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근황을 궁금해하시는 고마운 알라디너님이 계셔서 보고합니다.
귀요미 둘째는 여전히 귀욤합니다. 여전히 택배 뜯기 담당이지만 예전 같은 열정은 없고요.
애교는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례1 : 손 잡고 걸어가다가 갑자기 내 손등에 쪽 뽀뽀하고는 쳐다보면 눈웃음
사례2 : 밥 먹다 말고 갑자기 귓속말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하고 눈웃음
사례3 : 앉아 있는데 와서 다리에 부비적대길래 "졸립구나?" 하니 "아니 그냥 엄마가 좋아서" 하고 눈웃음
뭐 이렇습니다.. ㅋㅋ
힘 조절을 못하고 하도 귀찮게 굴어서 첫째가 화낼 때도 많지만, 둘째가 누나를 많이 좋아하다 보니 첫째도 동생을 귀여워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계속 귀여워야 할텐데..
(존댓말 끝)
그나저나, 2, 3월로 계획했던 <제2의 성>을 4월 중순에야 비로소 끝내고,
4월 책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을 읽고 있다. 그런데 나혜석님, 놀랍다. 한국의 보부아르가 아닐까! 계약결혼 주장, 산아제한 주장 등 시대를 앞서나간 비범한 여성. 하지만 프랑스가 아닌 조선이었으므로 그 삶은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나혜석은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데˝ 패배 란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고통도 그녀에게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우리의 가장 무서워하는 불행이 언제든지 내습할지라도 염려 없이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아무러한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 고통 중에서 일신일변할지언정 결코 패배를 당할 이치는 만무하다.˝ - 13쪽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언니..!!
나혜석의 단편소설 '경희'에는 당시 신여성을 흰눈뜨고 바라보던 시선이 느껴진다. 신여성은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별 쓸모도 없는 공부나 한다며 나댄다는 시선. 그런 시선을 가지고 찾아온 사돈 마님에게, 경희의 어머니는 경희가 집안일을 얼마나 살뜰히 잘하는지, 또 여자라도 공부를 하니 일본사람이 찾아와 높은 급료를 제시하며 데려가라고 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자랑스레 한다. 그러나 결국 부모는 경희를 시집 보내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시집 가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경희는 말한다.
˝아버지, 안자[顔子, 안회(顔回)]의 말씀에도 일단사(一單食)와 일표음 (一瓢飮)에 낙역재기중(樂亦在基中)(*한 그릇의 소쿠리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고 팔베개하여 눞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는 뜻)이라는 말씀이 없습니까?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이지요. 보리밥이라도 제 노력으로 제 밥을 제가 먹는 것이 사람인 줄 압니다. 조상이 벌어 놓은 밥 그것을 그대로 받은 남편의 그 밥을 또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 집 개나 일반이지요.˝ 하였다. - 64쪽 '경희'중
이리 멋지고 당당하게 말해놓고 방에 돌아와서는 울며 내가 뭐라고 부모의 뜻을 거역하나, 공부해서 뭣하나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경희의 모습은, 당시 많은 신여성들의 마음을 괴롭혔던 문제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공부한다고 남자처럼 나대서는 안 되고 기존 여성이 해왔던 일들도 잘 해내야만 겨우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여자 치곤"이라는 의미일 뿐, 여성으로서는 진짜 남자만큼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간한 천재"가 아니면 안 된다고 경희는 자조한다.
나혜석은 실제 남편 이영구와 나눈 대화를 '부처 간의 문답'이라 하여 발표하기도 했는데, 진보적인 여성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남성들을 시원하게 비판한다.
처: 암, 말대로만 하면 어려운 것은 없을 터이니까 누구든지 여자가 입지를 세워 놓고 그거에 대하여 항상 충실한 태도로 있을 것 같으면 일부러 심청(심술) 부리는 남자 아니고야 감복 아 니 할 것이요. 이해 못 할 것이 있겠소? 다 여자 자신에게 달린 것 이지요.
부: 아따, 참 장하시군.
처: 그럼, 장하고말고, 미구에 여자들이 다 나와 같이 자각해 보구려. 그까짓 하나만 알고 둘도 생각지 못하는 남자들 무슨 일이 있답디까?
부: 왜, 남자는 그대로 있나, 남자는 또 그대로 자꾸 진보해 갈 것인데.
처: 다른 나라 남자들은 그러할지 모르거니와 굴레를 벗지 못 하는 조선 남자들에게 진보가 있으면 몇 푼어치가 있겠소? 그중 에도 되지 못한 것일수록 제 앞 하나 꾸리지 못하는 것이 언필칭(말을 할 때마다 이르기를) 여자가 어떠니 어떠니 하는 것을 보면 참 아니꼬와. 3년 전에 먹은 오례송편이 다 나올 듯하지. 실상 학식 있고 인격 있는 남자들이야 다 자기 앞을 꾸려 가려기에 어느 여가에 여자 타령할 여유가 있답디까? - 125~126쪽 '부처 간의 문답' 중
그러게요. 제말이 그말입니다 언니!!
하지만 '이혼 고백장'을 읽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자유롭고자 했던 여성도 시가와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
<제2의 성>에 <순수의 시대>가 언급되어 갑자기 읽고 싶어졌다. 마침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 이래서 미리미리 책은 사서 쟁여두는 게 답인가..
처음 만나는 이디스 워튼. 1870년경 미국, 뉴욕의 사교계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뉴랜드 아처'라는 남성은 뉴욕 사교계의 명문가 자제로서 사교계의 모든 관습들을 충실히 따라왔으며, 누구나 완벽한 결합이라 칭송할 만한 가문의 아름다운 처녀 메이 웰랜드와 약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뚜둥~ 오랫동안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백작과 결혼하여 지냈던, 메이 웰랜드의 사촌, 올렌스카 백작부인이 뉴욕에 나타나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되는데...
뉴랜드 아처(그런데 뉴랜드에 웰랜드라니 웃긴당)는 사실 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뉴욕 사교계의 관습에 순응하던 그에게 엘렌 올렌스카라는 균열은 비판적 사고에 눈뜨게 하는 계기가 된다. 사교계가 원하는 바에 따라 순수하고 천진하게 자란 메이 웰랜드. 그녀를 바라보는 아처의 시선이 변화하는 과정이 섬세하다.
<순수의 시대>는 사교계 중심에 있는 사람이 사교계를, 남녀관계에서 권력을 가진 쪽인 남자가 그 관계를 스스로 비판하는, 내부고발자적 작품이라 더 흥미롭다.
"여성들은 자유로워야 해요. 남자들이 자유로운 만큼 말이에요˝ 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사실 이는 그가 속한 세계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여겨져야 할 문제의 핵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아무리 학대 당해도, ‘휼륭한‘ 여성은 자유 같은 건 절대로 요구하지 않아야 했다. 그리하여 아처와 같이 마음이 너그러운 남자들이 다른 이들과의 열면 논쟁 속에서 그런 주장에 동의를 구하려는 기사도의 용기를 발휘한다. 이러한 말뿐인 관용은 사실상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전통이라는 구실로 묶어두고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 관습을 기만적으로 위장한 것에 불과했다. (...) ‘품위 있는‘ 남자로서 자신의 과거는 감추고 결혼 적령기 처녀인 메이의 과거는 절대 숨길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혹시 사소한 것들을 알게 되면서 지겨워하고, 서로 화를 내거나 오해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처는 친구들의 (다른 이들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결혼 생활 중, 그가 꿈꾸는 메이 웰랜드와의 열정적이고 부드러운 부부 관계에 대한 답이 될 만한 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험과 다양한 기교, 그리고 자유로운 판단력을 갖추어야 했는데 메이는 지금까지 이런 것들을 세심하게 배제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혼이 그러하듯이, 그들의 결혼 역시 한 사람의 무지와 다른 한 사람의 위선으로 유지되는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이해관계의 결합이 될 거라는 암울한 예감이 밀려왔다. - 56,57쪽
그녀는 단지 누군가에게 들은 말을 반복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녀의 스물두 번 째 생일이 곧 다가오고 있었다. 아처는 나이가 몇 살이나 되어야 이 멋진 여성이 자기 주관에 따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생겼다.
나이가 들어도 안 되겠지. 우리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는 생각에 잠겨 실러턴 잭슨 씨한테 ˝여자들은 우리만큼 자유로워야 합니다˝ 라고 부르짖던 광기 어린 분노를 기억해 냈다.
메이의 안대를 벗기고 세상을 제대로 보게 해야 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전 세대 여성들이 그 안대를 벗으려 했다가 실패 한 채 결국 가족의 지하 납골당으로 다시 내려가야 했던가? 그는 과학책에 나오던 새로운 이론 몇 가지를 기억해 냈는데,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켄터키 지하 동굴 물고기의 사례를 떠올리고는 약간 전율했다. 그 물고기는 눈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퇴화했다고 한다. 아무리 메이 웰랜드에게 눈을 뜨라고 해도, 그녀가 단지 멍하니 텅 빈 곳을 본다면 어쩔 것인가? -100
전통적인 결혼은 여자에게 남자와 더불어 자기를 초월하도록 권하지 않는다. 결혼은 여자를 내재 속에 가두어둔다. 그러므로 여자는 과거의 연장인 현재에 머물며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는 안정된 생활을 이룩하는 것, 다시 말해 행복을 이룩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목표로 세울 수 없다. - <제2의 성> 612
결혼으로 인해 내재 속에 갇히게 되는 것은 여자다. 그러나 <순수의 시대>에서 뉴랜드 아처 또한 사교계의 관습이라는 보다 큰 굴레에 갇혀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법률회사에 출근하지만 그것 또한 관습에 의한 의례일 뿐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아처는 태연하게 사교계의 관습을 무시하며 그의 세계에 또박또박 걸어들어온 엘렌 올렌스카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1부 마지막, 아처가 그의 마음을 고백하자마자, 전보가 온다. 결혼식이 앞당겨진다는 메이의 전보. 뚜둥~ <순수의 시대>가 당시에도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듯. 아주 쫄깃한 재미가 있다. 아처는 메이와 결혼함으로써 꼼짝없이 매여 버린다. 그는 메이와 함께 할수록, 메이와의 거리를 느낄 뿐이다. 체념하고 다시 사교계에 적응해가던 아처, 그러나 아내와 사촌인 엘렌의 소식은 계속 들려올 수밖에 없고, 두사람이 만나게 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이디스 워튼을 이제야 만난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