많이 세련(?)되어진 것 같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 좀 하고 살면 어떤가요. 열심히 칭찬하고 춤추며 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