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프로크리스의 죽음, 피에로 디 로렌조(Piero di Lorenzo), 1486∼1510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그녀를 보자 나는 정신이 아찔하여

그녀의 정절을 시험해보겠다는 계획을 포기할 뻔했소.

나는 사실을 고백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에게 입맞추고 싶었으나

간신히 이를 억제할 수 있었소. 그녀는 슬픔에 잠겨 있었고

(그녀는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어떤 여자도 그녀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었소.) 납치된 남편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소. 포쿠스여,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웠겠는지, 슬픔 자체가

그녀에게 얼마나 어울렸겠는지 한번 상상해보시구려!

얼마나 자주 그녀의 정절이 나의 유혹을 물리쳤는지,

얼마나 자주 그녀가 '나는 한 분을 위해 나를 간직하고 있어요.

그이가 어디 계시든 나는 그 한 분을 위해 내 사랑을

간직하고 있어요.' 라고 말했는지 내가 굳이 말해야겠소?

제 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만하면 정절의 시험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는 성에 차지 않아 나 자신에게

부상을 입히려고 싸우기를 계속했소. 나는 그녀와의 하룻밤을 위하여

그녀에게 상당한 재산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선물에 선물을

추가함으로써 마침내 그녀를 흔들리게 만들었소.

그러자 자신을 해치는 사기꾼인 나는 소리쳤소.

'사악한 여인이여, 나는 유혹자인 체했을 뿐 실은 그대의 남편이오.

배신자여, 나는 그대의 부정을 직접 목격했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그녀는 부끄럽고 창피하여 말없이 음흉한 남편과

사악한 집에서 달아났소. 그녀는 내가 미워 모든 남성을

증오하며 산속을 헤맸고, 디아나가 하는 일들에 열중했소.

그리하여 나는 혼자 남게 되자 사랑의 불길이 더 맹렬해지며

뼛속까지 스며들었소. 나는 용서를 빌며 내가 죄를 지었음을

인정했고, 그런 큰 선물이 주어진다면 나도 선물의 유혹에

넘어가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고백했소.

내가 그렇게 고백하자, 그녀는 먼저 자신의 자존심이 모욕당한 것을

복수한 뒤야에 돌아와서 나와 행복하고 화목하게 몇 년을 보냈지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7권 726∼752행

 

 

프로크리스의 죽음이 있는 풍경, 클로드 젤레(Claude Gellée), 1647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아우로라와 케팔로스,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남작, 19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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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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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이아쿠스가 한숨을 쉬며 슬픈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시작은 눈물겨웠으나 나중에는 행운이 따랐소. 처음 일은 빼고

나중 일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지금 나는 순서대로

이야기하되 장황한 이야기로 그대를 지체시키지 않겠소.

지금 그대가 기억했다가 묻고 있는 자들은 뼈와 재가 되어

누워 있소. 그들과 더불어 내 왕국의 얼마나 큰 부분이 사라졌던가!

끔찍한 역병이 불공평한 유노의 노여움으로 인하여

내 백성들을 엄습했는데, 그것은 이 나라가

그녀의 시앗의 이름으로 불리자 그녀가 우리를 미워했기 때문이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7권 517∼524행

 

 

역병은 불쌍한 농부들에게 다가가 큰 피해를 주더니

마침내 도시의 성벽 안에서도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었소.

처음에는 내장이 고열로 마르더니, 열이 잠복해 있다는 증거로

살갗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졌소. 혀는 열기에 까칠까칠해지며

부어올랐고, 두 입술은 뜨거운 바람에 바짝 마른 채

숨막히는 대기를 들이마시려고 헐떡거리는 것이었소.

그들은 침상도, 어떤 종류의 이불도 견디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

얼굴을 아래로 하고 땅에 누웠소. 하지만 땅바닥으로 인하여

몸이 식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인하여 땅바닥이 데워졌소.

역병을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그리하여 사나운 재앙이

의사들 자신에게 덤벼드니, 의술이 그 임자들에게 해가 되었던 것이오.

누구든지 더 가까이서 더 성실하게 환자를 돌봐줄수록

그만큼 더 빨리 죽음의 길로 들어섰소. 그리고 살아날 가망이 없고,

이 역병의 끝은 죽음뿐이라는 걸 알게 되자 그들은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무엇이 유익한지 관심도 없었소.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들은 염치 불구하고 도처에서

샘가나 강가나 널찍한 우물가에 매달려 있었으니, 그들의 갈증은

아무리 마셔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시지 않았던 것이오.

그들 중 많은 자들이 일어설 기력이 없어 바로 그 물속에서

죽어갔소. 그런데도 어떤 자들은 그 물을 마셧소.

가증스런 침상에 넌더리가 날 대로 난 가련한 환자들은

밖으로 뛰어나가거나, 또는 일어설 기운이 없을 경우에는

땅바닥에다 몸을 굴려 제 집에서 도망쳤으니, 각자에게는

제 집이 죽음을 가져다주는 곳으로 보였던 것이오. 역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던 터라 그 탓을 협소한 공간에 돌렸던 것이지요.

그대는 그들 중 더러는 빈사 상태로 아직도 서 있을 수 있는 동안

길거리를 헤매고 있고, 더러는 땅바닥에 누워 눈물 속에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흐릿해진 눈을 하늘을 향하여

굴리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오. 그리고 그들은 죽음에게

붙잡힌 바로 그 자리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낮게 드리운 하늘의 별들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는 것이었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7권 552∼581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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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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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손과 메데이아], 귀스타브 모로, 1865년, 오르세 미술관

 

 

 

이아손과 메데아 

 

그녀는 오랫동안 버텼지만 이성으로는 자신의 광기를 이길 수 없자

"메데아야, 싸워봤자 소용없어! 누군지는 몰라도 어떤 신이 너를

방해하고 있어." 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런 것이거나 아니면 이와 비슷한 것일 거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왜 아버지의 명령이 너무 가혹해 보이는 거지?

그 명령은 사실 너무 끔찍해. 왜 나는 본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그가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내가 이토록

두려워하는 까닭이 뭐지? 불행한 소녀여, 타오르는 불길을

네 소녀의 가슴에서 떨쳐버리도록 해. 할 수만 있다면!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어. 하나 어떤 이상한 힘이

싫다는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 욕망은 이래라 하고, 이성은 저래라

하는구나. 더 나은 것을 보고 그렇다고 시인하면서도

나는 더 못한 것을 따르고 있어. 이 공주님아, 왜 너는 이방인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우며, 왜 낯선 세상과 결혼할 생각을 하는 거지?

이 나라도 네가 사랑할 만한 것을 줄 수 있어. 그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신들에게 달려 있어. 그래도 그가 살았으면 좋겠어!

이 정도는 사랑하지 않더라도 기원할 수 있는 거라고.

사실 이아손이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지?

비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아손의 청춘과 가문과

용기에 반하지 않을 수 있어?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준수한 그 용모에 누가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7권 10∼28

 

 

회춘하는 아이손

그사이 불 위에 올려놓은 청동 솥 안에서는 강력한 약재가

하얗게 거품을 튀기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솥 안에다 그녀는 하이모니아의 골짜기에서 베어온

뿌리들을 씨앗들과 꽃들과 검은 액즙과 함께 끓이고 있었다.

거기에다 그녀는 가장 먼 동방에서 구해온 돌들과

오케아누스의 썰물에 씻긴 모래알들을 던져 넣었다.

거기에다 그녀는 또 보름달이 뜰 때 모은 흰 서리와,

불길한 올빼미의 날개 및 살점과, 야수의 얼굴을

인간의 얼굴로 둔갑할 수 있는 늑대 인간의 내장도 넣었다.

거기에는 또 키뉩스 강에 사는 가느다란 물뱀의

비늘 많은 껍질과 장수하는 수사슴의 내장도 없지 않았는데,

그것들에다 그녀는 또 아홉 세대를 산 까마귀의 부리와

대가리도 넣었다. 야만족의 여인은 이것들과

그 밖에 또 이름을 알 수 없는 수천 가지 물건으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고 나서 자애로운 올리브나무의 잘 마른 가지로

크게 저으며 맨 위 것을을 맨 아래 것들과 섞었다.

그러자 보라, 뜨거운 솥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오래된 막대기가

처음에는 초록빛이 되더니 오래지 않아 나뭇잎을 입었고

이어서 갑자기 올리브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불길이 속이 빈 솥 밖으로 거품을 튀겨내어

뜨거운 방울들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땅이 초록빛이 되며 꽃과 부드러운 풀이 돋아났다.

그것을 보자마자 메데아는 칼집에서 칼을 빼어

노인의 목을 따고는 늙은 피를 모두 쏟아보낸 다음 그의 혈관을

자신이 만든 영액으로 채워 넣었다. 그것의 일부는 입으로,

일부는 상처로 들이마시고 나자 아이손의 수염과 머리털이

잿빛을 잃더니 검은색을 회복했다.

잘 돌보지 않은 수척하고 창백한 모습은 멀리멀리 도망가고

움푹 팬 주름들은 새 살로 메워졌으며

사지는 팔팔해졌다. 아이손은 이것이 사십 년 전의

자기 모습임을 기억하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7권 262∼293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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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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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멜레와 프로크네,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 1861, 퐁텐블로 성

 

 

 

그리고 그가 장인을 알현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악수했고, 그들의 만남은 순조롭게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는 찾아온 용건과 아내의 부탁을 말하며 처제를 자기와 함께

가게 해주면 빠른 시일 안에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보라, 필로멜라가 화려하게 성장하고 들어왔다.

하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 화려했다. 물의 요정들과 나무의 요정들이

숲 속을 거닐 때의 모습이라고 우리가 들었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도 그녀처럼 세련되고 우아할 수 있다면 말이다.

소녀를 보자 테레우스는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으니,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익은 곡식이나 마른 풀이나

축사에 쌓아놓은 건초 더미에 불을 지를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미모는 실제로 그럴 만도 했다. 하나 그의 경우 타고난

욕정에 더욱 자극 받은 데다, 원래 그 지방 사람들이 애욕에 약했다.

그렇듯 그는 자신의 부족과 지신의 악덕 탓에 타올랐던 것이다.
테레우스는 자신의 왕국을 다 거는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호위하는 시녀들과 그녀의 충성스런 유모를 매수하고

엄청난 선물로 그녀를 유혹하거나, 아니면 그녀를 납치하여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납치된 그녀를 지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미친 사랑의 포로가 된 만큼 감행하지 못할 짓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의 가슴은 그 안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지체되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프로크네의 부탁을

열심히 되풀이하며 그녀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 했다.

사랑은 그를 달변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요구가 지나치다 싶으면

그때마다 그것은 프로크네의 뜻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도 그녀가 그렇게 시킨 양 그는 간청에 눈물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하늘의 신들이시여, 얼마나 많은 눈먼 밤이 인간의 가슴속을 지배하는

것입니까? 테레우스는 자신의 범죄 계획 자체에 의해 경건하다는

평을 들었고 자신의 범행으로 칭찬까지 들었던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447∼474

 

 


태양신이 이륙 십이, 12궁을 모두 통과하자 일 년이 지나갔다.

필로멜라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감시자가 그녀의 도주를

막고 있고, 단단한 돌로 쌓은 외양간의 담들은 튼튼했으며,

말 못하는 입은 당한 일을 알릴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매우 창조적이게 하고, 역경은 약삭빠르게 하는 법이다.

그녀는 야만족의 조잡한 베틀에다 날실을 걸고는 흰 바탕에

자줏빛 글자를 짜 넣어 자신이 당한 범행을 새기고 있었다.

그것이 완성되자 그녀는 그것을 한 시녀에게 건네주며 왕비에게

갖다 주라고 손짓으로 부탁했다. 부탁 받은 여인은 자기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프로크네에게 갖다 주었다.

야만적인 폭군의 아내는 그 천을 펼친 후 자신의 아우의

비참한 운명을 읽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고통이 그녀의 말문을 닫았고,

혀는 분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정의와 불의를

가리지 않고 앞으로 내달았고, 마음속은 온통 복수의 일념뿐이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71∼586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칼을 쓰거나,

칼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쓸 때란다.

아우야, 나는 어떤 범행이든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어.

나는 횃불로 이 왕궁을 불지르고 간악한 테레우스를

불속에 던져 넣거나, 칼로 그자의 혀를 자르고

눈을 뽑고 너에게 치욕을 안긴 사지를 절단하거나,

수천의 상처로 그자의 죄 많은 영혼을 몸에서 내쫓을 것이다!

어떤 큰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어.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될지

나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어." 프로크네가 말하고 있는 동안

이튀스가 다가왔다. 아들을 보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난 그녀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아, 너는 아버지를

얼마나 닮았는가!" 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러 말 않고

속으로 조용히 분을 끓이며 끔찍한 범행을 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이 다가와 어머니에게 인사하며

작은 팔로 목을 껴안고 소년답게 응석을 부리며

입맞추자 어머니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분노가 한풀 꺾였고, 그녀의 두 눈은

그녀의 의사와는 달리 본의 아니게 흘러내린 눈물로 젖어 있었다.

하나 일단 지나친 모정으로 자신의 결심이 흔들린다고 느끼자

그녀는 다시 아들에게서 아우의 얼굴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왜 한 명은 사랑스런 말을

건넬 수 있는데, 다른 한 명은 혀를 잘리고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왜 그는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그녀는 언니라고 부르지 못하지?

판디온의 딸이여, 대체 어떤 남편과 결혼했는가? 너는 못난 자식이야!

테레우스 같은 남편에게 성실하다는 것은 범죄야!"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611∼635

 

 

그러고도 그녀는 얼굴조차 돌리지 않았다. 소년에게는 이 한 번의

가격으로도 충분했을 터인데 필로멜라가 칼로 그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그의 사지를 해체했다.

이어서 그 중 일부는 청동 솥에서 부글부글 끓었고,

일부는 꼬챙이에 꿰여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방 안에는 피가 냇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어서 아내가 아무 영문도 모르는 테레우스를 이 잔치에 초대하며,

자기 고국의 풍속에 따른 신성한 잔치로 남편만이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시종들과 하인들을 따돌렸던 것이다.

테레우스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왕좌 위에 높다랗게 앉아

혼자 식사를 하며 제 살로 제 뱃속을 채웠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마음이 눈멀어 "이튀스를 이리 불러주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로크네는 자신의 잔인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안겨준 파국을 맨 먼저 알리고 싶어서

"그대가 찾는 사람은 안에 있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가 재차 묻고 부르자 필로멜라가 자신이 미쳐서

살해한 소년의 피를 머리에 뒤집어쓴 그대로 튀어나오더니

핏방울이 뚝뚝 듣는 이튀스의 머리를 그의 아버지의 얼굴에다

내던졌다. 그녀는 이때처럼 자신의 혀가 말할 수 있기를, 알맞은 말로

자신의 희열을 표현할 수 있기를 더 바란 적은 없었을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642∼660


 

아들 이튀스의 머리를 마주한 테레우스, 루벤스, 1636~1638년,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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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4-08-1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변신이야기> 문장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으시는가 보군요. ㅎㅎ 저는 예전에 이윤기님 번역본으로 읽다가 (아마도 바쁜 일 생기면서) 마무리 못한 상태에서 그냥 멈췄는데요. Oren님께서 다시 한 번 재도전의 동기부여를 해주시네요. ^^

oren 2014-08-19 01:50   좋아요 0 | URL
야클 님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는 정말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다고 올 봄과 여름에 걸쳐 깔끔하게 다 읽었답니다. 그런데 그 로마 시인이 그 책 속에서 기가 막히게 펼쳐놓은 문장들이 자꾸만 저를 잡아 당기는 듯하고, 또 '이야기' 하나 하나 마다에 얽힌 그림들도 좀 더 찾아보고 싶어서 이러고 있답니다.

이윤기 님이 번역한 다섯 권짜리는 작가님이 손수 찾아가 보고 카메라에 담아 온 사진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유익하더군요. 다만, '원전'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들도 많고, '원전'에 나오는 이야기들 가운데 빼먹은 부분도 많아서 제게는 많이 아쉽더라구요. 야클 님께서도 이윤기 님이 쓰신 다섯 권짜리를 다 읽으신 후에는 오비디우스의 원전을 천병희 선생님께서 번역한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ㅎㅎ

야클 2014-08-1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윤기님 다섯 권 짜리 <그리스 로마 신화 > 말고 민음사에서 나온 < 변신이야기 1,2> 두 권 짜리가 있거든요. 천병희님 과는 조금 달리 산문식으로 번역해 놓아 또 다른 느낌을 준답니다. ^^

oren 2014-08-19 11:40   좋아요 0 | URL
아아.. 이윤기 님께서 번역하신 <변신 이야기>를 말씀하셨던 거로군요. 그 책이 있다는 걸 제가 깜빡했군요. 이윤기 님께서 번역하신 <변신 이야기>는 또다른 읽는 맛이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신화'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지니신 분이고 또 번역하시는 글솜씨도 훌륭하신 분이니까요. 그런데 오비디우스가 지은 시를 그분께서 굳이 산문으로 옮겨 번역하신 걸 보면 번역하실 때 나름 상당한 고민을 하셨겠다 싶은데, (천병희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책들이 지닌 '특유의 꼼꼼한 주석'과 비교하여) 그분께서 달아놓으신 '주석'은 어떤지 문득 궁금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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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나와 뤼키아의 농부들], 얀 브뤼겔

 

 

 

티탄의 딸은 물가로 다가가 땅에 무릎을 꿇고는

시원한 물을 마시려고 했지요. 한데 농부의 무리들이

마시지 못하게 했소. 그래서 여신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소.

'왜 그대들은 물을 못 마시게 하는 거죠? 물은 누구나 마실 권리가

있어요. 자연은 햇빛도 공기도 맑은 물도 개인의 사유 재산으로

만들지 않았어요. 나는 만인에게 주어진 선물을 찾아온 거예요.
한데도 그것을 달라고 그대들에게 탄원하고 간청하고 있어요.

여기서 나는 멱을 감거나 지친 사지를 씻으려는 것이 아니라

갈증을 식히려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입이 마르고, 목안이 타고, 목구멍에서 말도 나오지 않아요.

한 모금의 물은 내게 넥타르가 될 것이며, 나는 물과 함께

생명을 받았다고 고백하게 될 거예요. 그대들은 물로 내게 생명을

주게 될 거예요. 내 젖가슴에서 그대들을 향하여 작은 손을

내밀고 있는 이 어린 것들을 불쌍히 여기세요!'
그리고 과연 아이들은 팔을 내밀고 있었소.

여신의 부드러운 말에 어느 누가 감동되지 않을 수 있겠소?

하지만 여신이 간청해도 그들은 한사코 마시지 못하게 하며 여신이

떠나지 않으면 봉변을 당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욕설까지 퍼부었소.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그들은 손발로 호수의 물을

탁하게 했고, 심술 부리느라 이리저리 뛰어 돌아다님으로써

호수의 맨 밑바닥에서 부드러운 진흙을 휘저어 올렸지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346∼365

 

 


Latona Turning the Lycian Peasants into Frogs, Johann Georg Plat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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