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나간 옛사랑, 아련한 그리움, 때로 떠올라 목메이게 하는 상처를 그린 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시간이 흐른 후 옛사랑을 떠올리며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는 방식의 도입부를 몸서리치게 좋아한다.
-는 걸 깨달았다.
<우아한 연인>의 도입부가 그랬다.
이 책을 읽고 쓴 리뷰에도 이렇게 적었다.
도입부의 분위기가 그야말로 내 취향이다.
1966년, "맨해튼에 사는 부유한 중년"인 '나', 케이티(캐서린) 콘텐트는 남편과 함께 사진전에 참석한다. 그 사진들은 1930년대 말 뉴욕 지하철에서 찍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다. 케이티는 그 안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한다. 팅커 그레이. 그 얼굴로 인해 그녀는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독에 들어간 <폭풍의 언덕> 또한 그렇다.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가 이미 중년이 된 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히스클리프가 세를 내놓은 저택의 세입자로 들어오게 된 남자가 워더링 하이츠를 방문하고, 우연히 캐서린의 유령과 그녀를 찾는 히스클리프의 절규를 목격한 후, 그집의 역사를 아는 하녀 딘 부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른바 액자식 구성이다.
옛날에 두번 정도 읽었던 것 같은 <폭풍의 언덕>은 여전히 도입부터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거칠고 퉁명스럽고 신사답지 않지만 저택의 주인인 히스클리프, 대체 무슨 관계여서 같이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비슷하게 퉁명스러운 젊은 여성과 남성, 거만하고 성질 나쁜 하인 조셉 등 이 저택을 둘러싼 요소들은 음울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폭풍이 두려우면서도 그 광포함에 경외심과 함께 모종의 끌림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혹은 그 사랑은 떠나갔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재미있는 이유. 어쩌면 그것은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완성된 사랑의 모습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사랑을 잃어가는 모습은 다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맨스소설을 읽을 때는 새드 엔딩을 고르지 않는데, 로맨스소설이 그리는 새드 엔딩은 고만고만하(다고 알고 있)기 떄문이다. 왜냐, 로맨스소설은 새드라도 어디까지나 로맨틱해야 하기 때문에 여주와 남주 사이의 사랑이 변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영원불변한데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끝내 결별해야만 하는 것. 하지만 어디 현실의 사랑이 그런가. 로맨스소설의 이루어진 사랑도 고만고만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의 만남과 감정이 피어나는 데까지의 설정이 재미있어서 읽었다. 현대로맨스는 그 설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로판을 즐겼던 것. 그러나 대체로 중반 이후부터는 흥미가 떨어졌다. 해피엔딩으로 달려가는 길은 대개 고만고만하므로.
내가 좋아하는 정서는 이런 것이다.
이별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나는 내 생활을 하며 기억은 희미해져 간다. 하지만 때로 가슴을 저미는 그리움이 찾아오는 순간들. 그 마음을 부정하지 않고 담담히 들여다보는 시간.
크... 이문세님의 담백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가사.
누가 물어도 아플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젠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내맘에 둘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대로 내버려두듯이 ♬
너무 좋지 않습니까.. ㅠㅠ
이보다 조금 더 현재진행형의 이별노래지만 담담하고 쓸쓸한 느낌이 너무 좋은
10cm의 '그대와 나' 또한 최애곡 중 하나다.
익숙한 자리에 익숙한 음료는
다 그대로지만 사실은 우리 헤어지던 날♬
왜 그리 차가워 나는 좀 놀랬어.. ♬
이거야말로 사랑의 쓸쓸함의 본질이 아닐까. 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외쳤지만, 모든 게 변하는 마당에 사랑이라고 어떻게 안 변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과 주변의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데. '그대와 나' 노래의 쓸쓸함은 그 변화를 화자 한사람만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에서 극대화된다. 그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다 그대로인데 그대만 차가워졌다. 헤어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이별통보를 받은 화자. 손을 내젓다가 커피를 쏟고, '늘 같은 실수'라고 하는 그의 얼띤 모습을 보면 알만하다.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아이에 대한 사랑조차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변하는 이상 사랑 또한 변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식의 변화이든 간에. 고정되고 불멸하는 사랑은 없다.
다만 화르륵 피어올랐다가 순식간에 꺼지기도 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은 낭만적 사랑의 정열일 뿐, 그 외의 사랑은 공을 들여 얻을 수도 있고 소중히 키워나갈 수 있다. 부부가 낭만적 사랑의 정열을 수십 년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인일 때 가졌던 꽃다발 같은 사랑을 긴 세월을 위한 화단에 옮겨심어, 잘 가꾸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낭만적 사랑의 정열 외에도 중요한 가치는 많으니까. 지나간 사랑의 기억들은 그 화단에 뿌려진 양분이다. 나는 다시 돌아간다면 연애 대신 책을 읽겠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를 형성한 지층에는 그 사랑의 퇴적물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생각이 나면 생각난대로..
그렇게, 2022년 내 삶의 한페이지가 또 넘어간다. (아직 안 넘어갔어...)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남진우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날
낡은 수첩 한구석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읽게 되리라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랬던가
너를 사랑해서
너를 그토록 사랑해서
너 없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할 수조차 없어서
너를 사랑한 것을 기필코 먼 옛날의 일로 보내버려야만 했던 그날이
나에게 있었던가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생각하는 내가
이토록 낯설게 마주한 너를
나는 다만 떠올릴 수 없어서
낡은 수첩 한구석에 밀어넣은 그 말을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넣는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 나를 한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