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그 비용 때문에만 힘이 든다

 -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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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들 가운데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된다. 어떨 땐 세상사 모든 일이 '필연' 혹은 '인연'이 아닌 게 없다 싶다가도, 또 어떨 땐 결국 많은 일들이 '우연'에 따라 순식간에 뒤바뀌게 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어느날 갑자기 예정에 전혀 없던 '장거리 여행'을 준비하느라. 일상적인 일들은 갑자기 대수롭지도 않게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고, 생전 가보지도 못한 낯선 도시들과 풍경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느라 여념이 없게 된 요즘의 상황들도 결국은 나의 자발적인 의지보다는 '우연의 힘'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 것처럼 느껴진다.

오랫동안 꿈꿔오던 여행일수록 그 '출발'이 막상 코앞에 현실로 닥쳐올 때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되는 일도 드물다. 그런데 '당분간' 별다른 뚜렷한 계획이 없었음에도 어느날 갑자기 '마냥 꿈같은 여행'이 문득 진짜로 눈앞의 현실로 자꾸만 다가오게 되는 경우라면 어떨까. 이 또한 몹시도 가슴 설레는 일임을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그러니까 어느날 저녁에 세 사람이 '일상적으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불쑥 '여행' 이야기가 나왔고, 그 세 사람이 즉석에서 '의기투합'하여 7월 초순에 '동유럽 여러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면서, 나더러 함께 떠날 의향이 없느냐는 몹시도 어리둥절한 얘기를 선배와의 전화 통화에서 들었던 게 대략 보름쯤 전이었던 듯하다. 이제부터 '자유로운 일정'을 잡아서 우리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여행인 만큼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겠느냐면서, '이왕이면 넷'이서 함께 떠나면 정말 여러모로 좋을테니 꼭 함께 가자는 선배의 부탁이 자못 간절했다.

호텔방은 어차피 2인 1실로 써야 될텐데 네 명이 함께 가게 되면 1인당 숙박비 부담도 조금씩 덜게 되고, 자동차를 한 대 렌트해서 다닐 예정인데 교통비 부담 또한 'n이 늘어나는 만큼' 줄어들 뿐만 아니라, 운전기사도 한 명 더 늘어나는 셈이니 '운전 부담'도 조금씩 덜게 되고, '내 카메라'도 함께 가져 가면 좋은 풍경도 더 많이 찍지 않겠느냐는 등등... 실로 '넷이서 함께' 여행을 떠나야할 이유는 많고도 많았다.

놀기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런 일이라면 늘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겠지만, 이럴 때마다 몹시도 풀기 어려운 '큰 난관' 하나가 늘 중차대한 문제로 남게 마련이다. 어느날 느닷없이 불쑥 꺼내는 바깥 양반의 그럴듯한 출타 계획을 듣고 보면 언제나 억울한 심정부터 슬며시 앞서게 마련인 불쌍한 안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늘 남정네들의 크나큰 고민거리가 아니던가. 어쨌든 그런 얘기를 꺼내는 일은 적당한 때를 찾기도 여려울 뿐만 아니라 입을 떼는 일 자체가 몹시도 힘이 들게 마련이다.

그나마 이제는 나이를 얼마쯤 먹고 연륜(?)마저 쌓이다 보니 어지간한 '난관'조차도 묘한 꾀를 내어 슬기롭게 빠져나갈 궁리를 그리 어렵지 않게 짜낼 수 있게 되었던지, 머지않은 미래에 적잖은 비용을 '당신을 위해' 별도로 지출하는 조건으로 '빅딜'을 타결하고 나니 곧바로 '여행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합류한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20 년쯤 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같은 회사의 같은 부서에서 직장 선·후배 사이로 만난 사이인데, 여태껏 적잖은 세월을 자주 함께 어울려 쏘다녔던 터여서 다들 좋아라 반겼지만, 이번 여행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여행 계획에 필요한 모든 사소한 일들까지도 혼자서 도맡아 진행하시는 분은 안타깝게도 내가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그 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방학때만 되면 어김없이 장거리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소위 '여행 매니아'인 분이었다. 마침 올 여름엔 늘 함께 다니던 '여행 동료들'이 각자 저마다의 사정들이 생겨서 '홀로' 유럽 여행을 다녀올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단다. 그럴 때 마침 셋이서 '딴 일'로 만났다가 이번 여행이 우연히 성사된 셈이었다.

어쨌든 그 분은 젊었을 때부터 그렇게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어느새 '여행 전문가'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는데, 거기다 음악과 미술에도 남다른 애정을 기울인 덕분에 그쪽으로도 상당한 조예를 지니신 분이었다. 비록 직업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해 보이는 공대 교수였으나 취미는 전공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몹시도 말랑말랑한 편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직접 만나보니 실제 나이보다 대략 십 년은 더 젊어 보일 정도였다. 환갑을 넘긴 분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았고 얼핏 보면 그저 우리와 '같은 또래'쯤으로 보여서 서로 어울리기 좋은 느낌마저 들었다.

일반적인 팩키지 여행도 아니고, 대중교통에 의지해야 하는 적잖이 고생스러운 배낭여행도 아닌, 우리 마음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여행이다 보니 두세 차례의 '여행 준비모임' 동안에도 벌써 '여행 계획'이 밀가루반죽이 주물럭거릴 때마다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듯 자꾸만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동유럽 여러 나라'로 다닐 예정이던 여행이 어느새 '독일을 중심으로' 바뀌었고, 여행 일정도 당초 15일 정도로 잡았다가 '아무리 계산해도' 그 일정으로는 너무 빡빡하다 싶어 이틀을 불쑥 늘렸다. 엊그제 만나서 '대략적으로' 그려본 여행 일정 또한 아직까지도 '가변적'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현지 사정에 따라 당초 일정을 슬쩍 비트는 재미 또한 자유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어 '곧이 곧대로' 직진하는 성향이 강한 나로서도 어쩐지 불만보다 기대가 훨씬 더 크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맨처음 유럽을 가본 지도 어느새 13년이나 훌쩍 지났다. 2001년 가을에 가족들과 함께 유럽에 처음 갈 때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무척 어렸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과 유치원생이던 딸을 데리고 여행지를 다닐 때마다 '아이들에게' 한 가지라도 더 보여주고 설명해 주느라 '뻔한 헛수고'를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기억과, 아침 식사가 끝날 때마다 부리나케 아이들 방으로 올라가 흐트러진 옷가지들을 빠짐없이 챙겨 여행가방을 꾸리느라 애쓰고, 함께 움직이던 일행들의 '아침 출발 예정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매번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어느새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다. 이젠 아이들이 둘 다 대학에 다니는 나이가 되고 보니,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아웅다웅 다투던 그때가 오히려 그리울 지경이다. 이번 여행만 하더라도 벌써 가족들은 고스란히 '일상' 속에 남겨진 채로 나만 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닌가. 누가 보더라도 '오십대 아저씨들'임에 분명한 남자 넷이서 자동차 한 대를 빌려 타고 발길 닿는대로 마음껏 돌아다니는 여행은 어쩌면 몹시도 특별한 경험이다. 그래서 이런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한편으로는 몹시도 기대되고 날아갈 듯한 기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한켠이 약간은 허전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다른 기회에 또 부지런히 벌충하면 되지 않겠나 싶고, 당장은 여행 준비에 좀 더 열중하고 싶다. 그리고 좋은 여행을 위해 필수적인 영양가 높은 책들도 열심히 골라 장바구니로 옮겨야겠다. 

더구나 이번 여행의 리더를 자임한 분이 '음악'과 '미술'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분이어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얼마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게다가 이번에 찾아가게 될 여행지들이야말로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매우 특별한 도시들이 아닌가.

이번 여행의 리더를 맡으신 분이 그런 도시들을 들를 때마다 맨먼저 하는 일이 '음악회 티켓'부터 찾아보는 일이라고 하니, 우리의 여행 일정이 아무리 빡빡하더라도 음악 연주회에 할애하는 시간만큼은 결코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이 없을 듯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유럽의 음악 도시에서 직접 현지의 관객들과 함께 어울려 음악 연주회를 감상할 기회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여태까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런 연주회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이 너무나 흥분되고 기대된다.

또한 우리가 찾아갈 도시들은 꼭 음악으로만 유명한 곳들도 아니다. 오래된 궁전들은 물론 유서깊은 미술관과 박물관 등도 여기저기 수두룩한 것 같다. 그만큼 이번 여행을 위해서는 미리 다양한 책들을 세심하게 골라 미리 공부를 해둘 필요를 느낀다. 그런 책들을 사서 미리 읽거나 아니면 여행을 다닐 때마다 틈틈이 현장에서 직접 펼쳐 읽어도 좋을 듯싶다.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구석 구석을 마음껏 두루 찾아다닐 수 있는 자유 여행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도 '동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그림같은 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멋진 여행 안내서의 책갈피마다 가득 담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들을 직접 마주하면서 그냥 넋놓고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풍경들을 제대로 카메라에 쏙쏙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몇몇 여행 사진책들까지도 함께 사들이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아직까지 한 권의 책도 주문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책들을 골라서 주문하게 될지 나조차도 궁금해진다.

여행을 정말 좋아했던 몽테뉴는 '여행하기 좋은 나이'를 두고 지금의 내 형편에 딱 맞는 말을 남겨 놓았다. 바로 '50이 지나고 60을 넘기기 전'이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이'라는 것이다. 그 재치있는 프랑스 사람의 말마따나 이런 나이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만든 '어느날 문득 다가온 기막힌 우연'이 그래서 더욱 반갑고 기쁘다.

 

40이나 50세 전에

청춘이 정열을 추구하는 것은 용서하고, 노년이 쾌락을 찾는 일은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젊었을 때는 불타는 정열을 조심성으로 은폐했다. 이제 늙어서는 음산한 심정을 방종으로 풀어 준다. 그 때문에 플라톤의 법칙은 편력을 더 유익하고 교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40이나 50세 전에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한다. 나는 바로 이 규칙의 제2항으로 60세가 넘어서는 편력을 금지하는 데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이에 길을 떠나다가는 그 먼 길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아니오?" 무슨 상관이 있나?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거나 여행을 완수하려고 떠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움직이는 것이 기분 좋은 동안은 움직여 보려고 하는 것이다. 바람을 쏘이기 위해서 나는 바람을 쐰다. 이득이나 토끼를 보고 달려가는 자는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1085쪽)



비록 지금으로부터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 아름다운 추억, 멋진 풍경들로 가득찬 사진들을 담아 '우연히 떠난 여행'의 뒷얘기까지 마저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구글 어스로 살펴본 유럽





■ 알록달록한 유럽 지도



 



■ 유럽 지도_'독일을 중심으로'
 






■ 구글 지도로 살펴본 '여행 예정 경로'
 

 



■ 여행 계획표(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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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일반

 













































 












































 















 















 

 
■ 독일
















 


























■ 오스트리아






































■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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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그 비용 때문에만 힘이 든다

여행은 그 비용 때문에만 힘이 든다. 그것은 힘겨울 만큼 무거운 부담이다. 나는 돌아다니는 쾌락 때문에 휴식의 쾌락을 제쳐놓고 싶지는 않다. 그 반대로 이 두 가지가 서로 거들고 가꾸어 주도록 하고 싶다.(1051쪽)



 

여행을 즐기는 이유

나는 여행을 즐기는 이유를 물어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버리고 떠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나, 이제부터 찾아보려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1078쪽)



 

여행은 유익한 수양

이런 이유들 외에도 내게는 여행이 유익한 수양으로 보인다. 심령은 여행을 하는 동안 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물들을 주목하느라고 계속적으로 훈련 받는다. 그리고 내가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사람에게 끊임없이 다른 나라의 색다른 생활과 사상과 습관 등을 제시해 주며, 우리들의 천성인 끊임없이 변해 가는 형태를 음미시키는 것보다 인생을 형성하는 데 더 효과적인 학문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1080쪽)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어떠한 쾌락도 남에게 통해 주지 않으면 내게는 멋이 없다. 마음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이 난다고 해도, 그것을 나 혼자 지어냈고 아무에게도 말해 줄 사람이 없다면 화가 난다. "예지를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가진다는 조건으로 하기라면, 나는 그것을 거절하겠다."(세네카) 또 한 사람은 그것을 더 심한 어조로 말하였다. "만일 한 현자가 모든 필요한 사건들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그가 알아 둘 가치 있는 사항을 자유로이 관찰하며 한가롭고 여유있게 연구하는 생활을 가졌다면, 그리고도 외롭고 쓸쓸함이 어느 인간도 결코 만나 볼 수 없을 정도라면 그는 인생에서 물러날 일이다."(키케로) 아르키타스의 말에, 그가 하늘나라에 가서 저 광대하고 거룩한 천체들 속을 산택한다고 해도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불쾌할 것이라고 한 말은 내 성미에 맞는다. 그러나 어색하고 서투른 동행과 여행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혼자서 하는 편이 낫다.
(10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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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from Value Investing 2014-07-25 12:24 
    재치있는 프랑스 사람 몽테뉴는 여행을 무척이나 즐겼던 인물이다. 그가 '하늘나라에 가서 저 광대하고 거룩한 천체들 속을 산책한다고 해도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불쾌할 것'이라고 했던 어느 옛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말이 자신의 성미에도 맞다고 맞장구를 친 적이 있다. 그가 거기에 덧붙여 '어떠한 쾌락도 남에게 통해 주지 않으면 내게는 멋이 없다.'고 한 말은 내 성미에도 딱 맞다. 청산유수처럼 많은 말을 쏟아냈던 몽테뉴는 심지어 "예지를 누구에게도
  2.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_뤼벡과 그 밖의 도시들
    from Value Investing 2017-07-26 23:47 
    나는 저축하는 버릇을 버렸다. 큰 돈을 쓰며 하는 여행의 재미가 이 어리석은 생각을 뒤집었다. - 몽테뉴 * * * 뒤늦게(?) 토마스 만의 소설『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고 있다. 이 작품은 꽤나 긴 소설이지만 독일 사람들은 이 소설을 여전히(?) 아주 즐겨 읽는다고 한다. 토마스 만은 1897년 10월 말부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00년 7월 18일에 끝냈다고 하는데, 그가 태어난 해가 1875년이었으니 불과 스물 다섯에 이 거대한 장편
 
 
야클 2014-06-2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가실 생각에 많이 설레시겠군요. 일단, 감기 조심부터. ^^

oren 2014-06-23 22:11   좋아요 0 | URL
야클 님 반갑습니다. 어젯밤에 축구 경기를 보느라 잠을 불과 두 시간도 채 못 잤더니 오늘 '하루'가 몹시도 힘들고, 댓글도 지금에야 겨우 달게 되는군요.

다음주에 유럽으로 건너가면 그때까지도 여전히 월드컵이 한창일 텐데, 아마도 유럽의 몇몇 축구 강국들, 가령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이 승승장구하여 혹시라도 결승까지 진출한다면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보다는 훨씬 더 더 편한 저녁 시간에 맥주를 마시면서 즐겁게 축구 경기를 즐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드네요. ㅎㅎ

transient-guest 2014-06-2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일을 하면서는 자신만의 시간에 일주일 이상을 투자하기 어렵더군요. 부디 즐거운 여행하시고 많은 흔적을 포스팅하셔서 불쌍한 중생의 눈을 즐겁게 해주시길...

oren 2014-06-24 10:26   좋아요 0 | URL
transient-guest 님 반갑습니다. 님의 댓글을 읽어보니 문득 일과 여가를 균형있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참다운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일에서 훌쩍 벗어나 '많은 여가'에 듬뿍 시간을 할애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인 듯싶어요. 그래도 그럴 때마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일을 버리고 여가를 선택하는 쪽이 더 낫다 싶고, 결국 나중에라도 크게 후회할 일은 별로 없더라구요. 저는 여행에 관한 일이라면 '돈 버는 일'은 한사코 마다하고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늘 떠올립니다. 그가 『월든』에 담아 놓은 말들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들을 여기에 조금 덧붙여 봅니다.

* * *

이미 말한 여러 방법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 다음에는 무엇을 바라겠는가? 같은 종류의 열을 더 바라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즉 더 풍부하고 기름진 음식, 더 크고 화려한 집, 입고 남을 정도의 더 좋은 옷, 끝없이 타오르는 더 뜨거운 불 따위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생활필수품을 마련한 다음에는,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바로 먹고 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transient-guest 2014-06-25 08:32   좋아요 0 | URL
아직은 조금 이른 듯 합니다. 내려놓기에는 말이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커리어가 남들보다 늦은 탓도 있으니까요. 조금 작게 생각하고 작게 살고, 적은 것에 만족하면서 여가를 즐기는 것은 꿈꾸는 삶이죠. 제가 욕심이 많다기보다는 아직은 어느 레벨에 올라오지 못한 탓인 것 같네요.ㅎ

oren 2014-06-25 11:24   좋아요 0 | URL
일생 동안에 어느 한 시기에는 죽어라 일만 해야 할 때도 있는 듯합니다. 그럴 때조차도 일에만 너무 매몰되지 않고 잠시라도 한숨 돌려가며 삶의 여유를 찾는 일이 필요하겠지요. 일이 상당히 진척되고나서도 더욱 일을 많이 벌리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런 경우라도 본인이 (여가를 즐기지 못한 데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면 뭐라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겠지요.

LAYLA 2014-07-15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돌아오시겠군요.
벌써부터 여행기가 기대됩니다^^

oren 2014-07-17 21:03   좋아요 0 | URL
LAYLA 님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막 뮌헨공항 도착해서 짐 다 부치고 귀국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이랍니다. 보름여 동안 자동차를 빌려 직접 운전하고 다니며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다보니, 여행후기로 쓸 애기가 너무나 많아 오히려 걱정이군요. 매일매일이 우연과 사건의 연속이라서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조차 듭니다.

어제 오후만 하더라도 느닷없이 골프장으로 이동하여 18홀을 돌았고, 라운딩 도중 (우리 일행 세사람의 골프를 주선해준) 민사장님을 알아본 한국 여성 두 분과 마주쳤는데, 글쎄 그 두 여성분들을 저녁때 우연히 식당에서 다시 만나 새벽 늦게까지 온갖 술(바이스비어로부터 시작하여 소주와 와인도 모자라 꼬냑 까지...)을 다 마셔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한 분은 베늘린음대를 졸업한 피아니스트였고, 또 한 분은 사업을 하시는 뮌헨한인회장이셨는데, 중년의 남녀들이 뮌헨의 슈바빙 거리를 쏘다니며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간듯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쏘다니는 재미가 정말 좋았답니다.

여행 기간 동안 하필이면 독일이 승승장구하며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하루 일정이 새벽 한 시 이전에 끝나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졔 그런 자유와 일탈과 방종들을 다 뒤로하고 막상 한국으로 되돌아갈려니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기도 하네요...
암튼 나중에 여행후기 쓰게 되면 그때 다시 글로 뵙지요...

LAYLA님 블로그를 읽을 겨를이 없어 안타깝네요.. 아무쪼록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랄께요...
 




꽃들이 저마다 가장 환한 웃음을 피워내던 그 아름답던 5월은 다 어디로 갔나 싶다.


아무리 예쁜 꽃을 보아도 자꾸만 슬픈 감정부터 불쑥 제 먼저 찾아든다.
저토록 예쁜 꽃들은 한 해의 절정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떠나가는 이 봄에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이 봄을 아예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 듯하다.

아름다운 꽃을 마음껏 피웠으면 그저 그 뿐.
더 바랄 게 뭐 있으랴 싶은 그 마음이 그저 부럽다.

어느 해 사월과 오월이 또다시 이토록 아플 수 있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마 영영 잊지 못할 듯한 이 계절을
저 꽃들마저 눈치챈 건 설마 아니겠지.

하늘 아래 그 어떤 삶이 감히 영속을 도모하랴만,

그래도 어느 봄날 하루 아침에,
느닷없이, 
어이없이,
스러질 틈조차 없이 숨이 막혀 끝나고 만,
꽃다운 저 푸른 청춘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 * *

(그저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꽃박람회에 갔다가, 예쁜 꽃들이 반가워 사진에 부지런히 담아 왔지만, 좀체로 사진을 올릴 마음조차 내키지 않아 미적거리다가, 끝내 이렇게라도 갈무리를 시도해 본다. 꽃들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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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4. 5. 1(목) ∼ 5. 3(토)

이동 경로
 
    일산 → 변산반도 국립공원 → 남여치통제소 → 월명암 → 직소폭포 → 원암통제소 → 내소사
→ 곰소 염전
    → 채석강, 격포항(1박) → 새만금방조제 → 성주사지 → 성주산 자연휴양림(2박) → 보령댐 → 일산




 - 변산반도 국립공원 안내도




 - 현위치는 남여치통제소. 직소폭포를 지나 재백이고개를 넘어 내소사 쪽으로 넘어가는 데 4시간이면 충분하다.





 - 봄빛 따사로운 월명암.
   (월명암은 쌍선봉 정상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신라 신문왕 12년(692년)에 부설거사가 창건하였다.)





 - (이때만 해도)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에 있었다.





 - 월명암을 지나 고개를 넘으니 갑자기 눈 앞이 탁~ 트이고 까마득히 저 멀리 호수가 반짝 빛난다.





 - 호수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는 '곰소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 앞바다이자 줄포만일 듯.



 - 초록빛 숲에 둘러싸인 호수가 봄 햇살에 에메랄드처럼 빛난다.





 - 산 속 깊숙한 곳에 핀 붉디붉은 철쭉엔 호랑나비들이 연신 자리를 옮겨 앉느라 바쁘다.





 - 새봄을 맞아 온갖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서로 노래하며 화답하듯 재잘거린다.




 - 직소보에 가득 담긴 물 덕분에 숲들이 더욱 울울창창한 듯...




 - 저 계곡 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나 맑고 깊은 샘이 나올까.





 - 호수를 지나 얼마 안 가니 어김없이(?) '선녀탕'이 나타난다.




 - 과연 선녀탕은 '나뭇군'이 금새라도 훌렁훌렁 옷을 벗고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을 만큼 물이 맑았다.



 


 - 가파르게 이어지는 산길 옆으로는 크고 작은 폭포가 하얀 물줄기를 쏟아내기 바쁘다.





 - 직소폭포.
(변산 8경중 2경에 해당하는 곳으로 30m 높이에서 힘찬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이 압권이다. "직소폭포와 중계 계곡을 보지 않고서는 변산에 관해 말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 내소사(633년 백제 무왕 34년에 혜구두타가 창건)



 -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600m 전나무숲길은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 대웅보전.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문화재.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토막을 끼워맞춘 것으로 유명하다.



 - 대웅보전의 문살 문양. 연꽃·국화·모란 등의 꽃문양이 새겨져 있는 문살을 보면 마치 '꽃밭'을 연상케 한다.




 - '대웅보전의 문살문양은 원래 채색이 돼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벗겨져 나뭇결만 남았다'고 한다.
(대웅보전 문살에 새겨진 모란·연꽃·국화 등의 문양에는 청빈과 절개, 평안을 기원하는 목공의 소박한 희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고, '꽃공양'을 하려 했던 목공의 깊은 불심을 엿볼 수 있다'고.)





 - 늦은 오후의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소사에 핀 꽃과 나뭇잎과 연등까지 온통 환하고 비추고 있다.





 - 절 뒷편으로 보이는 산이 관음봉(433m)인 듯하다.





 - 며칠쯤 더 여유가 있다면 '승복'으로 잠시 갈아 입고 좀 더 편안하게 머물고 싶은 곳이다.





 - 곰소항 주변은 온통 '젓갈' 간판들로 가득하다. 알고 보니 '염전'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이 큰 역할을 맡은 듯하다.





 - 여기가 바로 '소금밭'이로구나.





 - 오늘은 마침 '노동절'이다. '염전 노동자'도 오늘 하루만큼은 '노동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듯.



 - 격포항 앞바다에 닿고 보니 서녘 바다 위에 뜬 해가 바다와 개펄을 구분없이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 적잖이 뜨겁게 느껴지던 태양의 열기도 바다로 가까이 내려서자 금새 서늘하게 식는 듯하다.




 - 성주사지 석불입상. 부처님이 언뜻 소박한 여인네로 보인다.
(성주사지내 강당지 동편에 있는 석불입상으로 얼굴이 타원형으로 인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굴부위, 목부위,
 가슴부위가 일부 훼손되어 있으며 조성시기는 조선시대 중·후반기에 조각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 성주사지 석탑.
(『승암산 성주사 사적』에 성주사의 규모가 불전 80칸에 행랑채가 800여 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체는 1,000여 칸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산파의 총본산으로 크게 발전하였던 이 절에서 한때 2천 5백 명가량의 승려들이 도를 닦았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뒤 중건하지 못하여 폐사지만이 사적 제307호로 지정되었다. 성주사가 번창하였을 때는 절에서 쌀 씻은 물이 성주천을 따라 십 리나 흘렀다고 하는데, 오늘날 절은 간 데 없고 석조물만이 절터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중에서)





 -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과 8각 석등.
   (통일신라(統一新羅) 성주사(聖住寺) 창건기(創建期)에 세워진 신라양식(新羅樣式)의 석등(石燈)이다.)





 - 성주산 자연휴양림 내, 서정주 시 『추천사(鞦韆詞)





 - 성주산 자연휴양림 내, 조지훈 시 『완화삼』





 - 성주산 자연휴양림 내, 유치환 시 『바위』





 - 예약도 없이 불쑥 찾았는데 운좋게 방을 얻어 편히 묵었던 '성주산 자연휴양관'





 - 보령호.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 코스였던 곳.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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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4-05-1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사진을 보면 꼭 자리를 박차고 어디론가 떠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멋진 그림을 보면 그림에 빠져들 듯, 올려주신 멋진 사진을 보니 사진에 마음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씩 더워지는 오월에 푸른 하늘이 느껴지는 사진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

oren 2014-05-19 13:32   좋아요 0 | URL
계절마다 자연은 늘 저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그런 자연을 늘 제쳐두고 끊임없이 바쁜 일상에 내몰리는 현실이 늘 미워질 때가 많아요. 늘 더 자주 대자연의 품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들고픈 욕망은 가득하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약함에 스스로 서글퍼 질 때, 그 때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때인데 말이지요.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자극적이며 매력적인 
광고 문구인가. 이 책의 띠지에 붙은 저 글은 아마도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이방인>의 놀라운 첫 문장 만큼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충격적이다. 카뮈의 <이방인>만 하더라도 너무나 유명한 소설인데,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저런 '외관'을 지니고 새롭게 번역되어 나타난 책을 어느 누가 쉽게 외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은 적지 않은 독자들에게 '책을 미리 사서 읽기도 전에'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미리보기'를 듬뿍 제공한,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낯설게 다시 다가온 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이렇듯 매우 어리둥절한 방식으로 다시 한번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이방인>이라는 소설 자체가 기묘한 성격을 지녔다 싶어 더욱 흥미롭다.

<이방인>을 둘러싼 '뜨겁게 불타오른' 오역 논쟁을 한동안 두루 살펴본 덕분에, 이정서 님이 번역한 새움판과 김화영 님이 번역한 민음사판의 차이를 어느 정도 미리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새움판 <이방인>'을 둘러싸고 대판 벌어진 '칼날이 번쩍이는 듯한' 격렬한 싸움을 지켜보는 일이 어느새 '소설 이방인' 못지 않게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싸움의 배경에 '어떤 전리품'이 깔려 있든지에 관계없이, 나같은 독자로서는 이미 그 치열한 싸움에 자칫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무슨 화를 입을지도 모르겠다 싶었고, 이러다 무슨 큰 사단이 나지나 않을까 싶어 슬쩍 겁부터 났다.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모두 끝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햇볕으로 이글거리는 해변 전체가 뒤에서 나를 압박했다. 나는 샘을 행해 몇 걸음 내디뎠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아직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85쪽)



나는 아마도 새움판 <이방인>을 미처 읽기도 전에 '이방인 오역 논쟁'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어떤 압박감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잠시나마 떠올렸을 생각이 아마도 <이방인> 속에 담긴 앞의 인용문과 닮았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앞에서 인용한 대목은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가 '홀로' 다시 '아랍인'에게로 다가가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방인>이라는 책을 둘러싼 '이글거리는' 논쟁으로부터 나는 '그냥' 돌아서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의 호기심이란 그리 쉽게 억눌려 있기가 어려운 성질이었던지, 나는 결국 지난주 어느날 퇴근할 무렵에 일부러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겨 이미 눈에 익은 이 책을 집어들고 책값을 계산했고, 결국 <이방인>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도대체 <이방인>을 둘러싼 번역 논쟁이 왜 그토록 뜨겁게 불타오를 수밖에 없는지, 나는 무엇보다도 그 실체적 진실이 궁금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단편적인 조각들' 말고 '하나의 덩어리 전체'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이방인』을 집어들자 말자 그 소설은 정말 단숨에 읽혔다. 그 소설을 읽던 날 밤엔 '온갖 부조리'로 가득찬 엄청나게 우울한 '세월호 참사' 소식이 벌써 사흘째 생방송 중일 때였다. 가슴이 먹먹한 안타까운 소식들이 전해질 때마다 연신 훌쩍거리는 아내와 함께 그 참담한 소식을 두 시간 이상씩이나 계속 지켜보는 일이 영 마뜩찮아 TV에서 물러난 나는, 그저 퇴근길에 사 온『이방인』이라도 붙잡을 도리밖에 없었다. 그 책을 금새 읽고 나서도 '극심한 우울 모드'는 여전히 지속될 뿐이어서 언제 글 한 줄 쓰고 싶은 생각조차 도무지 들지 않았다. 이런 글은 써서 도대체 뭐하나 싶은 자괴감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 뿐.

 

그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햇볕이 내 뺨을 불태웠고, 눈썹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 특히나 그때처럼 나는 이마가 지근거렸고, 피부 밑에서 모든 정맥이 울려 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 뜨거움이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었다. 나도 알았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한 걸음 더 옮겨 봤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85∼86쪽)



방금 인용한 대목은 소설 <이방인>의 '1부'를 장식하는 결정적 장면 가운데 한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이 책의 역자를 떠올렸다. 카뮈의 <이방인>을 새롭게 번역한 역자는 아마도 (그가 보기에는 '부조리한' 오역으로 가득찬 김화영 번역본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어떤 뜨거움에 내몰려, 한 걸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던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오역 논란을 새까맣게 잊을 정도로) 정말 놀라웠고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미 책을 읽기도 전에 얼마간 예상했던 일이긴 했지만 '역자 노트'도 그에 못지않게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새롭게 나온 번역판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카뮈의 소설『이방인』은 그동안 결코 쉽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역자 노트'에서 예시된 이전의 번역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수긍하게 되면 '그런 사정'을 얼마간 이해할 만하다 싶기도 했다. '역자 노트'에서 이 책의 저자가 상세히 밝힌 대로 '새로운 번역'에 따라 이 소설을 읽으면 <이방인>은 그렇게 어렵게만 읽히는 소설이 결코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매끄럽게 읽히고, 카뮈가 치밀하게 배치해 놓은 소설 속 문장들이 저마다 절묘한 호응을 주고받는 느낌마저 생생했다.

'새로운 <이방인>'과 '역자 노트'를 다 읽고 나니, 어쩌면 카뮈가 『이방인』을 통해 그토록 함축적이고도 절묘하게 그려낸 '부조리'가 '역자노트' 속에 기이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듯한 착각조차 들 정도였다.

 

우리는 마침내 저 멀리 해변 끝의 커다란 바위 뒤에서 모래 사이로 흐르고 있는 작은 샘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그 아랍인 두 명을 발견했다. 그들은 누워 있었는데, 기름때 전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평온하고 거의 만족스러워 보였다.  우리가 왔음에도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81쪽)



기존의 번역이 정말 역자의 주장대로 '인물들의 성격과 특성'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카뮈 작품에 대한 권위자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려온 김화영 님의 번역이 정말 '<이방인>이라는 걸작 소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점에 대해서는 이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읽는 일개 독자로서 함부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싶다. 그래서 역자가 심혈을 기울인 '작가 노트' 내용들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수긍할 수는 있지만, 기존 번역에 대한 너무 지나친 비판을 담은 그의 주장에 대해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결코 적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번역'에 명쾌한 정답이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식의 과격한 주장에는 누구라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역자의 지나치게 확신에 찬 주장들에 대해선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느낌부터 앞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기존의 번역'이 '작품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엉터리 번역'이라는 주장은 누가 뭐래도 너무 심했다 싶다.

사정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운 번역은 기존의 번역보다 정말 매끄럽고 설득력이 넘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 그저 단순하게만 읽히던 문장들이 하나 하나 긴밀한 연계성을 띄고 되살아나 서로를 이끌고 잡아당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확인시켜주기까지 한다. 물론 수준높은 독자라면 '기존의 번역'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이방인> 속에 담긴 '작품의 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역자의 열의에 가득 찬 새로운 번역을 따라가다보면 평범한 독자라 하더라도 카뮈의 문학적 천재성을 금새 느껴볼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느닷없이 낯선 외국의 여행지를 홀로 다녀오고 난 뒤에, 뒤늦게 그 여행지를 안내하는 어느 여행 전문가의 친절한 TV 해설을 듣는 듯한 느낌마저 들지 모르겠다. 그만큼 역자의 설명은 그동안 이 작품의 해석을 어렵게 만든 여러 대목들을 환하게 밝힌 부분들이 적지 않다 싶고, 그래서 이 책은 기존의 번역 작품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번역들과 역자가 새롭게 찾아낸 여러 확신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의 설명은 '기존의 번역들'을 휘청거리게 만들고 그가 내뿜는 입김은 불에 데일 듯 뜨겁다.

 

모든 것이 휘청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무겁고 뜨거운 입김이 실려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뿜어 대는 것 같았다. (86쪽)



카뮈의 <이방인>을 아주 오래 전에 '어렵게' 읽은 기억이 어렴풋한데 뒤늦게나마 '새로운 번역'으로 단숨에 읽고 나니 개운한 느낌조차 없지 않다. 이 책이 아무리 '오역 논란'으로 여전히 시끄럽다고 하지만, 일개 독자로서는 그게 그토록 중요한 문제인가 싶은 생각도 없지 않다. 기존의 번역에 결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다는 점에 얼마쯤 동감하고, 새로운 번역으로 카뮈의 훌륭한 문학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으면 나로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내 변호사는 인내심이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두 팔을 높이 쳐들어 올리며 소리쳤고, 그로 인해 그의 소매가 아래로 처지면서 풀 먹인 셔츠의 주름이 드러났다. "도대체 이 피고가 기소된 것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서입니까, 사람을 죽여서입니까?"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검사가 다시 일어서더니, 그의 법복을 바로 잡고는 선언했다. 이 두 사실의 범주 사이에 있는 깊고, 비장하고, 본질적인 관계를 지각하지 못하려면 존경하는 변호사님처럼 순진해야 할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는 힘주어 소리쳤다. "나는 이 사람이 범죄자의 심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묻었음을 고발합니다." (133쪽)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도 다시 한번 엄청난 궁지에 내몰린 '새움판 <이방인>의 번역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일을 아주 단순하게만 바라본다면, 그는 기존의 번역상의 오역들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번역을 내놓은 죄밖에 없다. 그런데 역자에게는 이미 '번역상의 문제' 말고도 다른 수많은 '나쁜 혐의'가 잔뜩 추가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역자는 어느새 카뮈의 <이방인> 속에 나타난 '부조리'를 얼마쯤 닮아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새움 번역판의 역자를 둘러싼 논란'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독특한 감정들이었다.

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낸 '부조리'는 도처에 깔려 있다. <이방인> 속 부조리 가운데 내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부조리는 결국 '죽음'에 대한 뫼르소의 생각이었다. '엄마의 죽음'과 '아랍인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연장되고, 어떻게 예기치 않게 일찍 마무리되든 주인공 뫼르소는 그에 대해 '일반의 보편적 인식'과는 크게 동떨어진 사고와 행동을 보여준다. 그게 무에 그리 큰 대수로운 차이란 말인가 하는 식이다.

 

그걸 마치고는 나를 "여보게"라고 부르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내가 사형수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사형수인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가로 막고는 그건 같은 게 아니라고, 더구나 어떤 경우라도 그건 위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158∼159쪽)



이 짧은 대목 속에서도 '부조리'는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부조리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결국 교도소의 간수가 '호출'하는 순간에 삶을 마감하게 되어 있는 사형수를 닮았다.(쇼펜하우어는 '시간은 교도관처럼 우리 등 뒤에서 회초리를 들고 감시한다'고도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천 년이라도 살 듯이 악착스레 삶에 매달린다. 그런 '부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뫼르소가 오히려 사제에게 '그건 같은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습조차 내겐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내놓은 <이방인>을 두고 화끈하게 불붙은 '오역 논쟁'을 지켜봐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여러 다양한 생각들을 떠올렸을 법하다. 그 가운데 내가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지켜본 일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이미 단단하게 뿌리내린 '기성 권력이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한 고려였다. 그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힘과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혹은 거기에 돈키호테를 닮은 무모한 용기는 또 얼마나 필요하며, 슬기로운 지혜는 또 얼마만큼 요구되는 것일까.

이번의 오역 논쟁을 지켜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찰스 다윈을 잠시 떠올렸었다. 비록 이번 일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사례이고 서로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여길지 몰라도, 나는 '기독교의 창조론'이라는 난공불락의 '기성 권위'를 무너뜨린 찰스 다윈의 '위대한 도전'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참고할 만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가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주장하고 싶었던 '자연선택 이론'은 '인간의 유래'에 관한 '신의 권위'마저 완전히 박탈하고야 말겠다는, 일찌기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만큼 위험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어려운 일을 너무나 아름답게 성취해 냈다. 그가 그토록 힘든 일을 그토록 손쉽게(?) 이뤄낸 비결은 과연 무었이었을까. 내 생각으로는 딱 두 가지였다. 첫째, 평생을 바친 철저한 연구.
둘째,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한' 표현.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는 우리가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말했다. 바로 '태양과 죽음'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딱 어울릴 만한 명언이 아닐까 싶다. 이 말을 남긴 라로슈푸코를 무척이나 존경하며 그를 자주 인용했던 철학자는 쇼펜하우어였다. 그 또한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헤겔을 상대로 끊임없이 싸웠다. 그가 보기엔 헤겔의 철학이 엉터리로 보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가 말년에 이르도록 '당대 철학계의 거두'였던 헤겔을 뛰어넘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철학에 매진한 끝에 얻어낸 훌륭한 결실들은 결국 훗날에 이르러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쇼펜하우어가 '논쟁'의 대가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도 쇼펜하우어가 했던 인상적인 말들을 몇 번씩이나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 철학자만큼 이번 '새움판 이방인 ' 논쟁에 어울릴 만한 적절한 표현들을 두루 언급한 인물도 드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내가 떠올리고 새삼 찾아봤던 '쇼펜하우어의 글들'은 어쩌면 '새움판 이방인'에 딸린 '역자 노트'처럼 어딘가 본궤에서 너무 벗어난 '사족'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숨겨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여기까지 관심있게 읽어보신 분들을 위해서는 이런 사족도 전혀 값어치가 없지는 않을 듯싶어 덧붙여 본다. 아무쪼록 '접힌 부분'까지 펼쳐 읽으시는 분들이 적지 않았으면 좋겠다.

 

 

접힌 부분 펼치기 ▼

 

 

긍정적인 것을 보라


불평하지 마라. 모든 것을 악으로 몰아가는 음울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저주한다. 이는 통찰과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비열한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눈 속의 티끌을 대들보로 과장해 비난하는 것과 같다. 불평하는 자는 맡은 일마다 천국을 지옥으로 바꾸고, 더욱이 비열한 열정으로 모든 것을 극단으로 몰아붙인다. 반대로 고귀한 심성을 지닌 자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려 한다. 일부러 잘못을 눈감아주고 의도는 좋았다고 말해줌으로써 모든 일에 용서할 줄 안다.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나를 만들어가는 지혜' 中에서

 


 

 

증오와 아첨 


증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첨이다. 증오는 오점을 씻어내려 하나 아첨은 그것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는 남의 원망에서 배울 점을 찾는다. 이는 호의보다 더 충실하다. 강력한 역풍은 맥빠진 순풍보다 낫다. 적의 덕택에 행운을 얻은 사람들도 많다.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경쟁자를 이기는 지혜' 中에서

 

 


예의는 호의를 얻는 마법약이다 


예의를 지켜라. 그것만으로 호감을 얻는 데 충분하다. 예의는 교양에서 나오며, 모든 사람의 호의를 얻을 수 있는 묘약이다. 반대로 무례함은 사람들의 경멸과 반감을 산다. 무례함이 자만에서 오면 혐오스럽고, 조악함에서 오면 경멸스러우며, 무지에서 오면 유감스럽다.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지혜' 中에서


 


진실을 말할 때는 말을 신중히 골라서 하라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때는 신중히 말을 고르고 예의를 잊지 않기 바란다. 똑같은 진실이라도 말하는 방법에 따라 기분좋은 보고도 되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음이 되기도 한다.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지혜' 中에서

 


 

시간으로 자기를 길들이라


기회가 오기까지는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계절은 숨어 있던 것을 무르익게 하고 완성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 시간의 버팀목은 헤라클레스의 쇠곤봉보다 더 강하다. 신은 채찍이 아닌 시간으로 인간을 길들인다.

'시간과 나는, 또 다른 시간 그리고 또 다른 나와 겨루고 있다'는 위대한 말을 상기하라.

 - 쇼펜하우어,『세상을 보는 지혜』, '행운을 불러들이는 지혜' 中에서

 


 

대적하는 자에게 그대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는가?


누가 공격하면 공격을 받은 사람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명예 회복의 절차에 따라 자기 손으로 되찾지 않으면, 그 명예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 절차는 아무래도 그 생명, 자유, 재산, 마음의 평정 등에 위험이 닥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남자의 행위가 성실하고 고귀하며, 심성이 순결하고, 두뇌가 대단히 뛰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비방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사람은 그저 지금까지 이 명예의 법칙을 어긴 일이 없으면 되고, 그 외에는 보잘것없는 인간 쓰레기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짐승 같은 자이건, 게으름뱅이, 도박꾼, 빚쟁이라도 무방하다)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곧 명예를 잃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을 즐기는 자는 대개 앞에서 말한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세네카가, "경멸해도 싼 놈팡이일수록 그 혓바닥이 고약하다"라고 한 것도 적절한 표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인간이야말로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감정이 상하는 모양이다. 됨됨이가 상반된 사람은 서로 미워하게 마련이며, 볼품없는 자가 뛰어난 사람을 은근히 경멸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와 비슷하게 괴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적하는 자에게 그대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는가?
      그대와 같이 성품이 뛰어난 자는

      영원히 그들의 눈에 난 가시로다.
      어찌 이들이 그대의 벗이 되랴!

                                                                           《서동시집》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명예에 대하여' 中에서

 


 

각자에게 제일 마음에 드는 것 


이것은 누구나 자기와 동질적인 것만을 이해하고 평가할 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이, 저열한 사람에게는 저열한 일이, 그리고 머리가 명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혼돈이,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일이 각각 동질적인 것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자신이 제작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바로 그것이 그와 가장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의 전설적인 인물인 에피카르모스(그리스의 희극 시인)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조금도 놀랄 건 없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고,
      그들은 자기 자신이 제 마음에 들어 의기양양한 것뿐이다.
      그들은 자기가 실로 훌륭하게 보이는 것이다.
      개에게는 개가,
      그야말로 제일 아름다운 것 ······. 역시 그렇다, 소에게는 소가,
      노새에게는 노새가, 돼지에게는 돼지가.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명예에 대하여' 中에서

 

 

 

남의 견해를 반박하지 마라.


남의 견해를 반박하지 마라. 그가 믿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완전히 그에게 납득시키려고 하면, 므두셀라만큼 오래 살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남하고 이야기할 때 아무리 호의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서는 안 된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는 쉽지만, 잘못을 바로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때,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치에 닿지 않더라도 제3자인 우리는 개입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들이 서투른 연극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세상에 진리나 교훈을 전하려는 사람이 그 임무를 무난하게 마쳤다면 그것은 하나의 요행이며, 오해와 푸대접과 반항, 그리고 학대를 받게 마련이다.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권고와 잠언' 中에서

 

 

 

격한 어조로 말하지 마라


'격한 어조로 말하지 마라'는 오랜 처세의 가르침은 해야 할 말만 요령 있게 하고 그 해석은 남에게 맡기라는 뜻이다. 일반 사람들은 이해력이 부족하므로, 그 자리를 떠난 뒤에야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격한 어조로 말하는 것'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되며, 그때 모든 것은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잖은 태도로 조용히 말하면, 무례한 말이라도 당장 눈앞에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 '권고와 잠언' 中에서


 


사람들은 거의 누구나 거울을 향해 짖어대는 개와 같은 짓을 곧잘 한다

선생이 학생에게 악기에서는 운지법을 가르치고, 검술에서는 장검 사용법을 가르친다고 하자. 학생은 열심히 하려고는 하지만 배운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훈련을 거듭하면서 쓰러지고 일어나고 하는 동안에 차츰 익숙해진다.

라틴어로 글을 쓰거나 이야기하기 위해 문법 규칙을 배울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다. 교양 없는 자가 관리가 되거나, 신경질이 심한 자가 사교가가 되거나, 대범한 자가 소심하게 되는가 하면, 고귀한 자가 익살꾼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와 같은 오랜 습관에 의해 얻은 자기 훈련은 언제나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강제에 대항하는 것을 자연은 결코 중지하고 있지 않으며, 가끔 뜻하지 않은 때에는 이 강제를 물리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추상적인 법칙에 의한 모든 행위와 천성에서 비롯되는 행위의 관계는, 마치 형태나 움직임이 서로 상관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시계와 같은 인위적인 제작품과, 형태나 재료가 서로 융합되어 하나가 된 산 유기체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천적으로 얻은 성격을 선천적인 성격에 비추어 나폴레옹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불완전하다"고 한 말이 정당함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육체적 및 정신적인 모든 일에 타당한 하나의 규범으로서, 이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가 알기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광물학자들에게 알려진 천연 수정이 인공 모조품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허식을 경계해야 한다. 허식은 언제나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첫째는 거짓으로서이며, 거짓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비겁한 것이다. 둘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탄핵선고로서이며, 이것은 자기가 아닌 것, 즉 자기를 더 과장해 돋보이려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특질을 내세워 자랑삼는 것은, 그가 그 특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이 용기건 학식이건, 또는 정신, 기지, 여자에 대한 인기, 재산, 고귀한 신분, 그 밖의 무엇이건 간에 그것 하나를 자랑한다면, 그에게 그 특질이 결여되어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특질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내세우거나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므로, 그는 자신이 가진 특질에 대하여 담담한 심정으로 있을 수 있다. '쩔렁쩔렁 소리를 내는 말굽쇠는 못이 하나 빠져 있다'는 스페인의 속담은 이를 가리킨다.

(중략)

그리고 어떤 사람이 가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가장하고 있다는 것은 곧 상대방이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가장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하며, 언젠가는 탄로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두고자 한다. "아무도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있을 수는 없다. 위장은 곧 자기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법이다."(세네카 《관용에 대하여》제1권 제1장)

인간은 자기의 몸무게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탱하고 있지만 다른 물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그 무게를 느끼는 것처럼, 자기의 결점이나 부덕은 의식하지 못하고 남의 것은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대신 모든 사람들은 타인 속에 하나의 거울을 갖고 있어 그 거울 속에 자기의 온갖 부덕과 결함, 무례 및 고약한 성질 등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누구나 거울을 향해 짖어대는 개와 같은 짓을 곧잘 한다. 개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이 다른 개인 줄 알고 짖어대는 것이다.

남의 결함을 들추는 것은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도 된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자기 혼자만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취미와 습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결함을 시정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기가 이처럼 자주 엄격하게 비난하는 일이라면, 자기 스스로도 이를 피하려는 정의감과 긍지와 허영심까지도 충분히 지니게 될 테니 말이다.

관대한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서로 눈을 감아 준다"(호라티우스《시론》)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들어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가"하고 적절하게 가르치고 있는데, 인간의 눈은 본래 외부의 사물은 잘 보지만 자기 자신은 잘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자기 결점을 돌이켜보기 위해서는 남이 갖고 있는 결점을 찾아내어 비난하는 것이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 하나의 결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쇼펜하우어,『삶의 예지』, '권고와 잠언' 中에서



 

항상, 가끔, 대체로

'모든 오류는 귀결에서 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추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또한 그 귀결이 그 해당 근거에서 생긴 것이지 다른 근거에서 생길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타당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타당하지 않은 추리다. 오류를 범하는 사람은 하나의 귀결에 그 귀결이 전혀 가질 수 없는 근거를 설정한다. 이 경우 그에게는 오성이 실제로 부족하다. 말하자면 원인과 결과와의 결합을 직접 인식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또한 더 빈번한 경우이긴 하지만,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귀결에 어떤 근거를 규정하는 경우, 물론 그 근거는 가능하지만, 귀결에서 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추리 전체에 첨가하여, 그 해당 귀결은 '항상' 그가 진술한 근거에서만 생긴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완전한 귀납을 행한 후에 비로소 가능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직 전제만 하고 있다. 따라서 그 '항상'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광범한 개념이며, 그 대신 '가끔'이라든가 또는 '대체로'라고 말하기만 하면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결론은 미결정의 것으로 되며, 그러한 결론으로서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상술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추론하는 것은 조급한 탓이 아니면 가능성에 관한 지식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 때문에 행해야 할 귀납의 필연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류는 가상과 유사하다.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충족 이유율에 따른 표상, 경험과 학문의 목적> 中에서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야말로

내가 스토아학파의 윤리학 정신을 이해한 것에 의하면, 그 근원은 다음과 같은 사상에서 나오고 있다. 이성은 인간의 커다란 특권이며, 간접적으로 계획적인 행동과 거기에서 생기는 결과에 의해 인생과 그 무거운 짐을 현저하게 가볍게 하는 것이지만, 이 이성은 또 직접적으로, 즉 단순한 인식에 의해 인생을 괴롭히고 있는 모든 종류의 고뇌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구출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이성을 부여받은 인간이 이성으로 무한한 사물이나 상태를 포괄하고 전망하면서도 현존에 의해 아주 잠시 동안, 불안한 인생의 수십 년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심한 고통을 받는다거나 격한 욕구나 도피에서 생기는 큰 불안과 고뇌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은 이성의 장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성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인간은 틀림없이 이러한 고뇌를 초월하고 불사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안티스테네스는 "이성과 목을 맬 밧줄, 이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플루타르코스, 《스토아학파의 모순에 대하여》, 제14장)고 말했다. 그 의미는 인생에는 실로 많은 괴로운 일과 번거로운 것이 있기 때문에 사상을 정돈하여 이것들을 초월하거나, 인생을 버리는 것 중의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결핍이나 고뇌는 직접 또는 사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결핍을 느끼게 하고 고통을 일으키게 하는 유일하고 필연적인 조건이다. "가난함이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고통을 가져온다."(에픽테토스, 《단편》, 제25)


희망을 낳고 키우는 것은 기대나 요구

그뿐만 아니라 희망을 낳고 키우는 것은 기대나 요구라는 것이 경험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므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는 것은 많은 사람, 또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피할 수 없는 악도 아니고, 도저히 수중에 넣을 수 없는 재물도 아니며, 인간이 피할 수 있는 것이나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많으냐 적으냐 하는 문제이다. 또 절대적으로 수중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수중에 넣었을 때나 절대적으로 피하기 힘든 것을 피할 때만 우리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수중에 넣기 힘든 것을 손에 넣고 상대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것을 피할 때도 우리의 마음은 아주 평안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성에 이미 깃들어 있는 악과 그 개성이 단념해야만 하는 재물과는 상관 없이 고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이러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희망도 만약 그것을 기르는 기대가 없다면 곧 소멸하고 더 이상 고통도 생기지 않는다.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세상과 인간을 몰랐다는 것


이 모든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행복은 오직 우리의 요구와 우리가 얻는 것 사이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 관계는 둘 다의 양을 감소하는 것으로도 다른 쪽의 양을 증대하는 것으로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고통은 본래 우리가 욕망하고 기대하는 것과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과의 불균형에서 생긴다. 그런데 이 불균형은 확실히 인식에 존재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으며, 더 높은 식견이 생기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시포스는 "본성에서 일어나는 것에 관한 경험에 따라 살아야 한다"(《스토바에오스 선집》, 제2권, 제7장, p.134)고 했는데, 그 의미는 세계 속에 있는 사물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어떤 일로 마음의 평정을 잃고 불행을 당해 실신하고 화를 내고 기가 꺽이는 일이 종종 있다. 그것은 사물이 자기의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그가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세상과 인간을 몰랐다는 것, 무생물은 우연에 의해, 생물은 반대로 목적이나 악의에 의해, 어떠한 개인의 의지도 매사에 방해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의 인생은 이러한 상태를 일반적으로 알기 위해 그의 이성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대체로 알고 있어도 하나하나에 관해 자세하게 재인식하지 않아서 이에 놀라 마음의 평정을 잃는 경우 판단력이 부족했거나 어느 한쪽이다.*

* "일반적인 개념을 개별적인 것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인간 악의 원인이므로"
   (에픽테토스의 《
논문집》
, 제3권 26장)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충족 이유율에 따른 표상, 경험과 학문의 목적> 中에서



 

겸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명성을 얻는 이유

'이데아'는 개념의 적절한 대표라고 정의할 수는 있지만, 순수하게 직관적이고 무수한 개체를 대표하면서도, 또한 철저하게 규정된 것이다. 이데아는 개체에 의해서는 결코 인식되지 않고, 모든 의욕과 개성을 넘어서 순수한 인식 주관에까지 올라간 사람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따라서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천재와 많은 경우 천재의 작품에 자극되어 자기의 순수한 인식력이 고양된, 천재적인 정서를 갖게 된 사람만이 가진다. 그러므로 이데아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약 밑에서만 전달될 수 있다. 즉, 예술 작품으로 재현된 이데아는 사람의 마음을 각자의 지적 가치의 정도에 따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즉 천재의 가장 고귀한 작품은 어리석은 대중들에게 영원히 닫혀진 책으로 머물러야만 하고, 또 폭넓은 심연으로 갈라져 접근할 수 없어서, 마치 왕들의 교제가 서민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정평 있는 걸작의 권위를 인정하여 자기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몰래 언제나 그러한 걸작에 유죄 선고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자기를 노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만 서면, 전부터 마음이 끌리지 않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을 굴욕스럽게 한 위대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대해, 또 이것들을 창조한 사람들에 대해, 오랫동안 억눌려 온 증오심을 터뜨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타인의 가치를 자유롭게 인정하고 반대하지 않으려면, 자신도 가치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미 중에서도 겸손이 꼭 필요한 것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것과 유사한 덕 가운데 겸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명성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뛰어난 사람을 찬양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덕을 그 사람에 대한 찬사에 덧붙여서, 타인의 환심을 사고 무가치함에 대한 노여움을 진정하려고 한다. 비열한 질투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겸손이란, 장점이나 공적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걸하는 수단으로 취하는 거짓 겸손 외에 무엇이겠는가? 정말로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정직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예술 작품의 개념과 이데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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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4-23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번역이 예전보다 나은지 어떤지는 알 수 없기 마련입니다.
다만, 처음 번역된 책과 꾸준히 다시 번역되는 책들이 있기에
나중에 번역하는 이들은
앞선 이들 열매를 받아먹으면서
다시금 새로운 번역을 할 수 있기도 해요.

앞선 번역이 없었으면 '새로운 번역'이란 없겠지요.
언제나 그렇지만,
비판에 앞서 존경과 고마움을 내비치면서
즐겁게 '새 번역'을 우리한테 선물하려는 마음이었으면
오래도록 사랑받는 실마리를 열었으리라 느낍니다.

번역은 '읽어서 풀어내는 이야기꾼'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옛이야기도 '구술자마다 다 다른 입맛'에 맞추어
새로운 이야기로 들려주지요.
설화와 신화와 민담에 '정답이 하나'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답이 하나이길 바란다면
외국말을 배워서 외국책으로 읽어야겠지요.

oren 2014-04-23 11:01   좋아요 1 | URL
이번 새움판 이방인을 둘러싼 논란 덕분에 저도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된 듯해요.

똑같은 작품에 대해서도 수많은 감상평이 존재하듯이, 외국어로 쓰여진 원작에 대해서도 번역자에 따라 온갖 다양한 번역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일텐데, 새움판의 역자가 너무 '정답'에만 집착하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더군요. 그렇지만 제 판단으로는, 새움판 <이방인>이 기존에 나온 번역판보다 훨씬 더 잘 읽히는 번역판임은 분명한 듯해요.

애써 번역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외국어를 잘 몰라도 우리말로 그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독자들은 늘 번역하시는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지요. 비록 번역자들마다 '번역의 질'은 다소 다르더라도, 우리말로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분명 번역하신 분들에게 '결정적 도움'을 받는 셈이고, 그래서 저는 웬만해서는 '번역의 품질'을 따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더라구요. 다양한 번역본이 존재할 경우, 부지런한 독자들이라면 따로 비교해가며 읽어도 '번역의 질'은 충분히 헤아려볼 수 있다고도 여겨집니다.

마립간 2014-04-2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쇼펜하우어를 멋있게 만드는 글이네요. 좋은 글, 많은 명언 감사합니다.^^ 저도 겸손에 관해서는 부족한 사람이라...

알라딘에서 '쇼펜하우어 삶의 지혜'가 검색되지 않는데, '행복한 내일을 위한 삶의 지혜' '인생을 보는 지혜' '나를 만나는 지혜' '꿈을 찾아가는 지혜'가 모두 같은 책인가요?

oren 2014-04-23 11:25   좋아요 1 | URL
쇼펜하우어의 <삶의 지혜>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이라는 사람이 쓴 원작을 편역한 작품입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17세기에 신학을 공부한 신부이자 철학자였는데, 쇼펜하우어가 그의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편역'을 내놓으면서 유명하게 된 작품이지요. 그러고 보면 쇼펜하우어도 자신의 주저이자 걸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내놓고 나서도 꽤나 오랫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한 대신에, 그라시안의 작품을 편역한 <삶의 지혜>를 계기로 비로소 전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된 인물이니, 번역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인 셈이네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세상을 보는 지혜>는 여러 권의 작품이 담긴 '쇼펜하우어 전집'과도 비슷한 책입니다. 그 가운데 맨 앞부분에 담긴 <삶의 지혜>가 바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작품을 편역한 책이고, 그 작품은 단행본으로 나와 있는 다른 판본도 많은데 거의 대부분 '쇼펜하우어'가 편역한 책이지 싶습니다. 그 작품은 쇼펜하우어가 원작을 단순히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의 글도 제법 포함시킨 덕분에 어느 정도는 '쇼펜하우어의 책'이 되다시피 한 작품이지요.

(마립간 님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은 제 글에 담아 놓은 <세상을 보는 지혜>를 클릭하셔서 그 책의 '목차'를 한번 살펴보시면 금방 이해되실 겁니다.^^)

마립간 2014-04-23 11:51   좋아요 1 | URL
oren님, 감사합니다. (우선 동서문화사 '세상을 보는 지혜'를 읽어야겠네요.^^)

표맥(漂麥) 2014-04-24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방인의 논쟁을 쭈욱 봐 왔습니다. 끼어들기엔 너무 높은 곳에서의 다툼인지라 뭐라하기 힘들었는데... oren님의 글을 읽으니 속이 시원합니다. 참 객관적이고 동감하는 글입니다. oren님을 알게되어 무지 기쁘군요...^^

oren 2014-04-24 11:23   좋아요 1 | URL
표맥 님 반갑습니다. '새로 나온 <이방인>'을 둘러싼 논쟁이 그렇게 뜨거울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어디 끼어들기가 겁이 날 정도로 여러 글 속에서 '날카로운 칼날'들이 번쩍거리더군요. 몇몇 언론들의 끈질기고도 집요한 공격도 놀라웠구요. ㅎㅎ

저는 이정서 님의 번역 덕분에 '카뮈의 <이방인>'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답니다. 심정적으로는 그 분을 훨씬 더 편들고(?) 싶었으나,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여러모로 완곡하게 표현하느라 글이 좀 어정쩡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표맥 님께서 이렇게 동감해 주시니 고맙고 또 반갑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19-08-21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이방인을 읽어보려고 하는데,누구의 번역을 읽을까 고민했는데 결정했습니다.글 잘 읽었습니다. : )

oren 2019-08-21 22:33   좋아요 0 | URL
네,,, 이정서의 <이방인>... 정말 치열하게 번역한 책임에는 틀림없답니다.^^
 
아킬레스의 죽음



"신화는 당신이 걸려 넘어지는 곳에 당신의 보물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 조셉 캠벨, 『신화의 이미지』中에서

 * * *



트로이아 전쟁에서 가장 용감했던 그리스군 장수, 아킬레우스 
기원전 450년경, 항아리 세부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일리아스』에서 인용)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까마득한 옛날에 벌어진 전쟁 이야기를 살펴보면 꼭 인간들만 전쟁에 열중한 게 아니었던 듯하다. 신들끼리 맞서 싸운 전쟁도 많았고, 인간과 신들이 한데 뒤섞여 전쟁을 벌인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인간들이 벌인 수많은 전쟁 가운데 신들까지 덩달아 나서서 치열하게 다툰 전쟁으로 말하자면 트로이아 전쟁만큼 유명한 전쟁도 드물지 싶다. 그 전쟁은 시작부터 결말까지 온통 '신들의 개입' 없이는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여서, 인간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싸움조차 '신들의 대리전'쯤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도대체 그리스의 그 수많은 장군과 병사들과 일천 척의 함선들은 무엇을 위해 머나먼 바다 건너 트로이아 벌판 위에서 1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가족들과 고향을 등진 채 자신들의 목숨을 적군들의 목숨과 맞바꾸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써야만 했던가. 트로이아의 이름난 장수들과 수많은 백성들과 이웃나라에서 모여든 동맹군들은 또 무엇 때문에 머나먼 바다에서 건너온 그리스 동맹군들에 그토록 오래 시달린 끝에 '완전한 파멸'에 이르고야 말았는가.

이런 궁금증을 누구라도 한번쯤 가져 본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입심좋고 재치있기로 소문난 인물인 몽테뉴가 짐짓 모른 체하고 넘어갔을 리 만무하다. 그가 트로이아 전쟁을 두고 넉살좋게 너스레를 떨며 뇌까린 대목 하나만 들어봐도 충분하다.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

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질투 등, 수다스런 마나님 둘이 서로 할퀴며 대들게 할 만큼 성나게 할 것도 못 되는 원인들,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며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런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인물이며, 동기가 된 자들의 말이면 바로 믿어 주어야 할 일인가?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파리스의 심판(우테웰 작)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새긴 황금 사과를 잔칫상에 던진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간 중에 제일 미남자인 파리스에게 심판받자며 그를 찾아간다. 파리스는 절세미인 헬레네를 품에 안겨주겠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준다.
(천병희 옮김,『에우리피테스 비극전집1』에서 인용)



신들과 인간들은 도대체 왜 트로이아 전쟁이 몽테뉴의 말마따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 무려 10년이나 계속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싸우기를 그치고 서로 화해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그렇게 '기가 막힌 전쟁'을 서로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내게는 도리어 이상하게 여겨진다.(물론 전쟁의 핵심 당자사인 두 사람, 즉 파리스와 메넬라오스가 서로 '일대일 대결'을 벌여 그 결과에 따라 '전쟁을 종식'하자며 '담판'을 벌인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메넬라오스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파리스가 비겁하게 도망치고, 신들이 다시 전쟁을 부추기면서 그런 '전쟁 중단 시도'는 결국 헛된 일이 되고 만다.)

물론 전쟁이 한번 제대로 불붙고 나면 그게 어디 중간쯤에서 서로 어중간하게 타협하고 쉽게 물러설 만큼 간단한 일이던가. 더구나 트로이아 전쟁의 경우 역사적으로 따져 보더라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3,000년 이상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그 전쟁의 흔적이나마 엿볼 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오래 전에 벌어졌던 일이었으니만큼 우리의 순진하고도 박애주의적인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생결단의 끝장을 보는 전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싯구로 시작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 호메로스,『일리아스』


그렇다. 분노라는 격정이야말로 한번 터져 나오면 기어이 끝장을 봐야 하는 성질임을 그 누가 모르랴. 그래서 트로이아 전쟁 역시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혹은 '전쟁의 원인'에 대해 '확실한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 전쟁을 쉽게 멈출 수 없었으리라는 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분노라는 격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굳이 『일리아스』를 들추고 아킬레우스를 만날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쉽게 그런 격정에 빠지게 되는가는 우리의 경험만 되돌아 본더라도 충분하며, 나는 그저 여기에 심리학의 대가와도 같은 몽테뉴가 들려주는 얘기를 조금 덧붙여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한 호메로스를 거들어 주고 싶다.


분노라는 격정, 격정이 갑자기 꾸며낸 궤변

분노는 그 자체에 쾌락을 느끼며, 아부하는 격정이다. 얼마나 여러 번 우리는 그릇된 원칙 아래 혼동되어서, 누가 와서 우리들 앞에 정당한 변호와 변명을 제시하면, 우리는 진리나 실속 없는 일에 대해서 분개하는가!

 * * *

이렇게 힘든 것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

 * * *

분노라고 하는 무기

다른 무기를 가지고는 우리가 그 무기를 움직이지만, 분노라고 하는 무기는 반대로 우리를 움직인다. 우리의 손이 무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손을 조종한다. 이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그런데 호메로스가 무사 여신께 노래해 달라고 간청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일리아스』의 핵심 주제이기 때문에 가볍게 요약하고 넘어갈 문제가 결코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킬레우스의 분노'야말로 결국 『일리아스』에 담긴 이야기의 '전부'라고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일리아스』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이 전횡을 일삼으며 그를 모욕하고 그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마저 빼앗아 가자 '전쟁 참가에 대한 동기'가 적잖이 부족했던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익히 알려진 대로 아킬레우스는 그 후 전쟁터에서 철수하게 되고, 그후 그리스 군대는 연전연패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다른 지휘관들의 여러 충언을 듣고 나서 마침내 아가멤논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결국 스스로 체면을 구기는데 그 장면이 볼 만하다. 오만했던 아가멤논은 저자세로 돌변하여 자신이 어거지로 빼앗은 브리세이스를 아킬레우스에게 돌려줄 뿐만 아니라 많은 보상금까지 덧보태서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 때 아가멤논이 늘어놓은 휘황찬란한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그대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이름난 선물을 열거해보겠소.
아직 불이 닿지 않은 세발솥이 일곱 개, 황금 열 탈란톤,
번쩍이는 가마솥 스무 개 그리고 잰 걸음으로
경주에서 상(賞)을 탔던 힘센 말 열두 필.
그리고 훌륭한 공예에 능한 여인 일곱 명을 주겠소.
이들은 그 자신이 잘 지은 레스보스를 함락하던 날
내가 고른 여인들로 아름다움에서 모든 여인들을 능가하오.
이들을 그에게 줄 것이며, 또 이들 속에는 얼마 전에 그에게서
빼앗아 온 브리세우스의 딸도 끼어 있을 것이오.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남녀간에 으레 그러하듯 그녀의 침상에 오르거나
그녀를 가까이한 적이 없음을 엄숙히 맹세하겠소.
이 모든 것을 지금 당장 그는 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앞으로
신들께서 프리아모스의 큰 도성을 함락케 해주신다면,
아카이오이족이 전리품을 분배할 적에 그도 안으로
들어가 황금과 청동을 배에 가득 싣게 하고
또 아르고스의 헬레네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트로이아 여인 스무 명을 손수 고르게 하시오.
또 우리가 축복 받은 땅인 아카이오이족의 아르고스에 돌아가면,
그는 내 사위가 될 것이며 나는 그를 넘치는 풍요 속에서
자라는 내 귀염둥이 아들 오레스테스와 동등하게 대우할 것이오.
훌륭하게 지은 나의 궁전에는 딸이 셋 있소.
크뤼소테미스와 라이디케와 이피아낫사 말이오.
그중에서 그가 마음에 드는 애를 골라 구혼 선물 없이 그냥
펠레우스의 집으로 데려가게 하시오. 게다가 일찍이 어느 누구도
출가하는 딸에게 준 적이 없는 많은 지참금을 주겠소.
그리고 나는 그에게 번화한 일곱 도시를 줄 것이오.
······
그가 분노를 거둔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행하겠소.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9권 121∼157행

 


그때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사절단 멤버는 오뒷세우스, 아이아스, 포이닉스였는데, 이 역사의 현장을 솜씨좋은 화가들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아가멤논의 사절단을 맞는 아킬레우스>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9세기 

저토록 애를 썼지만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전세가 점점 트로이아 쪽으로 기울어 마침내 해안에 올려 놓은 함선을 둘러싼 방벽이 뚫려 그리스 군대의 함선마저 불에 탈 지경에 이르렀을 때, 네스토르가 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에게 '그의 무구를 빌려 입고 잠깐만이라도 나서 달라'고 부탁하게 되고, 파트로클로스가 울며 아킬레우스에게 애원하자 그때서야 겨우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절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는 자신의 무구와 함께 부하들을 내주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걸친 파트로클로스가 갑자기 나타나자 트로이아 군은 혼비백산했고, 그걸 보고 신이 나서 적진 깊숙이 쳐들어간 파트로클로스는 결국 적장 헥토르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만다.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친구의 시신과 마주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얼마나 세게 불타올랐을지는 여기서 내가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의 통곡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바다의 여신이었던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나타날 정도였고, 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달래며 '솜씨 좋기로 이름난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하여 무구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만드는 헤파이스토스와 그의 일꾼들(로마의 돋을새김)
(천병희 옮김,『소포클레스 비극전집』에서 인용)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마침내 친구를 죽인 헥토르에게 닿았고, 그가 헥토르를 죽인 뒤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녔으면서도 그의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친구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인 헥토르를 죽이고 난 이후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경기까지 치르고 나서도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있었다.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이윽고 경기도 끝나고 백성들은 각자 자신의 날랜 함선들로
돌아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저녁 식사와
달콤한 잠을 즐길 참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전우를 생각하며 울었고, 모든 것을 정복하는 잠도
그만은 붙잡지 못했다.
그는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파트로클로스의 남자다움과 고상한 용기를 그리워했다.

아아, 전사들의 전쟁과 고통스런 파도를 헤치며 그와 더불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고, 얼마나 많이 고생했던가!

그는 이런 일들을 생각하며 때로는 모로 누웠다가
때로는 바로 누웠다가 또 때로는 엎드리기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바다의 기슭을 정처 없이 거닐었고, 새벽의 여신은
그가 모르게 바다와 해안 위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러면 그는 날랜 말들에게 전차 밑에서 멍에를 얹고는
끌고 다니기 위해 헥토르를 전차 뒤에 매달았다.
그러고는 헥토르를 끌고 죽은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세 번
돌고 나서 다시 막사로 돌아와 쉬었고, 헥토르는 먼지 속에
엎드러져 길게 누워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아폴론이
헥토르를 불쌍히 여겨 죽었어도 그의 살을 온갖 손상에서
지켜주었으니, 그는 황금 아이기스로 그의 온몸을 덮어
아킬레우스가 끌고 다녀도 그를 찢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1∼21행

 
이처럼 '아킬레우스의 분노' 때문에 헥토르의 시신이 열흘이 넘도록 수습되지 못하자 트로이아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아폴론이 마침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아폴론은 포세이돈과 함께 제우스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그 벌로 트로이아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성벽을 쌓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폴론이 여러 신들과 대책을 나눈 끝에 트로이아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애끓는 심정으로 아킬레우스에게 애원하자 그도 마침내 분노를 가라앉히며, 우선 전사한 자신의 절친 '파트로클로스'에게 다시 한번 '양해'를 부탁한다.

"파트로클로스여! 하데스의 집에서라도 내가 고귀한 헥토르를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내주었다고 듣거든 나를 원망 마시오.
그는 욕되지 않을 만큼 몸값을 바쳤으니까요.
그대에게도 나는 그중에서 적당한 몫을 나눠줄 것이오."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592∼595행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다.
 기원전 480년경, 술잔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이런 말로 친구를 달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저녁과 포도주까지 대접하고 잠자리를 내주었을 뿐 아니라 헥토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를 수 있도록 열하루 동안 서로 휴전을 약속하고 헥토르의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옷을 입혀 프리아모스에게 넘겨 주었다. 새벽이 밝을 무렵 헥토르의 시신이 마침내 트로이아 성으로 돌아오자 온 도성이 비탄하며 애도했고, 시신이 침상에 눕혀진 뒤로 만가(輓歌)를 선창하는 여인들의 애절한 노래와 울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미망인이 된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맨 먼저 호곡을 선창했고 뒤이어 자식을 잃은 그의 어머니 헤카베가 뒤를 이었고 세 번째로 전쟁의 불씨나 마찬가지 신세였던 헬레네가 다음과 같이 호곡을 선창했다.
 

"헥토르여, 모든 시아주버니들 중에서도 내가 마음속으로
가장 아끼던 분이여! 내 남편은 신과 같은 알렉산드로스이며
그이가 나를 트로이아로 데리고 왔지요.
아아, 그전에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가 그곳 고향을 떠나온 지도 어언 스무 해가 되었어요. 하지만
혹시 시아주버니든 시누이든 고운 옷을 입은 동서든 시어머니든
- 시아버지께서는 친아버지처럼 늘 상냥하게 대해주셨지요-
다른 사람이 나를 집 안에서 꾸짖기라도 하면, 그대는 언제나
그대의 상냥한 마음씨와 친절한 말로 그를 좋게 달래며
그러지 못하게 말리곤 했지요. 그래서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그대와 함께 내 자신의 불행을 슬퍼하는 거예요.
이제 드넓은 트로이아에는 내게 상냥하고 친절히 대해줄 사람은
달리 아무도 없고 모두들 나를 보고 몸서리치니 말예요."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762∼775행

 

트로이아 사람들은 아흐레 동안 수많은 장작들을 날라 왔고, '열 번째로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는 새벽이 밝았을 때' 헥토르의 시신은 높다란 장작더미 위에 올려졌다. 마침내 헥토르의 시신을 불태운 장작불마저 모두 꺼지고 그의 뼈가 수습되어 항아리에 담긴 뒤 땅 속에 묻히고, 그 위로 큰 돌들을 촘촘히 쌓아 올린 봉분마저 다 만들어지자 헥토르의 장례가 모두 끝났다. 그와 동시에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도 15,693행의 맨 끝에 닿는다.

『일리아스』는 짧게 요약하자면 결국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리아스』만 살펴봐서는 '전쟁의 원인'과 '전쟁의 결말'을 소상하게 알기가 어렵다.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른바 서사시권(敍事詩圈 epikoskyklos)이라는 더 큰 전체를 살펴야 한다.『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결국 8편으로 이루어진 '트로이아 서시시권'의 일부인 셈인데, 호메로스가 쓴 두 작품은 두 번째와 일곱 번째 이야기에 해당된다. 

전쟁의 원인이 된 '파리스의 심판'과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을 다루는『퀴프리아』(Kypria)가 첫 번째 이야기이고, 『일리아스』에 이어지는 세 번째 이야기인『아이티오피스』(Aithiopis)에서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맞아 아킬레우스가 죽는 장면을 노래하고,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들을 놓고 다투는 '무구 재판'과 '트로이아 목마'에 의한 일리오스의 함락은 네 번째인 『소(小) 일리아스』와 다섯 번째인 『일리오스의 함락』에 담긴다. 전쟁을 노래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나머지 세 편은 전쟁이 끝난 뒤의 '귀향'을 다루는데, 여섯 번째가 『귀향』(Nostoi), 일곱 번째가『오뒷세이아』, 여덟 번째가 아들 텔레고노스에게 살해되는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담은『텔레고노스 이야기』(Telegoneia)이다.

'트로이아 서사시' 가운데 유독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이 온전히 전해진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 어려운 연구과제에 도전하는 사람도 쉽사리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그 풀기 어려운 비밀 가운데 하나의 단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조금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 책에서 저자는 수많은 시인들의 여러 작품들을 예로 들어가며 '시학'을 강의하는데, 작시(作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을 무엇보다도 '플롯의 통일'에서 찾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점에 대해서는 호메로스를 따를 시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런데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 있어서도 뛰어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숙련에 의했든 천분에 의했든 바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는 『오뒷세이아』를 쓸 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뒷세우스가 파르낫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뒷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일리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8장 中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호메로스의 탁월한 점'을 거듭 강조하는데,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그가 왜 10년 동안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사건만을 다뤘으면서도, 『일리아스』가 영원불멸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트로이아 전쟁'과 '고대 그리스 비극'과의 관계도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호메로스는 앞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초와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하고, 그 외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데 「함선 목록」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퀴프리아』와 『소(小) 일리아스』의 작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 결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로부터는 각각 한 편, 또는 많아야 두 편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데 비하여 『퀴프리아』로부터는 다수의 비극이,8  그리고 『소일리아스』로부터는 8편 이상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구 재판』,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에우뤼필로스』, 『걸인 오뒷세우스』, 『라케다이몬의 여인들』, 『일리오스의 함락』, 『출범(出帆)』, 『시논』및 『트로이아의 여인들』이 그것이다.


주석
 

8 『파리스의 심판』, 『헬레네의 납치』, 『그리스 군의 집결』, 『스퀴로스의 아킬레우스』, 『텔레포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말다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등 많은 비극의 소재가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23장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 하더라도 '너무 길어서' 읽기가 쉽지 않은데 '트로이아 서사시' 8편이 지금까지 온전히 모두 남아 있었더라면 사정이 어땠을까. 아마도 그 작품들을 모두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도전이었을 게 틀림없다. 이런 사정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소위 '그리스 3대 비극작가'가 쓴 작품만 하더라도 수백 편에 달하는데 그나마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 내려오는 작품은 고작 33편에 불과하니 얼마나 다행(?)인가.(참고로,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불리는 소포클레스의 경우, 총 123편에 달하는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작품명이 알려진 것은 114편이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후기작들인 비극 7편뿐이다.)





이처럼 '트로이아 서사시'도 방대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비극' 또한 엄청난 수의 작품이 쓰여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호메로스의 두 작품과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33편의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들만 읽어봐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우리는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온갖 영웅들과 신들의 이야기를 고대 시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호메로스의 두 작품 말고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33편의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트로이아 서사시'를 다룬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참고로,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오이디푸스왕』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은 또다른 '서사시권 서사시'인 '테바이권 서사시'를 다룬 작품들이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 개요>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점을 이번에 내친 김에 한번 정리해 봤더니 33편 가운데 무려 절반에 가까운 16편의 작품이 '트로이아 서사시'를 다룬 작품이다. 이들 작품들을 대략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해 본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 아가멤논 가문(아가멤논,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오레스테스)의 비극.
둘째, 전쟁 영웅들(아이아스, 오뒷세우스,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등)의 이야기.
셋째, 트로이아 여인들(헤카베, 안드로마케, 헬레네 등)의 비극.


오뒷세우스가 폴뤼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장면을 보여주는 술잔(기원전 550년경)

법도 도시도 없이 흩어져 유목 생활을 하는 야만적인 거인족 퀴클롭스들 중에서도 폴뤼페모스는 가장 힘이 센 데다가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폴뤼페모스가 아무렇지 않게 동료들을 잡아 먹자 오뒷세우스가 포도주를 권해 취하게 만든 다음, 발갛게 단 말뚝을 박아 눈멀게 하고는 도망친다. 『오뒷세이아』에서 그것은 동굴에 갖힌 자들의 정당방위지만, 『퀴클롭스』에서는 전우들을 잡아먹은 데 대한 보복이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에서 인용)


그런데 이제껏 살펴본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고대 그리스의 문학 작품들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한 여인의 행방'이 몹시 궁금하다. 그녀는 바로 '헬레네'다. 그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고, 또 결과적으로 그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또 그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송두리째 뒤바뀌었으니, 그녀의 행방뿐만 아니라 그녀의 '언행과 처신'에 대해서까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다시금 뒤졌더니 깜짝 놀랄만큼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흐리멍덩한 기억력도 때로는 몹시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 처음으로 헤로도토스를 읽을 때 접했던 이야기를 지금까지 까먹지 않고 그대로 기억했더라면 '깜짝 놀랄만큼' 흥미로울 일도 아예 없었을 뻔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헬레네는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아예 거기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주장이 매우 구체적인 근거와 함께 상당한 신빙성을 지니고 있어서 결코 쉽게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헬레네의 행방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굳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너무나 당연히' 트로이아에 있었다고 그동안 철석같이 믿어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파리스가 그리스로 건너가 헬레네를 납치해 오기로 결심한 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계획적인 범행(?)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오 공주'와 '에우로페 공주'와 '메데이아 공주'에 대한 납치 사건이 있었고, 파리스는 단지 그런 '선행 사례'를 보고 배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즉,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살펴 본다면), 아르고스의 왕이었던 이나코스의 딸 이오는 해외무역에 종사하던 포이니케(페니키아)인들에게 납치되었는데, 그들이 아이귑토스(오늘날의 이집트)와 앗쉬리아의 화물을 싣고 여러 곳을 들르다가 그중 한 곳인 아르고스에 들러 물건을 팔다가 '이오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사기 위해 아르고스의 많은 여인들과 함께 이오 공주도 해변으로 내려왔는데, 그때 포이니케인들이 서로 부추기며 여인들을 덮쳤고, 이오는 몇몇 여인들과 함께 사로잡혀 포이니케인들의 배에 태워져 아이귑토스로 끌려갔다는 것이다.(그게 사실이라면 '이오 신화'에 바탕을 둔 '암소가 건넌 여울'이라는 뜻의 '보스포러스 해협'은 뭐가 되는가.)

어쨌든 그 뒤 몇몇 헬라스인들이 포이니케의 튀로스에 상륙해 에우로페 공주를 납치하면서 그들(헬라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사이는 서로 '장군멍군'이 되었다고 한다.



분노하는 메데이아(외젠 들라크루아 작)
헌신과 사랑의 대가로 남편 이아손에게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남편을 지식 잃은 아비로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식을 살해하는 질투와 분노의 화신이 된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에서 인용)

 

그러나 그 뒤 페르시아인들에 따르면, 헬라스인들이 두 번째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헬라스인들은 전함을 타고 콜키스의 아이아와 파시스 강으로 가 일단 그곳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서 메데이아 공주를 납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콜키스의 왕이 헬라스로 전령을 보내 납치 행위에 대해 보상금을 지불하고 딸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헬라스인들은 "당신들도 아르고스의 공주 이오를 납치하고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우리도 당신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기를, 그로부터 한 세대 뒤 프리아모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이 이야기를 듣고 헬라스에서 아내를 납치해 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먼젓번 납치 행위들도 벌 받지 않았으니 그도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되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헬레네를 납치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헬라스인들은 처음에 사절단을 보내 헬레네를 돌려주고 그녀를 납치한 대가로 보상금을 청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에 대해 트로이아인들은 메데이아를 납치해 갔던 일을 들먹이며 "당신들도 보상금은커녕 메데이아도 내주지 않았거늘 상대로부터 정녕 보상금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로?" 라고 말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中에서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공주 혹은 미녀 납치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심심찮게 일어났던 '유서깊은 내력을 지닌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펼치면 '헬레네의 행방'이 여러 권에 걸쳐 상세하게 나오는데, 앞서 잠깐 소개한 이야기에 뒤이어 '헬레네'가 다시 등장하는 무대는 아이귑토스이다. 프로테우스라는 멤피스 출신의 남자가 페로스의 왕위를 계승했는데, 시설이 잘 갖춰진 프로테우스의 성역 안에 있는 '이방의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진 신전이 바로 '헬레네에게 바져진 신전'이라는 것이 헤로도토스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헬레네가 한동안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들었으며, 특히 그 신전이 '이방의 아프로디테'의 신전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그렇고, 아프로디테의 수많은 신전들 가운데 여신에게 '이방의'라는 별칭이 붙은 곳은 그곳뿐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헬레네에 관해 묻자 사제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파르테에서 헬레네를 납치하여 고국으로 항해하던 중 아이가이온 해에서 폭풍을 만나 아이귑토스 앞바다로 표류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바람이 불자 결국 아이귑토스의, 지금은 카노보스 하구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물고기 염장(鹽藏) 업소들에 상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 바닷가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있었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어느 집 노예든 그곳으로 피신하여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표시로 몸에 신성한 낙인이 찍히게 되면 아무도 그에게 손댈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관습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의 몇몇 하인들이 이 신전에 그런 법이 있음을 알게 되자 그의 곁을 떠나 신의 탄원자들로서 신전 안에 눌러앉았다. 그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해코지하려고 그를 고발하며 헬레네에 관한 이야기와 그가 메넬라오스에게 저지른 부당 행위를 남김없이 일러바쳤다. 그들은 사제들뿐 아니라 네일로스 강의 이 하구의 간수인 토니스란 자에게도 그를 고발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3장



 

그들의 고변을 들은 토니스는 즉시 멤피스에 있는 프로테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한 이방인이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자는 테우크로스의 자손으로 헬라스에서 불경한 짓을 저질렀나이다. 그자는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의 아내를 유혹하여 그녀와 함께 막대한 제물을 싣고 도망가던 중 바람에 떠밀려 전하의 나라로 표류하였였나이다. 저희는 그자가 벌 받지 않고 배를 타고 떠나게 해야 하나이까, 아니면 그자가 갖고 가던 것을 빼앗아야 하나이까?" 이 전갈에 대해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냈다.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에게 불경한 짓을 했다는 그자가 누구이건, 그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으니 그대들은 그자를 붙잡아 내 앞에 데려오도록 하라!"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4장



 

이 말을 듣자 토니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체포하고 그의 함선들을 억류했다. 그리고 헬레네와 재물들과 탄원자들과 함께 알렉산드로스를 멤피스로 데리고 갔다. 그들이 모두 대령하자 프로테우스가 엘렉산드로스에게 그가 누구며 어디서 배를 타고 왔는지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가 선조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고향 이름을 말하고 어디서 배를 타고 오는 길인지도 말했다. 프로테우스가 그에게 어디서 헬레네를 손에 넣었는지 물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더듬대며 사실을 말하지 않자, 탄원자가 된 하인들이 그의 말을 반박하며 그가 저지른 불의한 짓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이윽고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만약 내가 바람에 떠밀려 내 나라로 표류해 온 어떤 이방인도 죽이지 않는 것을 내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저 헬라스인을 위해 그대를 응징했을 것이오. 악당이여, 그대는 그에게 환대를 받고도 그에게 가장 불경한 짓을 저질렀소. 그대는 그의 아내를 유혹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정열의 날개를 타고 그대와 함께 도망치도록 그녀를 꼬드겼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리로 오기 전에 그대는 그대를 환대한 주인의 집을 약탈했소.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방인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 여인과 재물은 그대가 가져가도록 허락하지 않고, 그대를 환대한 그 헬라스인이 와서 가져갈 때까지 맡아둘 것이오. 그대와 그대의 일행에게 이르노니, 3일 안으로 배를 타고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대들을 적으로 취급할 것이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5장



 

사제들에 따르면, 헬레네는 그렇게 해서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호메로스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가 채택한 다른 이야기만큼 그의 서사시에 적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이야기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려가다가 표류하여 포이니케의 시돈에 갔었다고 알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데서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디오메데스의 무훈'에서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시행은 다음과 같다.

    그곳에는 시돈의 여인들이 온갖 솜씨를 다 부려 만든 옷들이
    간직되어 있었으니, 이 여인들은 신과 같은 알렉산드로스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헬레네를 데리고 오던 길에
    넓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시돈에서 손수 데려왔던 것이다.

이 시행들을 보면 호메로스가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쉬리아는 아이귑토스의 이웃 나라고, 시돈 시를 건설한 포이니케인들은 쉬리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6장



 

이 시행들과 이 구절은 『퀴프리아』118 가 호메로스가 아닌 다른 시인의 작품이라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 『퀴프리아』의 시인은 순풍이 불고 바다가 잔잔하여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스파르테를 떠난 지 3일째 되던 날 일리온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표류했다고 말하고 있다. 호메로스와 『퀴프리아』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자.

118 『퀴프리아』(Kypria)는 단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이른바 '서사시권 서사시'들의 하나로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그리고 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7장



 

내가 사제들에게 일리온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헬라스인들이 말하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묻자, 그들은 메넬라오스에게 직접 물어 알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헬레네가 납치된 뒤 헬라스인들의 대군이 메넬라오스를 돕기 위해 테우크로스의 나라로 가서 그곳에 상륙한 다음 진지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일리온으로 사절단을 보냈는데, 메넬라오스도 그들과 함께 갔다고 한다. 사절단은 성내에 들어오자 헬레네와, 알렉산드로스가 훔쳐 간 재물들을 돌려주고 범죄행위에 대해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테우크로스 자손들은 맹세를 하든 않든 후일에도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하는데, 자기들은 헬레네도 문제의 재물들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들은 모두 아이귑토스에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귑토스 왕 프로테우스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기들이 보상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헬라스인들은 자기들이 우롱당하고 있다고 믿고는 포위 공격 끝에 결국 도시를 함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를 함락해도 헬레네는 보이지 않고 종전과 같은 말을 듣게 되자, 헬라스인들은 처음 들은 말을 믿게 되었고 메넬라오스를 프로테우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8장



 

아이귑토스에 도착한 메넬라오스는 네일로스 강을 거슬러 멤피스까지 올라가 사건의 전말을 사실대로 말하고는 큰 환대를 받았고, 무탈한 헬레네와 자신의 재물들을 모두 돌려받았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그렇게 환대받았음에도 아이귑토스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그는 출항하고 싶었지만 역풍이 계속 불어 발이 묶이자 몹쓸 짓을 생각해내어, 그곳 주민들의 아이 두 명을 붙잡아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그의 비행이 탄로 나 아이귑토스인들이 분개하여 추격해 오자 그는 함선들을 이끌고 곧장 리뷔에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어디로 갔는지 아이귑토스인들도 내게 말해줄 수 없었다. 사제들에 따르면, 그들은 이런 일들의 일부는 탐문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은 확실히 알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9장



 

이상이 아이귑토스의 사제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헬레네에 관해 그들이 한 말에도 동의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헬레네가 일리온에 있었다면 알렉산드로스가 동의하든 말든 헬라스인들에게 반환되었을 것이다. 프리아모스도 그의 다른 친척들도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와 동침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자기 몸과 자식들과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려 할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그러고 싶었겠지만 수많은 트로이아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우다 전사하고, (우리가 서사시를 믿어야 한다면) 프리아모스 자신의 아들들도 교전 때마나 두세 명씩 죽게 된다면, 생각건대 프리아모스는 설사 그 자신이 헬레네와 동거한다 해도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헬레네를 아카이오이족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는 왕위 계승자가 아닌 만큼 노왕 프리아모스를 대신해 전권을 휘두를 처지도 아니었다. 그의 형님으로, 그보다 더 남자다운 헥토르가 프리아모스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헥토르는 자신과 모든 트로이아인들에게 안겨준 엄청난 불행 때문에라도 말썽꾸러기 아우를 비호해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만에. 트로이아인들에게는 내줄 헬레네가 없었던 것이고, 사실을 말해도 헬라스인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된다면, 신께서 트로이아를 쑥대밭을 만드신 것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큰 악행에는 엄한 신벌(神罰)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인간들에게 명명백백히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내 생각이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그것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20장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헤로도토스의 이러한 주장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 바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헬레네』이다. 여성들의 심리묘사에 대해 유달리 탁월한 면모를 보였던 그가 '헬레네의 복잡미묘한 심정'을 노래하기에는 아무래도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 트로이아 보다는 아이귑토스에 머물고 있는 헬레네를 그리는 것이 맞춤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여기서 잠깐 '헬레네가 전 남편 메넬라오스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헬레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헬레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더 이상 지난 일을
탄식하며 슬퍼하지 않을래. 내 남편을
되찾았으니까. 그이가 트로이아에서 돌아오기를
여러 해 동안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메넬라오스

당신은 나를 갖고, 나는 당신을 갖고 있소. 긴긴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여신의 속임수를 알 수 있었소.
 

         헬레네

나는 기뻐서 눈물이 나요.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눈물이 아니라, 환희의 눈물이에요.

 

    메넬라오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누가 이런 일을 생각이나 했겠소?

         헬레네

천만뜻밖에 나는 당신을 가슴에 안고 있는걸요.

   메넬라오스

나도 마찬가지요. 나는 당신이 이데 산 기슭의 도시로,
일리온의 불행한 성탑으로 도망간 줄 알았소.
정말이지, 어떻게 당신이 내 집을 떠날 수 있었소?

         헬레네

아아, 쓰라리도다. 당신이 거슬러 올라가는 그 재앙의 근원은!
아아, 쓰라리도다, 당신이 캐묻는 그 이야기는!

    메넬라오스

말해보시오. 신께서 주신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야 하오.

 - 《헬레네》648-663행



에우리피데스는『메데이아』를 비롯하여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여인'을 유난히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만큼 그가 '트로이아 전쟁 때문에' 돌연 비극적 운명의 급류 속으로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던 여러 여인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일일이 따로 등장시켜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의 작품 가운데 '헬레네의 언행과 처신'과 관련하여 특히 인상적인 대목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은 『트로이아 여인들』을 빼놓기 어려운데, '전쟁이 끝난 뒤 전리품이 된 트로이아 여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도 드물지 싶다.

그런데 우리의 주된 관심은 여전히 '헬레네'에게 쏠려 있으므로 그녀와 관련된 인상깊은 대목 '두 장면'만 간략히 소개해 보고 싶다. 우선 첫 번째로는 헥토르의 아내인 안드로마케가 주된 화자로 나오는 장면이다. 그녀는 '전쟁에서의 패배'에 따른 후속 조치로 그리스 군의 손에 곧 죽게 될 자신의 어린 아들 때문에 비탄에 빠진 채 울부짖으면서도 끝내는 결국 그런 비극을 초래케 한 근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인 '헬레네'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못한다.


     안드로마케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아, 둘도 없이 소중한 내 아들아!
네가 이 불쌍한 어미 곁을 떠나 적의 손에 죽게 되다니.
네 아버지의 용맹이 네게는 아무런 덕이 되지 못하는구나.
아아, 내 불행한 결혼 침상과 결혼식이여,
너희들이 전에 나를 헥토르의 집으로 인도했던 것은
나로 하여금 다나오스 백성들을 위한 제물이 아니라,
풍요한 아시아의 왕이 될 아들을 낳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내 아들아, 울고 있구나. 네 불행을 느끼는 게냐?
너는 왜 나를 꼭 붙잡고 내 옷에 매달리며,
새끼 새처럼 내 죽지 밑으로 파고드느냐?

헥토르는 너를 구해주려고 그 이름난 창을 집어 들고
지하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네 아버지의 친척들도,
프뤼기아인들의 군대도 마찬가지다.
너는 비참하게도 높은 곳에서 거꾸로 떨어져
애도해주는 이도 없이 숨을 거두게 되는구나.
오오, 내 품에 안긴 이 어린 것, 어미에게 더없이 귀여운 것!
오오, 달콤한 체취! 내 이 가슴으로 포대기에 싸인
너를 기른 것도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고,
지치도록 걱정하고 애쓴 것마저 허사가 되었구나!

이제 마지막으로 네 어미를 사랑해다오! 너를 낳아준
이 어미에게 바싹 붙어 네 두 팔로 내 목을 껴안고
내 입에 네 입을 맞추어다오!
헬라스인들이여,
그대들은 야만족에게나 어울릴 잔혹한 짓을 생각해냈구려.
그대들은 왜 아무 죄 없는 이 애를 죽이는 거요?
오오, 튄다레오스의 딸이여, 그대는 결코 제우스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단언하건대 수많은 아버지한테서,
말하자면, 먼저 악령과, 다음은 질투와 살육과 죽음과 대지가
기르는 온갖 재에서 그대는 태어난 거예요.
제우스께서 그대를 낳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해요. 그대는
수많은 이민족들과 헬라스인들에게 죽음을 안겨주었어요.
그대에게 화 있어라! 그대는 더없이 아름다운 그 눈으로
프뤼기아인들의 이름난 도시를 수치스럽게 파괴해버렸어요.

자, 그대들은 이 애를 데려가고 끌고 가서 던지세요.
그게 좋겠다 생각되면, 이 애의 살점으로 잔치를 벌이세요.
 

     코로스장

가련한 트로이아여, 너는 한 여인과
그녀의 가증스런 결혼 때문에 수만 명을 잃었구나!


 - 《트로이아 여인들》740-781행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대목은 '트로이아의 함락' 뒤에 마침내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그때 그곳에는 두 사람 뿐만 아니라 트로이아의 왕비 헤카베도 함께 있었는데, 헬레네와 헤카베, 즉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헬레네의 잘못'에 대해 서로 격렬하게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헬레네의 억지스런 궤변과 그런 헬레네를 꾸짖는 헤카베의 반론을 일일이 소개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난 뒤의 '헬레네의 행방'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일부 대목들은 이 글이 다루고자 하는 핵심이므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헤카베 

메넬라오스여, 아내를 죽이려는 그대에게 찬사를 보내요.
그녀를 보는 것을 피하시오. 애욕의 포로가 되지 않게.
그녀는 남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도시들을 파괴하고,
집들을 불태워요.
그녀에게는 그런 마력이 있지요.
나는 그녀를 아오. 그대도, 그리고 당해본 사람들도.
 

         헬레네    (천막에서 끌려 나오며)

메넬라오스여, 당신의 첫 인사는 겁주기에 충분하군요.
나는 당신의 하인들의 손에 억지로 이 천막 앞으로
끌려 나왔으니 말예요. 당신이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묻고 싶어요. 헬라스인들과
당신은 내 목숨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렸지요?

   메넬라오스 

당신 착각하고 있구려. 당신을 죽이도록 전군(全軍)이 당신을
내게 넘겨주었고. 당신은 내게 부당한 짓을 했던 것이오.


         헬레네
 

그런 처사에 내가 반론을 제기해도 될까요?
내가 죽는다면, 나는 부당하게 죽는 것이니까요.
 

    메넬라오스 

나는 논증하러 온 게 아니라 그대를 죽이러 왔단 말이오.


         헤카베
 

메넬라오스여, 그녀의 말을 들어보시오. 그럴 기회도 없이
그녀가 죽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반론을 제기하게
해주시오. 그대는 그녀가 트로이아에서 저지른 악행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오. 양쪽 말을 다 들어보면,
그녀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이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오.

(이어서 전개되는 '헬레네와 헤카베 사이의 긴 논쟁'은 생략)

      코로스장 

메넬라오스 님, 그대는 조상들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아내를
벌주세요. 그리하여 그대가 유약하다는 헬라스 쪽 비난을 막고
그대의 적들에게는 그대가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메넬라오스 

그대의 생각은 내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오. 이 여인은
제 발로 내 집을 떠나 외간 남자의 잠자리로 갔던 것이오.
그리고 그녀의 퀴프리스 이야기는 허구요 핑계에 불과하오.
(헬레네에게)
당신은 가서 돌에 맞아 죽으시오! 그리하여
아카이오이족의 긴 노고를 짧은 죽음으로 보상하시오!

그리고 나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시오.
 

         헬레네    (그의 발 앞에 쓰러지며)

당신의 무릎을 잡고 빌고 있어요. 제발 신들의 잘못을
내게 돌리지 마세요! 나를 죽이지 마시고, 용서해주세요!

         헤카베 

그대는 이 여인이 죽인 전우들을 배신하지 마세요.
내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의 이름으로 간청해요.

    메넬라오스

관두시오. 노파여! 나는 이 여인의 청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이 여인을 데려가라고 하인들에게
명령하는 것이오. 그녀가 배로 운반될 수 있도록 말이오.

          헤카베    

그녀가 그대와 한 배에 오르지못하게 하세요!

    메넬라오스

그건 왜요? 그녀가 전보다 더 무거워지기라도 했나요?

         헤카베 

한번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하게 되지요.

 - 《트로이아 여인들》890∼1051행



이제껏 살펴본 대로 '헬레네의 행방'은 작가들의 의도에 따라 달라질 뿐만 뿐만 아니라 설사 같은 작가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쓴 작품들이 바뀔 때마다 또다시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다보니 작가와 작품에 따라 그녀의 '언행과 처신' 또한 '사실(史實)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점들은 아마도 신들이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모습들과도 일견 닮은 듯한데, 결국 '고대 그리스 시인들의 상상력'이 그만큼 자유롭고 풍성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이오 공주'와 '메데이아 공주' 등에 얽힌 신화조차도 일단 '역사'로 되돌려 놓고, '헬레네 납치 사건' 또한 그러한 선행 사례들을 모방한 것으로 보는 헤로도토스의 이야기까지 들으면, '트로이아 전쟁'이라는 인간들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싸움조차도 '불멸의 존재인 신들의 다툼'으로 격상시키고, 온갖 신들과 인간들이 한데 뒤섞여 벌였던 끔찍한 전쟁을 그토록 장대하고도 치밀한 서사시로 꾸며 노래한 호메로스의 재주가 새삼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 주사위놀이를 하는 아킬레우스(왼쪽)와 아이아스.
    기원전 530년경, 손잡이가 둘 달린 항아리 세부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입심좋은 몽테뉴가 호메로스를 두고,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왔다.'고까지 말한 것도 이쯤되면 지나친 과찬이 아니라 진실로 아름다운 칭찬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호메로스이다. ······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이제 긴 글을 맺을 차례다. 신화 작가로 널리 알려진 고(故) 이윤기 님은 2002년에『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제1권의 100쇄 출간을 기념하여 발행된 <신화, 그 황홀한 눈뜸의 순간들>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자면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중심으로 하는 헬레니즘(그리스 문화)과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헤브라이즘(히브리 문화) 이해를 길잡이로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서양 문화를 보는 눈길이 사뭇 달라집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신화 독자들이 늘어가는 사태가 나로서는 여간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기쁨과 자랑스러움은, 신화 읽기를 통하여 이 세계를 대하는 독자들의 눈썰미가 날로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라는 데 대한 기쁨이자 자랑스러움일 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옳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같은 사람조차 이렇게 '신화'에 얽힌 이야기를 구구절절 길게 늘어놓아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그나마 내가 이쯤에서 어디 궁색한 변명거리라도 없을까 하고 돌아보니 마침 6년 전 봄에 고대 이집트의 도시 '멤피스'에 들렀던 일이 떠오른다. 글쎄, 저 전설적인 인물인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바로 그곳을 다녀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가 이런 글을 써 볼 욕심을 부렸더라도 너무 주제넘은 일이라고 타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물론 내가 멤피스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그 유명한 부부가 그곳에 꽤나 오랫동안 머물다 갔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 도시에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스스로 위안을 삼을 거리를 하나 더 발견했다. 정작 '신화의 작가'로 너무나 유명한 이윤기 님조차도 적어도 1999년까지는(그가 우리 나이로 '쉰 셋'이 될 때까지) 그리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단다. 내게도 이윤기 님처럼 어느날 불쑥 '그리스로 함께 떠나자'는 말을 걸어오는 후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나도 만사 제쳐두고 훌쩍 '신화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리스에 가게 되면 나도 이윤기 님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신화 속 주인공'을 찾아 그리스 전역을 마구 헤집고 다니고 싶다. 그리고 여기저기 널린 신전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가 가끔씩 돌부리에 채여 좀 넘어지기도 하면서 또 거기에 무슨 보물이라도 없나 좀 살펴보기도 하고. 


"형, 그리스 가봤어요?"
"아직 못 가봤어."
"그리스에도 안 가보고 그리스 신화 책을 줄줄이 써요? 터키와 그리스를 아우르는 꾸러미 여행을 기획하고 있는데 동행하지 않겠어요? 형은 신화를 좋아하니까 어차피 그리스와는 낯을 익혀야 하지 않소?"

 -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들어가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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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트라토니케와 ‘병든 왕자‘ 안티오코스 이야기
    from Value Investing 2017-01-24 00:29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야클 2014-04-11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역시 oren님 글 답게 엄청난 분량과 내용의 페이퍼네요. 오늘은 추천만 누르고 다음에 여유있을 때 차분히 읽어보겟습니다. ^^

oren 2014-04-12 15:28   좋아요 1 | URL
책들끼리 연결된 보이지 않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다보니 글이 한정없이 길어지더군요. ㅎㅎ
공감 눌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야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