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Iole, Eurytios and Herakles at symposium. 600 BC. From Cerveteri.

 

 


그사이 여러 해가 지났다. 위대한 헤르쿨레스의 행적들은

온 세상을 메우고 의붓어머니의 미움을 충족시켰다.

그는 오이칼리아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다가 케나이움에서

윱피테르에게 서약한 제물을 바칠 준비를 했다. 그때 수다스런 소문이

한발 앞서, 데이아니라여, 그대의 귀에 들어갔으니, 거짓말과 참말을

섞기 좋아하고 처음에는 아주 작지만 거짓말을 통해 커지는 소문은

암피트뤼온의 아들이 이올레에 대한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그 말을 믿고 새로운 사랑의

소문에 주눅이 들어 처음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련하게도

눈물로 자신의 슬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뒤 곧 그녀는 "내가

왜 울지?" 라고 말했다. "시앗은 내 눈물을 보고 좋아할 텐데.

그녀가 이리로 오고 있으니 서둘러 계략을 짜야지,

할 수 있을 때, 다른 여자가 아직 내 침상을 차지하기 전에.

항의할까, 아니면 침묵할까? 칼뤼돈에 돌아갈까, 여기 머물까?

집을 나갈까? 아니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단 가로막고 볼까?

멜레아그로스 오라버니, 내가 당신의 누이라는 점을

기억하고는 끔찍한 범행을 준비하여 시앗을 죽임으로써

모욕당한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입증하면 어떨까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134∼151행

 

 


그의 피는, 마치 발갛게 단 무쇠를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담갔을 때처럼, 쉿쉿 소리를 내며 불타는 독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거기에는 절제란 없었다. 탐욕스런 화염이 내장을 삼키고,

전신에서는 시커먼 땀이 흘러내렸으며, 그의 힘줄들은

탁탁 튀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독이 퍼져 골수마저

녹아내리자 그는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소리쳤다.

"사투르누스의 따님이여, 내 파멸을 보고 즐기시오!

즐기시란 말이오. 잔인한 분이여, 그대는 높은 곳에서 이 재앙을

내려다보며 잔혹한 마음으로 실컷 좋아하시오!

그리고 내가 내 적에게도, 그러니까 그대에게도 동정을

받아야 한다면, 이토록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고

고역을 위해서 태어난 내 이 가증스런 목숨을 거두어가시오.

죽음은 나에게는 선물이오. 의붓어머니가 주기에 알맞은 선물이오.

대체 이러자고 내가 이방인들의 피로 신전을 더럽히던 부시리스를

제압했던가요? 이러자고 내가 잔혹한 안타이우스에게서

어머니의 힘을 빼앗았던가요? 이러자고 내가 세 모습의

히베리아의 목자를 겁내지 않았으며, 케르베루스여,

머리가 셋 달린 그대를 겁내지 않았던가? 이러자고, 내 손들이여,

너희들은 힘센 황소의 뿔들을 눌렀던가? 이러자고 엘리스가,

스튐팔루스 호의 물결이, 파르테니우스의 숲이

너희들의 노고를 알았던가? 이러자고 너희들의 용기에 힘입어

내가 테르모돈의 황금으로 만든 허리띠를 가져왔으며,

이러자고 잠자지 않는 용이 지키던 사과들을 빼내 왔던가?

이러자고 켄타우루스족이 내게 대항할 수 없었고, 이러자고

아르카디아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멧돼지가 내 앞에서 몸을

사렸던가요? 이러자고 잃음으로써 자라나고 힘이 두 배로 늘어나는

휘드라에게도 끄덕없었던가요? 인간의 피를 마시고 살찐

트라키아의 말들과, 시신들로 가득 찬 구유를 보고는 그것들을

보자마자 내가 그 주인과 말들을 메어쳐 죽인 것은 또 어떤가요?

네메아의 거대한 사자는 내 이 팔에 목이 졸려 주워 있었소.

이 목덜미로 나는 하늘을 떠메고도 있었소.

윱피테르의 잔인한 아내는 고역을 부과하는 데 지쳐도,

나는 그것을 이행하는 데 지치지 않았소. 하나 지금 용기로도

대항할 수 없고 어떤 무기로도 대항할 수 없는 이상한 역병이

나를 엄습하고 있소.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불이 내 허파 속

깊숙한 곳을 돌아다니며 내 사지를 날름날름 먹어치우고 있소.

하나 에우뤼스테우스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소.

하물며 신들이 있다고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170∼203행

 

 

 

헤라클레스와 케르베로스의 전투 장면, 흑회식 암포라 , BC 510경, 루브르 박물관

 

 

 

 

 


댓글(0) 먼댓글(1)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 여인들』
    from Value Investing 2014-08-20 01:20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 두 사람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테바이에 사는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몰래 동침하여 얻은 아들이다. 제우스의 정실부인인 헤라는 남편과 딴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를 몹시 미워하여 틈이 날 때마다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훌륭한 무인으로 성장하여 테바이의 왕 크레온의 딸 메가라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곧 헤라의 저주를 받아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Erysichthon Sells His Daughter Mestra, Johann Wilhelm Baur(1607∼1640)

 

 


여신은 그자가 자신의 소행으로 어느 누구의 동정도 살 수 없게

되지 않았던들 남의 동정을 살 만도 한 그런 벌을 궁리했으니,

여신은 그자가 허기에 시달리다 죽게 할 참이었소.

하나 여신은 허기를 몸소 찾아갈 수는 없었기에 (케레스와 허기가

만나는 것을 운명이 금했기 때문이오.) 산의 여신들 가운데

한 명을, 시골에 사는 산의 요정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소.

'얼음처럼 차가운 스퀴티아의 가장 먼 변경에는 대지에

곡식도 나지 않고 나무도 나지 않는 황량한 불모지가 있다.

그곳에는 나태한 한기와 해쓱함과 오한과 수척한 허기가

살고 있다. 너는 허기에게 저 신성을 모독하는 자의 죄 많은

뱃속에 숨으라고 일러라! 그리고 어떤 풍요함도 그녀를

이기지 못하게 하고, 그녀가 싸움에서 내 힘을 이기게 하라!

길이 멀다고 네가 겁먹지 않도록 너는 내 수레와 용들을 받아

그것들을 고삐로 몰려 하늘을 날아가도록 하라!'

······

요정은 허기를 찾다가 그녀가 돌투성이의 들판에서

손톱과 이빨로 얼마 안 되는 풀을 뜯는 것을 보았소.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두 눈은 움푹 들어가 있고,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른 말라 갈라졌고, 입안은 태(苔)로 거칠어졌고,

살갗은 딱딱하게 말라 안에 있는 내장이 들여다 보였소.

그녀의 앙상한 좌골(坐骨)들은 음푹 들어간 허리 아래로 튀어나와

있었고, 배는 빈 자리에 불과했소. 그대는 그녀의 가슴이 허공에

매달려 있고, 척추의 뼈대에 간신히 붙들려 있다고 생각할 것이오.

그녀는 수척하여 관절이 굵어 보였고, 무릎은 부어올랐으며,

복사뼈는 지나치게 큰 혹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782∼888행

 

 


그자는 더 많이 뱃속으로 내려보낼수록 더 많이 요구했소.

마치 바다가 전 대지로부터 강물을 받아들여도

그 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멀리서 흘러 온 강물들까지 들이키듯이,

마치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이 영양분을 거절하는 일 없이

무수한 통나무들을 불태우고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요구하고

많을수록 그로 인하여 더욱더 탐욕스러워지듯이,

꼭 그처럼 불경한 에뤼식톤의 입은 그 모든 음식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소. 그에게는 음식이 곧 음식을

먹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먹을수록 늘 공복감을 느낄 뿐이었소.

······
하지만 마침내 재앙의 힘이 모든 재고를 다 먹어치우고

그의 중병(重病)이 더 많은 먹을거리를 요구하게 되자,

그 가련한 자는 제 사지를 찢어 그것을 제 입으로

물어뜯기 시작하더니 제 몸을 먹음으로써 제 몸을 먹였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834∼878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앞에서 칼뤼돈의 멧돼지를 공격하는 펠레우스와 멜레아그로스. 기원전 6세기의 병 그림.

 

 


멜레아그로스는 녀석의 파멸을 안겨주던 머리에 한 발을 얹고는

이렇게 말했다. "노나크리스의 소녀여! 그대는 내게 권리가 있는

전리품을 받아 내 영광을 내가 그대와 나눠 갖게 하시오!"

그 자리에서 그는 센털이 곤두서 있는 가죽과 커다란 엄니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 머리를 그녀에게 전리품으로 주었다.

그녀에게는 선물도 그렇지만 선물을 준 사람도 마음에 들었다.

하나 다른 사람들은 시기했고, 무리 전체가 웅성거렸다. 그들 중에서

테스티우스의 아들들이 팔을 내밀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여인이여, 자, 그것을 내려놓고 우리 몫인 명예를 가로채지 마시오!

그대의 미색을 믿다가 속지 마시오. 사랑의 포로가 된 기증자가

그대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란 말이오!"

그리고 그녀에게서는 선물을, 그에게서는 선사하는 권리를 빼앗았다.

마보르스의 아들은 참다못해 분개하여 이를 갈며 "그렇다면,

남의 명예을 빼앗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행동과 말로 하는 위협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배우시오!" 라고 말하고는 설마 그럴 줄 모르고

서 있던 플렉십푸스의 가슴을 자신의 불의한 칼로 찔렀다.

톡세우스는 형의 원수를 갚고 싶기도 하고 형과 같은 운명이 될까봐

겁이 나기도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하나 오래 망설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으니, 첫 번째 살인으로

아직도 뜨뜻한 창을 멜레아그로스가 아우의 피로 다시 데웠던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425∼444행

 

   

멜레아그로스 대리석상. 영국 국립 미술관.  

 

 

알타이아와 멜레아그로스의 죽음


그러고 나서 그녀는 네 번이나 장작개비를 불속에 던지려다

네 번이나 손을 멈췄다. 그녀 안에서는 어머니와 누나가 싸웠고,

그 두 가지 이름이 하나의 가슴을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때로는 일어날 범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때로는 타오르는 분노가 그 붉은 빛깔을 그녀의 두 눈에 주곤 했다.

그녀의 얼굴은 어떤 때에는 무자비한 짓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

같았고, 어떤 때에는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고 그대는

믿었으리라. 그녀의 마음속의 사나운 열기가 눈물을 말려버렸지만

그래도 또 눈물이 흘러 나오곤 했다. 바람과 조류(潮流)가 서로

반대쪽으로 낚아채면 배가 두 가지 힘을 느끼고는

갈팡질팡하며 그 둘에게 복종하듯이, 그와 다르지 않게

테스티우스의 딸도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번갈아 분노를 가라앉혔다가 그것을 다시 돋우곤 했다.

하지만 종내 누이가 어머니보다 더 우세해지기 시작하자,

혈족(血族)의 그림자들을 피로 달래고자 그녀는 불경(不敬)을

통하여 경건해지기로 작정했다. 죽음을 가져다주는 불이 세어지자

"저것이 내 혈육을 태우는 장작더미가 되기를!" 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462∼478행

 


 

펠레우스와 씨름하는 아탈란타, Black-figured hydria, 550 BC

 

 

 



칼뤼돈의 멧돼지를 협공하는 멜레아그로스와 여걸 아탈란테
, 기원전 6세기의 접시 그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카루스의 추락, 토마소 단토니오 만추올리(Tommaso d'Antonio Manzuoli), 1570 ~ 1571, 베키오 궁전

 

 

그는 아들에게도 가르쳐주며 말했다. "이카루스야, 내 너에게

일러두거니와, 중간을 날도록 하라. 너무 낮게 날면 네 날개가

물결에 무거워질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불에 타버릴 테니까.

그 둘의 중간을 날아라! 내 너에게 명령하노니, 너는 보오테스와

헬리케와 칼을 빼어든 오리온은 보지 말고 내가 인도하는 대로

진로를 잡도록 하라!" 그리고 그는 아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며

몸에 익지 않은 날개들을 아들의 양어깨에 맞춰주었다.

아버지의 두 손은 떨렸다. 그는 아들에게 입맞추었다. 하나 그는 두 번

다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는 날개를 타고 떠올라

앞장서서 날며 자신의 동행자를 염려했다. 마치 높다란 둥지에서

부드러운 애송이들을 대기 속으로 데리고 나온 새처럼.

그는 따라오라고 아들을 격려하며 치명적인 기술을 가르쳤고,

그 자신 날개를 퍼덕이며 아들의 날개를 뒤돌아보았다.

떨리는 낚싯대로 고기를 잡던 낚시꾼이든, 지팡이에

기대선 목자든, 쟁기의 손잡이에 기대선 농부든 더러는

이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아들이야말로 신이라고 믿었다. 어느새 유노에게 봉헌된

사모스가 왼쪽에 있었고 오른쪽에는 레빈토스와 꿀이 많이 나는

칼륌네가 있었다. (델로스와 파로스는 지난 지 오래였다.)

그때 소년은 대담한 비상(飛翔)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하여

길라잡이를 떠나 하늘 높이 날고 싶은 욕망에 이끌러

더 높이 날아올랐다. 얼마나 솟아올랐는지 가까워진 작열하는 태양이

그의 날개를 이어 붙인 향내 나는 밀랍을 무르게 만들었다.

밀랍이 녹아버리자 그는 맨 팔들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허우적거렸다.

하나 노가 없어 공중에 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던 그의 입은 검푸른 바닷물에 삼켜졌고,

그 바닷물은 그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닌 불행한 아버지는 "이카루스야, 이카루스야,

너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곳에서 너를 찾아야 하느냐?

이카루스!" 하고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203∼233행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le Vieux), 1560년경, 벨기에 왕립미술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그 계획이 마음에 들어. 그래서 나는 나와 함께 내 조국을

지참금으로서 넘겨주고, 그렇게 전쟁을 끝내기로 결심했어.

하지만 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수비대가 입구들을 

지키고 있고, 성문들의 열쇠들은 아버지가 갖고 계셔.

내게 두려운 것은 아버지뿐이고, 내 소원을

지연시키는 것도 아버지뿐이니, 나야말로 불행하구나!

신들께서 내게 아버지가 없도록 만들어주신다면 좋으련만! 확실히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는 신이야. 운명의 여신은 비겁자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아. 다른 소녀가 이토록 큰 정염에 불타고 있다면

사랑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벌써 기꺼이 파괴해버렸겠지.

그런데 왜 나보다 남이 더 용감해야 하지? 나는 불 사이로도,

칼 사이로도 감히 지나갈 수 있어. 하나 여기서는 불이나

칼 같은 것은 필요 없어. 내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머리카락이야.

그것이 나에게는 황금보다 귀중해. 그 자줏빛 머리카락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며, 내가 소원을 이루게 해줄 테니까."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동안 근심의 가장 위대한 치유자인

밤이 다가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그녀도 점점 담대해졌다.

낮 동안의 근심에 지칠 대로 지친 인간의 마음을 첫잠이 감싸주는

고요한 시간이었다. 딸이 소리 없이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아아,

이 무슨 범행인가!) 아버지의 정수리서 그의 운명이 달려 있는

머리카락을 빼앗았다. 그녀는 그 불의한 전리품을 손에 넣은 다음

범죄로 얻은 전리품을 들고 성문 밖으로 나가더니 적군의 한가운데를

지나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공적을 믿었던 것이다.) 곧장 왕에게

다가갔다. 왕이 놀라자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이런 짓을 하도록 나를 설득했어요. 나는 니수스 왕의 딸

스퀼라로 여기 내 조국과 나의 페나테스 신들을 그대에게 바쳐요.

나는 그대 외에 다른 대가는 원치 않아요. 자, 내 사랑의 담보로

자줏빛 머리카락을 받으세요. 내가 지금 그대에게 바치는 것이

머리카락이 아니라, 아버지의 머리라고 믿어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죄지은 오른손으로 그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그러자 미노스는

그녀가 내민 것을 피했고, 전대미문의 범행에 질겁하며 대답했다.

"오오, 우리 시대의 치욕이여, 신들께서는 자신들의 세계로부터

그대를 추방하시기를! 육지도 바다도 그대를 받아주지 말기를!

잘 알아두어라. 나는 내 세계에, 윱피케르의 요람이었던 크레테에

그대 같은 괴물이 발을 들여놓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67∼100행

 

 

그대를 낳은 것은 어떤 암소도 사랑한 적이 없는 사나운

진짜 황소였어요. 나의 아버지 니수스시여, 나를 벌하소서!

내가 방금 배신한 성벽들이여, 너희들은 내 고통을 기뻐하라!

내 고백하건대 나는 그래 싸고 죽어 마땅하니까요.

하지만 불경한 내가 해코지한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나를

죽이게 하라! 왜 내 범죄로 승리를 거둔 그대가 내 범죄를

추궁하는 거죠? 아버지와 조극에 대한 내 이 범죄는 그대에게는

봉사가 아니었나요! 나무로 만든 암소 안에 들어가 황소를

속이고는 뱃속에 괴물을 차고 다니던 그 간부야말로

진정 그대에게 어울리는 배필예요. 내 말이 그대의 귀에

들리나요? 아니면 배은망덕한 자여, 그대의 함선들을

날라주는 그 바람이 내 말을 쓸어가 없애버리나요?

이제야말로 파시파에가 그대보다 황소를 더 선호했던 것이

이상하지가 않아요. 그대는 황소보다 더 야만적이니까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124∼137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