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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 - 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
김예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예원 변호사는 굉장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차별에, 특히 여성, 아이,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항하는 용감무쌍한 변호사이자, 세 아이를 키우며 아등바등 사는 워킹맘이며, 어릴 적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은 장애인이기도 하다. 어디서든 부당한 일에는 큰 목소리로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녀가 내 친구라면 얼마나 든든할까 싶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혐오와 배제의 말에 걷어 차이는 사람들에게는 슈퍼 히어로나 다름 없을 것 같다.
이 책에는 김예원 변호사가 지난 10여 년 동안 장애인권, 여성인권, 아동인권을 위해 싸우면서 보고 겪은 여러 사례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몸 담고 있는 장애인권법센터에 걸려오는 전화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방송 등을 통해 알게 된 사건에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먼저 나서는 적극성이 놀랍고(이 내용은 책이 아니라 팟캐스트 '듣똑라'에 출연해서 한 이야기 같다), 피해자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무조건 소송으로 끌고가기보다는 여러 번 직접 만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후 방향을 정하고, 필요한 지원들을 확보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항소심 선고를 마치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미선의 손을 잡고 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하는데, 미선은 여전히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너무 미안해서……." 미선은 피고인이 시킨 대로 다른 피해자들에게 확인서를 받았던 몇 개월 전의 자신을 아직도 미워하고 있었다.
"재판도 끝났는데 우리 산책이나 할까요?"
인근 공원을 산책하면서 날씨 이야기, 요리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말이 없어지는 어떤 순간이 왔다.
"그런데 그거 알죠? 그 모든 일. 미선 씨 잘못이 아니라는 거." - P68
장애여성이 처한 현실은, 이 책을 통해 조금만 엿보아도 소름 돋게 무섭다.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은 어렵고 가족들이 외출도 못하게 해서 집에만 있던 지적장애 여성 소민은 집을 나와 자신에게 잘해 주는 "오빠"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오빠가 저한테 엄청 잘해줬는데 왜 자꾸 저랑 오빠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이렇게 신나게 오빠 이야기를 하는 소민 씨가 모르는 일들이 있었다. 소민 씨의 삼촌과 동갑인 그 오빠라는 사람이 며칠 소민 씨를 데리고 있으면서 소민 씨 지갑 속 신분증으로 네 개의 대포 폰을 만들어 팔았다는 것을. 그리고 공중전화로 소민 씨의 가족에게 연락해 "내가 당신 딸을 데리고 있으니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라"라고 말한 사실을. 그래서 잠복해 있던 경찰에게 잡혀 지금은 구치소에 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 모른다. - P39
장애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장애가 있으면 일단 시설에 격리하려고 하니, 주변을 살펴보아도 장애인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지적장애의 경우 그렇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와 분리되어 혼자 남겨진 뇌성마비 장애인이 사망한 사례
옌청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옆 황강시에 살던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우한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옌청의 아버지는 춘절 연휴를 보내기 위해 두 아들에게 돌아왔다.
첫째 아들 옌청은 뇌성마비 장애인이었고, 그보다 여섯 살 어린 둘째 아들은 자폐증이었다. 오랜만에 가족이 만난 기쁨도 잠시, 만난 지 3일 만에 아버지는 발열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4일 뒤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어 둘째 아들과 함께 집중 거점 치료 장소로 옮겨졌다. 그러면서 첫째 아들 옌청은 혼자 집에 남겨졌다.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집에 홀로 남겨진 첫째 아들이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아버지는 절박한 마음으로 웨이보에 "아들이 뇌성마비로 전신을 움직일 수 없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 걱정된다"라고 메시지를 올렸다. 뒤늦게 마을 사람들 몇몇이 옌청을 찾아가 음식과 아미노산을 먹이기도 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옌청은 아버지와 떨어진 지 5일 만에 홀로 싸늘한 시체로 집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스스로는 원하지 않았던, 사회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 ‘단절‘이 어떻게 개개인의 인생을 잘라먹고 있는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인생이라지만 어느 누구도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변에서 경험하는 단절에 유독 관심이 가는 이유다. - P115, 116
특수학교에서 아이가 교사 등에 의해 심한 폭력을 당한 사실을 알고 고소했으나 "특수학교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장애학생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행위"라는 이유로 불기소 된 사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법이고, 범죄에 응당한 벌을 주는 것이 제대로 된 나라라 믿었다. 그래서 엄마는 CCTV 자료를 가지고 경찰서에 갔다. 화면 속 아이는 중증 발달장애인인데 줄곧 끌려 다니며 맞았다. 교실에 끌려들어간 아이를 벽에 밀어 넣은 특수교사와 실무사, 사회복무요원은 아이에게 의자를 휘두르기도 했고 빗자루로 얼굴을 내려치기도 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수많은 날들의 폭력이 화면 속 아이에게 가해지고 있었다.
엄마는 고소를 한 뒤 몇 개월을 타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폭력에 가담한 어른의 3분의 2가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기가 막힌 마음에 불기소이유서를 받아보니, 똑같은 말이 복사돼 붙여 넣기가 되어 있었다.
교사의 행동은 최선의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장애 아동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한 다른 대안을 사실상 찾기 어렵고,
장애 학생 다수를 지도해야 하는 특수학교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장애학생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행위이다.
(...) 납득하기 어려운 불기소처분을 공들여 항고 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 기각되었다. 항고가 기각된 이유는 채 한 줄도 되지 않아 읽고 나서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유가 간결하건 복잡하건 분명한 사실이 있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이 장애인이거나 아동이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폭력을 감내할 이유는 없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계속 되풀이하게 하는 수사기관과 법원에 얼굴이 있다면,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묻고 싶다.
"실례지만, 당신에게 맞아도 싼(마땅한) 상황은 언제입니까?" - P189~190
심각한 수준의 발달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어 특수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근처로 이사까지 했는데도, 장학사가 "딱 보면 안다. 이 아이는 일반학교에 가도 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반학교에 보내버린 사례.
"아이 장애가 워낙 심해서 당연히 특수학교에 갈 줄 알았어요.
그래서 3년 전에 일부러 여기로 이사를 왔죠. 저희 집에서 걸어서 2분이면 특수학교 정문이거든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아이가 최중증 발달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고, 보호자와 아동의 욕구가 모두 ‘특수학교‘로 명확했다. 게다가 집도 바로 학교 앞인데 왜 특수학교 입학이 좌절되었을까? 교육지원청에서 11월쯤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 결정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했는지, 뒤집을 방법은 없는지 문의했더니 장학사라는 사람은 더 황당한 답변을 해왔다.
"어머니, 아이를 믿으셔야죠. 제가 몇 년째 이 일을 해서 딱 보면 알거든요. 이 아이는 일반학교에 가서도 충분히 잘 따라갈 수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하실 일은 아이를 믿어주시는 거예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뚜껑이 열렸다. 아이를 열심히 믿기만 하면 아이가 교실로 순간 이동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이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만 가지면 아이가 스스로 수업을 따라가며 잘 이해하고, 급식을 푹푹 퍼 먹고, 혼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잘 볼 수 있다는 걸까.
대체 무슨 근거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확인한 적도 없는 아이 상태를 그렇게 단언했는지 의문이었다.
(...) 입학을 앞둔 장애 아이에게 학교를 배정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만나보았다면 어땠을까. 서류만 보고도 "딱 보면 안다"
라는 거짓말을 한 그 사람은 아무 일 없이 살고 있겠지.
이 일을 십 년 넘게 하고 있지만, 하면 할수록 딱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음을 절감한다. 오히려 그런 단정이 때로는 편견으로, 사건을 조망할 수 없게 만드는 왜곡된 틀로 작동한다. - P225, 226, 229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깊은 고찰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희미한 생각들에 명징함을 더해 주었다.
누구나 어린아이 시절을 거친다. 갑자기 어른의 모습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은 없다.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이 나쁜 이유는 어느 폭력보다도 명징한 ‘권력 관계에 의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아동에게 어른, 보호자, 부모는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절대적인 권력인가. - P121
내가 아이를 양육하면서, 훈육을 할 때 감정적이 되어 화를 낼 때가 있다. 훈육에 감정은 배제해야 된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게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 죄책감이 드는 가장 큰 이유가 위 인용문에서 지적한 대로, 나와 아이는 "권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아동들은 보호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약자가 되고 뭐든 들어준다고 말은 해도, 사실 절대적 갑은 보호자이고 아이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위아래가 명백한 권력 관계에서 위가 아래에 가하는 폭력은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방식의 폭력이다.
아동학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불길처럼 들끓는 여론과 급하게 마련되는 대책들에 대해서도, 김예원 변호사는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정부의 아동학대 종합 대책이 추가로 발표되었다. 어디선가 한 번씩 본 것 같은 강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책 중에서 유독 지나치게 강조되는 네 글자는 역시 '즉시 분리‘였다. 그 네 글자 주변에 얼쩡거리는 문장들은 하나같이 다음과 같았다.
‘즉시’ 분리하고, '즉시' 보고하고, ‘즉시‘ 조치한다.
어디서 많이 보았다 싶었는데 마침 뉴스가 흘러나온다.
"이번 명절 택배 대란을 막기 위해 물류센터에서는 물류를 즉시 분리하여 차질 없이 운송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나라에서 학대 피해 아동을 사람이 아니라 물건 취급하고 있었다. 택배처럼 빨리 어디론가 옮겨져야 하는 물건.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분리되어야 할 아동이 그동안 제대로 분리되지 못한 이유는 법에서 분리의 기준을 모호하게 정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허벅지의 멍을 몽고점이라고 우기고, 손찌검에 벌건 피부를 아토피라고 우기는 가해자의 말만 듣고 돌아선 어른들의 '비전문성‘과 ‘책임 회피‘ 때문에 반복되는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신고 횟수에 따른 기계적인 아동 분리는 공무원의 면책을 위한 개악에 불과하다.
분리되는 아동도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아동을 위한 적시 분리가 가능해진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물어볼 수 있고, 교감하며 살펴볼 수 있고, 상대방의 비언어적인 의사표현도 오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정말 고민해야 하는 것은 몇 번을 신고해야 아이가 분리되는지가 아니라, 신고 횟수에 관계없이 아이를 처음 만나 조사하는 어른이 어떻게 그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지의 문제다. - P129, 130
학대를 받다가 아동이 사망한 사건이 터지면, 사회적 공분을 먹이 삼아 과도하게 편향된 뉴스와 현장을 마구 뒤흔드는 정제되지 않은 법안이 쏟아져 나온다. 간담회, 토론회에서 대책이랍시고 나오는 이야기들도 어설픈 경험과 국민적 공분이 잘못 버무려져 있다.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런 말들이다.
(...)
- 그런 집에서 크느니 애를 보육원 같은 시설로 보내서 키우는 게 애 인생에 훨씬 나아요.
(...)
- 아동학대를 한 사람들은 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때려야 해요.
- 경미한 사건이라도 될 수 있으면 모두 형사사건화 해서 가해자를 법정에 세워야 해요.
- 아동학대 한 인간들 얼굴을 만천하에 알려서 얼굴 들고 살 수 없게 신상을 공개해야 해요.
피해 아동에 대한 ‘공감‘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자기만족에 불과하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해 아동에 대한 철저한 ‘타자화‘가 기저에 숨어 있다. ‘내 일‘ 이라면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단정적인 말들이 대부분이다. 몇몇 언론에서 도드라지는 사건을 두고 보도하는 성급한 일반화가 이러한 타자화에 불을 붙인다. - P234, 235
쉽게 말하고 쉽게 잊어버리고... 마치 가해자를 영원히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 버리면- 무기징역이라는 방식으로 - 정의가 바로세워질 것처럼 말하지만, 그걸로 만족하고 돌아서면 가해자가 끝없이 재생산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누군가를 '타자'로만 대하며 무심히 폭력을 저지른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있겠지...ㅠㅠ
김예원 변호사는 여전히 차별과 혐오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야말로 분투하고 있다. 100자평에 썼듯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할 만한 그녀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정말로 고맙다. 그리고 이 책을 사 보는 일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빌며 리뷰도 열심히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