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의 죽음



"신화는 당신이 걸려 넘어지는 곳에 당신의 보물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 조셉 캠벨, 『신화의 이미지』中에서

 * * *



트로이아 전쟁에서 가장 용감했던 그리스군 장수, 아킬레우스 
기원전 450년경, 항아리 세부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일리아스』에서 인용)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까마득한 옛날에 벌어진 전쟁 이야기를 살펴보면 꼭 인간들만 전쟁에 열중한 게 아니었던 듯하다. 신들끼리 맞서 싸운 전쟁도 많았고, 인간과 신들이 한데 뒤섞여 전쟁을 벌인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인간들이 벌인 수많은 전쟁 가운데 신들까지 덩달아 나서서 치열하게 다툰 전쟁으로 말하자면 트로이아 전쟁만큼 유명한 전쟁도 드물지 싶다. 그 전쟁은 시작부터 결말까지 온통 '신들의 개입' 없이는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여서, 인간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싸움조차 '신들의 대리전'쯤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도대체 그리스의 그 수많은 장군과 병사들과 일천 척의 함선들은 무엇을 위해 머나먼 바다 건너 트로이아 벌판 위에서 1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가족들과 고향을 등진 채 자신들의 목숨을 적군들의 목숨과 맞바꾸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써야만 했던가. 트로이아의 이름난 장수들과 수많은 백성들과 이웃나라에서 모여든 동맹군들은 또 무엇 때문에 머나먼 바다에서 건너온 그리스 동맹군들에 그토록 오래 시달린 끝에 '완전한 파멸'에 이르고야 말았는가.

이런 궁금증을 누구라도 한번쯤 가져 본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다. 이 점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입심좋고 재치있기로 소문난 인물인 몽테뉴가 짐짓 모른 체하고 넘어갔을 리 만무하다. 그가 트로이아 전쟁을 두고 넉살좋게 너스레를 떨며 뇌까린 대목 하나만 들어봐도 충분하다.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

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질투 등, 수다스런 마나님 둘이 서로 할퀴며 대들게 할 만큼 성나게 할 것도 못 되는 원인들,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며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런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인물이며, 동기가 된 자들의 말이면 바로 믿어 주어야 할 일인가?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파리스의 심판(우테웰 작)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새긴 황금 사과를 잔칫상에 던진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간 중에 제일 미남자인 파리스에게 심판받자며 그를 찾아간다. 파리스는 절세미인 헬레네를 품에 안겨주겠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준다.
(천병희 옮김,『에우리피테스 비극전집1』에서 인용)



신들과 인간들은 도대체 왜 트로이아 전쟁이 몽테뉴의 말마따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 무려 10년이나 계속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싸우기를 그치고 서로 화해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그렇게 '기가 막힌 전쟁'을 서로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내게는 도리어 이상하게 여겨진다.(물론 전쟁의 핵심 당자사인 두 사람, 즉 파리스와 메넬라오스가 서로 '일대일 대결'을 벌여 그 결과에 따라 '전쟁을 종식'하자며 '담판'을 벌인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메넬라오스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파리스가 비겁하게 도망치고, 신들이 다시 전쟁을 부추기면서 그런 '전쟁 중단 시도'는 결국 헛된 일이 되고 만다.)

물론 전쟁이 한번 제대로 불붙고 나면 그게 어디 중간쯤에서 서로 어중간하게 타협하고 쉽게 물러설 만큼 간단한 일이던가. 더구나 트로이아 전쟁의 경우 역사적으로 따져 보더라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3,000년 이상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그 전쟁의 흔적이나마 엿볼 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오래 전에 벌어졌던 일이었으니만큼 우리의 순진하고도 박애주의적인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생결단의 끝장을 보는 전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싯구로 시작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 호메로스,『일리아스』


그렇다. 분노라는 격정이야말로 한번 터져 나오면 기어이 끝장을 봐야 하는 성질임을 그 누가 모르랴. 그래서 트로이아 전쟁 역시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혹은 '전쟁의 원인'에 대해 '확실한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 전쟁을 쉽게 멈출 수 없었으리라는 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분노라는 격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굳이 『일리아스』를 들추고 아킬레우스를 만날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쉽게 그런 격정에 빠지게 되는가는 우리의 경험만 되돌아 본더라도 충분하며, 나는 그저 여기에 심리학의 대가와도 같은 몽테뉴가 들려주는 얘기를 조금 덧붙여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한 호메로스를 거들어 주고 싶다.


분노라는 격정, 격정이 갑자기 꾸며낸 궤변

분노는 그 자체에 쾌락을 느끼며, 아부하는 격정이다. 얼마나 여러 번 우리는 그릇된 원칙 아래 혼동되어서, 누가 와서 우리들 앞에 정당한 변호와 변명을 제시하면, 우리는 진리나 실속 없는 일에 대해서 분개하는가!

 * * *

이렇게 힘든 것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

 * * *

분노라고 하는 무기

다른 무기를 가지고는 우리가 그 무기를 움직이지만, 분노라고 하는 무기는 반대로 우리를 움직인다. 우리의 손이 무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손을 조종한다. 이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그런데 호메로스가 무사 여신께 노래해 달라고 간청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일리아스』의 핵심 주제이기 때문에 가볍게 요약하고 넘어갈 문제가 결코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킬레우스의 분노'야말로 결국 『일리아스』에 담긴 이야기의 '전부'라고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일리아스』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이 전횡을 일삼으며 그를 모욕하고 그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마저 빼앗아 가자 '전쟁 참가에 대한 동기'가 적잖이 부족했던 아킬레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익히 알려진 대로 아킬레우스는 그 후 전쟁터에서 철수하게 되고, 그후 그리스 군대는 연전연패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다른 지휘관들의 여러 충언을 듣고 나서 마침내 아가멤논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결국 스스로 체면을 구기는데 그 장면이 볼 만하다. 오만했던 아가멤논은 저자세로 돌변하여 자신이 어거지로 빼앗은 브리세이스를 아킬레우스에게 돌려줄 뿐만 아니라 많은 보상금까지 덧보태서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 때 아가멤논이 늘어놓은 휘황찬란한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그대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이름난 선물을 열거해보겠소.
아직 불이 닿지 않은 세발솥이 일곱 개, 황금 열 탈란톤,
번쩍이는 가마솥 스무 개 그리고 잰 걸음으로
경주에서 상(賞)을 탔던 힘센 말 열두 필.
그리고 훌륭한 공예에 능한 여인 일곱 명을 주겠소.
이들은 그 자신이 잘 지은 레스보스를 함락하던 날
내가 고른 여인들로 아름다움에서 모든 여인들을 능가하오.
이들을 그에게 줄 것이며, 또 이들 속에는 얼마 전에 그에게서
빼앗아 온 브리세우스의 딸도 끼어 있을 것이오.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남녀간에 으레 그러하듯 그녀의 침상에 오르거나
그녀를 가까이한 적이 없음을 엄숙히 맹세하겠소.
이 모든 것을 지금 당장 그는 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앞으로
신들께서 프리아모스의 큰 도성을 함락케 해주신다면,
아카이오이족이 전리품을 분배할 적에 그도 안으로
들어가 황금과 청동을 배에 가득 싣게 하고
또 아르고스의 헬레네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트로이아 여인 스무 명을 손수 고르게 하시오.
또 우리가 축복 받은 땅인 아카이오이족의 아르고스에 돌아가면,
그는 내 사위가 될 것이며 나는 그를 넘치는 풍요 속에서
자라는 내 귀염둥이 아들 오레스테스와 동등하게 대우할 것이오.
훌륭하게 지은 나의 궁전에는 딸이 셋 있소.
크뤼소테미스와 라이디케와 이피아낫사 말이오.
그중에서 그가 마음에 드는 애를 골라 구혼 선물 없이 그냥
펠레우스의 집으로 데려가게 하시오. 게다가 일찍이 어느 누구도
출가하는 딸에게 준 적이 없는 많은 지참금을 주겠소.
그리고 나는 그에게 번화한 일곱 도시를 줄 것이오.
······
그가 분노를 거둔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행하겠소.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9권 121∼157행

 


그때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사절단 멤버는 오뒷세우스, 아이아스, 포이닉스였는데, 이 역사의 현장을 솜씨좋은 화가들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아가멤논의 사절단을 맞는 아킬레우스>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9세기 

저토록 애를 썼지만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전세가 점점 트로이아 쪽으로 기울어 마침내 해안에 올려 놓은 함선을 둘러싼 방벽이 뚫려 그리스 군대의 함선마저 불에 탈 지경에 이르렀을 때, 네스토르가 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에게 '그의 무구를 빌려 입고 잠깐만이라도 나서 달라'고 부탁하게 되고, 파트로클로스가 울며 아킬레우스에게 애원하자 그때서야 겨우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절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는 자신의 무구와 함께 부하들을 내주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걸친 파트로클로스가 갑자기 나타나자 트로이아 군은 혼비백산했고, 그걸 보고 신이 나서 적진 깊숙이 쳐들어간 파트로클로스는 결국 적장 헥토르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만다.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친구의 시신과 마주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얼마나 세게 불타올랐을지는 여기서 내가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의 통곡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바다의 여신이었던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나타날 정도였고, 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달래며 '솜씨 좋기로 이름난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하여 무구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만드는 헤파이스토스와 그의 일꾼들(로마의 돋을새김)
(천병희 옮김,『소포클레스 비극전집』에서 인용)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마침내 친구를 죽인 헥토르에게 닿았고, 그가 헥토르를 죽인 뒤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녔으면서도 그의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친구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인 헥토르를 죽이고 난 이후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경기까지 치르고 나서도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있었다.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이윽고 경기도 끝나고 백성들은 각자 자신의 날랜 함선들로
돌아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저녁 식사와
달콤한 잠을 즐길 참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전우를 생각하며 울었고, 모든 것을 정복하는 잠도
그만은 붙잡지 못했다.
그는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파트로클로스의 남자다움과 고상한 용기를 그리워했다.

아아, 전사들의 전쟁과 고통스런 파도를 헤치며 그와 더불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고, 얼마나 많이 고생했던가!

그는 이런 일들을 생각하며 때로는 모로 누웠다가
때로는 바로 누웠다가 또 때로는 엎드리기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바다의 기슭을 정처 없이 거닐었고, 새벽의 여신은
그가 모르게 바다와 해안 위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러면 그는 날랜 말들에게 전차 밑에서 멍에를 얹고는
끌고 다니기 위해 헥토르를 전차 뒤에 매달았다.
그러고는 헥토르를 끌고 죽은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세 번
돌고 나서 다시 막사로 돌아와 쉬었고, 헥토르는 먼지 속에
엎드러져 길게 누워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아폴론이
헥토르를 불쌍히 여겨 죽었어도 그의 살을 온갖 손상에서
지켜주었으니, 그는 황금 아이기스로 그의 온몸을 덮어
아킬레우스가 끌고 다녀도 그를 찢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1∼21행

 
이처럼 '아킬레우스의 분노' 때문에 헥토르의 시신이 열흘이 넘도록 수습되지 못하자 트로이아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아폴론이 마침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아폴론은 포세이돈과 함께 제우스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그 벌로 트로이아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성벽을 쌓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폴론이 여러 신들과 대책을 나눈 끝에 트로이아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애끓는 심정으로 아킬레우스에게 애원하자 그도 마침내 분노를 가라앉히며, 우선 전사한 자신의 절친 '파트로클로스'에게 다시 한번 '양해'를 부탁한다.

"파트로클로스여! 하데스의 집에서라도 내가 고귀한 헥토르를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내주었다고 듣거든 나를 원망 마시오.
그는 욕되지 않을 만큼 몸값을 바쳤으니까요.
그대에게도 나는 그중에서 적당한 몫을 나눠줄 것이오."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592∼595행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다.
 기원전 480년경, 술잔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이런 말로 친구를 달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저녁과 포도주까지 대접하고 잠자리를 내주었을 뿐 아니라 헥토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를 수 있도록 열하루 동안 서로 휴전을 약속하고 헥토르의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옷을 입혀 프리아모스에게 넘겨 주었다. 새벽이 밝을 무렵 헥토르의 시신이 마침내 트로이아 성으로 돌아오자 온 도성이 비탄하며 애도했고, 시신이 침상에 눕혀진 뒤로 만가(輓歌)를 선창하는 여인들의 애절한 노래와 울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미망인이 된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맨 먼저 호곡을 선창했고 뒤이어 자식을 잃은 그의 어머니 헤카베가 뒤를 이었고 세 번째로 전쟁의 불씨나 마찬가지 신세였던 헬레네가 다음과 같이 호곡을 선창했다.
 

"헥토르여, 모든 시아주버니들 중에서도 내가 마음속으로
가장 아끼던 분이여! 내 남편은 신과 같은 알렉산드로스이며
그이가 나를 트로이아로 데리고 왔지요.
아아, 그전에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가 그곳 고향을 떠나온 지도 어언 스무 해가 되었어요. 하지만
혹시 시아주버니든 시누이든 고운 옷을 입은 동서든 시어머니든
- 시아버지께서는 친아버지처럼 늘 상냥하게 대해주셨지요-
다른 사람이 나를 집 안에서 꾸짖기라도 하면, 그대는 언제나
그대의 상냥한 마음씨와 친절한 말로 그를 좋게 달래며
그러지 못하게 말리곤 했지요. 그래서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그대와 함께 내 자신의 불행을 슬퍼하는 거예요.
이제 드넓은 트로이아에는 내게 상냥하고 친절히 대해줄 사람은
달리 아무도 없고 모두들 나를 보고 몸서리치니 말예요."

 - 호메로스, 『일리아스』제24권 762∼775행

 

트로이아 사람들은 아흐레 동안 수많은 장작들을 날라 왔고, '열 번째로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는 새벽이 밝았을 때' 헥토르의 시신은 높다란 장작더미 위에 올려졌다. 마침내 헥토르의 시신을 불태운 장작불마저 모두 꺼지고 그의 뼈가 수습되어 항아리에 담긴 뒤 땅 속에 묻히고, 그 위로 큰 돌들을 촘촘히 쌓아 올린 봉분마저 다 만들어지자 헥토르의 장례가 모두 끝났다. 그와 동시에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도 15,693행의 맨 끝에 닿는다.

『일리아스』는 짧게 요약하자면 결국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리아스』만 살펴봐서는 '전쟁의 원인'과 '전쟁의 결말'을 소상하게 알기가 어렵다.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른바 서사시권(敍事詩圈 epikoskyklos)이라는 더 큰 전체를 살펴야 한다.『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결국 8편으로 이루어진 '트로이아 서시시권'의 일부인 셈인데, 호메로스가 쓴 두 작품은 두 번째와 일곱 번째 이야기에 해당된다. 

전쟁의 원인이 된 '파리스의 심판'과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을 다루는『퀴프리아』(Kypria)가 첫 번째 이야기이고, 『일리아스』에 이어지는 세 번째 이야기인『아이티오피스』(Aithiopis)에서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맞아 아킬레우스가 죽는 장면을 노래하고,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들을 놓고 다투는 '무구 재판'과 '트로이아 목마'에 의한 일리오스의 함락은 네 번째인 『소(小) 일리아스』와 다섯 번째인 『일리오스의 함락』에 담긴다. 전쟁을 노래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나머지 세 편은 전쟁이 끝난 뒤의 '귀향'을 다루는데, 여섯 번째가 『귀향』(Nostoi), 일곱 번째가『오뒷세이아』, 여덟 번째가 아들 텔레고노스에게 살해되는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담은『텔레고노스 이야기』(Telegoneia)이다.

'트로이아 서사시' 가운데 유독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이 온전히 전해진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 어려운 연구과제에 도전하는 사람도 쉽사리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그 풀기 어려운 비밀 가운데 하나의 단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조금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 책에서 저자는 수많은 시인들의 여러 작품들을 예로 들어가며 '시학'을 강의하는데, 작시(作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을 무엇보다도 '플롯의 통일'에서 찾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점에 대해서는 호메로스를 따를 시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런데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 있어서도 뛰어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숙련에 의했든 천분에 의했든 바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는 『오뒷세이아』를 쓸 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뒷세우스가 파르낫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뒷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일리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8장 中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호메로스의 탁월한 점'을 거듭 강조하는데,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그가 왜 10년 동안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사건만을 다뤘으면서도, 『일리아스』가 영원불멸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트로이아 전쟁'과 '고대 그리스 비극'과의 관계도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호메로스는 앞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초와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하고, 그 외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데 「함선 목록」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퀴프리아』와 『소(小) 일리아스』의 작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 결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로부터는 각각 한 편, 또는 많아야 두 편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데 비하여 『퀴프리아』로부터는 다수의 비극이,8  그리고 『소일리아스』로부터는 8편 이상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구 재판』,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에우뤼필로스』, 『걸인 오뒷세우스』, 『라케다이몬의 여인들』, 『일리오스의 함락』, 『출범(出帆)』, 『시논』및 『트로이아의 여인들』이 그것이다.


주석
 

8 『파리스의 심판』, 『헬레네의 납치』, 『그리스 군의 집결』, 『스퀴로스의 아킬레우스』, 『텔레포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말다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등 많은 비극의 소재가 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23장

 


호메로스의 두 작품만 하더라도 '너무 길어서' 읽기가 쉽지 않은데 '트로이아 서사시' 8편이 지금까지 온전히 모두 남아 있었더라면 사정이 어땠을까. 아마도 그 작품들을 모두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도전이었을 게 틀림없다. 이런 사정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소위 '그리스 3대 비극작가'가 쓴 작품만 하더라도 수백 편에 달하는데 그나마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 내려오는 작품은 고작 33편에 불과하니 얼마나 다행(?)인가.(참고로,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불리는 소포클레스의 경우, 총 123편에 달하는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작품명이 알려진 것은 114편이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후기작들인 비극 7편뿐이다.)





이처럼 '트로이아 서사시'도 방대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비극' 또한 엄청난 수의 작품이 쓰여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호메로스의 두 작품과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33편의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들만 읽어봐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우리는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온갖 영웅들과 신들의 이야기를 고대 시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호메로스의 두 작품 말고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33편의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트로이아 서사시'를 다룬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참고로,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오이디푸스왕』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은 또다른 '서사시권 서사시'인 '테바이권 서사시'를 다룬 작품들이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 개요>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점을 이번에 내친 김에 한번 정리해 봤더니 33편 가운데 무려 절반에 가까운 16편의 작품이 '트로이아 서사시'를 다룬 작품이다. 이들 작품들을 대략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해 본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 아가멤논 가문(아가멤논,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오레스테스)의 비극.
둘째, 전쟁 영웅들(아이아스, 오뒷세우스,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등)의 이야기.
셋째, 트로이아 여인들(헤카베, 안드로마케, 헬레네 등)의 비극.


오뒷세우스가 폴뤼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장면을 보여주는 술잔(기원전 550년경)

법도 도시도 없이 흩어져 유목 생활을 하는 야만적인 거인족 퀴클롭스들 중에서도 폴뤼페모스는 가장 힘이 센 데다가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폴뤼페모스가 아무렇지 않게 동료들을 잡아 먹자 오뒷세우스가 포도주를 권해 취하게 만든 다음, 발갛게 단 말뚝을 박아 눈멀게 하고는 도망친다. 『오뒷세이아』에서 그것은 동굴에 갖힌 자들의 정당방위지만, 『퀴클롭스』에서는 전우들을 잡아먹은 데 대한 보복이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에서 인용)


그런데 이제껏 살펴본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고대 그리스의 문학 작품들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한 여인의 행방'이 몹시 궁금하다. 그녀는 바로 '헬레네'다. 그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고, 또 결과적으로 그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또 그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송두리째 뒤바뀌었으니, 그녀의 행방뿐만 아니라 그녀의 '언행과 처신'에 대해서까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다시금 뒤졌더니 깜짝 놀랄만큼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흐리멍덩한 기억력도 때로는 몹시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 처음으로 헤로도토스를 읽을 때 접했던 이야기를 지금까지 까먹지 않고 그대로 기억했더라면 '깜짝 놀랄만큼' 흥미로울 일도 아예 없었을 뻔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헬레네는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아예 거기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주장이 매우 구체적인 근거와 함께 상당한 신빙성을 지니고 있어서 결코 쉽게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헬레네의 행방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굳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너무나 당연히' 트로이아에 있었다고 그동안 철석같이 믿어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파리스가 그리스로 건너가 헬레네를 납치해 오기로 결심한 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계획적인 범행(?)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오 공주'와 '에우로페 공주'와 '메데이아 공주'에 대한 납치 사건이 있었고, 파리스는 단지 그런 '선행 사례'를 보고 배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즉,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살펴 본다면), 아르고스의 왕이었던 이나코스의 딸 이오는 해외무역에 종사하던 포이니케(페니키아)인들에게 납치되었는데, 그들이 아이귑토스(오늘날의 이집트)와 앗쉬리아의 화물을 싣고 여러 곳을 들르다가 그중 한 곳인 아르고스에 들러 물건을 팔다가 '이오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파는 물건을 사기 위해 아르고스의 많은 여인들과 함께 이오 공주도 해변으로 내려왔는데, 그때 포이니케인들이 서로 부추기며 여인들을 덮쳤고, 이오는 몇몇 여인들과 함께 사로잡혀 포이니케인들의 배에 태워져 아이귑토스로 끌려갔다는 것이다.(그게 사실이라면 '이오 신화'에 바탕을 둔 '암소가 건넌 여울'이라는 뜻의 '보스포러스 해협'은 뭐가 되는가.)

어쨌든 그 뒤 몇몇 헬라스인들이 포이니케의 튀로스에 상륙해 에우로페 공주를 납치하면서 그들(헬라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 사이는 서로 '장군멍군'이 되었다고 한다.



분노하는 메데이아(외젠 들라크루아 작)
헌신과 사랑의 대가로 남편 이아손에게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남편을 지식 잃은 아비로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식을 살해하는 질투와 분노의 화신이 된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에서 인용)

 

그러나 그 뒤 페르시아인들에 따르면, 헬라스인들이 두 번째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헬라스인들은 전함을 타고 콜키스의 아이아와 파시스 강으로 가 일단 그곳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서 메데이아 공주를 납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콜키스의 왕이 헬라스로 전령을 보내 납치 행위에 대해 보상금을 지불하고 딸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헬라스인들은 "당신들도 아르고스의 공주 이오를 납치하고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우리도 당신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기를, 그로부터 한 세대 뒤 프리아모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이 이야기를 듣고 헬라스에서 아내를 납치해 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먼젓번 납치 행위들도 벌 받지 않았으니 그도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되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헬레네를 납치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헬라스인들은 처음에 사절단을 보내 헬레네를 돌려주고 그녀를 납치한 대가로 보상금을 청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에 대해 트로이아인들은 메데이아를 납치해 갔던 일을 들먹이며 "당신들도 보상금은커녕 메데이아도 내주지 않았거늘 상대로부터 정녕 보상금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로?" 라고 말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中에서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공주 혹은 미녀 납치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심심찮게 일어났던 '유서깊은 내력을 지닌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펼치면 '헬레네의 행방'이 여러 권에 걸쳐 상세하게 나오는데, 앞서 잠깐 소개한 이야기에 뒤이어 '헬레네'가 다시 등장하는 무대는 아이귑토스이다. 프로테우스라는 멤피스 출신의 남자가 페로스의 왕위를 계승했는데, 시설이 잘 갖춰진 프로테우스의 성역 안에 있는 '이방의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진 신전이 바로 '헬레네에게 바져진 신전'이라는 것이 헤로도토스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헬레네가 한동안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들었으며, 특히 그 신전이 '이방의 아프로디테'의 신전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그렇고, 아프로디테의 수많은 신전들 가운데 여신에게 '이방의'라는 별칭이 붙은 곳은 그곳뿐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헬레네에 관해 묻자 사제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파르테에서 헬레네를 납치하여 고국으로 항해하던 중 아이가이온 해에서 폭풍을 만나 아이귑토스 앞바다로 표류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바람이 불자 결국 아이귑토스의, 지금은 카노보스 하구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물고기 염장(鹽藏) 업소들에 상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 바닷가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있었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어느 집 노예든 그곳으로 피신하여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표시로 몸에 신성한 낙인이 찍히게 되면 아무도 그에게 손댈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관습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의 몇몇 하인들이 이 신전에 그런 법이 있음을 알게 되자 그의 곁을 떠나 신의 탄원자들로서 신전 안에 눌러앉았다. 그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해코지하려고 그를 고발하며 헬레네에 관한 이야기와 그가 메넬라오스에게 저지른 부당 행위를 남김없이 일러바쳤다. 그들은 사제들뿐 아니라 네일로스 강의 이 하구의 간수인 토니스란 자에게도 그를 고발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3장



 

그들의 고변을 들은 토니스는 즉시 멤피스에 있는 프로테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한 이방인이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자는 테우크로스의 자손으로 헬라스에서 불경한 짓을 저질렀나이다. 그자는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의 아내를 유혹하여 그녀와 함께 막대한 제물을 싣고 도망가던 중 바람에 떠밀려 전하의 나라로 표류하였였나이다. 저희는 그자가 벌 받지 않고 배를 타고 떠나게 해야 하나이까, 아니면 그자가 갖고 가던 것을 빼앗아야 하나이까?" 이 전갈에 대해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냈다.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에게 불경한 짓을 했다는 그자가 누구이건, 그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으니 그대들은 그자를 붙잡아 내 앞에 데려오도록 하라!"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4장



 

이 말을 듣자 토니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체포하고 그의 함선들을 억류했다. 그리고 헬레네와 재물들과 탄원자들과 함께 알렉산드로스를 멤피스로 데리고 갔다. 그들이 모두 대령하자 프로테우스가 엘렉산드로스에게 그가 누구며 어디서 배를 타고 왔는지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가 선조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고향 이름을 말하고 어디서 배를 타고 오는 길인지도 말했다. 프로테우스가 그에게 어디서 헬레네를 손에 넣었는지 물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더듬대며 사실을 말하지 않자, 탄원자가 된 하인들이 그의 말을 반박하며 그가 저지른 불의한 짓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이윽고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만약 내가 바람에 떠밀려 내 나라로 표류해 온 어떤 이방인도 죽이지 않는 것을 내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저 헬라스인을 위해 그대를 응징했을 것이오. 악당이여, 그대는 그에게 환대를 받고도 그에게 가장 불경한 짓을 저질렀소. 그대는 그의 아내를 유혹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정열의 날개를 타고 그대와 함께 도망치도록 그녀를 꼬드겼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리로 오기 전에 그대는 그대를 환대한 주인의 집을 약탈했소.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방인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 여인과 재물은 그대가 가져가도록 허락하지 않고, 그대를 환대한 그 헬라스인이 와서 가져갈 때까지 맡아둘 것이오. 그대와 그대의 일행에게 이르노니, 3일 안으로 배를 타고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대들을 적으로 취급할 것이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5장



 

사제들에 따르면, 헬레네는 그렇게 해서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호메로스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가 채택한 다른 이야기만큼 그의 서사시에 적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이야기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려가다가 표류하여 포이니케의 시돈에 갔었다고 알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데서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디오메데스의 무훈'에서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시행은 다음과 같다.

    그곳에는 시돈의 여인들이 온갖 솜씨를 다 부려 만든 옷들이
    간직되어 있었으니, 이 여인들은 신과 같은 알렉산드로스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헬레네를 데리고 오던 길에
    넓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시돈에서 손수 데려왔던 것이다.

이 시행들을 보면 호메로스가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쉬리아는 아이귑토스의 이웃 나라고, 시돈 시를 건설한 포이니케인들은 쉬리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6장



 

이 시행들과 이 구절은 『퀴프리아』118 가 호메로스가 아닌 다른 시인의 작품이라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 『퀴프리아』의 시인은 순풍이 불고 바다가 잔잔하여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스파르테를 떠난 지 3일째 되던 날 일리온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표류했다고 말하고 있다. 호메로스와 『퀴프리아』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자.

118 『퀴프리아』(Kypria)는 단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이른바 '서사시권 서사시'들의 하나로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그리고 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7장



 

내가 사제들에게 일리온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헬라스인들이 말하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묻자, 그들은 메넬라오스에게 직접 물어 알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헬레네가 납치된 뒤 헬라스인들의 대군이 메넬라오스를 돕기 위해 테우크로스의 나라로 가서 그곳에 상륙한 다음 진지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일리온으로 사절단을 보냈는데, 메넬라오스도 그들과 함께 갔다고 한다. 사절단은 성내에 들어오자 헬레네와, 알렉산드로스가 훔쳐 간 재물들을 돌려주고 범죄행위에 대해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테우크로스 자손들은 맹세를 하든 않든 후일에도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하는데, 자기들은 헬레네도 문제의 재물들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들은 모두 아이귑토스에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귑토스 왕 프로테우스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기들이 보상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헬라스인들은 자기들이 우롱당하고 있다고 믿고는 포위 공격 끝에 결국 도시를 함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를 함락해도 헬레네는 보이지 않고 종전과 같은 말을 듣게 되자, 헬라스인들은 처음 들은 말을 믿게 되었고 메넬라오스를 프로테우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8장



 

아이귑토스에 도착한 메넬라오스는 네일로스 강을 거슬러 멤피스까지 올라가 사건의 전말을 사실대로 말하고는 큰 환대를 받았고, 무탈한 헬레네와 자신의 재물들을 모두 돌려받았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그렇게 환대받았음에도 아이귑토스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그는 출항하고 싶었지만 역풍이 계속 불어 발이 묶이자 몹쓸 짓을 생각해내어, 그곳 주민들의 아이 두 명을 붙잡아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그의 비행이 탄로 나 아이귑토스인들이 분개하여 추격해 오자 그는 함선들을 이끌고 곧장 리뷔에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어디로 갔는지 아이귑토스인들도 내게 말해줄 수 없었다. 사제들에 따르면, 그들은 이런 일들의 일부는 탐문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은 확실히 알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19장



 

이상이 아이귑토스의 사제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헬레네에 관해 그들이 한 말에도 동의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헬레네가 일리온에 있었다면 알렉산드로스가 동의하든 말든 헬라스인들에게 반환되었을 것이다. 프리아모스도 그의 다른 친척들도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와 동침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자기 몸과 자식들과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려 할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그러고 싶었겠지만 수많은 트로이아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우다 전사하고, (우리가 서사시를 믿어야 한다면) 프리아모스 자신의 아들들도 교전 때마나 두세 명씩 죽게 된다면, 생각건대 프리아모스는 설사 그 자신이 헬레네와 동거한다 해도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헬레네를 아카이오이족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는 왕위 계승자가 아닌 만큼 노왕 프리아모스를 대신해 전권을 휘두를 처지도 아니었다. 그의 형님으로, 그보다 더 남자다운 헥토르가 프리아모스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헥토르는 자신과 모든 트로이아인들에게 안겨준 엄청난 불행 때문에라도 말썽꾸러기 아우를 비호해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만에. 트로이아인들에게는 내줄 헬레네가 없었던 것이고, 사실을 말해도 헬라스인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된다면, 신께서 트로이아를 쑥대밭을 만드신 것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큰 악행에는 엄한 신벌(神罰)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인간들에게 명명백백히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내 생각이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그것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권 120장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헤로도토스의 이러한 주장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 바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헬레네』이다. 여성들의 심리묘사에 대해 유달리 탁월한 면모를 보였던 그가 '헬레네의 복잡미묘한 심정'을 노래하기에는 아무래도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 트로이아 보다는 아이귑토스에 머물고 있는 헬레네를 그리는 것이 맞춤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여기서 잠깐 '헬레네가 전 남편 메넬라오스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헬레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헬레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더 이상 지난 일을
탄식하며 슬퍼하지 않을래. 내 남편을
되찾았으니까. 그이가 트로이아에서 돌아오기를
여러 해 동안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메넬라오스

당신은 나를 갖고, 나는 당신을 갖고 있소. 긴긴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여신의 속임수를 알 수 있었소.
 

         헬레네

나는 기뻐서 눈물이 나요. 하지만 그것은
고통의 눈물이 아니라, 환희의 눈물이에요.

 

    메넬라오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누가 이런 일을 생각이나 했겠소?

         헬레네

천만뜻밖에 나는 당신을 가슴에 안고 있는걸요.

   메넬라오스

나도 마찬가지요. 나는 당신이 이데 산 기슭의 도시로,
일리온의 불행한 성탑으로 도망간 줄 알았소.
정말이지, 어떻게 당신이 내 집을 떠날 수 있었소?

         헬레네

아아, 쓰라리도다. 당신이 거슬러 올라가는 그 재앙의 근원은!
아아, 쓰라리도다, 당신이 캐묻는 그 이야기는!

    메넬라오스

말해보시오. 신께서 주신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야 하오.

 - 《헬레네》648-663행



에우리피데스는『메데이아』를 비롯하여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여인'을 유난히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만큼 그가 '트로이아 전쟁 때문에' 돌연 비극적 운명의 급류 속으로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던 여러 여인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일일이 따로 등장시켜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의 작품 가운데 '헬레네의 언행과 처신'과 관련하여 특히 인상적인 대목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은 『트로이아 여인들』을 빼놓기 어려운데, '전쟁이 끝난 뒤 전리품이 된 트로이아 여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도 드물지 싶다.

그런데 우리의 주된 관심은 여전히 '헬레네'에게 쏠려 있으므로 그녀와 관련된 인상깊은 대목 '두 장면'만 간략히 소개해 보고 싶다. 우선 첫 번째로는 헥토르의 아내인 안드로마케가 주된 화자로 나오는 장면이다. 그녀는 '전쟁에서의 패배'에 따른 후속 조치로 그리스 군의 손에 곧 죽게 될 자신의 어린 아들 때문에 비탄에 빠진 채 울부짖으면서도 끝내는 결국 그런 비극을 초래케 한 근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인 '헬레네'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못한다.


     안드로마케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아, 둘도 없이 소중한 내 아들아!
네가 이 불쌍한 어미 곁을 떠나 적의 손에 죽게 되다니.
네 아버지의 용맹이 네게는 아무런 덕이 되지 못하는구나.
아아, 내 불행한 결혼 침상과 결혼식이여,
너희들이 전에 나를 헥토르의 집으로 인도했던 것은
나로 하여금 다나오스 백성들을 위한 제물이 아니라,
풍요한 아시아의 왕이 될 아들을 낳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내 아들아, 울고 있구나. 네 불행을 느끼는 게냐?
너는 왜 나를 꼭 붙잡고 내 옷에 매달리며,
새끼 새처럼 내 죽지 밑으로 파고드느냐?

헥토르는 너를 구해주려고 그 이름난 창을 집어 들고
지하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네 아버지의 친척들도,
프뤼기아인들의 군대도 마찬가지다.
너는 비참하게도 높은 곳에서 거꾸로 떨어져
애도해주는 이도 없이 숨을 거두게 되는구나.
오오, 내 품에 안긴 이 어린 것, 어미에게 더없이 귀여운 것!
오오, 달콤한 체취! 내 이 가슴으로 포대기에 싸인
너를 기른 것도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고,
지치도록 걱정하고 애쓴 것마저 허사가 되었구나!

이제 마지막으로 네 어미를 사랑해다오! 너를 낳아준
이 어미에게 바싹 붙어 네 두 팔로 내 목을 껴안고
내 입에 네 입을 맞추어다오!
헬라스인들이여,
그대들은 야만족에게나 어울릴 잔혹한 짓을 생각해냈구려.
그대들은 왜 아무 죄 없는 이 애를 죽이는 거요?
오오, 튄다레오스의 딸이여, 그대는 결코 제우스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단언하건대 수많은 아버지한테서,
말하자면, 먼저 악령과, 다음은 질투와 살육과 죽음과 대지가
기르는 온갖 재에서 그대는 태어난 거예요.
제우스께서 그대를 낳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해요. 그대는
수많은 이민족들과 헬라스인들에게 죽음을 안겨주었어요.
그대에게 화 있어라! 그대는 더없이 아름다운 그 눈으로
프뤼기아인들의 이름난 도시를 수치스럽게 파괴해버렸어요.

자, 그대들은 이 애를 데려가고 끌고 가서 던지세요.
그게 좋겠다 생각되면, 이 애의 살점으로 잔치를 벌이세요.
 

     코로스장

가련한 트로이아여, 너는 한 여인과
그녀의 가증스런 결혼 때문에 수만 명을 잃었구나!


 - 《트로이아 여인들》740-781행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대목은 '트로이아의 함락' 뒤에 마침내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그때 그곳에는 두 사람 뿐만 아니라 트로이아의 왕비 헤카베도 함께 있었는데, 헬레네와 헤카베, 즉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헬레네의 잘못'에 대해 서로 격렬하게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헬레네의 억지스런 궤변과 그런 헬레네를 꾸짖는 헤카베의 반론을 일일이 소개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난 뒤의 '헬레네의 행방'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일부 대목들은 이 글이 다루고자 하는 핵심이므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헤카베 

메넬라오스여, 아내를 죽이려는 그대에게 찬사를 보내요.
그녀를 보는 것을 피하시오. 애욕의 포로가 되지 않게.
그녀는 남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도시들을 파괴하고,
집들을 불태워요.
그녀에게는 그런 마력이 있지요.
나는 그녀를 아오. 그대도, 그리고 당해본 사람들도.
 

         헬레네    (천막에서 끌려 나오며)

메넬라오스여, 당신의 첫 인사는 겁주기에 충분하군요.
나는 당신의 하인들의 손에 억지로 이 천막 앞으로
끌려 나왔으니 말예요. 당신이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묻고 싶어요. 헬라스인들과
당신은 내 목숨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렸지요?

   메넬라오스 

당신 착각하고 있구려. 당신을 죽이도록 전군(全軍)이 당신을
내게 넘겨주었고. 당신은 내게 부당한 짓을 했던 것이오.


         헬레네
 

그런 처사에 내가 반론을 제기해도 될까요?
내가 죽는다면, 나는 부당하게 죽는 것이니까요.
 

    메넬라오스 

나는 논증하러 온 게 아니라 그대를 죽이러 왔단 말이오.


         헤카베
 

메넬라오스여, 그녀의 말을 들어보시오. 그럴 기회도 없이
그녀가 죽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반론을 제기하게
해주시오. 그대는 그녀가 트로이아에서 저지른 악행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오. 양쪽 말을 다 들어보면,
그녀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이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오.

(이어서 전개되는 '헬레네와 헤카베 사이의 긴 논쟁'은 생략)

      코로스장 

메넬라오스 님, 그대는 조상들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아내를
벌주세요. 그리하여 그대가 유약하다는 헬라스 쪽 비난을 막고
그대의 적들에게는 그대가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메넬라오스 

그대의 생각은 내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오. 이 여인은
제 발로 내 집을 떠나 외간 남자의 잠자리로 갔던 것이오.
그리고 그녀의 퀴프리스 이야기는 허구요 핑계에 불과하오.
(헬레네에게)
당신은 가서 돌에 맞아 죽으시오! 그리하여
아카이오이족의 긴 노고를 짧은 죽음으로 보상하시오!

그리고 나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시오.
 

         헬레네    (그의 발 앞에 쓰러지며)

당신의 무릎을 잡고 빌고 있어요. 제발 신들의 잘못을
내게 돌리지 마세요! 나를 죽이지 마시고, 용서해주세요!

         헤카베 

그대는 이 여인이 죽인 전우들을 배신하지 마세요.
내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의 이름으로 간청해요.

    메넬라오스

관두시오. 노파여! 나는 이 여인의 청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이 여인을 데려가라고 하인들에게
명령하는 것이오. 그녀가 배로 운반될 수 있도록 말이오.

          헤카베    

그녀가 그대와 한 배에 오르지못하게 하세요!

    메넬라오스

그건 왜요? 그녀가 전보다 더 무거워지기라도 했나요?

         헤카베 

한번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하게 되지요.

 - 《트로이아 여인들》890∼1051행



이제껏 살펴본 대로 '헬레네의 행방'은 작가들의 의도에 따라 달라질 뿐만 뿐만 아니라 설사 같은 작가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쓴 작품들이 바뀔 때마다 또다시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다보니 작가와 작품에 따라 그녀의 '언행과 처신' 또한 '사실(史實)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점들은 아마도 신들이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모습들과도 일견 닮은 듯한데, 결국 '고대 그리스 시인들의 상상력'이 그만큼 자유롭고 풍성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이오 공주'와 '메데이아 공주' 등에 얽힌 신화조차도 일단 '역사'로 되돌려 놓고, '헬레네 납치 사건' 또한 그러한 선행 사례들을 모방한 것으로 보는 헤로도토스의 이야기까지 들으면, '트로이아 전쟁'이라는 인간들의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싸움조차도 '불멸의 존재인 신들의 다툼'으로 격상시키고, 온갖 신들과 인간들이 한데 뒤섞여 벌였던 끔찍한 전쟁을 그토록 장대하고도 치밀한 서사시로 꾸며 노래한 호메로스의 재주가 새삼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 주사위놀이를 하는 아킬레우스(왼쪽)와 아이아스.
    기원전 530년경, 손잡이가 둘 달린 항아리 세부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에서 인용)


입심좋은 몽테뉴가 호메로스를 두고,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왔다.'고까지 말한 것도 이쯤되면 지나친 과찬이 아니라 진실로 아름다운 칭찬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호메로스이다. ······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이제 긴 글을 맺을 차례다. 신화 작가로 널리 알려진 고(故) 이윤기 님은 2002년에『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제1권의 100쇄 출간을 기념하여 발행된 <신화, 그 황홀한 눈뜸의 순간들>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자면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중심으로 하는 헬레니즘(그리스 문화)과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헤브라이즘(히브리 문화) 이해를 길잡이로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서양 문화를 보는 눈길이 사뭇 달라집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신화 독자들이 늘어가는 사태가 나로서는 여간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기쁨과 자랑스러움은, 신화 읽기를 통하여 이 세계를 대하는 독자들의 눈썰미가 날로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라는 데 대한 기쁨이자 자랑스러움일 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옳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같은 사람조차 이렇게 '신화'에 얽힌 이야기를 구구절절 길게 늘어놓아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그나마 내가 이쯤에서 어디 궁색한 변명거리라도 없을까 하고 돌아보니 마침 6년 전 봄에 고대 이집트의 도시 '멤피스'에 들렀던 일이 떠오른다. 글쎄, 저 전설적인 인물인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바로 그곳을 다녀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내가 이런 글을 써 볼 욕심을 부렸더라도 너무 주제넘은 일이라고 타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물론 내가 멤피스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그 유명한 부부가 그곳에 꽤나 오랫동안 머물다 갔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 도시에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스스로 위안을 삼을 거리를 하나 더 발견했다. 정작 '신화의 작가'로 너무나 유명한 이윤기 님조차도 적어도 1999년까지는(그가 우리 나이로 '쉰 셋'이 될 때까지) 그리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단다. 내게도 이윤기 님처럼 어느날 불쑥 '그리스로 함께 떠나자'는 말을 걸어오는 후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나도 만사 제쳐두고 훌쩍 '신화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정말 그리스에 가게 되면 나도 이윤기 님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신화 속 주인공'을 찾아 그리스 전역을 마구 헤집고 다니고 싶다. 그리고 여기저기 널린 신전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가 가끔씩 돌부리에 채여 좀 넘어지기도 하면서 또 거기에 무슨 보물이라도 없나 좀 살펴보기도 하고. 


"형, 그리스 가봤어요?"
"아직 못 가봤어."
"그리스에도 안 가보고 그리스 신화 책을 줄줄이 써요? 터키와 그리스를 아우르는 꾸러미 여행을 기획하고 있는데 동행하지 않겠어요? 형은 신화를 좋아하니까 어차피 그리스와는 낯을 익혀야 하지 않소?"

 -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들어가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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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트라토니케와 ‘병든 왕자‘ 안티오코스 이야기
    from Value Investing 2017-01-24 00:29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야클 2014-04-11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역시 oren님 글 답게 엄청난 분량과 내용의 페이퍼네요. 오늘은 추천만 누르고 다음에 여유있을 때 차분히 읽어보겟습니다. ^^

oren 2014-04-12 15:28   좋아요 1 | URL
책들끼리 연결된 보이지 않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다보니 글이 한정없이 길어지더군요. ㅎㅎ
공감 눌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야클님.