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에게만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다른 동물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대지를 내려다보는데
신은 인간에게만은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별들을 향하여
얼굴을 똑바로 들고 하늘을 보라고 명령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우주와 인간의 탄생>, 제1권  84∼86행

 

 

아마 아직 어떤 동물도 별이 있는 하늘을 주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는 여전히 의지의 직무를 위해 요구되는 데까지만 미친다. 지각과 지각된 것에 의해 청원되는 것은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다. 심지어 좀 더 영리한 동물은 객체들에서 자신과 관계있는 것만을, 즉 자신의 의지에 관련되거나 어쩌면 미래에 관련될 수도 있는 것만을 본다. 마지막 경우의 예를 들면, 고양이는 장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에 대해 동물들은 둔감하다. 아마 아직 어떤 동물도 별이 있는 하늘을 주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개는 우연히 처음으로 해를 바라보았을 때 크게 놀라서 펄쩍 뛰었다. 가장 영리하고 또 훈련을 통해 교육된 동물들에게서 주변에 대한, 관심 없는 이해의 최초의 약한 흔적이 가끔 나타난다. 개들은 이미 사물을 뚫어지게 바라보기까지 한다.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쳐다보는 개들을 우리는 자주 본다. 원숭이는 마치 주변에 관해 숙고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가끔 주위를 둘러본다. 인간에게서 비로소 동기와 행위 및 표상과 의지가 완전히 명백하게 분리된다. 그러나 이 분리가 의지에 대한 지성의 예속 상태를 즉시 지양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상인은 사물들에서 그 자신과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어떤 관계를 갖는 것(그에게 관심있는 것)만을 참으로 명백하게 이해한다. 나머지 다른 것에서 그의 지성은 엄청나게 게으르다. 따라서 그 나머지는 배후에 머무르며 완전하고 환한 명백성을 갖고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철학적 경탄과 예술적 감동은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에게 영원히 이질적인 것으로 남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상인에게는 모든 것이 저절로 이해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성을 의지와 의지의 직무로부터 완전히 분해하고 분리하는 것은 내가 내 책의 미학 부분에서 상세히 보여주었듯이 천재의 특권이다. 천재는 객관성이다. 사물이 직관 안에서(이 기초적이고 내용이 풍부한 인식에서) 나타날 때 갖는 순수한 객관성과 명백성은 실제로 매 순간 의지가 동일한 사물에서 받아들이는 몫과 반대의 관계에 서 있다. 그리고 의지 없는 인식은 모든 미학적 이해의 조건이며 실로 그 본질이다. 왜 인상적인 화가는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풍경을 그렇게 나쁘게 묘사하는가? 그가 그것을 더 아름답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는 풍경을 더 아름답게 보지 않는가? 그의 지성이 의지로부터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분리의 정도는 인간들 사이에서 큰 지적 차이를 만든다. 인식은 의지로부터 더 많이 벗어날수록 더 순수하며, 결국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자라난 땅의 뒷맛을 갖지 않은 열매가 가장 좋은 열매인 것처럼 말이다.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 <식물생리학>, 145∼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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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_ 책 읽기와 미래 예언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멈춘다는 것, 끝낸다는 것, 광을 내지 않아
녹 슬어 버린다는 것, 사용해서 빛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 앨프리드 테니슨,『율리시스』


 * * *




내가 T.S.엘리엇과 그의 대표작 『황무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아마도 하워드 가드너가 쓴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을 통해서였지 싶다. 그 책 속에는 무척이나 난해한 시로 이름난『황무지』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우선 이 불후의 걸작시가 탄생하는 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던 에즈라 파운드에 대한 얘기부터 조금 인용해 보자.


『황무지』의 재발견

1968년 뉴욕 공립도서관의 버그(Berg) 콜렉션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진 초고가 발견되었다. 대개는 타자로 친 54페이지 분량의 초고 뭉치였는데, 군데군데 육필 원고도 끼어 있었다. 별다른 표시가 없는 페이지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뚜렷한 페이지도 있었고, 아예 가위표로 삭제 표시가 그어진 페이지도 있었다. 타자로 친 부분은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었다. 구어체 영어로 쓰인 대목도 많았고, 우아하고 심원한 문체로 쓰인 대목도 많았다. 각종 유럽어에서 산스크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시행이 페이지 곳곳에 널려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초고와는 달랐다.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이라 할만한 『황무지』의 중간 초고였다. 세인트루이스 태생으로 영국에 정착한 시인이었던 T.S.(Tomas Steams) 엘리엇은 1914년 경에 이 작품(혹은 이 작품에 포함될 운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천 행에 이르는 초고를 완전히 끝낸 것은 1921년 말이었다. 그는 아내 비비언(Vivien)과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 정착했던 시인으로서 가까운 친구 에즈라 파운드에게 초고를 보여주었다. 이 '우호적인 비평가들'은 엘리엇과 함께 작품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다. 특히 에즈라 파운드는 원래 길이를 반으로 줄여버릴 정도로 가차없이 수정하라는 제안을 했다. 엘리엇 연구자인 헬렌 가드너의 말을 빌면, "파운드는 좋은 구절과 나쁜 구절이 함부로 뒤섞인 초고 뭉치를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

엘리엇은 파운드의 도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금방 알아챘다. 그는 『황무지』가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으리라 확신하고 미국에서 엘리엇의 출판권을 대리하고 있던 유능한 에이전트 존 퀸(John Quinn)에게 초고를 선물로 보냈다. 퀸은 원고를 받은 이듬해에 사망했고,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초고가 분실되었다. 엘리엇은 아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45년 후에 초고가 발견된 일은 문학상의 미스터리를 밝혔음은 물론, 뛰어난 문학 작품의 탄생 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값진 실마리를 제공했다. 즉, 우호적이면서도 솔직한 비판을 삼가지 않는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준 것이다. 게다가 이 초고는 고국을 떠난 두 젊은 미국인이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어째서 문명의 쇠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02∼403쪽


 

 

 
엘리엇은 '책을 좋아하고 문예에 밝고 기지가 풍부한 사람으로서 모든 면에서 '하버드 맨'으로 합당했던' 인물이었지만, 결국 하버드의 무미건조한 분위기와 인문학을 경시하는 대학 풍토에 고통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의식 내부에서 엘리엇은 점차 소외감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당시의 보스턴과 세인트루이스와 미국을 싫어했다. 배타적인 학생들, 보스턴의 먹물들, 그리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도시 하층계급에도 정이 떨어졌다.'

 

그는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문명에 관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엘리엇은 다른 세상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매력을 느꼈다. 훨씬 오랜 역사와 더 위대한 문학 유산을 가진 나라, 종교와 영혼의 문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아이러니의 깊은 의미를 아는 땅인 프랑스와 영국에는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철학 공부에도 마음이 끌렸지만, 구체적인 정서와 강렬한 감정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과 문명에 관한 생각을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10쪽

 

 

졸업 후에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프랑스에서 앙리 베르그송과 에밀 뒤르켐과 같은 석학들의 강의를 들었고, 젊은 프랑스인들과도 사귀었다. 그가 외국에 남아 시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고려해 봤지만, 결국 1911년에 하버드로 되돌아가 철학 박사 과정을 밟는다.

 

"1914년에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일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엘리엇은 대학원생이 되어서는 학부 시절보다는 좀더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하버드의 철학 교수들도 엘리엇을 높이 평가해서 철학자가 되라고 열심히 설득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엘리엇은 런던으로 되돌아갔고, 이후 20년 가까이 유럽에 머물게 된다. 목가적인 대학 캠퍼스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더 자의식적인가"라고 그는 공언했다. 이 무렵 그는 경계인의 삶에 만족했고, 작가로서의 삶에 운명을 걸고 이국 땅에서 성공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젊은 엘리엇이 편안한 미국인과 전도유망한 철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예술가로 입신하기로 결정하는 데는 오만한 자신감이 필요했다. 문명의 중심지 파리와 런던에 비해, 여전히 미국은 예술 분야의 업적이 빈약한 낙후된 땅이었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와 같은 아주 뛰어난 사람만이 유럽에 훌륭하게 정착했을 뿐이었다. 이런 제임스조차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엘리엣에게는 아이다호 주 출신으로 1908년에 유럽에 이주한 젊은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선례가 있었다. 활기차고 논쟁하길 좋아했던 파운드는 이런 성격에다가 다섯 권의 시집으로 영문학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1914년 9월 아직 『프루프록』의 원고를 출판하지 않았던 엘리엇을 만나보고는 금방 이 하버드 출신의 어린 동료에게 굉장한 호감을 보였다. 그는 『포이트리(Poetry)』의 편집자인 해리엇 먼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루프록』이 미국인이 쓴 시 중에서 최고라고 추켜세웠고, 작가 멩켄(H.L. Mencken)에게는 엘리엇이 "내가 본 최후의 지성인"이라고 말했다.

훗날 엘리엇은 이렇게 썼다. "1914년에 에즈라 파운드를 만난 일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내 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오래 전부터 받기를 단념했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기질은 달랐어도 출신 배경이 같았던 두 사람은 급속히 친해졌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13∼414쪽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여전히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주제라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엘리엇은 1921년말 즈음에 파운드에게 초고를 건넸고, 파운드는 이것을 가차 없이 편집했다는 점'이다. 엘리엇 연구자들은 이제 엘리엇이 수정한 흔적뿐만 아니라 파운드의 제안대로 개고한 흔적까지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가 담긴 시

오랫동안, 특히 1921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엘리엇은 온갖 다양한 상황을 묘사한 장면과 에피소드를 탈고했다. 현대 런던에서 하층계급이 영위하는 삶, 신화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장면, 겨울과 뼈, 사막 등 환기력 강한 이미지가 특징인 자연 현상 묘사, 여러 언어로 이루어진 대화, 고급 문학(셰익스피어, 단테, 보들레르)에서 따 온 구절, 평판 높은 작가(포프)의 패러디, 찬미의 송가, 뜨거운 설법, 페니키아 수부(水夫) 이야기, 산스크리트 구절 등이 그것이다. 독자는 이제 곤혹스러운 중년 남자의 언어만이 아니라, 광대한 시공간에서 끌어온 다양한 인물의 의식과 사물을 반영하는 온갖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27쪽


 




엘리엇이 '더 훌륭한 장인(匠人)'으로 불렀던 파운드가 이 작품을 두고 엘리엇에게 얼마나 많은 제안을 했고, 엘리엇이 친구의 제안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랐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결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최종작이 원래의 초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비록 일부 주석가들이 '차라리 더 많은 파운드의 제안을 무시했어야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지만, 하워드 가드너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굳이 양자택일을 한다면, 파운드의 제안을 무조건 따르는 편이 그것을 모두 무시하는 것보다 더 나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엘리엇은 행운아였다.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시를 쓸 무렵 엘리엇은 절망적인 처지에 놓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불행했고, 문학계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대단한 성공이 가능한 작품을 난삽하게나마 탈고한 상태였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줄지가 의문인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엘리엇은 행운아였다. 가까운 두 사람이 작업을 도와주었고 그들의 비판을 건설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엘리엇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29쪽

 


『황무지』라는 작품에 대한 반응과 평가까지 여기에 소개하는 건 지나친 과욕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만년의 엘리엇이 "삶에 대한 개인적이고 거의 무의미한 불평에 불과한 ······. 리드미컬한 볼멘소리"라고 칭하면서 자신의 걸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하였지만, 문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성과를 이룬 작품이자 한 세대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으로서, 그토록 빠른 시일 내에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시는 '역사상 거의 없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작품의 의의

엘리엇은 한때는 통합된 전체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점차 조각나고 해체되어 무력화된 유럽 문명의 묵시록적 종말, 유럽 문명에 만연되어 있는 병적인 불안감을 시라는 언어 예술에 담아냈다. 그는 몇 년 전에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t Spengler, 1880∼1936)의『서구의 몰락』에서 직설적으로 표명된 메시지를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황무지』의 어느 대목에서도 서양 문명이나 인간의 분열 혹은 가치의 몰락이나 부재를 명백하게 언급하는 구절은 없다. 이러한 감수성은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었다. ······

엘리엇의 업적은 다른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황무지』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어서, 소수의 교양 있는 독자나 이해할 수 있는 시행과 아무리 장황한 주석을 달아도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암시로 가득한 작품이다. 하지만 『황무지』의 난해성과 심오함은 독자(특히 젊은 독자들)를 속이거나 정떨어지게 하는 대신, 시의 효과를 높이고 독자가 겉으로만 심오한 작품을 읽는 데서 오는 속물적인 만족감을 뛰어넘도록 유도한다. 엘리엇은 개별 시행의 의미가 애매하고 상호 연결이 어색한 5부로 시를 나누어 구성했음에도 시의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면(다른 현대의 문학작품처럼 재독, 삼독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작품이다). 하나하나의 부분을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엘리엇의 비감한 정서를 더욱 뚜렷하고 힘차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 혹은 『봄의 제전』과 『결혼』에 유사한 점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31∼432쪽


 




대략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통해 그토록 난해하다는 엘리엇의 걸작시 『황무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감이라도 잡을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 어림없는 얘기이다. 이 걸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정말 적잖은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많이 아쉽지만 하워드 가드너가 '엘리엇의 특별한 업적'이라고 설명한 부분만이라도 조금 더 인용해 보자.

 

엘리엇은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황무지』는 당대의 다른 어느 시작품보다 동시대 교양층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기분과 주제를 풍부하게 담아냈다. 500행에서 다소 모자라는 시행에서 엘리엇은 놀라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시행 하나하나 연(聯) 하나하나가 의미로 가득했고, 개별적인 주제를 다룬 독립적인 시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굉장한 특성으로 인해, 독자는 하나의 거대한 시세계(사실은 다른 세상)를 음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관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부분마다 장면마다 구어체 언어와 생생한 희화(戱畵), 한결같은 자연 묘사, 신화적인 이미지, 재기 넘치는 대화, 애상적인 도시 장면, 이야기체의 소품(小品), 음가(音價)를 이용한 언어 유희, 붉은 빛이 강렬한 스냅사진과 같은 이미지 등 수많은 특징이 두드러졌다. 현대의 또 다른 걸작, 가령『율리시즈』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처음에는 한 쪽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나중에는 다른 방법으로 변주된 다양한 주제들 역시 작품의 효과를 높이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 『황무지』는 극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정신, 즉 현대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온갖 생각을 농밀하고 강렬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비록 정연한 서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독자는 마치 고대의 모험담을 읽을 때처럼 하나의 완결된 체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34∼435쪽



하워드 가드너의 설명을 통해『황무지』라는 걸작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그의 친구 에즈라 파운드의 역할이 얼마나 컸던가를 파악하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산만하게 늘어놓은 느낌이 없지 않다. 이쯤에서 그 유명한 시의 '잘 알려진' 앞부분만이라도 직접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다음은 위키백과에서 그대로 옮겨온 내용이다.


 

황무지(The Waste Land)는 모더니즘 시인인 T. S. 엘리어트1922년 출간한 434 줄의 시이다. 이것은 “20세기 시 중 가장 중요한 시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시는 난해함이 지배하는 시로, 문화화 문학에서 넓고, 부조화스럽게 나타나는 풍자와 예언의 전환, 그 분열과 화자의 알려지지 않은 변화들, 위치와 시간, 애수적이지만, 으르는 호출 등이 나타나는 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현대 문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그 유명한 싯구들 중에 첫 행의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손안에 든 먼지만큼이나 공포를 보여주마”(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 그리고 마지막 줄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주문인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는 유명한 구절들이다.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여름은 우릴 놀라게 했어요, 슈타른버그 호 너머로 와서
소나기를 뿌리고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
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대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사람의 아들아,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Frisch weht der Wind
고향으로 불어요 Der Heimat zu
아일랜드의 님아 Mein Irisch Kind,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Wo weilest du?>

 

 

주석
 

  1. Bennett, Alan (12 July 2009). "Margate's shrine to Eliot's muse". The Guardian. Retrieved 1 September 2009.
  2. 예지력과 아름다움으로 아폴론 신을 매혹시킨 무녀
  3. 독일 바이에른 주 남부의 독일의 네번째로 큰 호수
  4. 독일 뮌헨 중심에 있는 공원
  5. 에스겔(성경, Ezekiel) 2장, 3절, And he said unto me, Son of man, I send thee to the children of Israel, to a rebellious nation that hath rebelled against me: they and their fathers have transgressed against me, even unto this very day.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도 여기서 제목을 가져왔다
  6. 전도서(ecclesiastes) 12:5[1]
  7. 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 쿠마에 무녀는 한 줌의 모래만큼 생명을 요구했지만, 그에 따른 젊음은 요청하지 않아서 몸이 쪼글어들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8. 트리스탄과 이졸데(V. Tristan und Isolde, i, verses 5-8.)

 - 출처 : 위키백과


시에 얼마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엘리엇의『황무지』를 여기까지는 읽었지 싶다. 나 또한 이 유명한 시를 까마득한 옛날 그 언젠가 한번쯤 읽은 듯하지만, 그때 내가 이 어려운 시를 도대체 어디까지 읽었는지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아마도 이 시가 너무나 어려워서 아주 조금밖에 읽지 못했음이 틀림없지 싶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 봤던-읽은 게 아니라 그저 눈으로만 살펴봤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 시에서 잊혀지지 않는 대목 하나는 바로 페트로니우스의 작품 《사티리콘》(Satyricon)에서 인용했다는 라틴어그리스어 묘비명이다. 특히 '쿠마에 무녀'의 존재는 정말 오랫동안 나의 뇌리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던 듯하다.





도대체 그 무녀는 왜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으며, 그녀는 왜 그토록 '죽고 싶어' 안달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쿠마에는 도대체 어디에 '실재'하는 도시이며, 그 무녀는 도대체 어떤 깊은 사연을 지니고 있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나서는 아주 오랫동안 '그녀'를 새까맣게 잊고 지내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화'를 조금씩 찾아 읽게 되면서 그 무녀의 정체가 나에게도 결코 낯선 인물이 아닌 듯하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옴을 느꼈다. 언젠가 몹시 어렵게 읽었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고, 이윤기의『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최근에야 겨우 다 읽은 오비디우스의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마침내 그녀가 그토록 멀게만 떨어져 있지는 않은 듯한 착각마저 느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 또한 바로 이 '쿠마에 무녀'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하다.

 




이번 기회에 쿠마에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로 새삼 확인해 보니 그곳은 놀랍게도 나폴리 근처에 있었다. 아, 그곳이라면 내가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디뎠던 2001년에 어쩌면 슬쩍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곳이 아닌가. 우리 일행이 파리와 런던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 도착한 지 사흘쯤 되는 날이었지 싶다. 그 전날만 하더라도 난생 처음 찾아간 로마의 유적지들을 하나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온종일 바쁜 걸음을 재촉했던 터여서 녹초가 되다시피 했던 우리 일행은 정작 그 다음날 훨씬 더 '기나긴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바로 그날, 우리 일행들은 아마도 거의 새벽 4시쯤에 모닝콜을 들었던 듯하다. 미리 호텔에서 준비해 놓은 '빵 도시락' 비슷한 걸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난 뒤에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 타고 로마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화산재로 뒤덮여 하루 아침에 '황무지'보다 더한 폐허로 뒤바뀐 폼페이를 빠트리지 않고 둘러본 우리는 쏘렌토 항에 도착하자말자 곧바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큰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건너 갔다. 거기에서도 우리에게 한가한 틈은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린 또다시 작은 배에 옮겨 타고 '푸른 동굴'로 가야 했으니까. 그래도 배를 타고 지중해의 잔잔한 바다를 건너 다니고, '푸른 동굴' 속에서 이탈리아 남자 뱃사공이 불러주는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생생한 이탈리아어'로 듣는 순간들은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카프리 섬을 떠나 우리가 나폴리 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 때 나폴리에서 우리가 어딜 더 구경했는지는 별다른 기억조차 없다. 아마도 서둘러서 예약된 식당으로 찾아가 저녁을 먹고는 다시 로마로 되돌아오는 먼 길에 오르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느라 정신이 없었던 듯하다. 그 뒤에 우리들에게 무섭게 찾아온 손님은 다름아닌 '깊은 잠'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모두 무거운 잠에 빠져들던 바로 그때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쥐도새도 모르는 사이에 쿠마에를 빠르게 지나쳤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야 떠오른다. 나폴리 근처에 그 유명한 '쿠마에'라는 도시가 있었고, 그곳에서 시뷜라라는 무녀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살고 있었을 줄은 정말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쿠마에 무녀는 도대체 얼마나 예뻤으면 아폴론이 그토록 큰 소원까지 들어주며 사랑을 애원했던 걸까. 그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으면서 "죽고 싶어"라고 애원하던 괴퍅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번에야 비로소 '실물'로 찾아본 그녀가 너무 예쁜 모습이어서 깜짝 놀랐다. 이 여자가 바로 그 죽고 싶어 애원하던 쿠마에 무녀가 과연 맞는지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쿠마에의 무녀], 도메니키노(Domenichino 1581∼1641), 1610년경, 피나코테카 카피톨리나, 로마


그런데 그녀의 이미지를 조금 더 찾아보니 쿠마에 무녀가 저토록 예쁜 모습으로만 그려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음의 그림을 보라. 그녀는 얼마나 여자답지 못한 모습인가.

 

[쿠마에의 무녀], 미켈란젤로(1475∼1564), 1510년, 프레스코,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로마 신화에 따르면 이 무녀는 자신을 사랑한 아폴론 신으로부터 구애를 받으면서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선물로 얻었지만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깜빡하는 바람에 끝없이 늙어가면서도 죽지 못하는 슬픈 운명을 겪는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린 쿠마에 무녀는 결국 늙었으나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리고 남성처럼 우람한 근육과 힘을 갖춘 모습으로 뒤바뀌었고, 그녀의 기이하고도 불행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한 그림이다.

이왕 미켈란젤로의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갔으면 싶다. 그 천재화가가 교황의 명을 받들어 매우 고된 작업 끝에 1512년에 완성한 시스티나 천장 그림은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거대한 천장에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그림은 모두 9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고, 그 9개의 그림 주변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7명과 이방의 예언자인 무녀 5명도 함께 그려졌다. 그 가운데 이방의 무녀는 《페르시아 무녀》, 《에트리아 무녀》, 《델포이 무녀》, 《쿠마에 무녀》, 《리비아 무녀》라고 한다. 천장의 다섯 번째 그림에 아래와 같이 '쿠마에 무녀'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이번에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서 유독 시스티나 천장 그림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놓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안타깝게도『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펼치면 '쿠마이의 시뷜레'가 마치 여럿 있었던 것처럼 다소 혼란스럽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침 그 대목은 T.S. 엘리엇의 『황무지』와 함께 '쿠마에 무녀' 이야기를 매우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이어서 나로서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저자의 '혼동스러운 설명' 때문에 뭔가가 좀 아리송했다. 다음의 인용문을 우선 읽어보자.


시뷜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여럿이지만 오비디우스나 베르길리우스가 말하는 '쿠마이의 시뷜레(Cumaean Sibyl)'가 가장 유명하다. 오비디우스는 시뷜레가 천 년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뷜레의 수가 많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일한 성격을 지닌 동일 인물이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태어났다는 뜻인 듯하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다섯 명의 시뷜레를 그린 바 있다.

 - 이윤기,『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3』제4장〈소원 성취, 그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

 
이런 설명과 함께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렸던 그림 두 장을 함께 실어 놓았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림 하나는 '쿠마에 무녀'이고 또 다른 그림은 '델포이 무녀' 그림이다. 그런데 이윤기 작가는 그 그림 둘을 한 테두리에 묶어서 '미켈란젤로의 『쿠마이의 시뷜레』'라는 제목을 붙였고, 제목 바로 아래에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다섯 시뷜레의 일부'라는 부연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그 설명과 그림을 함께 읽은 독자들 가운데는 틀림없이 나와 같은 궁금증이나 오해를 품지 않았을까. 다음과 같이 말이다.

"도대체 '쿠마이의 시뷜레'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으면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무려 '다섯 가지 모습'으로 따로 따로 그려 넣었을까?" 혹은 "'쿠마이의 시뷜레'는 정말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 무녀로구나..."

이쯤에서 내 이야기의 무대를 '성당'에서 '황무지'로 다시 되돌리고 싶다. 어쨌든 엘리엇의 작품『황무지』에 인용된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Satyricon)에서는 무녀가 나이를 너무나 많이 먹은 탓에 몸이 쪼그라들어 항아리에 들어갈 정도로 변해 있다. 비록 목숨은 살아 있지만 몸은 이미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니 그녀의 간절한 염원은 진짜로 죽는 것일 수밖에. 또한 고대의 신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그러하듯 모든 존재들은 꼭 한 번은 죽어야만 새로운 삶으로의 재탄생을 기약할 수 있었으니, 시뷜라 또한 그런 희망을 위해서라도 간절히 죽음을 원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엘리엇이『황무지』라는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 또한 쿠마에의 무녀처럼 '삶 속의 죽음(Death in Life)' 상태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황무지』의 제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죽은 자들의 행렬을 꼭 빼닮은, 매일 아무런 생각없이 아침 9시에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출근하느라 바삐 런던브릿지를 건너는 사람들의 행렬을 그렸다. 제2부 '체스 한 판'과 제3부 '불의 설교'에서는 공허한 일상과 육체적 욕구만을 채우기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권태롭고 공허한 욕정만 오갈 뿐 생명력이 넘치는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래서 불모(不毛)의 '황무지'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년 찾아오는 봄비와 꽃향기 가득한 사월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황무지처럼 '잔인'하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는 '아폴론의 사랑' 때문에 유명해진 예언녀를 둘이나 기억하고 있다. 쿠마에의 무녀 시뷜라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신화의 무대에 등장하는 트로이야의 불행한 공주 카산드라를 누가 모르겠는가. 그녀는 아폴론에게 사랑받아 예언하는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끝내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예언하는 능력 가운데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녀는 자신의 조국 트로이야의 멸망을 정확히 예언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트로이야가 완전히 불타고 없어진 뒤 그녀는 그리스군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되어 그리스 군대의 배를 타고 뮈케나이로 끌려갔다가 정부(情夫)와 짜고 왕의 귀환과 목숨을 동시에 기다려왔던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손에 의해 왕과 함께 피살되고 만다.(이때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 아이스퀼로스의『아가멤논』이며, 카산드라는 이 작품뿐 아니라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인 『트로이아 여인들』에도 등장한다.)

아폴론 신으로부터 구애를 받았으나 그 사랑을 거부했던 트로이야 공주의 운명은 비참했다. 예언녀로서의 명성 뿐만 아니라 아폴론의 사랑까지도 동시에 얻었고, 신의 은총으로 '먼지만큼 수많은 생일'을 누릴 수 있게 된 시뷜라 역시 아폴론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탓에 가혹한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아폴론가 비록 그녀의 바람대로 기나긴 인생을 살고 싶은 소원까지는 들어주었으나, '청춘'마저 그만큼 오래 함께 누리도록 만들어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신화의 무대에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는 언제였을까. 내가 알기로는 트로이야가 멸망한 이후 아이네아스가 그곳을 떠나 천신만고끝에 드디어 이탈리아 땅에 도착하던 무렵이었다. 말하자면 그녀의 데뷔 무대는 로마 최고의 시인으로 볼리는 베르길리우스가 쓴 대서사시『아이네이스』가 아닐까 하는 게 나의 판단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가 카산드라 공주보다 조금 더 늦게 신화에 등장하지만 그녀의 나이가 카산드라 공주보다 어렸던 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신화의 무대에 데뷔했을 때, 즉 쿠마에의 동굴에서 아이네아스를 만났을 때는 그녀가 태어난지도 이미 7세기가 흐른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로마 건국 신화의 주인공 '아이네아스'는 나폴리 근처 쿠마에의 깊은 동굴에 살고 있는 예언녀 시뷜라에게 찾아간 뒤 그녀의 도움으로 (신화 속의 영웅들만이 다녀올 수 있는) 저승까지 내려가 아버지 앙키세스를 만난다. 거기서 아이네아스는 자기 자신과 후손들의 미래를 자세히 듣게 되는데, 이 부분은『아이네이스』의 제6권 '저승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다'에 담겨 있다. 무려 901행에 달하는 제6권의 내용 가운데 내가 여기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은 다음의 두 대목이다.

우선, 아이네아스가 예언녀 시뷜라에게 간청하는 대목부터 살펴 보자. 영웅 아이네아스가 늙고 추하게 변한 무녀에게 얼마나 간절하게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지 그의 심정을 절절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미래사를 미리 알고 있는 가장 신성한 예언녀여!
그대는 테우케르 백성들이 떠돌아다니며 폭풍에 시달리던
트로이야의 신들과 함께 라티움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하소서.
그러면 나는 포이부스와 트리비아를 위해 대리석으로 된 신전을
세울 것이며, 포이부스의 이름으로 축제일들을 정할 것입니다.
그대도 우리 왕국에 큰 신전을 갖게 될 것인즉, 나는 그곳에
그대의 신탁들과 그대가 우리 백성들에게 말한 수수께끼 같은
예언들을 안치하고 그것들을 위해 사제들을 선임할 것입니다.
자비로운 이여, 그대의 노래들을 한갓 나뭇잎에 맡기지 마옵소서.
그것들이 낚아채는 바람의 노리개가 되어 뿔뿔이 흩어지지 않도록
부디 직접 노래해 주십시오."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제6권 65∼76행


두 번째로 인용하고 싶은 대목은 아이네아스의 아버지 앙키세스가 저승에까지 찾아온 아들에게 '로마의 미래'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대목이다. '위대한 로마'의 탄생과 그 영광스런 로마를 세울 영웅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쿠마이의 무녀'를 통해 아이네아스가 비로소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운명적이고도 세계사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곧 이어 앙키세스는 아들과 시뷜라를 데리고
혼백들의 요란한 무리 한가운데로 가서 둔덕 위에 자리잡고 섰다.
그곳에서 그는 긴 행렬을 지어 다가오는 자들을 앞에서
살펴보며 지나가는 자의 얼굴을 분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너에게 다르다누스의 자손들이 어떤 영광을 누리는지,
이탈리아의 부족에게서 네가 어떤 후손들을 기대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겠다. 앞으로 우리의 이름을 계승하게 될
찬란한 혼백들 말이다. 또 너에게 네 자신의 운명도 가르쳐주겠다.
······
로마인이여, 너는 명심하라.
귄위로써 여러 민족들을 다스리고, 평화를 관습화하고,
패배한 자들에게는 관용하고, 교만한 자들은 전쟁으로 분쇄하도록 하라.
"
······
"일리움의 혈통에서 태어난 어떤 소년도 라티움의 선조들을
그토록 희망에 들뜨게 하지는 못할 것이며, 로물루스의 나라는
다시는 그토록 자기 자식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할 것이다.
아아, 그의 경건이여, 아아, 그의 고풍스런 성실성과
전쟁에서 패배를 모르는 오른손이여! 그가 보병으로 적에게 다가가든,
또는 거품 같은 땀을 흘리는 말들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든,
어느 누구도 벌받지 않고는 그와 맞서지 못했을 것이다.

아아, 가련한 소년이여, 가혹한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면,
너는 진정한 마르켈루스가 될 텐데. 너희들은 내가 빛나는 백합들을
두 손으로 듬뿍 뿌려, 설사 그것이 소용없는 짓이라 하더라도,
내 자손의 혼백 위에 이런 선물이나마 수북이 쌓아올리는 것을
허락해다오." 이렇게 그들은 대기의 넓은 들판들을 사방으로
두루 돌아다니며 모든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앙키세스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그곳의 광경을 일일이 보게 하고
다가올 명성에 대한 욕망으로 그의 마음에 불을 지른 다음,
머지않아 그가 치르게 될 전쟁들과 라우렌툼의 백성들과
라티누스의 도시에 관해,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가 모든 위기를
피하거나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일러주었다.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제6권 752∼892행(부분 발췌)

 

위에서 인용한 두 대목만 보더라도 로마 건국에 있어서 쿠마에의 무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떠맡았던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또 그녀가 왜 그토록 여러 예술작품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던가도 아울러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던 오비디우스 또한 자신의 걸작『변신 이야기』를 통해 시뷜라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 속에 그려진 '사랑 받았던 여자 시뷜라'를 인용할 차례가 되었다.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스』에서 시뷜라와 아이네아스에게 부여된 '무거운 사명'을 장중하고도 생동감 넘치도록 매우 길게 펼쳐놓은 데 반해, 그와 똑같은 이야기를 천재 시인 오비디우스는 어쩌면 이토록 간결하면서도 '핵심은 조금도 빠트리지 않고' 노래할 수 있었는지 시인의 솜씨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사랑 받았던 여자 시뷜라

그는 이곳들을 뒤로하고 오른쪽으로는 파르테노페의
성벽 옆을, 왼쪽으로는 나팔수인, 아이올루스의 아들의 무덤과
갈대가 무성한 늪지대 옆을 지나 쿠마이의 해안에
도착한 다음 장수(長壽)하는 시뷜라의 동굴로 들어가서는
아베르나를 지나 아버지의 망령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시뷜라는 한참 동안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마침내 신에 씌어 눈을 들더니 말했다.
"그대는 큰 것을 요구하시는구려, 그 손은 칼에 의해,
그 경건함은 불에 의해 검증된 위대한 행적의 영웅이여.
하지만 두려워 마시오, 트로이야인이여! 그대는 소원을 이루어
내 인도 아래 엘뤼시움의 거처들과, 우주의 마지막 왕국과,
아버지의 소중한 환영을 보게 될 것이오.
미덕이 갈 수 없는 길은 없어요." 그러더니 그녀는
아베르나의 유노의 숲에서 황금으로 빛나는 가지를
가리키며 그것을 줄기에서 꺾으로고 명령했다.
아이네아스는 시키는 대로 하여 무시무시한 오르쿠스의
부(富)와, 자신의 선조들과, 고매한 앙키세스의 연로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또 그곳의 법과, 새로운 전쟁에서
자신이 어떤 위험을 겪어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곳으로부터 지친 발걸음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그는
쿠마이의 안내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노고를 덜었다.
그는 어두침침한 어스름을 지나 무시무시한 길을 걸으며 말했다.
"그대가 여신으로서 내 곁에 있든 아니면 신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소녀이든 간에, 나는 그대를 언제나 신성으로 여길 것이며,
내 모든 것이 그대 덕분이라고 고백할 것이오. 그대의 뜻에 따라
나는 죽음의 세계에 다가가 그것을 보고 나서 그 세계에서 무사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나는 지상의 대기로 돌아가게 되면
그대를 위해 신전을 세우고, 그대의 명예를 위해 분향할 것이오."
그러자 예언녀가 그를 돌아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여신이 아니며, 인간의 머리는 그 누구도 분향의 명예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대가 몰라서 실수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하는 말이지만, 나는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어요. 만약 내 처녀성이 포이부스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말예요.
그분은 그것을 바라며 선물로 미리 나를 매수하고 싶어 말했어요.
"쿠마이의 소녀여, 그대가 원하는 것을 고르도록 하라!
그러면 그대는 원하는 것을 갖게 되리라." 나는 한줌의
먼지 무더기를 가리키며 어리석게도 그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갖고 싶다고 했어요. 하나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깜빡했어요. 하지만 그분은
그 세월뿐만 아니라 영원한 청춘도 주시려고 했어요. 내가 그분의
사랑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말예요. 하나 나는 포이부스의 선물을
무시하고 여태 미혼으로 남아 있어요. 어느새 행복한 시절은 내게
등을 돌리고 병약한 노령이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을 나는 오랫동안 참고 견뎌야 해요. 나는 벌써 일곱 세기를
보냈지만, 내 나이가 먼지 알갱이 수와 같아지려면 아직도
삼백 번의 수확기와, 삼백 번의 포도 수확을 더 보아야 해요.
긴긴 세월이 내 이 몸을 왜소하게 만들고 노령에 시든
내 사지가 최소의 무게로 오그라들 때가 오겠지요.

그러면 나는 사랑 받았던 여자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신의 마음에 들었던 여자로도 보이지 않겠지요. 포이부스 자신도
아마 나를 몰라보거나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하시겠지요.
나는 그만큼 변해 눈에 보이지도 않게 되겠지만, 운명이 내게 목소리를
남겨놓아 그 목소리로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게 될 거예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제14권 101∼153행

 





[쿠마에의 시뷜레].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1450년경, 빌라 카르두치의 벽면, 산타폴로니아 수도원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던 시뷜라가 결국 신의 사랑을 외면한 댓가로 얻은 건 '죽음같은 삶의 오랜 지속'  뿐이었다. 결국 그녀에게는 죽음만이 유일하고도 간절한 소망일 수밖에 없겠다는 걸 이제야 나도 뚜렷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왜 하필이면 쿠마에의 무녀를 맨 앞에 등장시켰는지 그 이유도 조금쯤은 알 것만 같다. 우리는 굳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무릇 모든 생명들은 필멸의 존재이며, 오로지 죽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쿠마에의 무녀가 그토록 간절히 죽음을 원하는 이유 또한 '소생과 구원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엘리엇이『황무지』에 담고자 했던 그저 음울하고, 아무런 가망도 없이, 노쇠하고 상실감에 사로잡힌, 그런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희망'이 완전히 내던져진 게 아니라는 느낌 또한 어쩌면 시뷜라의 '죽고 싶어'라는 말 속에서 찾아낼 수도 있을 듯하다.

다시 엘리엇의 작품『황무지』를 둘러싼 얘기로 되돌아 오자. 엘리엇으로부터 '보다 나은 예술가'라는 칭송을 받은 에즈라 파운드는 한때 강력한 노벨상 후보였으나 끝내 그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도움으로 그보다 훨씬 더 유명한 작가가 된 사람은 엘리엇만이 아니고 제임스 조이스와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도 포함된다고 하는데,『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을 통해 하워드 가드너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 한 가지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마치 희귀종 생물처럼 자신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동료들을 금방 찾아낸다는 점'이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이렇다. '젊은 피카소는 프랑스어를 거의 하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일찍부터 막스 자코브와 거트루드 스타인, 기욤 아폴리네르, 앙리 마티스, 조르쥬 브라크와 만나 어울렸다.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에 전념한 지 한두 해 만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바슬라프 니진스키와는 늦은 저녁을 함께 먹고, 클로드 드뷔시와 모르스 라벨과는 작곡 기법을 서로 얘기하면서 칭찬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엘리엇 또한 젊은 시절부터 이들 조숙한 천재들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비록 만년에는 조금 쌀쌀맞은 사람이 됐지만... 가드너의 말이다.
 

엘리엇은 언제나 최고 수준의 예술가를 존경했다.

엘리엇은 언제나 최고 수준의 예술가를 존경했다. 당대의 걸출한 대가로 인정한 제임스 조이스에게는 경외감마저 느꼈다. 그는 『황무지』와 거의 동시에 출간된 『율리시스』를 한 세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이라 여겼는데, 조이스는 이 책에서 엘리엇이 겨우 433행의 시로 나타내고자 했던 현재와 과거의 초상을 25만 단어로 (어조만은 좀더 의기양양하게) 묘사했다. 엘리엇은 『피네건의 경야』출간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는 조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는데, 어쩌면 그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말일 수도 있다. "내가 존경하는 조이스는 외부의 자극에 초연하고 죽을 때까지 1급의 작품을 창조할 사람이다."

 -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제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448쪽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작품『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오뒷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이다.(로마 신화에서 오뒷세우스는 '울릭세스'로 불린다.) 물론 조이스의 소설『율리시스』의 세 주요 부분-「텔레마키아드」,「오뒷세우스의 방랑」및「귀환」-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의 그것들과 병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제임스 조이스의 그 소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같은 호메로스의『오뒷세이아』를 바탕으로 쓴 영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율리시스』라는 시가 훨씬 더 쉽게 다가오고 또 내 마음에도 든다. 왜냐하면 그 시인은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오랜 방랑 끝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영웅 오뒷세우스를 그저 안락한 삶에 머무르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또다시 새로운 탐험에 나서는 것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인데, 이 시인의 노래는 얼마나 쉽고도 또 호소력이 강한가.(깜빡 잊을 뻔했다. '쿠마에의 무녀'에게는 이 시인의 노래가 과연 어떻게 들릴까. 아마도 나와는 딱 '정반대의 느낌'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그녀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대로 틀림없이 '이미' 죽었을테니 말이다.)


나는 여행을 그만두고 쉴 수가 없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들어 마시겠다. 나는 언제나
기쁨도 고통도 최대한 누리고 겪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또 혼자서도.
언제나 굶주린 마음으로 방랑하며
많이 보고 많이 배웠다.
하지만 모든 경험이란 내가 다가갈 때마다
그 가장자리가 한없이 희미해져가는 미지의 세계가
어렴풋이 빛나는 하나의 아치문 같은 것이다.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멈춘다는 것, 끝낸다는 것, 광을 내지 않아
녹 슬어 버린다는 것, 사용해서 빛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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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엘리엇의 걸작『황무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내 글을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다가 문득 몽테뉴가 했던 다음의 말이 떠올랐다. 맞다. 바로 그거였구나.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글을 써내려 왔구나 싶었다.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은 그렇게도 크다! 

나는 나 자신을 이 세기에는 쓸모 없는 인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세기로 뛰어들며, 그들에게 완전히 반해서 옛날의 그 자유롭고 정의롭고 융성하던 로마에(나는 로마의 시초나 노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흥미를 느끼며 열중한다. 그 때문에 나는 그들 거리와 옛 집터와 세상의 양극까지 이르는 그들의 깊은 폐허를 그렇게 자주 찾아 보아도 흥미를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그것을 기억해 두는 일, 권장되는 인물들이 자주 찾아다니고 살고 하던 곳인 줄을 알아 방문할 때에, 그들의 발자취 이야기를 듣거나 작품을 읽는 것보다도 어느 점에서 더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은 우리들의 본성이 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 공상의 속임수에 의한 것인가?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은 그렇게도 크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의 그 힘은 무한히 크다. 어디를 걷든지 우리는 역사의 유적 위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키케로) 나는 그들의 용모와 자세와 의복을 고찰해 보기가 재미난다. "나는 이런 위대한 이름들을 내 입에 올려 보며, 그것을 내 귀에 울려 오게 한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면 이런 위대한 이름들 앞에 일어선다."(세네카) 그 어떤 부분들도 위대하고 감탄할 만한 이런 사물들 중에, 나는 바로 그 평범한 부분들에 감탄한다. 나는 그들이 잡담하며 산책하며 식사하는 것을 보았으면 한다. 그들의 살아가고 죽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그들을 좇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시범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그 많은 훌륭하고 용감한 인물들의 유적과 모습들을 경멸한다는 것은 배은망덕이 될 일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1108쪽


테니슨의 말처럼 나도 아직은 '여행을 그만두고' 쉬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멈춘다는 것, 끝낸다는 것, 광을 내지 않아 녹 슬어 버린다는 것, 사용해서 빛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래서 나는 옛 고전들을 읽으며 '아직도 옛 이름 그대로 남아 있는 그 장소들'을 언젠가는 꼭 한번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으면서 지도 위에 표시해 두었던 흔적들을 다시금 꺼내 보았다.(아래에 나열한 지도들이 실려 있는 책들은 모두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한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작품에 딸린 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겉모습만은 똑같은 그림이 적지 않다.) 

몽테뉴의 말대로 그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이 우리들의 본성이 시키는 것이든 아니면 우리들 공상의 속임수에 의한 것이든 그 어느 쪽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어쨌든 나는 저 지도 위에 표시된 무수히 많은 도시들을 언젠가는 꼭 나의 두 발로 직접 둘러 보고 싶다. 까마득한 옛날에 비하면 '여행의 노고'는 따져볼 필요도 없다.


 -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이네이스』576쪽



 -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이네이스』577쪽




 -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이네이스』579쪽




 -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이네이스』580쪽




 -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이네이스』581쪽




 -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794쪽



 -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795쪽



 -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796쪽




 -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797쪽



 -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798쪽




 -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799쪽 (이 지도에 '쿠마이'가 보인다.)




 -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의 옮김, 『역사』995쪽



 -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의 옮김, 『역사』996쪽




 -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의 옮김, 『역사』997쪽




 -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의 옮김, 『역사』998쪽




 -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의 옮김, 『역사』999쪽




 -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734∼735쪽




 -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736∼737쪽




 -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738∼739쪽




 -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740∼741쪽




 -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742∼7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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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튤립과 백수오
    from Value Investing 2015-05-01 14:32 
    죽은 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은 자라고추억과 정욕이 뒤섞이고잠든 뿌리가 봄비로 깨어난다.차라리 겨울은 따스했거니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메마른 구근으로 작은 목숨을 이어줬거니. - T.S.엘리어트의 황무지 <1> 매장(埋葬)' 중에서 * * * 또 한 번의 4월이 지나갔다. 그 누군가에게는 틀림없이 '내 삶에서 가장 잔인한 달'로 각인된 채로... T.S. 엘리어트가 『황무지(荒蕪地)』를 쓰지 않았더라도 우
 
 
 
다시『월든』을 만날 시간



모든 책이 다 독자들만큼 따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책에는 어쩌면 우리의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우리가 이 말들을 정말로 듣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침이나 봄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활력을 줄 것이며, 우리에게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우리의 기적들을 설명해주고 새로운 기적들을 제시해줄 책이 어쩌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할 가능성은 크다. 지금 내가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어느 책에 표현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며 우리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들이 일찍이 모든 현명한 사람들에게도 제시되었다. 한 문제도 빠짐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들 현인들은 저마다 이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했다. 자기 능력에 따라, 또 자기 고유의 언어와 생활 방식으로.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 * *

(다음에 인용하는 글들은 모두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책에서 뽑은 것이다. 사진들은 모두 지난주 금요일, 즉 8월의 첫날 저녁에 찍었고 시간대 순으로 올렸다. 각각의 사진에 어울릴 만하다 싶은 인용글부터 먼저 내세우고 사진을 뒤이어 붙였는데, 결국 인용글과 사진들이 너무 많아 그들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은 적잖이 줄어든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런 시도가 애초부터 무리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왕 여기까지 내친 걸음이라 그대로 올려봤다.)


이런 조용한 저녁 무렵이면

요즈음에는 하루하루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이런 조용한 저녁 무렵이면 시간이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영영 흐르지 않을 것만 같다. 기우는 햇빛이 반사되어 금물결을 일으키는 마른 들판과 그 들판의 현삼(玄參)이 나의 양식이다. 자연의 현재 모습을 '젖 먹이는 어머니' 이외에 또 달리 표현할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 『소로우의 일기』, 1838년 9월 20일



 

오후 세 시에도 마치 새벽 세 시인 양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얼마간 녹이 슬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방 안에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저녁의 그림자가 햇빛과 이미 섞이기 시작해 하루를 벌충하기에는 너무 늦은 오후 네 시, 그 막바지 시간에도 산책을 하러 살며시 집을 빠져나오는 데 속죄해야 할 어떤 죄라도 저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주 혹은 몇 달, 나아가, 합하면 대략 몇 년 동안이나 자기들 스스로를 하루 종일 가게나 사무실에 가둘 수 있는 내 이웃들의 도덕적 무감각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인내력이 나를 놀라게 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지금 오후 세 시에도 마치 새벽 세 시인 양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도대체 어떤 물질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다.
보나파르트가 새벽 세 시의 용기를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당신네들이 아침 내내 본 것처럼 스스로의 본성에 반하여 오후 이 시간에도 명랑하게 앉아 있어서, 공감이라는 강력한 유대감으로 결속되어 있는 한 주둔군을 굶겨서 기어코 밖으로 나오게 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때쯤, 말하자면 조간신문이 오기에는 너무 늦고 석간신문이 오기에는 너무 이른 오후 네다섯 시 사이에 대로를 가로질러 큰 폭발이 일어나서 낡고 촌스러운 개념과 변덕을 사방으로 날려 거풍시키지 않는지-그리하여 악이 스스로를 정화하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129쪽



 

자연은 돼지 앞에다 진주를 던지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멀리 넓게, 혹은 얼마나 가까이 좁게 보아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자연현상의 아주 많은 부분을 이런 이유로 인해 사는 동안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원사는 단지 자신의 정원만 본다. 정치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공급은 수요에 응한다. 자연은 돼지 앞에다 진주를 던지지 않는다. 풍경은 우리가 소중히 여길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한 티끌의 더도 아니라-의 아름다움만을 우리에게 내보인다. 어떤 사람이 한 특정한 언덕 꼭대기에서 보게 될 실제 사물들은 다른 사람이 보게 될 사물과는 바라보는 사람이 다른 것만큼 상이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앞으로 나아갈 때 진홍참나무가 이미 당신 눈 속에 있어야 한다. 그것에 관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어떤 것을 볼 수 있다-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것은 거의 볼 수 없다.

 - 『가을의 빛깔들』, 216∼217쪽







 

서산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하늘의 별보다 더 자유롭다. 불평 따위를 여행 가방에 넣고 다닐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짐이 무거울 텐데. 나는 여론, 정부, 종교, 교육, 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내년 봄에 나는 어쩌면 미들섹스 군에서 과세 투표용지를 세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니아의 야자수 아래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창을 던지고 있을지도. 혹시 메사추세츠 주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하거나 소아시아에서 무화과나 올리브를 키우고 있지는 않을까? 그게 아니면 혹시 스테이트 가의 사무실에서 온종일 앉아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타타르 지방의 초원지대를 말을 타고 돌아다니고 있지는 않을까? 거인국을 찾기 위해 아르헨티나 남부의 파타고니아 지방을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또는 소인국을 찾아 유럽 최북단의 라프랜드를 항해하고 있을까?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서의 아라비안나이트 이상으로 흥미 있는 모험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페납스콘 강 상류에서 일하는 벌목공이 된다면 아마 먼 훗날 물과 땅을 오갔던 강귀신에 대한 전설 속에 내 이름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트리턴이나 프로테우스에 버금가는 쟁쟁한 명성을 후세에 전할 수도 있다. 누트카의 모피를 중국으로 가져간다면 나와 누트카의 모피는 제이슨과 그의 유명한 황금빛 양털보다 더 큰 명성을 얻을 수 있겠지. 아니면 남해를 탐험하여 한노(Hanno), 마르코 폴로, 만데빌 등이 걸었던 길을 되짚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땅에 매인 운명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마을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 해거름에 보조를 맞추어 길을 걷다가 서산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소로우의 일기』, 1840년 3월 21일



 

호수와 연못들은 하늘의 빛을 얼마나 많이 즐기고 있는가.

대지의 표면에 있는 각각의 호수와 연못들은 하늘의 빛을 얼마나 많이 즐기고 있는가. 호수 위의 빛이 없다면 어떤 숲도 그렇게 깊고 어둡지 않다. 호수의 창문이나 천창(天窓)은 그 수면만큼 넓다. 호수는 하늘과 맞닿는 곳까지 뚜렷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 산의 정상에서는 숲으로 인해 빛을 볼 수 없다. 그러나 호수 위에서는 빛으로 목욕을 하게 된다.

                                                                                                                               1852년 10월 12일 일기

 - 『흐르는 강물처럼』114쪽







 

일몰의 하늘을 바라볼 때

일몰을 바라볼 때마다 해가 지는 곳만큼이나 멀고 아름다운 서부로 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해는 매일 서쪽으로 이동하며 자기를 쫓아오라고 우리를 유혹한다. 그는 우리 국민이 따라가는 위대한 서부 개척자이다. 태양빛에 마지막 황금으로 물든 산 능선들이 단지 수증기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밤새 지평선에 있던 능선을 꿈꾼다. 아틀란티스 섬과 헤스페리데스 섬들과 정원 같은 지상의 낙원들은 신비와 시(시)에 싸여 있는 고대의 위대한 서부였던 것 같다. 일몰의 하늘을 바라볼 때 상상 속에서 헤스페리데스의 정원과 이 모든 우화들의 근원을 그려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142쪽





 


인간이 천할 때 자연의 아름다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이 천할 때 자연의 아름다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호수에 비친 고요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호수에 간다. 우리가 잔잔하지 못할 때 우리는 호수에 가지 않는다. 통치자나 피통치자 모두 아무런 원칙 없이 사는 나라에 무슨 고요가 있을 수 있겠는가? 정치가의 비속함에 대한 나의 기억이 산보를 방해한다. 나의 생각은 국가에 의해 살해당했다. 나는 자연을 보려하나 다 헛된 노력일 뿐이다. 나의 생각은 어쩔 수 없이 국가에 대해 모반을 꾀하는 쪽으로 간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모두 그 모반에 동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소로우의 일기』, 1854년 6월 16일



 

시간은 내가 낚시질하는 강을 흐르는 물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은 내가 낚시질하는 강을 흐르는 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강물을 마신다. 그러나 물을 마실 때 모래 바닥을 보고 이 강이 얼마나 얕은가를 깨닫는다. 시간의 얕은 물은 흘러가 버리지만 영원은 남는다. 나는 더 깊은 물을 들이켜고 싶다. 별들이 조약돌처럼 깔린 하늘의 강에서 낚시를 하고 싶다. 나는 셈을 전혀 할 줄 모른다. 알파벳의 첫 블자도 모른다. 나는 태어나던 그날처럼 현명하지 못함을 항상 아쉬워한다.

 - 『월든』141쪽





 


 

기억 속에서 아득히 멀어진 계절들이 있다.

나는 갈수록 더 자연에 몰입하고 있다. 지적인 면에서 난 이전보다 자연에 더 순종하고 있다. 그러나 영혼은 그다지 잘 순종하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아득히 멀어진 계절들이 있다. 스스로를 강제하는 일은 적어진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나의 천박함에 익숙해지고 나의 낮은 지위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오, 나 자신을 불만스럽게 여길 수만 있다면! 밑으로 추락할 때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소로우의 일기』, 1851년 10월 12일







 

꿈속에서 양서류가 된 나는

꿈속에서 양서류가 된 나는 시내와 호수에서 농어, 잉어와 장난을 친다. 꿈속에서 나는 물고기들이 물가를 노닐면서 만든 복도처럼 구불구불한 물결 한가운데에서 강꼬치고기들과 함께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 『소로우의 일기』, 1840년 2월 14일



 

물에 하늘이 비치는 것은

물에 하늘이 비치는 것은 나의 마음이 하늘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자체가 고요하고 투명하고 평온하기 때문이다. ······ 지하의 푸른 하늘인 강에는 지금 붉은 색조의 구름이 깔리고 있다.

『소로우의 일기』, 1851년 8월 31일



 

언젠가는 태양이 이전보다도 더 밝게 빛나며...

지난 어느 날 일몰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 그것은 우리가 한 순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빛이었고 공기 또한 너무나 따뜻하고 고요해서 그 들판을 천국으로 만드는 데 부족한 것이라곤 없었다. 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어떤 일회성 현상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저녁에 영원히 계속해서 일어나 그곳을 걷는 마지막 아이를 기쁘게 하고 다시 용기를 내게 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찬란해 보였다.

도시에 아낌없이 퍼부었던 그 모든 영광과 광채를 안고 어쩌면 이전에 졌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외딴 들판 위로 해가 진다. 거기에는 날개를 태양빛으로 도금한 외로운 개구리매나 굴에서 밖을 내다보는 사향뒤쥐가 있을 뿐이고, 늪지 한가운데는 검은 빛 작은 시내가 있어 썩어가는 그루터기를 휘감으며 막 굽이쳐 흐르기 시작했다. 마른 풀과 나풋잎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너무나도 부드럽고 평온하게 빛나는 정말 순수하고 밝은 빛 속으로 걸어가면서, 잔물결이나 소리 하나 없는 그 같은 황금빛 큰물에 목욕을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숲과 언덕의 서쪽 면은 엘뤼시온(66)의 경계처럼 빛났고 등 뒤에 있는 태양은 저녁에 우리를 집으로 몰고 가는 온유한 목자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성지(聖地)를 향해 걸어간다. 언젠가는 태양이 이전보다도 더 밝게 빛나며 우리의 정신과 마음속을 비춰 가을에 제방의 경사면 위로 내리는 따뜻하고 평온한 황금빛 같은 위대한 각성의 빛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

 -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173∼174쪽







 

자연의 경치는 인간적인 애착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자연을 보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인간적 견지에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자연의 경치는 인간적인 애착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고향의 경치는 여느 경치와는 다르다. 자연은 그 찬미자에게 가장 큰 의미를 지니고 나타난다. 자연에 대한 찬미자는 인간에 대한 찬미자이기도 하다. 만일 나에게 어떤 친구도 없다면 자연이 나아게 무슨 의의를 지니겠는가?

『소로우의 일기』, 1852년 6월 30일



 

이 세상에 석양 진 하늘만큼 숭고한 그림은 없다.

이 세상에 석양 진 하늘만큼 숭고한 그림은 없다. 석양을 보기 위해서 그 누구와 만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나는 당연히 사람들과 단절될 수밖에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명확히 자각하는 바로 그 순간, 정신은 인간 사회로부터 멀어진다. 교제에 대한 나의 욕망은 무한히 크지만 실제 사회에 대한 나의 적응력은 오히려 감소한다.

 - 『소로우의 일기』, 1852년 7월 26일







 

나는 시간의 뚜껑을 열고 그 아래를 들여다본다.

자연의 소리를 듣다 보면 젊은 시절의 낭만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유년기에는 천국이 우리 옆에 있었다. 지금도 천국은 우리 옆에 있다. 자연의 소리는 격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거짓 또한 없다. 자연의 소리는 언젠가 꿈꾸었단 나의 꿈을 꿈이 아닌 유일한 실질적인 경험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리고 기적만이 만족시킬 수 있는 믿음을 고양시킨다. 나는 다시 극히 섬세한 본능을 가장 신성한 것으로 믿게 된다. 다시금 영웅의 자질을 생각하게 되고 또 생각한 것들을 확신하게 된다. 자연의 소리는 나에게 남은 시간들이 거쳐야 할 삶이 아닌 삶, 삶을 넘어선 삶이 된다. 나는 시간의 뚜껑을 열고 그 아래를 들여다본다.

 - 『소로우의 일기』, 1841년 1월 30일






 

 

시간을 지켜라. 열차 시간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을 준수하라.

가사 일도 서두르면 낭비가 생기듯이 인생에서도 성급함은 낭비를 낳는다. 시간을 지켜라. 열차 시간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을 준수하라. 70년을 살았다 할지라도 개인의 삶이 우주의 삶과 일치하는 신성한 여가의 순간들을 누리지 못하고 급하고 거칠게만 살았다면 도대체 인생에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우리는 너무 급하고 거칠게 산다. 너무 빨리 음식을 먹기 때문에 음식의 진짜 풍미를 맛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 『소로우의 일기』, 1852년 12월 28일


 

 

하늘에서는 자개와 무지개 색조들이 모였다 흩어졌다 왕래하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 평화롭게 떠다니는 저 구름들처럼 생각의 물고기들이 강물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숭고하게 왔다갔다할 수 있도록 우리는 경건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을 건넌다. 또는 부드럽게 서로를 부축해 준다. 우리가 걸을 때 마치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 같았고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맞춤하는 것 같았다. 또 하늘에서는 자개와 무지개 색조들이 모였다 흩어졌다 왕래하고 있었다. 나는 대적(大敵)과 함께 싸울 동지를 한 사람 얻었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푸른 하늘 아래 살고 있다.

 - 『소로우의 일기』, 1853년 5월 9일



 

그것들의 원경(遠景)과 비속성(非俗性)은 무한한 격려이다.

아! 나는 고독이 필요하다. 인간보다 더 웅장한 것과 만나 이야기하기 위해 석양에 언덕에 올라 저기 지평선상에 걸린 산맥을 바라본다. 그것들의 원경(遠景)과 비속성(非俗性)은 무한한 격려이다. 내가 굳건한 고독을 구하는 것은 나의 무한한 열망과 동경 때문이다. 

 - 『소로우의 일기』, 1854년 8월 14일



 

호수는 자연의 응접실, 자연이 앉아서 몸단장을 하는 곳이다.

여름에 호수는 액체로 만들어진 지구의 눈, 자연의 가슴에 있는 거울이 된다. 나무의 죄들도 이 호수 속에서 모두 씻겨 나간다. 나무들이 호수를 중심으로 원형경기장처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보라. 호수는 자연의 모든 상냥함을 보여주는 경기장이다. 모든 나무들은 여행자를 호숫가로 인도하고, 모든 오솔길들도 호수로 연결되며, 새들은 호수를 향해 날고, 네 발 달린 짐승들은 호숫가로 도망치고, 대지도 호수를 향해 경사져 있다. 호수는 자연의 응접실, 자연이 앉아서 몸단장을 하는 곳이다.

자연의 고요한 질서와 정결함을 생각해 보라. 태양은 매일 아침 증기를 몰고 와 호수 표면의 먼지들을 말끔히 치워버리고, 덕분에 깨끗한 수면에선 끊임없이 물이 샘솟는다. 그리하여 호수 속에 그 어떤 불순한 것들이 축적되든, 봄이 되면 어김없이 수면이 투명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면 조용한 음악이 수면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 『겨울 산책』







 

그 무엇도 내가 누구인가를 여름 햇빛만큼 잘 말해줄 수는 없다.

그 무엇도 내가 누구인가를 여름 햇빛만큼 잘 말해줄 수는 없다. 나는 나이지 나라고 말한 내가 나인 것은 아니다. 존재가 가장 위대한 설명자이다.

『소로우의 일기』, 1841년 2월 26일







 

인생은 이 사소한 일들의 최종적인 결산이다.

모든 문장은 오랜 시련의 결과이다. 속표지에서 책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책 속에는 저자의 인품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 이는 저자라도 교정볼 수 없다. 작가만의 특징이 담긴 육필을 읽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 때 장식적인 측면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다른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행위 하나하나를 점점이 이은 선, 곧은 자로 줄을 그은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도약을 했느냐에 관계없이 그 선은 늘 직선이다. 우리의 인생은 극히 사소한 일을 얼마나 잘했느냐에 의해 평가받는다. 인생은 이 사소한 일들의 최종적인 결산이다. 우리를 지켜보는 눈도 없고 상벌도 없는 평범한 날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잤으며 작은 시간들을 어떻게 쪼개 썼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권위와 능력이 결정된다.

 - 『소로우의 일기』, 1841년 2월 28일




여행자

여행자!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 여행자는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우리의 인생을 가장 잘 상징하는 말이 '여행' 아니겠는가. 개인의 역사란 결국 요약하면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여행자 중에서도 특히 밤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흥미를 느낀다.

『소로우의 일기』, 1851년 7월 2일







 

각 계절의 영향력에 너 자신을 맡겨라.

계절이 지나가는 대로 각 계절 속에 살아라. 계절의 공기를 호흡하고, 계절의 음료를 마시며, 계절의 과일을 맛보아라. 각 계절의 영향력에 너 자신을 맡겨라. 계절들로 하여금 너의 유일한 식품, 음료, 약초가 되게 하라. 8월에는 딸기를 먹고 살아라. 육포와 페미컨으로 살아가려고 하지 말라.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거나 북부의 끝없는 사막 지대를 통과할 때에나 필요한 것들이다. 땀구멍들을 모두 열고 사철 내내 자연의 모든 시내와 대양과 조수에 멱을 감아라. 독기와 병마는 우리 내부에서부터 온다. 자연이 주는 거대한 영향력을 흡수하기는커녕 부자연스러운 생활만을 계속하다가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른 환자는 특정한 풀로 끓인 차만 마시면서 여전히 부자연스런 생활을 계속한다. 그는 판편으로는 아끼면서 한편으로는 낭비한다. 그는 자연과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병들어 죽는다. 어떤 의사도 그를 낫게 할 수 없다. 봄에는 푸르게 자라라. 그리고 가을에는 노랗게 익어가라. 계절의 영향력을 마셔라. 자연이 각별히 당신을 위해 온갖 치료약을 섞어 만든 진정한 만병통치약을 마셔라. 진정한 몰약을 마셔라. 여름의 음식이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하실에 보관해 둔  음식이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과일주를 마셔라. 당신이 염소 가죽이나 돼지 가죽에 담근 술이 아니라 자연이 무수히 많은 싱싱한 딸기 껍질들 속에 담가놓은 술을 마셔라. 자연으로 하여금 음식 저장용 용기가 되게 하고 음식을 절이는 소금이 되게 하라. 자연은 우리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연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이다. 그 이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자연에 저항하지 말라. 일부러 건강해지려고 애쓰지 않을수록 병드는 일도 없게 된다. 사람들은 야생적인 것 중에서 몇 가지는 유익하나 자연 전부가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니, 별견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자연'이 건강의 또 다른 명칭이고 사계절이 왜 건강의 각기 다른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특정한 계절이 몸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계절 탓이 아니라 자기 자신 탓임을 사람들은 잊고 산다.

 - 『소로우의 일기』, 1853년 8월 23일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표현이 충분히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믿음과 통찰이라는 좁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는 한계를 긋지 않고 말하기를 원한다. 내가 납득한 진리를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어느 한 사람의 순간적 깨달음이 다수의 순간적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탁 트인 초원의 먼 지평선 쪽으로 정처 없이 걷는다. 음악만큼 법에 복종하고 법에 매여 있으면서도 모든 사소하고 편협한 속박들을 가차없이 거부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음악을 들을 때마나 나는 나의 한계 속에서 길들여진 말로 이야기하고 있지나 않은지 두려움을 느낀다. 

 - 『소로우의 일기』, 1854년 2월 5일



 

그 하찮은 악곡이 얼마나 귀중한 우리의 인생에 대한 논평인가!

누군가 계단 아래에서 기타 퉁기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살아온 순간들을 일깨우는 소리이다. 그 하찮은 악곡이 얼마나 귀중한 우리의 인생에 대한 논평인가! 그 악곡은 우주의 모든 소란과 진창으로부터 나를 들어올린다. 나는 깨끗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나의 인생의 장 위를 올라가 떠다닌다. 동심(同心)의 영역 안에 있는 인생 안의 인생이다. 내가 수고하는 곳이면서도 언젠가는 쓸모없게 될 장이 이처럼 또 다른 인생을 위한 장이기도 한 것이다. ······ 이 희미한 기타 소리에 감명을 받는다는 사실은 앞으로 다가올 나의 봄들 안에 아직도 건강함과 불멸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야말로 만병 통치약이다. 이 세상에 잠시 들러 보온용 접시덮개 밑에 살던 내가 지금은 천국 아래 산다. 그 소리가 나를 방면한다. 나를 얽매던 속박을 끊어버린다. 거의 모든 것, 아니 모든 것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진부한 절망에 불과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 운명의 완전한 장관이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늘 우리의 운명을 평가절하한다. 불신만을 말한다. 왜 인간이라는 종족은 불신만 하는가? 황홀경이 그들에게 미치는 아주 희귀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성향과 더불어 나의 믿음은 결국 무엇이 되고 마는가? 이 가련하고 소심하고 미개하고 둔감한 피조물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음악을 들을 때 나는 어떤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 내 눈에는 어떤 적도 보이지 않는다. 최초의 나와 최후의 나가 이어진다.

잠과 죽음에 가까운 인생에서 영원히 깨어 죽지 않는 인생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수준의 인생이 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개개인의 인생만큼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없다. 나는 군중이 자신들의 운명이 아주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 『소로우의 일기』, 1857년 1월 13일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시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시가 될 수 있을까? 삶이 시가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삶이 아니라 죽음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삶에 너무나도 넌더리가 나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원래 사람들은 일상의 삶 따위를 문제 삼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까? 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은 우리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야 올바른 생을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찾고자 한 책을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물려받은 재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정직하지 못하게 그릇된 방법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은 이 물음에 대답할 자격이 없다. 우리 사회는 많은 기술을 갖추었지만 이 점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 『소로우의 일기』, 1851년 2월 18일







 

해 진 후 별들이 언덕과 나무숲 뒤에서 무리 지어 나오는 모습을 보면

해 진 후 별들이 언덕과 나무숲 뒤에서 무리 지어 나오는 모습을 보면 좀 더 호기심에 차고 감동적인 밤을 보내지 못한 나의 무능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소로우의 일기』, 1840년 7월 26일



 

한때는 여름이었다.

겨울은 눈송이처럼 빠르게 다가 오고 있다. 노인들의 예측이 늘 맞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한때는 여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겨울이다. 자연은 어찌나 이 리듬을 좋아하는지 아무리 되풀이해도 지겨워하지 않는다.

 - 『소로우의 일기』, 1856년 12월 7일







 

언젠가 시 한 수를 짓겠다.

언젠가 '콩코드'를 제목으로 시 한 수를 짓겠다. 강, 숲, 호수, 언덕, 들판, 늪, 초원, 거리, 건물, 마을 사람들 등으로 장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아침, 정오, 저녁, 봄, 여름, 가을, 겨울, 밤, 인디언의 여름, 지평선상의 산맥도 독립된 장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소로우의 일기』, 1841년 9월 4일



 

인생만이 중요할 뿐이다.

어떠한 주제라도 나에게는 하찮은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일상적인 주제에 입각한 글을 쓴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글의 주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만이 중요할 뿐이다.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직 인생이 자아내는 깊이와 강렬함이다. 우리가 다루는 주제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경험이라는 우리의 피라미드 또는 인생에 대한 우리의 참여 정도에 의해 우리의 글이 보다 폭넓은 기반 위에 자리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판가름난다. 즉 인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연이 인간을 밖으로 끌어내어 그를 비추기 전까지는 자연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 『소로우의 일기』, 1856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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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겹의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연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늘 속도가 일정하다. 싹은 마치 짧은 봄날이 무한히 길기라도 하듯이 서두르거나 허둥대는 일 없이 서서히 싹튼다. 자연은 무엇이든 자신이 하는 일 하나하나에 지극히 공을 들인다. 마치 유일한 목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과 달리 왜 인간은 극히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에 마치 영원보다 더한 어떤 무엇이라도 맡겨진 양 그다지도 서두르는 것일까? 몇 겹의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인간은 손톱 깎는 일 따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는 해가 마지막 남은 하루를 잘 마무리하라고 당신을 재촉한다고 여겨지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라. 항상 변함없는 고르디 고른 곡조의 울음소리는 지금의 시간을 영원으로 여기라는 충고가 아니겠는가! 현명한 사람은 늘 마음이 고요해서 들뜨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산책하는 사람과도 같은 모습이다. 반대로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축적된 피로가 쉬라고 강요하기 전깢비는 다리 근육의 긴장을 풀지 않는다.

『소로우의 일기』, 1839년 9월 17일



 

내면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한적한 시골집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지금 이 시절이 내가 그런 삶을 선택하는 데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의 평범한 사고, 지루한 습관을 그곳으로 가져가 그곳 풍경을 망쳐놓고 싶지는 않다. 내면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밖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 『소로우의 일기』, 1850년 10월 31일



 

삶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를 듣는다는 기분으로

삶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를 듣는다는 기분으로 자연의 소리에 경건히 귀 기울이자.

『소로우의 일기』, 1851년 6월 12일



 

그들은 과연 그들인가?

아! 나의 감각이 순수했으면 좋겠다. 내가 나인 적도 드문데 나 아닌 남들과 이야기할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은 과연 그들인가? 따라서 우리는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서 만나야 한다. 여름의 씨앗은 꽃부리에서 여물어 바람에 흔들리다 땅으로 떨어진다. 과거에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 너를 알지 못했다면 오늘 내가 너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 저 시냇물은 옛날보다도 더 많은 풍경을 담고 있다. 아! 저 시냇물은 미래를 예언하는 신비한 문장이다, 아무리 얕은 곳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바라보는 자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시내를 무슨 수로 측정할 수 있겠는가?

 - 『소로우의 일기』, 1851년 8월 17일



 

사냥꾼의 코트에서 사향쥐 냄새가 풍겨 나오듯이

사냥꾼의 코트에서 사향쥐 냄새가 풍겨 나오듯이 사물의 진리를 존중하는 자의 몸에서는 자연스럽게 진리가 풍겨 나오게 마련이다. 진리에 흠뻑 젖어보지 못한 자는 진리를 전할 방도가 없다. 젊은이에게는 열정인 것이 성숙한 이에게는 기질이 된다. 그는 자극이나 흥분이나 열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들뜨게 하고 젊음을 자극했던 세상을 가만히 관조할 수 있다. 사물이 의미심장해야 말도 의미심장해진다. 어떤 사물이 경박하고 피상적으로만 이야기되는 이유는 순전히 말하는 자의 잘못일 뿐이다. 신탁도 숙명도 아닌, 듣는 이를 설득하지 못하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독특한 표현이다. 격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소로우의 일기』, 1851년 11월 1일



 

올바른 관점에 서면 모든 폭풍과 빗방울이 하나의 무지개이다.

자연의 어느 부분이 우리의 동정을 자아낸다면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일 뿐이다. 자연은 영원한 건강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의 미를 부분적으로 잠시 볼 뿐이다. 올바른 각도에 선다면 무색의 얼음에서도 황홀한 무지갯빛을 볼 수 있다. 올바른 관점에 서면 모든 폭풍과 빗방울이 하나의 무지개이다. 미와 음악은 단순한 특색이나 예외가 아니다. 미와 음악은 규칙이고 인격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예외일 뿐이다. 나를 황홀경에 빠뜨리는 풍경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알아보고 싶다. 내가 무슨 속성 때문에 이렇게 놀라움을 느끼고 매료되는가조차 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우리가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은판 사진에 담을 수 있다면 어찌될 것인가!

 - 『소로우의 일기』, 1855년 12월 11일



 

매듭이 끊어진 게 내 탓도 아니고 너의 탓도 아니다.

이제 또 하나의 우정이 끝났다. 무엇이 그 친구로 하여금 나를 의심하도록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사랑에는 어떤 잘못도 없으며 모든 소원해짐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러나 나의 운이 옹색해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넓어졌을지도 모른다. 하늘이 물러나 더 높은 곳에서 아치형을 이루었다. 나는 도덕적 고통뿐만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 아픔이 꽉 들어차는, 신들만이 알 엄청난 육체적 고통까지 느낀다. 매듭이 끊어진 게 내 탓도 아니고 너의 탓도 아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운명의 판정만이 영향을 미칠 뿐이다, 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알 뿐 영원이나 기한, 삶과 죽음은 알지 못한다. 나의 삶은 갑자기 둑에 막혀 출구가 없어진 시내와 같다. 그러나 시냇물은 물을 가둔 언덕으로 더 높이 올라간다. 그래서 깊고 고요한 호수가 된다. 분명(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우리가 아는 존재로부터의 영원한 이별만큼 위대한 장관은 없다. 나는 어느 정도 유한과 무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결코(never)'라는 단어는 얼마나 웅장한 의미를 갖는가! 한번 높은 곳을 함께 걸었던 사람과 다시는 함께 낮은 곳을 걸어갈 수 없다. 우리는 불후의 쓰임새에 서로를 쓰려고 수많은 세월을 함께 애써왔지만 결국 실패했다. 우리의 선한 천재성이 상호간에 적합하지 않음을 발견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최고의 경의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일관되게 서로를 신성하게 여겨왔다. 어떤 부나 친절도 줄 수 없는 삶의 기회를 서로에게 주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상호간의 도움을 억제하게 되었다. 각각의 남녀는 모두 진실로 남신이자 여신이다. 그러나 동료들 무리에서는 자신을 감춘다. 각 무리마다 그 가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다.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보기 위해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지 않은 사람만이 진실로 혼자일 수 있다. 나는 너와의 이별을 무한히 슬퍼한다. 나의 마음에서 너에 대한 생각을 끊어버리느니 내 발 아래의 땅이 꺼져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 『소로우의 일기』, 1857년 2월 8일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기를 희망하는 이는 스스로를 파문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글의 저자는 행인이 아니라 그가 관찰하는 사건들 앞에 영구적으로 뿌리를 내린 사람이어야 한다. 그가 관찰하는 사건들이 아무리 눈에 익다 하여도 지나치는 법은 없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타인(관찰자이든 이웃이든 아니면 시인이든 친구이든)에게 가장 가치가 있을 때는 그가 가장 만족스럽고 편한 곳에 있을 때이다. 거기에서 그의 인생은 가장 강렬해지고 순간들을 놓치는 경우도 가장 적어진다. 친숙한 주위의 대상들이 인생 최고의 상징이자 그의 인생을 나타내는 최고의 예증이다. 심오한 체험을 한 사람이 여행기 형식으로 자신의 체험을 서술하고자 한다면 그는 세계 공통어 대신 유랑민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고향 땅에 깊이 뿌리내린 사림이다. 그는 옮겨 심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이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기를 희망하는 이는 스스로를 파문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이 부유하고 강해질 수 있는 곳은 바로 고향 땅이다. 자신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나는 고향 땅에서 40년 동안 고향 산천의 언어를 배워 왔다. 대평원으로 여행한다면 대평원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고, 나의 지나온 삶이 대평원의 산천을 묘사하기에 부적절할 것이다. 만일 캘리포니아에 가더라도 여기에서 자라는 수많은 잡초가 캘리포니아의 거목들보다 나의 인생에서 보다 큰 가치를 지닌다. 우리에게 필요한 여행은 우리의 지성에 약간의 야외 바람을 쐬게 하는 정도의 여행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온 힘을 기울인다면 맬서스의 《인구론》이나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이 세계에는 아직도 충분한 여유 공간이 남아 있다. 나는 여태까지 행성끼리 충돌했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 『소로우의 일기』, 1857년 11월 20일



 

호수를 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

이 계절 숲 속의 작은 호수들을 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폭풍우가 얌전하게 스치고 간 이후의 휴지기, 대기와 물은 완벽하게 고요하지만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시기이다. 그 첫번째 이유는 이런 때가 되면 호수가 아주 잠잠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대기가 아주 얕게 수축되어 있어 구름이 낮게 지붕을 이루고 있으므로, 그보다 더 낮은 하늘인 호수가 그만큼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유리처럼 매끄럽게 반사하는 수면을 갖고 있는 호수는 호수 위의 대기보다도 더 욱 천상의 느낌을 자아내고 더 밝게 빛난다. 
                                                                                                                                   1852년 8월 4일 일기

 - 『흐르는 강물처럼』111∼112쪽



 

이 작은 호수는 8월의 잔잔한 비바람이 불다 멈추다 하는 사이사이에

이 작은 호수는 8월의 잔잔한 비바람이 불다 멈추다 하는 사이사이에 나의 가장 소중한 이웃이 되었다. 그때는 비록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공기와 물이 다 같이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 오후의 한때일지라도 초저녁의 고요함을 지니고 있으며, 티티새의 울음소리만 이 기슭 저 기슭에서 들려왔다. 이런 호수는 바로 그와 같은 때에 가장 잔잔한 것이다. 호수 위의 맑은 공기층은 얇고 구름에 가려 있기 때문에 빛과 반사로 가득 찬 수면은 그 자체가 지상의 하늘이 되며, 나에게는 더욱 소중한 하늘이 된다.

 - 『월든』124쪽



 

호수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커다란 것이 또 있을까.

지구의 표면에서 호수만큼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커다란 것은 없으리라. 하늘의 물, 그것은 울타리가 필요 없다.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갔지만 그것을 더럽히지는 못했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그것의 도금을 자연은 늘 손질해준다. 어떤 폭풍이나 먼지도 그 깨끗한 표면을 흐리게 할 수는 없다. 호수의 거울에 나타난 불순물은 그 속에 가라앉거나 태양의 아지랑이 같은 솔이, 그 너무나도 가벼운 마른걸레가 쓸어주고 털어준다. 이 호수의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입김을 구름으로 만들어 하늘로 띄워 올리는데, 그 구름은 호수의 가슴에 다시 그 모습이 비친다.

 - 『월든』, 271쪽



 

'상궤를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당신이 어떤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표현이 충분히 '상궤常軌를 벗어난' 것이 되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진리를 알맞게 표현할 수 있도록 나의 일상적인 경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멀리 나아가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상궤를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당신이 어떤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새로운 풀밭을 찾아서 다른 위도로 옮겨가는 들소는 젖 짤 시간에 통을 차서 둘러업고 울타리를 뛰어넘어 제 새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암소만큼이나 상궤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어딘가에서 제한 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말이다. 왜냐하면 진실된 표현의 기초만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서는 아무리 과장을 하더라도 충분치 않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락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상궤를 벗어난 투로 이야기하는 것을 그 후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 『월든』, 463∼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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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8-0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이 잘 어우러졌어요^^
저도 님 덕분에 책꽂이 아래 있던 월든 꺼내 들었습니다.
젊을때 읽던 느낌이랑은 다를듯 합니다. 편안하게 읽을수 있겠어요.

oren 2014-08-07 12:09   좋아요 0 | URL
세실 님께서 그리 말해주시니 여러 권의 책들을 살핀 보람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월든』에서부터 시작하여『주석달린 월든』까지 소로우가 쓴 여러 책들을 주욱 읽고 나니 그가『월든』을 얼마나 여러 번 고쳐 썼는지, 또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깊은 뜻을 담으려 애썼는지를 더 자세히 알게 되고, 그래서『월든』을 처음 접했을 때 가졌던 느낌보다 훨씬 더 새로운 느낌들을 많이 얻게 되는 것도 흥미로운 것 같아요.
 
유럽 투어 로드맵


재치있는 프랑스 사람 몽테뉴는 여행을 무척이나 즐겼던 인물이다. 그가 '하늘나라에 가서 저 광대하고 거룩한 천체들 속을 산책한다고 해도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불쾌할 것'이라고 했던 어느 옛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말이 자신의 성미에도 맞다고 맞장구를 친 적이 있다. 그가 거기에 덧붙여 '어떠한 쾌락도 남에게 통해 주지 않으면 내게는 멋이 없다.'고 한 말은 내 성미에도 딱 맞다.
 
청산유수처럼 많은 말을 쏟아냈던 몽테뉴는 심지어 "예지를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가진다는 조건으로 하기라면, 나는 그것을 거절하겠다."고 했던 세네카의 언급까지 곁들이며, '마음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이 난다고 해도, 그것을 나 혼자 지어냈고 아무에게도 말해 줄 사람이 없다면 화가 난다.'고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결국 어떠한 즐거움도 '남에게 통해 주어야' 비로소 자기 자신도 즐거워진다는 몽테뉴의 재치있는 말은 인간사의 바탕에 깔린 묘한 이치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만드는 말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머나먼 나라에서 마주친 낯설고 매혹적인 풍경들과 그 땅에 사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실컷 구경하고 돌아온 어느 여행객이, 그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입'을 꾹 다물 남들에게 단 한 장의 사진조차 보여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면, 그 여행객은 또 얼마나 처지가 딱하고 속이 답답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렇게까지 딱한 처지에 놓인 여행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혼자서 지어낸 생각만으로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얘기를 쏟아내 왔던가. 그에 비하면 여행을 다니며 겪은 일들을 이야기나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일상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경험'을 얘기하는 일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경험을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순간들을 '렌즈를 통해' 조금쯤 달리 들여다볼 때마다 '결코 나 혼자만 즐겁자'고 셔터를 누르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묘한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기록에 대한 어떤 의무감' 비슷한 감정이 스며들 때마다 조금은 더 과감하게 피사체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도 느낀다. 하기야 누군들 그런 생각조차 없이 무작정 무거운 카메라를 거추장스럽게 들고 다닐 것이며, 가끔씩은 남들의 눈치까지 살펴가며 애써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풍경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겠는가.

어쨌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달아나는 현실 앞에서 모든 능력을 집중해 그 숨결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미지의 포착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커다란 즐거움이다."(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결국 여행에서 되돌아 오면 그리 흡족하지 못한 사진들만 잔뜩 쓸어담아 온 것으로 판명나고 말더라도, 그래도 늘 '사진은 오래도록 남는다.'는 알량한 위안이 그런 헛수고조차 힘겹게 느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도 사실이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훗날 언젠가는 반드시 그 여행을 되돌아볼 '함께 여행을 즐겼던 동반자들'을 위해서라면 사진을 많이 찍는 일이 도대체 무슨 허물이 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미래에 언젠가는 또 나와 비슷한 여행을 떠나기를 꿈꾸는 더 많은 사람들까지 고려할 경우, 결국 셔터를 부지런히 눌렀던 매순간들이 그다지 아깝게 여겨질 이유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늘상 반복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듣고 봐왔던 멋진 풍경들은 언제나 책 속에만 머물 뿐이며, 내가 카메라에 담은 풍경들은 언제나 결정적이지도 못하고 환상적이지도 못한 채 그저 밋밋한 현실 속을 맴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매번 아쉽다.

그런데도 왜 나는 스스로조차 그리 만족하지 못하는 사진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그리도 많이 찍어 왔을까. 그건 아마도 '내가 담은 순간들'은 내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누구도 완벽하게 똑같은 순간을 담아내지 못하리라는 '명백한 확실성'을 언제나 보장받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짜릿한 '희소성' 하나만으로도 사진은 누구에게나 '유일한 가치'를 항상 제공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우리가 아무리 자주 셔터를 누른다고 하더라도 그런 시도가 '매순간이 고유하다'는 자연법칙에 무슨 훼손이라도 가하려는 불순한 짓이라고 누가 감히 시비를 걸 수 있겠는가. 그러니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버릴 사진을 고르는 일'이 어느새 '밀린 숙제 해치우듯' 자연스런 일이 되고, 그런 '힘든 후공정'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미리 계산에 넣으면서 사진을 찍는 악습마저도 어느새 몸에 붙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번 여행에서 내가 메모리 카드 몇 개에 나눠 담은 사진은 2,000 장을 훌쩍 넘었는데 며칠 동안 틈을 내어 부지런히 '삭제'와 '확인'을 반복하고 났더니 여태까지도 그런 '검열'에서 살아남은 사진들이 어느새 대략 900 장쯤으로 많이 줄어들었다.(여행 동반자들의 모습을 담은 인물사진까지 함부로 버릴 수도 없는 형편이니 그만하면 많은 진척을 본 셈이다.) 그 가운데 일부만 골라 '여행 후기' 대신 '미리보기' 삼아 먼저 정리해 봤다. 17일 동안의 여행 후기를 '사진과 함께' 쓸려면 당연히 적지 않은 시간을 요구할 테니, 그런 힘든 글쓰기는 여독이 충분히 풀리고 한가한 시간들이 밀려올 때까지 더 기다렸다가(?) 쓰더라도 결코 늦지는 않을 듯싶다.

남자 넷이서, 외국어도 좀 서툴고, 게다가 덩치도 제법 큰 자동차까지 빌려서 직접 몰고 다니며, 낯선 나라들을 여기 저기 자유롭게(?) 쏘다니다 왔으니 여행지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어디 한둘로 그쳤을까. 당연히 아니다. 진땀을 빼는 순간들도 결코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애환'까지 길게 늘어놓기에는 이 글이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듯싶다. 아래에 올린 사진들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는) 간략한 소개로 그치고, 훗날 여행기를 맘먹고 쓰게 된다면 조금 더 디테일한 사연들과 더 많은 사진들로 보충하고 싶다. 사진을 올리는 순서는 '날짜 및 시간대 순'이다.


 * *


1. 여행 첫날, 뮌헨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 놓은 차를 빌려 호텔까지 이동. 체크인 뒤 저녁때쯤 시내로 나섰다.
    '마리엔 광장'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흥겨운 선율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욱 북돋아 주는 듯했다.




2. 첫날 저녁 마리엔 광장 근처에서 독일 맥주와 함께 주문한 요리. 쏘세지와 감자와 오리고기 맛이 일품이다.



3. 뮌헨을 떠나 뉘른베르크로 이동. 여행 안내서에 쓰여진 그대로 '은근히 매력적인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4. 뉘른베르크를 떠나 (점심은 차에서 '빵과 쏘시지'로 해결하고) 오후 늦게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까지 진출했다.





5. '드레스덴 잼퍼 오페라 하우스'를 찾아 기나긴 '고난의 행군'을 거친 뒤 마침내 찾아온 휴식과 저녁은 달콤했다.
    배를 잔뜩 불린 뒤 '야경'을 즐기러 나서자 말자 길거리에서 '매혹적인 오페라 아리아'가 들려왔다. 끝나고 한 컷.





6. 독일 작센주의 주도이자 문화·예술의 도시로 유명한 드레스덴의 야경. 위도(북위 51.3도)가 높아,
    저녁 9시 30분이 넘도록 해가 지지 않았다. 뒤늦게 밤이 찾아와 엘베강변을 거닐며 '야경'을 즐겼다.





7. 여러 시간을 고되게 걷고 난 뒤에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나니, '드레스덴의 야경' 또한 한결 아름답게 보였다.




8. 드레스덴에서 1박 후 라이프찌히로 이동, 성 토마스 교회에서 '바하'를 만났다. 여기서 바하가 직접 연주했던
    그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마침 실제 상황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 웅장한 연주를 무려 1시간 가까이 듣고 나왔다.




9. 라이프찌히는 여러모로 유서깊은 곳이지만, '독일 통일의 시발점' 역할을 떠맡았다는 자부심 또한 큰 도시라고.





10. 베를린에서 저녁겸 축구 경기(독일이 프랑스를 꺾고 4강에 진출)를 보고 나왔더니 시내가 온통 북새통이었다.





11.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날에 아리따운 미녀들이 빠질 순 없지.





12. 독일 분단 시절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으며 '베를린 장벽'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




13. 체크포인트 찰리.(동·서독 분단시 연합군과 외교관들이 동 베를린과 서 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었던 유일한 관문)





14. 시티투어를 너무 즐기느라 그만 깜빡 버스에서 두고 내린 '비싼 카메라 렌즈'를 불과 2시간 만에 되찾아준
      몹시도 고마운 '베를린 시티투어' 운전기사 아저씨와 함께. 독일 사람들의 정직성을 실감한 좋은 기회였다.





15. 베를린 대성당. 외관도 멋지지만 내부 또한 베드로 대성당을 연상케 할 만큼 웅장했다.





16. 무거운 카메라와 생수 등을 배낭에 잔뜩 담고 대성당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 내려다본 '베를린 시내 풍경'





17. 날은 저물고 '책에 나온 식당' 찾아 삼만리를 헤매며 걷고 있는데 웬 아가씨들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한 컷. 




18. 함부르크로 이동 중 '주유소'에 들렀다.(검은색 밴)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주유소 지붕은 몹시도 빨갛다.





19. 오늘은 날이 저물기 전에 함부르크까지 가야 하니 '점심'은 '주유소에 딸린 휴게소'에서 '최대한 간단히'





20. 저녁을 손수 지어 먹고 시티투어에 나섰다. 저녁때면 홍등가로 유명한 함부르크 선창가.(버스 안에서 찰칵)





2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고흐 미술관'에 들렀다.'미술관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만 찍을 수밖에.



22. 고흐 미술관을 나와서 '안네 프랑크의 집'으로 서둘러 이동하였으나 줄이 엄청나게 길어서 관람 포기.





23. 암스테르담 시내를 여러 갈래로 관통하는 운하. 단풍이 예쁘게 드는 '가을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뿐.




24. 암스테르담을 떠난 지 몇 시간 후 벨기에의 안트페르펜의 중심 광장에 정말이지 '우연히' 닿았다.





25. 벨기에 브뤼셀에서 여장을 푼 뒤 맨처음 달려간 곳은 당연히 이곳 그랑 플라스.
      빅토르 위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장 콕토가 '화려한 극장'이라고 극찬했던 곳이다.




26. 현지 발음으로는 '그헝 쁠러스'로 불리는 브뤼셀 중심 광장의 눈부신 야경. (삼각대 이용, 노출시간은 5초)





27. 벨기에에서 이틀째. 브뤼셀에서 브뤼헤로 가다가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의 어느 카페. 벨기에 스타일이 느껴진다.




28. 쏟아지는 비를 뚫고 북해쪽으로 거슬러 올라간 브뤼헤의 어느 식당. 맛의 나라 답게 음식 맛이 일품이었다.





29. 축구를 보러 브뤼셀에서 이틀째 밤에도 전날 들른 맥주집을 찾았다. 루마니아에서 이주해 왔다는 맥주집 사장님.



30.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날 밤. 브뤼셀 광장을 들썩거리게 만든 아르헨티나 팬들.





31. 벨기에를 떠나 뤽상부르를 거쳐 다시 독일로 이동 중에 잠시 차에서 내려 '인적이 드문 울창한 숲'에서 잠시 휴식.





32. 독일의 휴양 도시 '트리어'로 이동하다가 잠시 차에서 내려 휴식 중 만난 풍경. 밀밭과 푸른 하늘이 잘 어울렸다.



33. 로마 시대의 유적이 유난히 많은 도시 트리어. 룩셈부르크와의 국경 가까이 모젤강(江)에 접해 있다.
     기원전 15년경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하여 로마의 마을이 건설되었다고.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황제의 목욕탕.




34. 석양이 깔리는 초저녁. 지팡이를 들고 구부정한 허리로 그늘진 광장을 조심스레 천천히 걸어가는 노신사와,
     그를 세심하게 부축하며 곁에서 따라 걷는 멋쟁이 할머니의 모습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었다. 한참이나 멍했다.




35. 트리어 중심 광장의 야경. 저녁때까지 사람들로 몹시 북적거렸는데 밤 10시가 가까워 지니 무척이나 고요했다.





36. 모젤강변 도시 트리어에 온 만큼 오늘 밤은 '모젤 와인'으로 마무리. 맛과 향기가 '너무나 그윽했다.'





37. '길이 544km에 걸쳐 흐르는' 모젤강변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백포도주로 유명한 '모젤 와인'의 주산지.




38. 하이델베르크에 와서 이번 여행중 처음으로 들른 한식당.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니 더 바랄 게 없다.





39. 하이델베르크에서 이틀째. 카를 테오도르 다리와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십여 년 만에 다시 보니 더욱 반갑다.





40. '1인당 20유로'라는 믿기 어려운 가격으로 티켓 4장을 확보,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멋진 음악연주회를 들었다.
      특히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던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 가운데 3악장을 들을 땐 감동에 젖어 거의 울 뻔했다.





41. 밤 10시 경 음악연주회를 마치고 나서니 하이델베르크 고성의 매혹적인 야경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42. 고성에서 내려다본 하이텔베르크 시내 풍경. 이날 밤 여기서 불꽃놀이도 볼 수 있었다. 마침 축제기간이었다.



43. 남부 독일의 퓌센에 도착하던 날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다. 경기가 끝나자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44. 통독후 처음으로 '월드컴 우승'에 도취된 독일 사람들. 아무에게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다들 '의기양양'했다.
     이번 여행에서 새삼 느꼈지만 독일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으로 '정말 강하고 튼튼하다' 싶었다.





45. 미국의 디즈니랜드가 '모델'로 삼았다는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일명 '백조의 성')
      문학과 오페라에 심취했던 루드비히 2세가 바그너 작품『로엔그린』의 파르지팔을 떠올리며 지었다고 한다.





46. 독일 퓌센을 떠나 오스트리아 잘츠감머굿으로 가는 길. 알프스 산자락이 자못 웅장하다.





47. 잘츠감머굿 알프스 산자락에 피어난 야생화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 '에델바이스'가 절로 떠오른다.




48. 일행들은 쉬겠다고 해서 나홀로 자동차를 몰고 빗길을 뚫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비가 쏟아지다가,
      금새 햇볕이 환하게 비춘다.
햇살에 비친 빗방울들이 파스텔 톤의 건물벽들을 희뿌옇게 채색한 듯하다.




49.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였던 잘츠감머굿. 인적은 드물고, 마을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앙증맞기만 하다.





50. 잘츠감머굿의 백미로 불리는 할슈타트. 방금까지 내렸던 비가 그치고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다.





51. 할슈타트의 호수 반대편 산자락엔 아직도 물안개가 가득 머물러 있다. 여기가 알프스의 깊은 산 속임을 실감.




52. 이 아름다운 곳까지 머나먼 길을 자동차로 달려왔으나 우린 여기서 고작 30분밖에 머물 시간을 내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여기에 올 땐 꼭 시간을 넉넉히 할애해서 이곳에서 '물놀이'도 좀 즐기고 갔으면 싶은 생각뿐.




53. 오스트리아를 떠나 다시 독일 뮌헨으로 이동하는 중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림같이 예쁜 풍경.



54. 어느새 기나긴 여행도 고작 이틀밤 밖에 남지 않았다. 밤 12시를 훌쩍 넘긴 늦은 시각 뮌헨의 슈바빙 거리.





55. 50년 전 독일로 이민오신 민사장님의 배려 덕분에 예정에 전혀 없었던 '골프'까지 즐겼다.
      운동을 끝낸 뒤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마시는 '바이스 비어' 맛이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각 2잔씩 마셨다.





56. 골프 라운딩 도중 우연히 '민사장님'을 알아본 한국 교민들과 이날 저녁 식당에서 다시 조우했다.
      저녁 식사 자리가 새벽 1시를 넘겨 겨우 끝났고, 이 분들과 자리를 옮겨가며 새벽3시까지 술자리를 즐겼다.





 * * *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래에 나열한 10권의 책을 샀다. 워낙 급작스레 떠나게 된 여행이라 저토록 가벼운(?) 책을 읽을 시간조차 별로 없어서 이 가운데 겨우 두 권만 달랑 읽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 두 권은 사진작가 백상현 님이 쓴 『내 생애 최고의 여행사진 남기기』와 『유럽에 취하고 사진에 미치다』였는데, 두 권의 책 속에 담긴 멋진 사진과 글들이 정말 '이번 여행'에 더없이 좋은 참고가 되었다.

네 권의 책은 정말이지 너무 무거워서 여행용 트렁크와 카메라 가방에 나눠 넣었다. 그 가운데 『BEST of Europe 230』과 『네덜란드/벨기에 미술관 산책』은 뮌헨에 착륙하기 전까지 다 읽었고, 나머지 두 권 『Just go 독일』과 『Just go 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프라하』는 여행을 다니며 틈틈이 찾아 읽었다. 'Just go' 시리즈는 여행 현장에서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가령 저녁을 먹을 음식점을 찾거나, 숙박할 호텔을 뒤질 때 등) 정말 유용했다.

나머지 네 권의 책은 외관만 보더라도 무척이나 예쁜데 아직까지 제대로 펼쳐보지 못해 뭐라고 말할 형편이 못 된다.

워낙 두서없이 갑자기 떠나게 된 여행이라 무엇보다 '예습 부족'을 몹시도 절감했던 여행이었다. 심지어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때 꼭 필요한 '비넷'을 어디서 구입해야 하는지도 '현장에서' 물어보며 해결하고 다닐 정도였으니,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다닌 여행지가 한둘이 아니었음은 불문가지였고, 일상다반사처럼 당연시 여겼었다.

비싼 비용과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떠나는 게 '여행'인 만큼 다음엔 이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그렇더라도 이번 여행 일정을 처음부터 구상하고,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까지도 미리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호텔 등 숙박 장소를 싼 값에 예약하고, 또한 국내에서 미리 준비한 네비게이션에 숙소와 방문 예정 도시를 일일이 '즐겨찾기'로 등록해 두는 등 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무척이나 많은 준비를 해주신 분이 계셨다. 그 교수님의 숨은 노고조차 없었더라면 우린 정말 엄청난 고생을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던 데다가 다소 무모했던 여행 일정이었지만 별다른 난관없이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 교수님의 꼼꼼한 준비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어느 누가 불쑥 '어디로 함께 여행가지 않을래?' 하고 물으면 그땐 또 생각이 달라질 게 틀림없겠지만. 아무래도 여행은 준비가 많을수록 더욱 알찬 여행이 되기 쉽다. 더구나 '여행 준비' 자체가 이미 여행의 일부분임과 아울러 여행의 즐거움을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며 끌어올릴 수 있는 때가 바로 여행 준비 단계에서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이다. 그러니 많이 준비할수록 여행의 즐거움 또한 더욱더 커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일 터이고.

언제든 멋진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시는 분들은 부디 평소에 미리 미리 많은 여행서를 두루 읽고 떠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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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일이면 동유럽으로...
    from Value Investing 2015-05-18 00:06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동유럽을 여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던 게 올해 3월 초순쯤 되었던 듯하다. 그런데 그동안 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여태 아무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내일이면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타야 한다. 속절없이 흘러간 두어 달의 세월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작년 7월에 감행했던 '17일 동안의 유럽 자유 여행 경험'이 이번 여행에 대한 준비 소홀에 크게 한 몫을 한 듯하다. 작년 여
  2.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공연 후기...
    from Value Investing 2015-11-23 09:22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은 그렇게도 크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의 그 힘은 무한히 크다. 어디를 걷든지 우리는 역사의 유적 위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키케로) 나는 그들의 용모와 자세와 의복을 고찰해 보기가 재미난다. "나는 이런 위대한 이름들을 내 입에 올려 보며, 그것을 내 귀에 울려 오게 한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면 이런 위대한 이름들 앞에 일어선다."(세네카) - 몽테뉴 * * * 사흘 전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내한 공연을 보고 왔다. 연주 프
  3.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공연 후기...
    from Value Investing 2015-11-23 09:39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은 그렇게도 크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의 그 힘은 무한히 크다. 어디를 걷든지 우리는 역사의 유적 위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키케로) 나는 그들의 용모와 자세와 의복을 고찰해 보기가 재미난다. "나는 이런 위대한 이름들을 내 입에 올려 보며, 그것을 내 귀에 울려 오게 한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면 이런 위대한 이름들 앞에 일어선다."(세네카) - 몽테뉴 * * * 사흘 전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내한 공연을 보고 왔다. 연주 프
  4.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들_모젤 강에 얽힌 짧은 추억들
    from Value Investing 2016-06-08 12:23 
    밀란 쿤데라의 소설 몇 권과 그가 쓴 에세이 『배신당한 유언들』을 읽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까지 단숨에 넘어 왔다. 이 기이한 '초기 소설'을 읽다 보니 문득 예전에 사 두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가 궁금해졌다. 라블레의 소설에 등장하는 '엄청난 리스트'가 혹시 그 책에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과연 그랬다. 그 책에 나오는 수많은 목록들 가운데에서도 '라블레의 리스트'는 단연 독보적인 데가
 
 
세실 2014-07-2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17일간의 여행이라니요^^ 멋진 풍경에 제가 막 설레입니다~~
트리어, 브뤼셀, 하이델 베르크 야경이 환타스틱합니다.
오스트리아도 꼭 가보고 싶네요.
고흐미술관이랑 암스테르담 운하는 가본 곳이라 조금 위안이 됩니다.


oren 2014-07-25 23:42   좋아요 0 | URL
몇 년 전에 세실 님께서 암스테르담에 가셨을 때 올려주신 글과 사진을 저도 봤더랬습니다.
그땐 세실 님이 무척이나 부러웠었지요. ㅎㅎ

여러 도시들의 아름다운 야경도 뺴놓기 어려운 볼거리였지만, 자동차를 몰고 여기저기 쏘다니며 마주친 끝없이 스쳐가는 여러 풍경들도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달라서, 먼 데서 찾아간 여행객에겐 참으로 커다란 볼거리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낯선 곳, 낯선 도시에서 각양각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는 일이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듯하구요~~

라로 2014-07-26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님께서 찍고 남기신 900여장의 사진을 다 보고싶은 걸요!!!
저는 예전 배낭여행 선두자로써 유럽 여행을 한 달동안 한 적이 있어서 가봤던 곳이지만
이렇게 오렌님의 사진으로 보니 까마득한 옛이야기처럼 기억조차 흐릿하네요~~~~.^^;;
오렌님 여행정보 공유하실 수 있으세요??? ^^
혹 가능하시다면 부탁드려요~~~~. 저도 열심히 돈 모아서 가족들이랑 차 렌트해서 유렵여행 하고 싶네요~~~~.^^
아~~~그 생각 만으로도 가슴이 뛰어요!! 사진 정말 잘 찍으세요!!

oren 2014-07-26 15:36   좋아요 0 | URL
아롬 님께서 예전에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셨다니, 그 때가 언제쯤이었을까 무척 궁금하네요. 아마도 까마득한 옛날 꿈많던 처녀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때 바라봤던 세상과, 지금 또다시 유럽을 여행하시게 되면 마주치게 될 세상은 무척이나 달리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저 역시 13년 만에 유럽을 다시 가 본 셈인데, '세상'은 비록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내 자신이 적잖이 변했음을 실감했으니까요.

여행 정보를 아롬 님께 알려드리는 데는 아무런 장애도 있을 수 없겠지요. 여행 후기의 full-version을 써 볼 생각이니까요. 저도 이번에 여행을 다니며 '네이버 블로그 검색'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찾아 활용한 적이 여러 번 있었고, 그런 여행 후기를 남겨주신 분들이 무척이나 고마웠답니다.

아롬 님께서 가족들과 자동차를 렌트해서 유럽을 여행하신다면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아주 즐겁게 다니실 수 있을 듯해요. 제가 이번 여행지에서 마음에 들어 추천해 드리고 싶은 음식점이나 호텔 혹은 팬션 등에 대한 정보를 아롬 님께서 나중에 '실제로' 유용하게 활용하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transient-guest 2014-07-29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ㅎ 사진으로 눈이 정화되는 것 같구요, 꼭 제가 다녀온 것 같네요. 운동 후에 마시는 시원한 바이스 비어는 또 얼마나 좋았을까요?ㅎㅎ 미국 서부지역에 살아서 그런지 유럽 스케줄은 쉽게 생각을 못하구요. coast를 따라서 위/아래로 다녀볼 생각합니다.

oren 2014-07-29 11:07   좋아요 0 | URL
저도 패키지 여행이 아닌 '자유 일정'으로 무려 17일 동안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자동차를 직접 몰아가며 여행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쉽지 않은 기회다 싶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다녀오게 된 것이구요.

미국 서부지역은 캘리포니아 해변을 따라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여행하기 아주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난 곳이니 님께서도 가끔씩 틈을 내어 여행을 다니시면 너무나 좋을 듯해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도 들어가면서 말이지요. (저는 1995년에 와이프랑 '절반쯤 자유일정'으로 미국 서부지역을 8박 9일 동안 여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서부 해안길은 겨우 LA에서 San Diego 까지만 가 봤을 뿐이네요.)

라일락 2014-08-07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보았던 곳들이 여러 곳 보이네요. 할슈타트는 정말 좋지요.
사진도 정말 잘 찍으시네요.

oren 2014-08-11 10:28   좋아요 0 | URL
라일락 님도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니 안 가 보신 데가 별로 없으실 듯싶어요.
할슈타트는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오래 머물다 오지 못해서 너무 아쉬운 곳이었어요..

오후즈음 2017-06-24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넘 즐겁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독일이 너무 기대됩니다. ^^

oren 2017-06-24 21:40   좋아요 0 | URL
제가 가 봤던 몇몇 장소에도 틀림없이 가 보실 테지요.
즐겁고 유쾌한 독일 여행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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